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7
Restaurant 166. 나태한 천재
“사장님, 저분 괜찮을까요?”
강희주가 조정호에게 받은 주문서를 주방에 넘기며 강지한에게 물었다.
강지한이 홀 쪽으로 고개를 쭉 내밀자, 강희주가 눈짓으로 조정호를 가리켰다.
그는 꾀죄죄한 걸인의 몰골로 묵묵히 테이블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다른 테이블에 있는 손님들이 조정호를 께름칙한 시선으로 쳐다봤다.
하지만 조정호는 그런 시선 따위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지 초지일관 테이블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무표정한 얼굴이었는데 지독하게 마음이 지쳐 보였다.
“어떻게 해요?”
강희주가 재차 물었다.
조정호로 인해 다른 손님들에게 피해가 가는 것은 아닌지 걱정되었다.
강지한이 조정호의 머리 위 여유도를 살폈다.
여유도 다섯 칸이 텅 비어 있었다.
약간의 마음의 여유도 없는 상황인 것.
‘이런 경우는 처음인데.’
여태 여유도가 두 칸, 세 칸 정도까지 내려간 사람은 봤어도 단 하나가 없는 손님은 처음이었다.
게다가 아직 나이가 그리 많은 것 같지도 않았다.
무슨 사정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마음이 쓰이는 강지한이었다.
레벨 업 시스템을 만나지 못했다면 어쩌면, 자신 역시 저 손님과 비슷한 처지가 되었을지 모르기에.
“어떻게 하긴. 손님이 주문하셨으면 음식 내 가야지.”
강지한이 주문서를 넘겨받았다.
거기엔 사장님 추천이라고 적혀 있었다.
가끔 이렇게 사장님의 마음대로 메뉴를 주문하는 손님들이 있었다. 그때마다 강지한은 항상 같은 메뉴로 상을 준비했다.
그가 추천하는 건 제육볶음과 김치찌개, 참치계란말이의 조합이었다.
순식간에 완성된 한 상이 오더 테이블에 놓였다.
강희주가 다가와 그것을 조정호의 상 위로 서빙해 줬다.
“주문하신 사장님 추천 음식 나왔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미소를 보낸 강희주가 물러나자 조정호가 수저를 들었다.
그가 여전히 무감정한 얼굴로 밥부터 한술 떠 입에 넣었다.
“쩝쩝.”
입에 들어온 밥을 씹던 그의 눈썹이 움찔했다.
차지게 잘 지어진 밥이었다.
밥알 하나하나가 살아 있다는 표현이 적당할 만큼.
다른 반찬은 아무것도 집지 않았다.
아직 밥만 넣었는데도 맛이 있었다.
‘달아.’
밥을 씹으면 씹을수록 은은한 단맛이 입안 가득 퍼져 나갔다.
세상에 이토록 맛있게 지어진 밥을 먹어본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이번엔 국을 떠먹었다.
“아.”
저도 모르게 감탄이 나왔다.
‘이게 뭐지?’
조정호의 머릿속에서 오래전에 잃어버렸던 무언가가 꿈틀거렸다.
‘이 맛은 뭐야?’
곧 죽을 사람처럼 멍하던 눈에 미약한 생기가 돌았다.
조정호가 다시 한 번 찌개를 떠 먹었다.
맛있었다.
어떻게 말로 다 표현하기 힘들 만큼.
‘삭은 김치. 돼지고기는 삼겹살을 사용해서 오랜 시간 푹 끓여냈다. 하지만 이 맛은…… 김치와 돼지고기만으로는 낼 수 없는 깊은 맛이 있는데.’
조정호의 손이 김치찌개 한술을 더 떴다.
‘육수. 닭 육수를 내서 넣었어.’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김치찌개를 따로 육수 없이 끓이거나 대중적인 멸치 육수를 사용한다.
그런데 멸치 육수를 낼 경우, 특유의 향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호불호가 갈린다. 새우 역시 마찬가지.
그래서 강지한은 닭육수를 사용했다.
닭육수는 국물의 깊은 맛과 감칠맛을 한층 높여주는 한편, 재료 특유의 강렬한 향이 거의 없어 대부분 좋아한다.
‘그 외에도 따로 양념장까지 해서 넣었는데…….’
다시 한 번 국을 맛보는 조정호의 머릿속에서 숨겨진 재료들이 나타났다.
‘저염 간장과 일반 고춧가루, 청양 고춧가루, 고추장 약간, 매실액, 다진 마늘, 후추 약간, 맛술을 넣었을까? 그리고…… 다른 건 모르겠다.’
전부는 아니지만 비법 양념장의 굵직굵직한 재료들은 찌개를 먹어보는 것만으로 파악하는 조정호였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김치찌개가 품고 있는 맛의 비밀을 풀어낼 수 없었다.
조정호의 젓가락질이 빨라졌다.
반찬 하나하나를 급하게 입에 넣고 씹었다.
그럴수록 흐릿하던 그의 눈동자에 생기가 어리고 있었다.
그리고 만두를 집어 먹었을 때.
‘……아!’
조정호의 눈이 번쩍 뜨였다.
그가 놀란 시선을 주방에 던졌다.
그러다 참치계란말이를 말고 있던 강지한과 시선이 부딪혔다.
강지한은 그런 조정호에게 싱긋 미소 지으며 고개를 살짝 숙여 보였다.
조정호가 놀라 시선을 피하고서는 다시 식사를 이어나갔다.
* * *
조정호의 앞에 놓인 상이 텅텅 비었다.
반찬 그릇, 밥 그릇, 국 그릇 전부 설거지를 한 것처럼 깨끗했다.
거의 핥아먹은 수준.
한데 그는 식사를 다 하고 나서도 한참 동안 그 자리에 앉아 일어나지를 않았다.
‘어쩌지.’
조정호가 고민에 빠졌다.
원래는 무전취식을 할 참이었다.
그래서 일부러 바빠 보이는 식당을 찾아 들어간 것.
손님들로 바글거려 정신이 없을 때 슬쩍 빠져나가려 했던 게 그의 계획이었다.
수중에 돈도 없었고, 남은 여생에 아쉬움도 남지 않았다.
차라리 무전취식으로 잡혀 들어가면 콩밥이라도 먹여주니 그게 더 나을지도 몰랐다.
그런데 입에 들어온 음식이 너무나 훌륭했다.
이토록 대단한 요리를 먹어 놓고 돈을 안 낼 수는 없는 일.
하지만 돈이 없었다.
조정호는 저녁 장사가 다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키고 나가지 않았다.
강지한도 종업원들에게 그를 내쫓지 말라 해두었다.
결국 홀에는 손님들이 전부 나가고 조정호 혼자만 남게 되었다.
강지한은 비로소 그에게 다가갔다.
“손님, 죄송한데 영업이 끝났습니다.”
“……네. 압니다. 저 실은…… 돈이 없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제가 딱 제가 먹은 만큼만 식당 일을 돕겠습니다.”
조정호의 말에 강지한이 고개를 저었다.
“괜찮습니다.”
“그래도…… 이런 음식을 먹고 돈을 안 낸다는 건 저 스스로 용납이 되지 않습니다.”
9천 원짜리 미니 한정식을 판다고 했다.
그저 그런 수준의 맛에 값싼 재료를 사용한 반찬들을 가짓수만 많이 늘어놓아 화려한 눈속임으로 승부를 하는 곳이라고 짐작했다.
그런데 이렇게 수준 높은 음식을 파는 곳일 줄이야.
그는 몇 달 동안 문화생활을 전혀 즐기지 못했다.
때문에 강지한에 대한 소문에 대해서도 전혀 들은 바가 없었다.
“어떻게든 밥값을 해야겠습니다.”
강지한은 굳이 고집을 피우는 조정호를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특이한 분이네.’
보아하니 어지간해서는 그냥 나갈 것 같지가 않았다. 그에 강지한이 이렇게 말했다.
“밥값 하시려면 내일도 오세요.”
“……네?”
조정호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내일도 오시라고요. 모레도 오시고, 우리 식당 영업하는 동안은 계속 오세요. 오셔서 식사하고 가요. 하루에 몇 번이고 와도 됩니다. 드신 밥값은 계속 외상 달아놓을 테니 돈이 생기면 갚도록 하세요.”
“아니 그건…….”
“이제 우리 직원분들 마감하고 퇴근해야 해요.”
조정호가 그제야 주변을 훑었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난감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별수 없이 몸을 일으킨 조정호가 모두에게 허리 숙여 인사를 건넨 뒤 힘 빠진 걸음으로 식당을 나섰다.
“선생님, 저분 뭔가 깊은 사연이 있어 보여요.”
한지민이 다가와 말했다.
그러자 따라 나온 전덕진이 콧방귀를 뀌었다.
“아니 세상에 깊은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디 있어? 괜히 한 끼 공으로 먹으려고 수 쓰는 거지.”
“흠……. 그런가.”
“자자, 마무리나 하자고요들~”
전덕진의 우렁찬 목소리가 홀을 울렸다.
* * *
다음 날도, 그다음 날에도 조정호는 꾸준히 지한 식당을 찾아왔다.
한데 저번처럼 사람 많은 시간에 오지는 않았다.
스스로의 행색이 타인에게 피해를 준다는 걸 그는 인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식당이 문 닫기 전에 마지막 손님을 자처했다.
그렇게 2주의 시간이 흐른 8월 16일의 금요일.
조정호는 또다시 지한 식당을 찾았다.
한데 그의 모습은 지금까지 보던 것과 달리 말끔하고 단정했다.
머리는 투블럭으로 깔끔하게 치고 옷은 가벼운 티와 편안한 청바지를 걸치고 있었다.
사우나를 한 건지 몸에서는 은은한 비누향까지 풍겼다.
사람답게 꾸미고 나니 제법 괜찮은 스타일의 남자였다.
그간 종업원들도 그에게 미운 정 고운 정이 들었다. 때문에 하나같이 놀란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조정호는 그 시선들을 고스란히 받아내며 태연하게 자리에 가서 앉았다.
강희주가 다가와 그에게 말했다.
“오늘도 사장님 추천…….”
“아니요. 제대로 주문할게요. 소불고기에 김치찌개, 참치 계란말이로 주세요.”
조정호가 절도 있게 말했다.
“네, 주문 받았습니다.”
* * *
카운터 앞에 선 조정호가 식비로 11만 7천 원을 지불했다.
13일 간 그가 꾸준히 식당에 와서 얻어먹은 밥값이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돈이라고는 한 푼도 없을 것 같던 양반이 깔끔해져서는 돈까지 한 번에 내놓으니 희한한 노릇이었다.
돈을 지불한 그가 강지한에게 말했다.
“노가다를 뛰었습니다. 처음 일주일은 제 행색 때문에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계속 나오니 일을 주더라고요. 그렇게 오늘 아침까지 딱 6일 일했습니다. 그 돈으로 옷도 사고 사우나도 가고 여기 와서 갚을 돈도 마련했습니다.”
조정호가 마치 회사 회의 시간에 브리핑을 하듯 딱딱한 어투로 얘기했다.
“그러셨군요. 고생하셨네요. 그리고 감사드려요.”
“아니요. 제가 감사드립니다. 그때 사장님이 몇 번이고 와도 좋다는 말을 해주지 않았다면 저는 계속 밑바닥 인생을 전전했을지도 모릅니다. 사장님은 참 좋은 분이십니다. 좋은 음식을 만들어서 좋은 가격에 팔고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걸인이나 다름없던 저를 편견 없이 받아들여주셨습니다.”
조정호는 몇 번의 사업 실패로 빚더미에 올라 개인파산 신청을 했고, 이후로는 걸인처럼 길바닥 생활을 전전해 왔다.
마음이 무너지니 모든 것이 다 무너졌다.
집도 절도 없이 되는 대로 살아가다 죽어도 상관없을 삶이었다.
그런데 강지한의 음식에서 전해진 따스함과 그가 베풀어준 은혜가 죽어 있던 마음을 되살렸다.
마음과 함께 엉망이던 몸도 점점 더 좋아졌다.
강지한의 ‘건강 요리사’ 타이틀 덕분이었다.
결국 그는 다시 한 번 세상에 맞서 보기로 하고 똑바로 일어섰다.
“지금처럼만 하시면 어디 가서 무슨 일을 하시든 잘할 수 있을 겁니다.”
“실은 제가 사업을 몇 번 말아먹었습니다. 전부 요식업 관련된 일이었습니다. 미각이 조금 뛰어난 편입니다. 그래서 혀 하나 믿고 까불었다가 호되게 당했습니다. 음식 사업이라는 게 그렇게 만만한 게 아니더라고요.”
“그러셨어요?”
“염치없지만 부탁이 있습니다.”
조정호의 말투는 여전히 딱딱했다. 오랜 시간 사람과 말을 제대로 섞어보지 않아서 그런 것 같았다.
“말해보세요.”
조정호가 침을 한 번 꿀꺽 삼키고서 입을 열었다.
“혹시 일손이 부족하다면 저를 종업원으로 받아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의외의 물음이었다.
“제 식당에서 일하고 싶으세요?”
“네. 열심히 할 자신 있습니다.”
조정호가 지한 식당에서 일하고자 하니 상태창을 확인할 수 있는 조건이 충족되었다.
강지한의 정보의 눈으로 그의 상태창을 확인했다.
그리고 주르륵 나타난 조정호의 능력치에 강지한의 입이 쩍 벌어졌다.
<조정호의 능력치>
직급: 지한 식당 근무 희망자
등급: A-
능력: 요리 LV 8, 서빙 LV 1, 청소 LV 1, 회계 LV 1, 설거지 LV 1, 화술 LV 1
특수능력: 절대미각 LV 3
정직도: 53/100
신뢰도: ???/100
종합 평가: 요리와 미각의 능력은 타고 났다. 잠재력도 뛰어난 편. 하지만 타고난 천재성만 믿고 꾸준한 노력을 하지 않아 발전이 더딘 상황. 그 외에 다른 능력들은 있으나마나다. 식당을 열기도 하고 식품 사업도 벌였었지만 재능만 믿고 덤볐다가 전부 말아먹었다. 좋은 스승을 만나거나 스스로 노력해 나간다면 요리 분야에서 대성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