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0
Restaurant 159. 비싼 몸 설탕이
다음 날.
식당으로 출근한 강지한은 깜짝 놀랐다.
식당 앞에 기자들 여럿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어?”
강지한이 나타나자마자 기자들은 우르르 달려들었다.
“강지한 씨! 드디어 배틀 셰프 결승전 무대가 끝났는데 기분이 어떠십니까?”
“상대인 도근한 씨를 상대로 어떤 전략을 펼치셨나요?”
“결과에 대해 약간의 힌트라도 주실 수 없는지요?”
속사포처럼 질문을 던지는 기자들에게 양해를 구하며 강지한은 식당 안으로 들어섰다.
“어휴, 정신이 없네.”
무슨 도떼기시장에 온 것 같았다.
결승전이 있던 어제, 기자들은 배틀 셰프 키친 밖에서 두 결승 진출자들을 기다렸다.
그리고 그들이 밖으로 나오자마자 마이크를 들이대며 질문을 폭포수처럼 쏟아냈다.
하지만 강지한과 도근한은 주최 측으로부터 이미 입단속을 받은 후였다.
누구도 절대 결과를 말해서는 안 된다는 것.
방송은 이미 준결승전까지 전파를 탄 상황.
결승 무대는 이번 주에 방송이 된다.
준결승전과 결승전 사이에 2주씩 휴식 텀을 두는 덕분에 방송이 진행 상황을 따라잡을 수 있었다.
사실 방송국에서 준결승전과 결승전을 다른 라운드와 달리 2주씩 쉬게 해주는 이유는 출연자들의 배려뿐만 아니라 스포일러 방지를 위한 방송 스케줄 조정 때문이기도 했다.
때문에 강지한과 도근한이 최종 우승 후보라는 건 시청자들도 모두 아는 사실이었다.
다만 누가 우승을 했는지는 장내에 있던 사람들 말고 아무도 알지 못했다.
강지한과 도근한은 기자들을 따돌리며 끝까지 침묵을 고수했다.
그랬더니 다음 날 아침부터 강지한의 영업장을 찾아온 것이다.
기자들은 식당 앞을 떠나지 않고 문 밖에서 기웃거리고 있었다.
강지한이 그들을 보며 한숨을 쉬고 있자니 메시지 한 통이 도착했다.
-혹시 너네 식당에도 기자들 와 있냐.
메시지를 보낸 이는 도근한이었다.
평소에 이런 식으로 연락을 한 적이 한 번도 없었는지라 도근한의 메시지가 재미있는 강지한이었다.
-응. 너도?
-오픈해야 하는데 걸리적거려 죽겠네. 확 소금이라도 뿌려 버릴까.
-내일 인터넷 검색어 1위 먹고 싶으면 해봐.
-말하는 꼬라지하고는;;; 일봐라.
강지한이 저도 모르게 키득거렸다.
“별일이네.”
어쩐지 몇 없는 친구 중 한 명이 더 늘어난 기분이었다.
그나마 친구라고 할 만한 이는 허사린과 최영진밖에 없는 강지한이었다.
둘에게서는 지금도 드문드문 안부 묻는 연락이 오곤 한다.
얼마 전엔 지한 식당에 와서 식사도 하고 갔다.
강지한이 워낙 바쁜 데다가 둘 다 가정이 있는 입장이라 아쉽게 술은 못 나누고 돌아갔지만.
“후아~ 선생님, 밖에 기자들 엄청 많네요?”
강지한 다음으로 출근한 한지민이 혀를 내둘렀다.
“그러게나 말이다.”
“계속 저렇게 안 가고 있으면 영업 방해로 신고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영업 시작하면 흩어지겠지. 일단은 신경 꺼, 지민아.”
“네~”
강지한의 말은 칼같이 받드는 한지민이었다.
* * *
다행스럽게도 지한 식당의 영업이 시작되자 기자들은 더 이상 서성거리지 않고 흩어졌다.
오픈한 지 이제 겨우 2주차에 접어든 지한 식당은 늘 그렇듯 손님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았다.
이미 그 어마어마한 맛이 빠르게 입소문을 타고 퍼졌기 때문.
게다가 춘천에서 찾아보기 힘든 특이한 방식의 미니 한정식이라는 것이 메리트가 있었다.
무엇보다 지한 식당의 일등 공신 삼총사는 김치찌개, 된장찌개, 만두였다.
레벨7인 세 가지 음식은 한 번 찾은 손님들을 꾸준히 재방문하게 만들었다.
오늘도 저녁 마감 시간까지 바쁘게 하루가 흘러갔다.
손님이 다 나가고 직원만 남아 식당을 정리하는 시각.
주방 보조 전덕진이 넌지시 강지한에게 물었다.
“사장님~ 식당 오픈하고서 우리 식구들끼리 친목 다질 시간도 없었는데 오늘 회식 어떠우?”
“회식이요?”
전덕진의 말에 주방에 함께 있던 한지민과 강희주는 물론 홀을 청소하던 다른 이들까지 기대에 찬 시선을 강지한에게 던지고 있었다.
아무래도 강지한 몰래 다른 사람들끼리 입을 맞춘 모양.
강지한은 크게 고민 않고 이를 허락했다.
“그러죠. 음……. 어디 나가서 먹을까요? 아니면 제가 간단하게 뭣 좀 해드릴까요?”
강지한의 물음에 사람들의 입이 일제히 터졌다.
“정말 사장님께서 만들어 주시려고요?”
“나가지 말아요! 여기서 먹어요!”
“옳소!”
직원과 알바가 한마음이 되어 떠들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나가 먹자고 했다가는 역적이 될 판.
강지한이 양팔을 걷어붙였다.
“그럼 여러분만을 위한 회식 메뉴를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와아!”
매번 지한 식당의 음식으로 한 끼를 해결하면서도 전혀 물리지 않는 그들이었다.
오히려 먹으면 먹을수록 더더욱 그 맛에 중독되어 가는 것 같았다.
때문에 그의 손에서 탄생한 또 다른 음식은 과연 어떨지 기대가 됐다.
‘뭘 하면 좋을까.’
고민하던 강지한이 주방에서 이것저것을 꺼냈다.
그가 사람들의 기대 어린 시선을 듬뿍 받으며 요리를 시작했다.
우선 물을 끓여 중면을 삶았다.
면이 삶아지는 동안 소금과 후추, 천연 조미료로 시즈닝한 삼겹살을 프라이팬에 올렸다. 거기에 올리브오일을 두르고 편 썬 마늘을 투하해서 중불로 익혔다.
삼겹살이 천천히 익어가며 마늘향이 쫙 퍼진 올리브오일을 머금었다.
강지한은 타임(Thyme: 허브의 일종)을 조금 따서 달궈진 프라이팬에 넣고 삼겹살을 뒤집었다. 열기에 달궈진 타임에서 상쾌한 향이 퍼져 나갔다.
그러는 사이 잘 익은 중면을 꺼내 찬물에 박박 씻었다.
이어 강지한은 비빔국수 양념장을 만들었다.
고추장과 고춧가루, 특제 육수, 천연 조미료, 식초, 매실액, 조청, 참기름 등등 강지한만의 레시피대로 재료를 넣고 열심히 섞었다.
거기에 잘 익은 지한 김치를 송송 썰어 넣고 면에 뿌려 맛깔나게 비볐다.
오이를 꺼내 채 썰어 위에 고명으로 얹고 참깨까지 솔솔 뿌리는 것으로 특제 비빔국수가 완성됐다.
사람이 많으니 양도 넉넉히 해서 총 세 그릇을 만들었다.
그러는 사이 삼겹살이 완벽하게 익었다.
완성된 삼겹살은 앞뒤로 탄 부분이 없고 비계와 살이 하얗게 보이는 정도였다.
강지한이 삼겹살 한 조각을 입에 넣었다.
‘맛있다.’
딱 그가 원하는 맛과 식감이었다.
그는 원체부터 삼겹살을 바짝 익혀 먹는 걸 싫어했다.
그러면 육즙이 다 빠지고 육질도 질겨진다.
마침 회식에 어울리는 요리를 고민하다 평소보다 더 부드러운 삼겹살을 먹을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해서 이렇게 구워봤는데 만족스러웠다.
거기에 오늘 하루 팔고 남은 김치찌개와 된장찌개를 데워냈다.
김치찌개는 그대로 내왔지만 된장찌개에는 삶은 소면을 넣어 된장소면으로 만들었다.
“와아~”
한 상 차려진 요리들을 보며 누군가 탄성을 흘렸다.
한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살짝 밍밍한 반응을 보였다.
엄청난 요리를 기대했는데 비빔면과 삼겹살, 식당에서 파는 찌개가 전부였으니 그럴 만도 했다.
물론 비빔면은 소면이 아닌 중면인 데다가 삼겹살의 굽기도 평소 먹어왔던 것과는 조금 달라 보였지만, 크게 다른 맛이 날까 싶었다.
강지한이 요리를 하는 사이 테이블은 술과 음료수, 식기들로 세팅이 끝났다.
식당 문을 걸어 잠그고 사이좋게 둘러앉은 직원들이 잔에 술을 채웠다.
“저는 여러분께 매일같이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일주일 동안 큰 잡음 없이 올 수 있었던 건 여러분 덕입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건배!”
“건배!”
강지한의 건배 제의에 사람들이 잔을 높이 들었다.
다들 일제히 술을 털어 넣고서 삼겹살부터 집어 먹었다.
한데 어마어마한 풍미가 확 퍼져 나가며 삼겹살의 비계가 눈처럼 사르르 녹아들었다.
살도 부드럽게 씹히며 입안에서 순식간에 사라졌다.
“어?”
“와…….”
뻔한 맛이겠거니 방심하고 있다가 완전히 한 방 먹어버렸다.
식감도 향도 그들이 평소에 맛보던 것과는 많이 달랐다.
“우리가 먹던 삼겹살이 그냥 커피라면 이건 티오피야.”
누군가 CF의 한 구절을 빌려 감상을 말했다.
그 말이 딱 맞았다.
이건 삼겹살이 아니라 어느 레스토랑에서 정성으로 조리한 음식을 먹는 것 같았다.
삼겹살도 얇지 않고 두툼한 것이 삼겹살 스테이크라고 해도 좋을 정도였다.
놀란 사람들의 젓가락질이 바빠졌다.
그들은 이번엔 비빔국수를 공략했다.
“후루룩.”
“후룩.”
여기저기서 면을 빨아들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와아. 선생님, 대박.”
한지민이 감탄을 뱉었다.
중면은 시원 쫄깃한 식감이 매력적이었고 양념은 진하면서 산뜻했다. 새콤달콤한 맛이 베이스로 깔려 있었는데, 씹으면 씹을수록 계속해서 그 맛이 깊어졌다.
지금껏 먹어왔던 비빔국수와 비교 자체가 되지 않는 맛이었다.
사람들의 얼굴에서 조금 전까지 실망했던 기색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건배!”
“건배!”
여기저기서 건배 제의를 해댔다.
안주가 좋으니 술이 술술 넘어갔다.
“강 사장님은 비빔면을 해도 다르고 삼겹살을 구워도 다르네요~ 홍홍.”
주방 보조 강희주의 말에 모두가 동의했다.
지한 식당, 첫 회식날의 밤은 갈수록 뜨겁게 달아올랐다.
* * *
짧고 굵었다.
회식은 딱 두 시간 반 동안 이어지고 끝이 났다.
다들 식당에서 나와 2차를 가자고 했지만 강지한은 조금 피곤해서 카드만 넘겨주고 설탕이를 챙겨 먼저 들어왔다.
후다닥 샤워를 마치고서 설탕이와 이불 속에 들어가 누워서 스마트폰을 확인했다.
부재중 전화가 무려 다섯 통이나 됐다.
모두 도그 프렌즈의 조세민에게서 온 전화였다.
문자도 두 통이나 와 있었다.
-강 사장님, 조세민입니다. 시간되실 때 연락 부탁드립니다.
-강 사장님, 많이 바쁘신 모양입니다. 뜬 눈으로 기다리고 있을 테니 새벽에라도 문자 확인하시면 연락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조세민에게 말을 확실히 해두지 않았었다.
강지한이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몇 번 가기도 전에 통화가 연결됐다.
-안녕하십니까, 강 사장님.
“네. 안녕하셨어요.”
-많이 바쁘셨나 봅니다.“
“오늘 회식이 있어서 미처 몰랐네요.”
-아~ 회식 중요하지요. 어떻게, 회식은 깔끔하게 마무리 짓고 오셨습니까?
“네. 계약 건 때문에 연락 주셨었죠?”
-맞습니다. 혹시 도그 푸드 측과는 만나보셨습니까?
“만났습니다.”
-얼마를 부르시던가요?
이중견은 강지한에게 설탕이의 모델료로 천만 원을 제시했다.
보통 화제성만 있고 아직 촬영 경험이 없는 강아지의 경우 잘 쳐줘도 오백이 한계였다.
근데 이번에는 제대로 잡겠다는 생각에 천만 원을 부른 것.
“천만 원을 준다더군요.”
-……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저희 쪽에서는 이백을 더 얹어 드리겠습니다. 아직 도장 안 찍으셨다면 내일 제가 춘천으로…….
“그래서 도장 찍었습니다.”
-네? 아니 어째서요? 제가 조건만 들어보고 오시라고 말씀 드렸었는데요.
계약하기 전에는 그토록 정중하게 나오더니 갑자기 톤이 격앙되는 조세민이었다.
그에 강지한의 미간이 구겨졌다.
“제가 그쪽이 시키면 그대로 해야 하는 입장입니까?”
강지한의 음성이 가라앉자 조세민이 다시 부드럽게 나왔다.
-조금 놀라서 제 음성이 격해졌었나 봅니다, 하하. 음……. 이미 계약을 하셨다니 그건 어쩔 수 없고. 이러면 어떨까요? 차라리 지금이라도 계약을 취소하시면 저희 측에서 위약금을 물어드리고 새로 계약금까지 드릴 테니 한 번 생각을…….
“조세민 씨.”
-네?
강지한이 일갈을 날리려던 그때,
왕왕! 왕왕왕!
갑자기 설탕이가 스마트폰을 보며 시끄럽게 짖어댔다.
-억?
스마트폰 너머로 화들짝 놀란 조세민의 비명이 들려왔다.
강지한이 씩 웃으며 말했다.
“제가 하고 싶은 말 설탕이가 대신 해줬네요.”
-네? 그게 무슨…….
“해석은 알아서 하세요. 전 도그 푸드와 계약하기로 했습니다. 그럼 이만.”
강지한이 전화를 끊었다.
설탕이가 그런 강지한의 앞에 와서 헥헥 대며 꼬리를 팽팽 돌렸다.
“그래, 설탕아. 네가 생각해도 뭔가 좀 구리구리하지?”
왕! 헥헥헥.
설탕이가 강지한의 품에 안겨 뺨을 마구 핥았다.
“우리 설탕이~ CF까지 다 잡아먹어 버리자!”
왕!
설탕이는 첫 CF촬영으로 천만 원을 받는 비싼 몸이 되었다. 강지한이 장담하건대 설탕이는 그 이상의 몫을 해낼 게 분명했다.
서서히 애견 CF계의 지각 변동이 일어나려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