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1
Restaurant 160. 성공이 최고의 복수
화요일.
강지한이 새벽에 눈을 떠보니 머리맡에 작은 선물 상자 하나가 놓여 있었다.
그리고 상자의 앞에는 설탕이가 두 발을 모으고 가지런히 앉아서 강지한을 바라보는 중이었다.
그 얼굴이 마치 자신을 얼른 칭찬해 달라는 것 같았다.
그때 강지한의 눈앞에 메시지가 나타났다.
[밤사이 설탕이가 선물을 물어왔습니다.]
“설탕아, 선물 물어왔어?”
헥헥헥!
설탕이가 그렇다는 듯 좋아했다.
강지한이 선물상자를 터치하자 뚜겅이 열리며 펑! 하고 메시지가 튀어나왔다.
[축하합니다. 아이템 ‘타이틀 레벨 업 사탕’을 얻었습니다.]
[타이틀 레벨 업 사탕: 섭취 시, 원하는 타이틀의 능력을 강화시킬 수 있습니다.]
메시지와 함께 강지한의 손 위에 보랏빛 사탕이 나타났다.
“이건 또 처음 보는 아이템이네.”
강지한이 현재 사용하고 있는 타이틀은 건강 요리사다.
덕분에 그가 직접 만드는 음식을 먹는 사람들은 자신에게 필요한 영양소를 더욱 많이 섭취하게 된다.
“내 음식을 먹고 더 건강해질 수 있다면 망설일 게 없지.”
강지한이 보랏빛 사탕을 입에 넣었다. 그러자 고체였던 것이 액체로 변하며 목을 타고 스르르 흘러 넘어갔다.
이어 새로운 메시지가 나타났다.
[레벨 업 할 타이틀을 선택하세요.]
1. 건강 요리사
어차피 갖고 있는 타이틀은 하나밖에 없었다.
‘건강 요리사를 레벨 업 하겠어.’
[타이틀 ‘건강 요리사’가 레벨2 로 업그레이드됐습니다. 타이틀의 효과가 강화됩니다.]
[건강 요리사 LV2: 호칭 사용 시, 음식을 먹는 손님들의 건강상태에 따라 그에게 필요한 영양소들이 2배로 섭취됩니다. 효과가 운영 중인 모든 사업장에 적용됩니다.]
기존의 건강 요리사는 먹는 이에게 가장 필요한 영양소들이 2배로 섭취된다는 것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 효과가 강지한이 운영 중인 모든 사업장에 적용된다는 설명이 추가되었다.
즉, 그가 직접 요리하지 않아도 그가 운영하는 모든 식당, 판매 중인 식품에 이 효과가 적용된다는 얘기다.
“와우.”
감탄이 절로 나왔다.
강지한이 설탕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네가 또 한 건 터뜨리는구나.”
헥헥헥.
주인을 애정 가득한 얼굴로 바라보는 설탕이의 맑은 눈에 강지한의 미소가 담겼다.
* * *
식당에 출근하자마자 강지한은 조명의 해금 미션부터 살폈다.
[해금 미션: 일주일 동안 손님 컴플레인 10회 미만으로 받기. 1/10]
미션이 진행되는 일주일 동안 들어왔던 컴플레인은 단 한 건.
그것도 괜히 어깃장을 놓는 어거지 컴플레인이었다.
그것 외엔 모든 손님들이 만족하며 식당을 나섰다.
아무튼 미션은 클리어였다.
[미션 클리어. 조명의 레벨 업 조건이 해금됩니다.]
[조명의 레벨 업 조건: 20,000만족도 포인트.]
이번에도 레벨 업 조건은 2만 만족도 포인트.
강지한이 바로 이를 투자했다.
[조명을 레벨 업 했습니다.]
[조명의 레벨이 최대치입니다.]
[조명이 강화되어 기능이 향상됩니다.]
[식사를 하기에 가장 좋은 최적의 밝기로 실내 분위기를 잡아줍니다. 바깥에서 유입되는 볕의 밝기에 따라 자동으로 조절됩니다.]
“좋다.”
상급자의 난이도가 적용되는 만큼 각각의 물건들을 레벨 업 하는 데 해금 미션에 2만 포인트까지 들여야 하는 둥 조건이 까다롭고 비쌌지만 그만큼 확실한 효과를 가져다주었다.
조명의 레벨 업을 끝내자마자 실내 공간 전부가 파란색으로 물들었다.
그리고 해금 미션이 나타났다.
[실내 공간의 레벨 업이 가능합니다. 실내 공간의 레벨 업 조건은 감추어져 있습니다. 이를 해금하기 위해서는 소기의 미션을 완수해야 합니다.]
[해금 미션: 지한 식당 단골손님 50명 만들기 0/50]
이번엔 해금 미션이 조금 셌다.
한 명의 손님이 지한 식당을 열 번 다녀가야 단골손님으로 인정된다.
‘50명이라.’
그래도 어차피 시간이 흐르면 해결될 일.
강지한은 해금 미션을 접어두고 주방으로 들어섰다.
* * *
점심 피크 타임.
지한 식당에서 오붓하게 식사를 하고 있는 한 커플의 대화가 열심히 서빙하는 홀 매니저 유지호의 귀에 들려왔다.
“근데 여기 진짜 뭔가 좀 신기하지 않아?”
여자가 물었다.
“뭐가?”
남자가 되물었다.
“아니, 요새 미세먼지 때문에 죽겠는데 여기만 들어오면 뭔가 되게 쾌적해지는 기분이야. 공기청정기 같은 것도 없는데.”
“건물 안이니까 그렇지.”
“건물 안이라고 다 이런 건 아니라니까. 거기다 그 흔한 파리나 날파리 한 마리 보이지도 않고. 사장님이 엄청 신경 써서 관리하는 것 같아.”
여자의 말에 남자가 접시를 만지며 아는 척했다.
“접시 만져봐 봐. 온도가 다 달라. 각각의 음식에 최적화된 온도로 관리를 하시는 거지, 사장님이. 이렇게 세심한 분인데 미세먼지나 벌레가 식당 안으로 유입되는 걸 용납하겠어?”
“그러니까. 게다가 조명은 뭘 쓰는 거야? 나 여기서만 사진 찍으면 인생샷 건지잖아.”
“조명이 좋아서 음식도 더 맛깔나 보이지 않아?”
“맞아. 우리 집이랑 가까웠으면 하루에 한 번씩 오는 건데.”
그 대화를 듣고 난 유지호가 속으로 웃으며 생각했다.
‘다른 건 인정하겠는데 접시 온도는 기분 탓인 것 같습니다, 손님.’
유지호는 한 번도 강지한이 접시의 온도를 따로 관리하는 걸 보지 못했었다.
그리고 서빙할 때 직접 만져 봐도 크게 다른 걸 느끼지 못했다.
그것들은 오로지 손님들에게만 전해졌는데, 온도차가 큰 게 아니라서 민감한 사람이 아니면 알아채지 못할 정도였다.
레벨 업을 할수록 음식 맛뿐만 아니라 여러모로 손님들의 걸음을 잡아끄는 지한 식당이었다.
* * *
김숙자는 요즘 들어 장주희의 행동이 눈에 계속 밟혔다.
그녀가 뭔가 수상한 짓을 대놓고 하는 건 아니었다. 그런데 이따금 그녀에게 관찰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종종 있었다.
김숙자와 다른 사람들이 주방을 비웠다가 들어오면 뭘 했던 건지 후다닥 부산을 떠는 것도 이상했다.
‘수상한데.’
김숙자의 촉이 팍! 하고 섰다.
* * *
늦은 밤.
지한 김치전골의 영업이 끝난 시각, 장주희는 집에서 끓여 먹을 거라며 전골 2인분을 포장해 돌아왔다.
한데 그녀의 걸음은 집으로 향하지 않았다.
장주희는 후평동의 어느 낡은 저택 앞에 섰다. 그곳은 평소 알고 지내던 동갑내기 친구의 집이었다.
띵동-
초인종을 누르자 누군지 묻지도 않고 문이 열렸다.
문 너머에서 눈 밑이 퀭한 더벅머리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왔냐.”
그의 이름은 최민구.
일찍이 독신을 선언하며 서른아홉의 나이에도 싱글라이프를 영위하고 있는 남자였다. 그리고 나름 절대미각을 자랑하는 사람이기도 했다.
장주희가 최민구의 집으로 들어가서 전골을 냄비에 넣고 끓였다. 그사이 전골과 함께 포장했던 김치를 꺼내 접시에 담았다.
“이게 그 대단하다는 김치냐?”
“응. 먹어보고 뭐 들어갔는지 좀 봐봐. 어휴, 너 춘천 돌아온 줄 알았으면 미리 찾아올 걸.”
“어디.”
최민구가 김치를 한입 먹고 천천히 음미했다.
그때 장주희가 다 끓은 전골을 가져와 최민구의 앞에 놓았다.
그런데,
“뭐야? 김치 어디 갔어?”
그새 김치가 다 사라졌다.
최민구는 전골을 보자마자 아귀처럼 달려들었다.
“호로록! 냠. 쩝쩝 꿀꺽! 캬!”
최민구가 정신없이 전골을 맛보기 시작했다.
장담컨대 그가 근 몇 년 동안 먹어본 전골 중에 최고라고 할 수 있었다.
장주희는 불안한 시선으로 그런 최민구를 바라봤다.
지금 이 인간이 들어간 재료가 뭔지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건가 의문이었다.
최민구는 앉은 자리에서 전골을 반이나 해치우더니 벌떡 일어나 부엌으로 나갔다.
그러더니 밥 한 공기를 퍼왔다.
그것을 전골에 말아서 뚝딱 해치우고 나니 전골이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너 지금 식사하냐?”
“으음.”
“재료 파악을 해달라니까? 뭐가 들어갔는지 알겠냐고!”
장주희의 물음에 최민구는 대답 없이 또 부엌으로 나갔다. 그리고 다시 들어오는 그의 손에는 소주병이 들려 있었다.
장주희는 저 인간이 지금 뭐하는 짓거린가 싶어 도끼눈을 뜨고 쳐다봤다.
까득.
최민구가 소주병 뚜껑을 따서 유리컵에 한가득 따랐다.
“이거는 소주 안주다.”
그리 말하며 소주를 꿀꺽꿀꺽 마시고 김치전골을 한술 떴다.
“크으~ 죽인다!”
눈을 감고 감탄하는 최민구의 뒤통수를 장주희가 팍! 때렸다.
“억!”
“야 이 미친놈아! 들어간 재료 파악하라니까 뭔 개짓거리야!”
음식이 하도 맛있어서 본분을 망각한 최민구가 멋쩍은 얼굴로 뒤통수를 쓸었다.
“머리를 때리냐, 너는.”
“얼른 말해봐. 들어간 재료가 뭐야?”
“딱 한 번만 말할 테니 잘 받아 적어라. 우선 김치 양념부터.”
“그래.”
장주희가 얼른 펜과 메모지를 꺼내 들었다.
“기본적으로 태양초 고춧가루. 청양 고춧가루. 2년 발효시킨 멸치 액젓…….”
최민구의 입에서 갖가지 재료들이 술술 흘러나왔다.
장주희가 그것을 열심히 받아 적었다.
‘이 인간 제대로 알고 말하는 거 맞아?’
어렸을 적엔 그 미각이 제법 정확하기로 유명했는데 지금은 많은 시간이 흘렀다.
게다가 소주도 한잔했다.
이게 제대로 된 레시피가 맞는지 의구심이 드는 장주희였다.
* * *
드디어 배틀 셰프 마지막 회가 방영됐다.
배틀 셰프에서 강지한이 보여준 활약은 그가 이끌어가는 모든 사업체에 호재로 작용했다.
방송이 끝난 이후 강지한의 이름은 연일 포털 사이트 검색에 1위를 수성했다.
배틀 셰프의 시청률이 워낙 높았던 덕이다.
종영 시 시청률은 31퍼센트.
순간 최고 시청률은 무려 35퍼센트에 달했다.
전체 평균 시청률은 27퍼센트를 약간 웃돌았다.
그야말로 경이로운 수치였다.
그로 인해 강지한은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배틀 셰프 마지막화가 방영된 다음 주.
월요일 아침부터 여기저기 방송국에서 섭외 요청이 물밀듯 들어왔고, 인터뷰 요청도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것을 일일이 응대하기 힘들었던 강지한은 결국 스마트폰을 꺼버렸다.
그러자 식당 전화가 정신없이 울려댔다.
어쩔 수 없이 전화 코드를 뽑아버렸다.
‘방송이 대단하구나, 진짜.’
방송의 위력을 새삼 느끼게 된 강지한이었다.
* * *
강호태는 강지한의 큰아버지다.
정영자는 강호태의 아내 되는 사람이다.
요즘 그녀는 하루하루를 이상한 기분에 휩싸여 보내고 있었다.
오후 3시.
남편이 출근을 하고 집에 홀로 남은 그녀는 인터넷으로 뉴스 기사들을 읽는 중이었다.
슬하에 있던 두 아들은 오래전 결혼해서 따로 사니 남편이 돌아오기 전까지 정영자는 늘 혼자였다.
인터넷 기사를 이것저것 살피는 정영자의 미간이 점점 구겨졌다.
요즘엔 강지한에 대한 기사가 심심찮게 눈에 들어오곤 했다.
그런 기사들 대부분은 배틀 셰프 우승에 관한 것이었다.
“아니 무슨 놈의 요리 프로 우승 상금이 3억이야? 이럴 줄 알았으면 내가 나가볼 걸. ……어렸을 때 고사리 같은 손으로 요리하겠다고 까불더니 싹수가 있긴 했나 보네. 근데 그랬던 놈이 왜 우리 집에서 얹혀살 땐 칼 한 번 잡지를 않았대, 그래? 맛도 별로 모르는 것 같더만. 에이.”
정영자가 컴퓨터를 끄고 거실로 나왔다.
강지한에 대한 기사를 보면 볼수록 괜히 속이 쓰리고 기분이 찝찝했다.
그녀는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틀었다.
그런데, 브라운관 안에서 또다시 강지한이 튀어나왔다.
“뭐야?”
강지한이 찍었던 신 푸드의 신제품 CF가 오늘부터 전파를 타기 시작했던 것.
광고 속 강지한은 여느 연예인 못지않은 포스를 뿜어내고 있었다.
그것을 멍하니 바라보던 정영자가 텔레비전을 다시 껐다.
삑-
“아니 무슨 여기도 저기도 다 강지한, 강지한! 어휴.”
강지한을 못마땅하게 여겼던 그녀였다.
그래서 모질게 대하고 눈칫밥을 줬었다.
한참의 시간이 지난 지금에서야 그 일들이 비수가 되어 되돌아와 그녀의 가슴에 쿡쿡 박히고 있었다.
그때 친구 김미연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녀는 40년 지기 친구로 짓궂기로는 최고였다.
특히 정영자를 놀리는 데는 도가 튼 사람이었다.
정영자는 안 좋은 속이라 전화를 무시할까 하다가 그냥 받았다.
“응. 미연아, 왜.”
-야, 영자야. 요새 인터넷에서 난리 난 강지한이가 네가 데리고 있던 걔 아니냐? 어쩜, 너희 집에서 나가고 저렇게 잘됐다니? 너 그때 엄청 홀대했었잖아. 내가 봐도 측은할 지경이었는데. 황금알 낳는 오리를 그냥 네 발로 걷어찬 격 아니야? 어쩜 좋니. 너 배 좀 아프겠…….
“끊어, 이년아!”
정영자가 전화를 끊고 씩씩댔다.
그녀가 성공한 강지한으로 인해 은근한 죄책감과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는 걸 강지한은 몰랐다.
자신을 홀대했던 사람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복수는 성공적인 삶을 사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