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3
Restaurant 162. 터지고, 터지고, 터졌다!
7월 25일, 수요일.
저번 주부터 공지했던 대로 지한 식당은 문을 닫았다.
강지한의 푸드스타일리스트 수업이 끝나기 전까지 수요일은 정기휴일이 될 것이다.
모처럼 집에서 휴식을 취하던 강지한은 레벨 업 현황을 확인했다.
<레벨 업 현황>
[강지한]
얼굴 LV6 만족도+5 (숙련도 5/100)
혀 LV6 미각+5 (숙련도 7/100)
목소리 LV6 (숙련도 4/100)
손 LV6 (숙련도 7/100)
눈 LV5 (MA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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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적 포인트: 304,223
단골 포인트: 13
얼굴, 혀, 목소리, 눈의 숙련도는 전과 달리 매우 더디게 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만족도 포인트는 벌써 30만을 돌파했다.
지한 식당에서 만족도 포인트를 입수할 수 있던 기간은 단 열흘.
저번 주 목요일로 끝났다.
근데 단 열흘 동안 이 정도나 되는 만족도 포인트를 입수한 것.
강지한의 요리가 업그레이드된 만큼, 손님들의 만족도도 크게 올라간 덕분이었다.
“흐아암.”
강지한이 기지개를 켜며 거실 소파에 앉았다.
그러자 설탕이가 그의 무릎 위로 폴짝 뛰어올랐다.
“설탕아~ 우리 TV 볼까?”
왕!
강지한이 텔레비전을 틀었다.
한데 공교롭게도 화면을 틀자마자 강지한의 모습이 나오고 있었다.
그가 찍었던 신푸드의 CF였다.
강지한은 촬영 당시 대사 한마디도 없이 그저 요리만 했었다.
그런데 그 모습들이 화려하게 편집되어 전문 성우의 나레이션과 세련된 타이포까지 깔리니 제법 멋이 있었다.
‘그나저나 역시 세진 그룹 파워가 세긴 세네.’
현재 신푸드의 CF는 지상파 인기 프로그램의 앞뒤로 광고가 깔리고 있었다.
인기 프로그램에 붙이는 광고는 그만큼 돈이 많이 든다.
아울러 요리 전문 채널에서도 열심히 광고를 내보내는 중이었다.
이는 세진 그룹에서 강지한의 레시피로 개발한 신푸드의 신제품을 돈이 된다고 판단했다는 것.
아무리 세진 그룹 회장 백진목이 강지한을 좋게 봤다고 해도 인정만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 있는 법이다.
무엇보다 그는 자선사업가가 아니라, 이문을 남기는 사업가다.
때문에 충분한 수익을 회수할 수 있을 거라는 판단으로 이렇게 돈을 들여 광고를 때리는 것이었다.
광고가 끝난 뒤에는 바로 배틀 셰프 마지막화가 재방송됐다.
요즘 배틀 셰프는 재방송을 자주 돌리고 있었다.
그만큼 큰 인기를 끌었기 때문이다.
강지한은 이미 몇 번이나 봤던 터라 채널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그러다 분식집 막내아들이 흘러나오는 영상에서 손을 멈췄다.
그것 역시 재방송이었다.
현재 전파를 타고 있는 건 18화.
지난주 목요일 방송된 내용이었다.
총 20부작 예정인 분식집 막내아들은 이번 주에 끝이 난다.
시청률이 50퍼센트를 돌파하며 연장 요청이 쇄도했지만, 송만대 감독은 대쪽같이 기존에 나온 시나리오를 고수했다.
방송국의 드라마 국장이 와서 부탁을 해도 그의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다.
괜히 시청률 좋아서 몇 화 더 늘리려다가 작품에 흠집이 나는 것을 그는 용납하지 못했다.
분식집 막내아들은 강지한에게도 각별한 의미가 있는 드라마였다.
그래서 조금 더 애틋한 시선으로 시청을 하고 있었다.
현재 장면은 극 중에 등장하는 조연 쌍둥이 자매가 일상을 보내는 컷이었다.
-야야, 배고프다. 뭐 좀 만들어봐.
-언니가 만들어봐.
-우리 그럼 분식집 갈까? 맛있는 분식도 먹고 잘생긴 세민 씨도 보고.
-오늘 쉬는 날이잖아.
-아, 맞다. 그럼 잠깐만 기다려 봐.
거기서 컷이 넘어가더니 다른 장면으로 전환됐다.
그때 강지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배고프다던 두 쌍둥이 자매가 신푸드의 음식을 먹고 있는 게 아닌가?
그것도 기존의 김치 사총사가 아닌 신제품이었다.
-이거 진짜 맛있지?
-와, 대박. 즉석 식품에서 어떻게 이런 맛이 나? 엄마가 해준 것 같아. 어디 거라고?
-아, 저기 포장지 있잖아. 직접 봐.
쌍둥이 언니가 싱크대에 마구 어질러진 포장지들을 확인했다.
그녀의 시선을 따라 카메라가 신푸드 제품의 포장지를 잡았다.
이어 고개를 끄덕이는 쌍둥이 언니의 모습이 잡히고 화면은 전환됐다.
이를 본 강지한이 입을 달싹였다.
“제대로 PPL 해주셨네.”
* * *
오래간만에 찾은 푸드스타일리스트 수업.
강지한이 들어서자마자 모든 회원들이 그를 반겼다.
“이게 얼마만이야, 지한 씨. 얼굴 까먹겠어요.”
“어제 단톡방에서 지한 씨 나온다는 말 듣고 얼마나 설렜는지 알아요?”
“앞으로는 빠지지 않고 나올 거지, 지한 총각?”
“강 사장님~ 나 저번 주에 지한 식당 갔었는데 바빠서 인사도 못했어요. 호호호.”
회원들이 정신도 차리지 못할 만큼 동시다발적으로 말을 건넸다.
그걸 구자영 교수가 진정시켰다.
“선생님들~ 지한 선생님 기절하시겠어요. 숨 좀 돌리게 해주세요. 그래주실 거죠?”
역시나 말 한마디 한마디에 기품이 가득한 구자영이었다.
회원들이 좀 진정되자 강지한이 두 손 가득 가져온 쇼핑백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이게 뭐예요?”
옆에 있던 아주머니 회원이 물었다.
아까 전부터 그 안에서 맛있는 냄새가 스멀스멀 올라와 군침이 넘어가던 판이었다.
강지한은 대답 대신 쇼핑백 안에 있는 음식들을 꺼내놓았다.
“어머나!”
“이게 다 뭐야? 호호호.”
테이블엔 여러 음식이 담긴 용기가 수두룩하게 깔렸다.
회원들이 달려들어 용기의 뚜껑을 일사분란하게 열었다.
그러자 김밥, 떡볶이, 라볶이, 김치 수제비, 비빔밥, 김치 볶음밥, 김치찌개, 된장찌개, 제육덮밥 등등 여러 음식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나같이 먹음직스러운 비주얼을 뽐내고 있었다.
회원들은 당장에라도 수저를 들어 저것들을 먹고 싶은 욕구에 휩싸였다.
꿀꺽!
이미 강지한의 김밥 맛을 본 구자영도 절로 군침이 넘어갔다.
‘나 왜 이러지. 교양 없게.’
강지한의 음식 앞에만 서면 교양이고 뭐고 없어지는 그녀였다.
“일단 드시고 시작하시죠.”
“고마워요, 지한 씨~!”
“지한 총각, 잘 먹을게.”
회원들은 강지한이 가져온 일회용 수저로 열심히 음식을 나눠 먹기 시작했다.
음식들은 하나같이 그 맛이 기가 막혔다.
그런데 일전에 강지한이 만들어 온 김밥의 충격적인 맛보다는 좀 덜했다.
“어떠세요?”
“맛있어요. 근데 저번에 가져온 김밥이 더 맛있었어요. 내가 너무 솔직했나? 호호호.”
강지한의 물음에 누군가가 대답했다.
“그럴 거예요. 이건 제가 만든 게 아니거든요. 전부 신푸드에서 나온 즉석식품이에요.”
“아! 지한 총각이 텔레비전에서 광고하던 그거?”
“어머나, 나 그거 사먹으려고 슈퍼 갈 때마다 다 팔려서 도통 못 먹었었는데.”
“아니, 근데 이게 즉석식품이에요? 난 직접 만들어 온 건 줄 알았네.”
“여느 분식집에서 먹는 것보다 훨 나아요.”
“이러니까 매번 품절이구나.”
자신들이 먹고 있는 게 즉석식품이라는 걸 알자마자 회원들의 반응은 확 바뀌었다.
이건 도저히 즉석식품이라고는 볼 수 없는 퀄리티와 맛을 자랑했다.
잘 먹는 회원들을 보는 강지한은 그저 뿌듯했다.
* * *
푸드스타일리스트 수업이 끝나가는 시각.
“이제 5분 뒤에 선생님들의 첫 테이블 스타일링을 완성하셔야 해요.”
구자영은 오늘 회원들에게 스스로 테이블 하나씩을 꾸며 보라고 했다.
이미 수업을 하는 첫 주부터 공지를 해두었던 터라 모든 회원들은 스타일링에 필요한 재료들을 전부 이 공간에 구비해 놓은 터였다.
한 번에 재료를 나르기엔 접시 같은 것들이 제법 무겁기에 몇 주에 걸쳐서 나눠 가져오도록 한 것.
강지한도 몇 개 가져놓았던 것이 있어서 그것들을 최대한 이용해 스타일링을 해나갔다.
그가 꾸미려고 하는 타입은 엘레강스(elegance).
고급스러운 식탁을 꾸밀 때 좋으며 주로 보라색 계통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한데 보라색이라는 것이 잘못 사용할 경우 촌스러워지거나 난해한 스타일로 전락할 수가 있어 대부분 선택하지 않는 타입 중 하나였다.
강지한은 과감하게 그것에 도전했다.
그리고,
“와아.”
“어떻게 수업을 세 번밖에 나오지 않으신 양반이 이렇게 꾸몄대 그래?”
“진짜 멋지네요.”
성공적으로 해냈다.
강지한이 포인트를 둔 것은 ‘장미’였다.
그의 단짝인 최영진은 어느 날 술자리에서 휴지로 장미 접는 법을 가르쳐 준 적이 있었다.
그걸 응용해서 테이블 여기저기에 장미 모양을 만들어 포인트를 줬다.
테이블을 덮는 보라색 테이블 크로스 위에 가운데를 가로지르듯 두 개의 컵을 엎어놓고, 그 사이에 하나의 밥그릇을 똑바로 놓았다.
그 위를 하얀색 린넨 천으로 덮은 뒤, 천의 양 끝을 장미 모양으로 둘둘 말아 마무리했다.
컵과 그릇 사이사이의 천은 손으로 대충 쥐어 작위적이지 않은 구김을 주었다.
그리고 천으로 덮어놓은 세 개의 기물 위에 보라색 조화(造花)를 얹었다.
그러자 테이블 중앙을 가로지르는 예쁜 장식이 완성되었다.
그 양옆으로 은촛대를 세워 붉은 밝히고 테이블 매트는 테이블 크로스보다 조금 더 짙은 보라색으로 준비해서 세로로 길게 깔았다.
테이블 매트 위로 연보랏빛 스테이크 접시와 그 위에 다시 하얀색 샐러드 접시를 놓음으로써 하얀색과 보라색의 전체적인 조화를 아름답게 살렸다.
어두운 보랏빛 찻잔과 와인잔은 접시의 우측으로 두었다.
좌측에는 물컵을 세팅했는데, 물컵 안에는 보라색 냅킨이 장미 모양으로 접혀서 꽂혀 있었다.
마지막으로 커트러리는 은식기를 사용했다.
그것으로 마무리.
보는 것만으로도 고풍스러운 식탁이 완성됐다.
아쉬운 게 하나 있다면 강지한이 급하게 준비한 테이블 크로스가 너무 싸구려라는 것. 심지어 테이블의 크기에 다 맞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의 특출난 예술적 감각을 짐작해 볼 수 있는 스타일링이었다.
그간 음식들을 만들고 플레이팅을 하다 보니 저도 모르게 미적 감각이 계속 쌓여 나간 것이다.
물론 그가 애초에 가지고 태어난 감각 역시 상당했다.
“지한 선생님, 정말 멋져요. 시험 때도 이렇게만 하면 무조건 합격하실 거예요.”
“감사합니다.”
찰칵!
강지한이 스마트폰을 꺼내 자신이 꾸민 테이블을 찍었다.
* * *
신장호는 요즘 입이 귀에 걸렸다.
신 푸드의 매출이 계속해서 솟구치고 있었기 때문.
요즘엔 회사를 가는 것이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다.
마치 놀이동산을 가는 기분이었다.
매출 집계를 확인해 보는 것이 놀이기구를 타기 전의 설렘과 비슷했다.
사장실에 앉아 있는 신장호에게 직원 한 명이 매출 집계 내역이 담긴 서류를 건네주었다.
“사장님, 축하드립니다.”
직원은 축하부터 건넸다.
신장호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집계를 확인했다.
“허헉!”
매출을 확인한 신장호의 심장이 입밖으로 튀어나올 뻔했다.
신 푸드의 상반기 총 매출이 작년, 재작년 2년 치 매출을 뛰어넘었다.
세진 그룹이 힘을 써주고 레시피를 개발한 강지한이 배틀 셰프에서 우승한 데다가 분식집 막내아들의 PPL, 그리고 강지한이 직접 등장하는 CF까지 겹쳐져서 시너지가 폭발을 하고 말았다.
그야말로 경사가 터지고, 터지고, 터졌다!
이 모든 것이 강지한 한 사람과 교류하게 되며 일어난 일이었다.
“지한느님…….”
신장호가 저도 모르게 그렇게 중얼거렸다.
옆에 서 있던 직원이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강지한으로 인해 수백의 직원들을 걱정 없이 먹여 살리게 되지 않았는가.
신 푸드에게 있어 강지한은 하느님이나 다름없었다.
덩달아 강지한의 통장도 곧 터지게 될 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