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8
Restaurant 167. 설탕느님
조정호의 능력치는 경이로울 지경이었다.
요리 레벨이 한지민을 넘어서고 있었다.
게다가 다른 사람들에게서는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특수능력까지 존재했다.
그것은 절대미각.
뿐만 아니라 종합 평가를 보면 여태 노력을 하지 않았음에도 타고난 레벨이 그 정도 수준인 것 같았다.
등급은 A-.
한마디로 조정호는 천재형 사람이었다.
그런데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
바로 정직도.
‘노력한 적이 없다더니…….’
강지한이 겪어본 바로 정직도는 대상의 근면성실함과 큰 연관이 있었다.
하지만 좋은 스승을 만나거나 스스로 노력하면 대성할 수 있다고 한다.
‘과연 내가 그에게 좋은 스승이 되어줄 수 있을까?’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조정호의 손을 뿌리치기엔 그가 가지고 있는 능력이 너무 아까웠다.
현재 지한 식당엔 두 명의 인원이 충원됐다.
홀에 알바를 더 들였고, 주방에는 다음 주부터 강지영이 출근하기로 했다.
더 이상 손이 부족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영 누나는 어차피 분점으로 떠날 사람이니까.’
나중을 생각하면 주방에 사람을 하나 더 들이는 게 맞았다.
“이름이 어떻게 되시죠?”
이미 정보의 눈으로 상대방의 이름을 확인한 강지한이었지만 모르는 척 물었다.
“조정호라고 합니다.”
“조정호 씨, 나이는요?”
“올해 서른셋입니다.”
나이치고는 상당한 동안이었다.
“제가 네 살이나 어린데 제 밑에서 일 배우실 수 있겠어요?”
“물론입니다. 나이를 떠나서 사장님은 제게 다시 일어날 용기를 주신 은인이십니다. 가르쳐만 주신다면 소처럼 열심히 배우겠습니다.”
조정호가 의지를 일으켰다.
그러자 그의 정직도가 60까지 상승했다.
‘호오?’
아무래도 마음을 단단히 먹은 모양.
강지한은 그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내일부터 주방 일 거들도록 하세요.”
“저, 정말입니까?”
조정호가 감격에 벅차 물었다.
“열한 시까지 나오셔서 오후 아홉 시 퇴근입니다. 중간에 브레이크 타임 두 시간 있으니 하루에 여덟 시간 일하게 되는 거죠. 할 수 있겠어요?”
“할 수 있습니다.”
“세 달은 아르바이트 비용 지급하며 수습 과정 밟을게요. 그 이후에 실력과 성실함이 갖추어졌을 때, 직원으로 받아들일 겁니다. 물론, 조정호 씨께서 직원으로 남고 싶다면요.”
“무조건 지한 식당의 직원이 되도록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좋아요. 돌아가시고 내일 뵐게요.”
조정호가 허리를 구십 도로 숙여 인사하고 식당을 떠났다.
전덕진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디서 굴러먹다 온 인간인지도 모르는데 그렇게 선뜻 받아도 괜찮겠수?”
“괜찮을 거예요, 아주머니. 제가 또 사람 보는 눈 하나는 제대로잖아요. 그러니까 아주머니도 가족으로 들였죠.”
느닷없이 날아든 칭찬에 전덕진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 * *
조정호는 다음 날부터 꼬박꼬박 오전 9시에 식당을 나왔다.
강지한이 나오라고 한 시간보다 두 시간이나 일찍 걸음을 한 것이다.
강지한도 그 시간 즈음 출근을 하니 다른 직원이 나오기 전까지 둘이 있는 시간이 제법 많아졌다.
그에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면서 강지한은 조정호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되었다.
한 달 전까지 그는 서울에서 지냈다고 한다.
나고 자란 곳은 춘천이지만 사업을 위해 서울살이를 결심했다.
하지만 번번이 사업을 말아먹고 일 년 전부터는 폐인처럼 지내다가 한 달 전에 춘천으로 내려왔다.
“사실 죽을 자리를 보러 온 거였습니다.”
그게 조정호가 설명한 고향으로 돌아온 이유였다.
쫄딱 망한 모습으로 돌아와 봐야 반겨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돌아오기가 싫었다.
한데 죽을 자리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자 그래도 고향이 낫겠다 싶었다.
그의 부모님은 몇 년 전에 춘천을 떠나 경기도 시골에 새 보금자리를 마련했다고 한다.
부모님은 아직 아들이 서울에서 열심히 생활하고 있는 줄 아신다.
때문에 춘천에 그가 숙식을 해결할 공간은 없었다.
그나마 노가다를 하면서 번 돈으로 지금은 찜질방 생활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끼니는 지한 식당에서 일하며 먹는 한 끼가 전부였다.
한 달 월급을 받기 전까지 돈을 아껴야 찜질방에서 지내는 게 가능했기에 허리띠를 졸라맸다.
얘기를 거기까지 듣고 난 강지한은 하루 정도 고민했다가 오늘, 그에게 이런 제안을 건넸다.
“정호 씨, 혹시 괜찮으시면 우리 집에서 지내보는 건 어때요?”
“……네? 사장님 댁에서요?”
“별채가 있거든요. 워낙 허름해서 손을 대려면 좀 수고스러울 것 같아 그대로 놔뒀는데. 손봐서 생활할 수 있을 것 같으면 그렇게 하세요.”
강지한이 세 들어 사는 집에는 별채가 있었다.
상당히 낡았지만 손을 보면 지내기엔 나쁘지 않은 공간이었다.
화장실로 달려 있으니 개인 생활이 완벽하게 보장되는 것 또한 장점이었다.
“그래도 되겠습니까?”
“알아서 손보시겠다면 얼마든지요. 제가 별채를 가꿀 여력은 없어서요.”
“그럼 세는 얼마나 내면 됩니까?”
“됐어요. 저도 세 들어 사는 입장인데 월세가 얼마 안 해요. 그냥 지내세요. 오늘 충분히 생각해 보시고 내일 대답 들려주세요.”
“…….”
조정호가 당장에라도 눈물을 흘릴 것 같은 얼굴로 강지한을 바라봤다.
그때 한지민이 출근을 함으로써 다행히 남자끼리의 닭살 돋는 신파극은 피할 수 있었다.
* * *
강지한이 일을 마치고 설탕이를 챙겨 귀가했다.
설탕이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강지한의 뒤를 껌딱지처럼 졸졸 따라다녔다.
그러다 강지한이 뒤를 돌아보면 그 자리에 멈춰 서서 딴청을 부렸다.
강지한이 다시 움직이면 또 뒤를 졸졸 따라갔다.
멈춰서 뒤를 휙 돌아보면 자기도 덩달아 뒤를 돌아보며 모른 척했다.
‘흐흐. 이 녀석 봐라?’
설탕이가 이런 식으로 장난을 치는 건 또 처음인지라 그 모습이 너무나 귀여웠다.
‘한 번 놀려줘야겠다.’
강지한이 거실을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설탕이도 통통 튀는 걸음으로 꼬리를 팽팽 돌리며 강지한을 따라 걸었다.
그러다 강지한이 갑자기 멈춰 서서 뒤를 휙 돌며 소리쳤다.
“어흥!”
깜짝 놀란 설탕이가 미처 대응을 못하고 몸을 파르르 떠는데 어디선가 바람 빠지는 소리가 들렸다.
뽕.
“응?”
설탕이가 킁킁거리더니 후다닥 안방으로 도망갔다.
그걸 본 강지한이 배를 잡고 웃었다.
“푸하하하. 이리 와~ 설탕아.”
설탕이를 부르자 도망갔던 녀석이 언제 그랬냐는 듯 다가와 강지한의 품에 덥썩 안겨들었다.
그러고는 강지한의 뺨을 마구 핥았다.
“크흐흐, 깜짝 놀라서 방귀 뀌었어? 푸흐흐.”
헥헥헥.
천진난만하게 자신을 바라보는 설탕이가 강지한은 사랑스러워 죽을 지경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더 설탕이와 놀아주다가 소파에 앉아 스마트폰을 확인했다.
일하고 귀가하는 동안 확인을 못했더니 전화와 문자가 수십 통씩 와 있었다.
대부분이 언론매체 관계자들인 것 같았다.
한데 그중 반가운 사람의 이름이 보였다.
도그 푸드의 이중견 홍보팀장이었다.
-강 사장님, 기분 좋은 소식 전해드리려 전화 드렸었는데 바쁘신 모양입니다. 기다릴 테니 메시지 확인하시면 꼭 전화 부탁드립니다.
“기분 좋은 소식? 그게 뭘까, 설탕아?”
강지한이 귀가 이후 자신의 뒤를 쫄래쫄래 따라다니는 설탕이를 보며 물었다.
왕!
설탕이가 얼른 전화해 보라는 듯 폴짝폴짝 뛰며 짖어댔다.
강지한은 바로 이중견에게 전화를 걸었다.
-강 사장님, 전화 기다렸습니다.
“네, 김 팀장님. 좋은 소식이라는 것 좀 들으려고 전화 드렸어요.”
그에 이중견이 잔뜩 상기된 음성으로 말했다.
-대박 터졌습니다. 설탕이가 해냈어요. 설탕이가 모델로 나선 신제품이 목표 판매량의 20퍼센트를 달성했습니다! 하하하.
신제품을 내놓기 시작한 지는 아직 보름도 되지 않았다.
그리고 설탕이가 찍은 CF는 저번 주부터 애견 전문 케이블 채널에 전파를 타기 시작했다.
그런데 벌써 금년도 하반기 목표 판매량의 20퍼센트를 달성해 버린 것이다.
“벌써요?”
-네, 출시한 첫 주는 별 재미를 못 봤어요. 도그 프렌즈에서 공격적으로 마케팅을 한 이유도 있고, 이미 견주님들의 인식이 우리 회사보다 도그 프렌즈에 더 우호적이라서 그런 것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표지 모델이 설탕이임을 알아본 견주님들이 애견 카페에 사진을 공유하면서 입소문이 퍼지더라고요. 그러다 저번 주에 CF가 전파를 타면서 드디어 터졌습니다. 하하하.
드디어 설탕이 파워가 진가를 발휘한 것.
사실 이중견도 이 정도까지 모델 효과가 좋을 줄은 몰랐다.
그저 도그 프렌즈만 이기면 좋겠다는 바람이었다.
그런데 설탕이는 그 이상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이미 도그 프렌즈와 신상품 대결에서는 압도적으로 우위를 점했습니다. 처음으로 이겨봅니다, 우리가. 모두 강 선생님과 설탕이 덕입니다.
설탕이로 인해 신상품의 매출 성적이 좋아졌다는 사실에 강지한은 뿌듯해졌다.
그가 바닥에 앉아 설탕이를 어루만지며 통화를 이어나갔다.
“그래요? 진짜 축하합니다. 설탕아, 너도 한마디 해.”
강지한이 스마트폰을 설탕이에게 가져갔다.
그러더니 설탕이는 말하는 곳을 혀로 할짝할짝 핥았다.
그 소리가 이중견의 귀로 들어갔다.
의도치 않게 강아지가 핥는 소리를 ASMR로 듣게 된 이중견이 귀르가즘을 느끼며 몸을 바르르 떨었다.
-아이고, 설탕이는 확실히 사람 녹일 줄 아는 재주가 있습니다. 하하하.
“요즘 설탕이 장난기가 부쩍 늘었어요. 아무튼 다시 한 번 축하드립니다.”
-저야말로 감사드려야죠. 정말 우리 회사가 설탕이 덕을 톡톡히 보고 있습니다. 직원들은 이미 설탕이를 설탕느님이라고 부르고 있어요.
“허어.”
강지한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설탕이는 어딜 가든 그 존재감을 확실히 어필하는 녀석이었다.
-그나저나 강 사장님, 오늘 스마트폰에 불 좀 나셨겠는데요.
“네?”
-오늘 기사 나갔거든요. 우리 도그 푸드의 신상품이 도그 프렌즈의 신상품을 누르고 매출 1위를 달리고 있다는 내용으로. 그걸 본 애견 사업 관련업자들이 엄청나게 전화했을 텐데요? 안 왔나요?
그러고 보니 오늘 유난히 많은 부재중 전화가 찍혀 있었다.
날아온 문자도 상당했다.
강지한은 그것이 자신의 인터뷰 요청인 줄 알았다.
그런데 설탕이로 인해 벌어진 난리였던 것.
“많이 왔어요.”
-역시. 설탕이 이미 이 바닥에서는 스타입니다, 스타. 앞으로도 예쁘고 착하게 잘 보살펴 주세요. 그리고 조만간 댁으로 신상품이랑 우리 회사 히트 상품들 한가득 보내드리겠습니다.
“공짜로 주시는 건 사양 않고 받을게요.”
-네! 그럼 쉬십시오.
전화를 끊고 나서 강지한이 수십통의 문자를 확인했다.
그중 80퍼센트가 전부 설탕이와 계약을 원하는 애견사업 관계자들에게서 온 것이었다.
강지한이 설탕이를 번쩍 들어 안았다.
“설탕아, 넌 정말 대단한 아이야.”
왕! 헥헥헥.
“너도 안다고? 하하.”
설탕이가 그저 한없이 사랑스러운 강지한이었다.
* * *
8월 20일 월요일.
지한 식당이 분주하게 오픈 준비를 하고 있을 때였다.
딸랑-
아직 오픈하려면 한 시간이나 남아 있었는데 누군가 문을 열고서 얼굴을 안으로 빼꼼 들이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