소설리스트

레벨업 하는 식당-169화 (169/330)

# 169

Restaurant 168. 냄비밥과 달래간장과 구운 김

“안녕하세요~! 지한아! 안뇽!”

듣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활기찬 여인의 음성이 식당 안을 가득 채웠다.

식당을 찾은 사람은 다름 아닌 강지영이었다.

오늘부터 식당에 나와 일을 배우기로 한 것.

“누나, 왔어?”

강지한이 그녀를 반겼다.

“안녕하세요. 오늘부터 주방에서 일하게 된 강지영이라고 해요. 지한이랑은 배틀 셰프 동기구요~”

강지영은 다른 사람들에게 밝게 인사를 건네며 주방으로 향했다.

“어머나, 주방에 예쁜 처자가 들어왔네?”

“배틀 셰프 잘 봤어요. 요리를 너무 맛깔나게 하시더라.”

전덕진과 강희주가 살갑게 말을 붙였다.

“큰언니들~ 잘 부탁드릴게요.”

워낙 붙임성이 좋은 강지영은 아주머니들의 그런 행동이 좋았다.

“안녕하세요, 언니. 선생님 밑에서 배우고 있는 한지민이라고 해요. 일전에 식사하러 오셨을 땐 경황이 없어서 인사도 못 드렸었는데 함께 일하게 돼서 정말 좋아요.”

“어머, 벌써부터 언니? 되게 싹싹한 아가씨네. 그럼 앞으로 나 말 편하게 해도 돼요?”

“그럼요.”

“우리 잘 해보자, 지민아.”

“네!”

한지민도 성격이 좋아서 강지영과 죽이 잘 맞았다.

강지한은 강지영에게 새로운 앞치마와 위생모를 건네줬다.

그녀가 건네준 것을 착용하는 동안 강지한이 말했다.

“제가 사전에 말씀드렸다시피 강지영 씨는 우리 주방에서 석 달 정도만 일을 배우고 분점의 점주로 일을 하게 될 겁니다.”

말인즉, 석 달 후에는 분점이 문을 열 수 있도록 매장 계약과 오픈 준비까지 전부 끝내겠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확신하고 덤벼들 만큼 강지한은 강지영에게 믿음이 있었다.

“어? 이분은 못 보던 분인데? 안녕하세요~”

강지영의 시선이 주방 한 편에서 굳어 있는 조정호에게 향했다.

그러자 조정호는 고개만 끄덕하고 말았다.

근 일 년 간 혼자만의 세상에 빠져 허무의 세월을 보낸 조정호는 낯선 사람을 상대하는 게 힘들었다. 특히 여자의 경우 더 그러했다. 게다가 강지영은 대단한 미인이다.

조정호는 차마 그녀의 눈도 제대로 바라볼 수가 없었다.

그러자 강지영이 다가와 어깨를 손가락으로 콕 찔렀다.

“사람이 인사하는데 반응이 그게 뭐예요? 저 강지영이라고 해요.”

“조정호……입니다.”

조정호가 여전히 강지영을 쳐다도 보지 않자 강지한이 끼어들었다.

“정호 씨가 부끄러움을 많이 타서 그래 누나. 주방에서 함께 일할 거고, 아직은 알바비 정도만 받으면서 인턴으로 일하고 있는데 세 달 뒤에는 정직원으로 함께할 거야.”

“그래? 딱 나 나갈 때 정직원 되시겠네. 앞으로 잘 지내봐요, 정호 씨.”

“네.”

새 멤버들끼리의 통성명도 끝났으니 이제 바쁘게 오픈 준비를 마무리 지어야 할 때.

강지한은 그 전에 강지영의 포지션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해 줬다.

* * *

강지영은 역시 대단했다.

무엇이든 한 번만 가르쳐주면 그걸 그대로 따라했다.

이제 하루 첫 출근 한 것이고, 영업을 시작한 지 두 시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강지영은 거의 모든 플레이팅을 마스터했다.

‘확실히 달라.’

강지영이 혼자서 담아낸 반찬들을 보며 강지한은 감탄했다.

강지한이 만든 것이라고 해도 속을 만큼 완벽하게 따라한 그녀였다.

물론 음식은 플레이팅이 다가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맛인 만큼, 강지한의 손맛을 따라가려면 시간이 좀 걸릴 터.

그 기간을 강지한은 석 달로 본 것이다.

그마저도 강지한이 만든 특제 양념과 육수, 여러 가지 재료로 복잡한 과정을 거쳐 만든 천연 조미료들이 있기에 가능했다.

“어머어머, 우리 예쁜 처자 솜씨 좀 봐. 금방 강 사장님 따라 잡겠네~”

전덕진이 호들갑을 떨었다.

조정호는 말없이 감탄의 시선을 던졌다.

“그냥 플레이팅만 따라한 건데요. 강 사장 손맛은 흉내 내려면 멀었죠.”

강지영은 겸양의 말을 하며 완성된 상을 오더 테이블에 올렸다.

유지호가 상을 가져가며 그녀에게 한마디 건넸다.

“실력 좋은 셰프님이 한 분 더 오시니까 회전률이 좋아지네요.”

그건 빈말이 아니었다.

강지영의 활약은 빠른 회전에 도움을 주었다.

덕분에 평소보다 웨이팅 손님들의 대기시간이 더 짧아졌다. 그 작은 변화에도 손님들은 기분 좋게 반응했다.

* * *

브레이크 타임.

오늘은 회전률이 빨라진 덕분에 준비했던 요리들이 예상보다 많이 소진됐다.

그 바람에 평소처럼 지한 식당의 메뉴를 직원들의 식사용으로 내갈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냉장고에 있는 직원 전용 기본찬만으로 한 끼를 때우기는 아쉬운 것이 사실.

‘뭐라도 만들어야겠는데.’

강지한이 냉장고를 열어 남는 재료를 확인했다.

얼마 전 무침을 하고 남은 달래 약간과 강희주가 집에 선물로 들어왔다며 갖다 놓은 김밥용 김이 보였다.

두 가지 재료를 보자마자 강지한의 입안에 군침이 돌았다.

“지영 누나, 냄비밥 할 줄 알지?”

강지한의 물음에 강지영이 엄지를 척 내밀었다.

“당근!”

“냄비 세 개로 나눠서 15인분만 해줘.”

“사람이 11명인데?”

“그렇게 해도 모자를 수 있어.”

강지한은 대식가다.

앉은 자리에서 너끈히 3인분은 먹어치우는 만큼 15인분은 해야 했다.

“알았어.”

“냉장고에 불린 쌀 있어.”

“아, 이런 용도였구나.”

손님들에게 나가는 건 전기밥솥으로 지은 밥인데 따로 쌀을 조금 불려놓기에 뭐에 쓰려나 했었다.

근데 그 불린 쌀은 직원들 식사용이었다.

강지한은 얼마 전부터 직원들에게는 불린 쌀로 냄비밥을 바로 지어 내어주고는 했다.

갓 지은 냄비밥은 윤기가 좌르르 흐르는 데다 고슬고슬한 밥알은 탱글 쫄깃했으며 구수함까지 일품이었다.

강지영이 냄비밥을 안치는 동안 강지한은 달래간장을 만들었다.

달래들은 이미 깨끗이 씻어서 껍질 손질이 되어 있었다.

강지한이 칼등으로 알뿌리를 으깬 뒤 달래를 손가락 한마디 크기로 잘랐다.

그것을 볼에 옮겨 담고 고춧가루, 진간장, 참기름, 설탕, 매실청, 물, 다진 마늘, 통깨를 적당량씩 넣어 섞었다.

그러자 향이 끝내주는 자작한 달래간장이 완성됐다.

비록 제철이 아니라 하우스에서 재배한 달래였지만 준치는 썩어도 준치였다.

이어 김밥용 김을 꺼내 약한 불에 살짝 구워낸 뒤, 밥을 싸먹기 좋은 크기로 잘랐다.

김을 구우며 주방 안에 가득 밴 냄새가 아주 기막혔다.

‘이 김에 갓 지어 고슬고슬한 밥을 싸서 달래간장에 찍어 먹으면.’

생각만 해도 입에 침이 고이는 강지한이었다.

별게 없는 간편식이지만 이것만큼 입맛 돌게 하는 궁합도 또 없을 것이다.

‘계란 프라이도 빠질 순 없지.’

강지한이 계란 프라이를 스물두 개나 구워냈다.

인당 두 개씩 배정한 것. 완성된 계란프라이의 익힘 정도는 전부 써니 사이드 업(Sunny side up)이었다.

완성된 반찬은 직원들이 상으로 내갔다.

그러고는 얼른 밥이 지어지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이미 쌀을 잘 불려놓은지라 밥이 완성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밥 짓는 구수한 냄새가 주방 안을 가득 채웠을 때쯤, 드디어 큰 냄비 세 개가 식탁으로 날라졌다.

“맛있게 드세요.”

“잘 먹겠습니다!”

사람들이 너도 나도 밥그릇에 밥부터 퍼 담았다.

강지한도 밥을 퍼 담았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밥을 잘 구워 바삭한 김에 싸서 달래간장을 찍어 집에 넣었다.

바삭, 바삭.

김이 부서지며 안에 있던 밥알이 탄력 있게 씹혔다.

완벽하게 구워진 김은 특유의 비릿함이 날아가고 고소함만 남았다.

산뜻한 달래의 향을 머금은 짭쪼름한 달래간장이 김과 밥알에 스며들며 세 가지 재료의 맛을 하나로 잘 뭉쳐주었다.

바삭, 탱글, 촉촉한 식감도, 고소하고 구수하고 산뜻한 풍미도 하나같이 끝내줬다.

거기에 톡 터진 노른자가 가득 묻은 계란 프라이 한 점을 입에 넣고 김치 한 조각까지 곁들이면 그야말로 천국이 부럽지 않았다.

“와, 진짜 맛있다.”

“김이 바삭하게 구워져서 식감이 최고야.”

“냄비밥은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가 않아. 물 말아서 김치랑만 먹어도 맛있는 거 있지?”

“달래간장 진짜 좋아하는데. 행복하다.”

그날 식사는 모든 직원들의 호평 속에 만족스레 끝났다.

* * *

이봉두는 거두리에서 ‘진수성찬’이라는 한식당을 운영하는 사람이었다.

두 달 전까지 진수성찬은 저렴한 한식당 중에서는 거두리 제일가는 매출을 자랑하는 곳이었다.

그런데 지한 식당이 들어서며 손님의 수가 반으로 줄었다.

그것은 식당을 오픈한 이후 5년간 왕좌에서 내려올 줄 몰랐던 진수성찬의 명예와 이봉두의 자존심에 금이 가도록 만들었다.

그래서 이봉두는 오늘 주방장과 함께 지한 식당을 찾았다.

“어디 얼마나 잘나오는지 한 번 보자고.”

이봉두가 안내된 자리에 앉자마자 씨근거렸다.

그 맞은편에 앉은 진수성찬의 주방장 김미화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메뉴부터 살폈다.

올해 마흔 중반인 그녀는 손맛으로 어디 가서 아쉬운 소리를 들어본 적이 거의 없었다.

그 손맛 하나로 진수성찬을 지금의 자리에 올려놨는데 갑자기 굴러들어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내니 속이 상했다.

그래서 지한 식당의 염탐에 동반한 것.

직원에게 주문법을 안내 받은 두 사람은 서로 다른 메뉴를 주문했다.

그러자 5분도 지나지 않아 주문한 음식들이 서빙됐다.

“회전률은 좋겠네요.”

김미화가 말했다.

“그러면 뭐해. 맛이 있어야지.”

“맛이 있으니까 이렇게 바글거리겠죠.”

“쯧!”

혀를 찬 이봉두가 한 상에 올라온 찬들을 살피며 몇 가지를 짚었다.

“이거랑, 이거. 요고. 그리고 요거는 딱 봐도 잔반 재활용한 거네.”

뭐 눈엔 뭐만 보인다고, 이봉두는 진수성찬의 주방에서 상태가 좋은 잔반들은 재사용을 하도록 시킨다.

김미화 역시 별 거리낌 없이 손님들 상에 나갔던 잔반들을 재사용하고 있었다.

‘좋은 재료로 정직하게 만들어 상에 올립니다’라는 것이 진수성찬의 슬로건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정직’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었다.

“뭐 플레이팅만 예쁘지 그렇게 특이할 것도 없구만.”

이봉두는 마치 다른 테이블에서 들으라는 듯 크게 말했다.

그에 근처 테이블에서 식사를 하던 손님들 일부가 그를 쳐다봤다. 하지만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고서는 다시 자신들의 식사에만 집중했다.

그 미소가 마치 ‘뭘 알지도 못하면서’라고 비웃는 것 같았다.

‘제기랄. 내가 이 음식들을 아주 찢어놓겠어.’

조금의 허점이라도 보인다면 칼같이 비난하겠노라 마음을 단단히 먹은 이봉두가 수저를 놀렸다.

김미화도 같이 시식을 시작했다.

음식이 입에 들어가기 전 두 사람은 시선을 교환했다.

‘미화 씨, 뭐라도 걸리면 바로 떠들어.’

‘사장님도요.’

고개를 끄덕인 그들은 열심히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하나만 잡혀라.’

‘뭐든 걸리기만 해봐.’

상에 놓인 반찬 하나하나부터 메인 메뉴, 찌개, 밥까지 그들은 신중하게 맛봤다.

‘하여튼 허점만 드러나면.’

‘마구 물어뜯어 주겠어.’

‘딱 하나만 걸리면 돼.’

‘뭐든 구멍이 있겠지.’

‘하나만…….’

‘구멍이…….’

‘…….’

‘…….’

두 사람이 정신을 차렸을 땐, 앞에 있는 그릇들이 싹 다 비워진 이후였다.

뭐든 흠집을 잡기 위해 먹기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 그 맛에 빠져들어 온전히 음식을 즐기고 말았다.

흠집을 잡지 못했다면 요리의 맛을 파악하고 그것보다 앞서갈 수 있는 메뉴를 개발하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그런데,

“이걸 어떻게 잡아?”

“……사장님, 일단 후퇴하죠.”

이건 넘사벽의 맛이었다.

애초에 대적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이봉두와 김미화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었다.

두 사람은 카운터에서 계산을 하고 털레털레 식당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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