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9
Restaurant 158. 하지 못한 말
촬영장의 모든 스텝들과 지원자의 가족들이 잔뜩 긴장했다.
하지만 누구보다 긴장한 건 결승 트로피를 눈앞에 두고 있는 당사자들이었다.
강지한과 도근한은 한돈선의 입만 주시하고 있었다.
잠시간의 정적이 흐르고 난 뒤, 한돈선의 시선이 강지한에게 고정되었다.
“강지한 씨, 축하드립니다. 배틀 셰프의 우승자가 되셨습니다.”
펑! 펑펑!
한돈선의 멘트와 함께 팡파르가 터지며 천장에서 꽃비가 내렸다.
강지한도, 도근한도 선뜻 상황을 이해하지 못해 멍해 있었다.
그러던 와중 지한 푸드 사람들 측에서 우레와 같은 함성이 터져 나왔다.
와아아아아아!
“지한 총각, 최고야!”
“오빠 짱이다! 3억 최고다!”
“강 사장이 인간 고중만이를 여러분 울리는구나! 으하하하!”
“저 지릴 뻔했습니다. 이건 우리 독고 가문의 영광입니다.”
“이 미친놈아. 우승은 강 사장이 했는데, 왜 네 아빠 가문을 들먹여? 마누라 놔두고 먼저 간 양반 뭐가 예쁘다고.”
“사장님이 최고입니다! 계속해서 열심히 배우겠습니다!”
“선생님, 정말 멋있었어요! 축하드려요!”
일제히 튀어나온 사람들이 강지한을 얼싸안고 좋아했다.
강지한은 그제야 자신이 우승했다는 것을 인지하고 활짝 웃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 광경을 심사위원들이 흐뭇하게 지켜봤다.
하지만 레이먼 박의 심경은 마냥 편하지는 않았다.
그의 시선이 도근한에게 향했다.
도근한의 가족들이 모두 그에게 다가와 위로와 격려, 축하의 말을 건네고 있었다.
“그만하면 잘했다, 근한아. 애비는 네가 자랑스럽다.”
“근한아, 정말 멋졌어. 엄마가 우리 아들한테 완전히 반했다니까.”
“오빠, 진짜 개 멋지더라.”
“내 새끼, 내 강아지. 언제 이렇게 컸누?”
가족들에게 둘러싸인 도근한이 아쉬운 미소를 지었다.
이번 라운드에 자신의 혼을 다 쏟아부어버린 듯 핼쑥해진 그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계속 씁쓸한 미소만을 입에 물고 있을 뿐이었다.
“자, 못 다한 축하는 뒤로 미뤄두고 우선 우리가 강지한 씨를 선택하게 된 이유부터 말씀 드려도 괜찮을까요?”
한돈선이 양해를 구하자 가족들이 얼른 객석으로 가서 앉았다.
“우선 두 분의 코스 요리 모두 훌륭했음을 말씀 드립니다. 도근한 씨의 양식 코스는 더할 나위 없이 맛있고 완벽했습니다. 특히 스테이크는 정말이지 제가 양식당을 운영하고 있다면 메뉴로 걸고 싶을 정도더군요.”
한돈선의 입에서 나온 극찬에 도근한의 가족들이 술렁댔다.
그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사실 결정이 너무 어려웠습니다. 내어온 음식 하나하나가 강지한 씨의 코스 요리에 비해 전혀 부족함이 없었으니까요. 한데 결국 강지한 씨의 손을 들어주게 된 것은 딱 한 가지의 음식 때문이었습니다. 그건 바로 만두였지요.”
예상 못했던 그의 말에 좌중이 떠들썩해졌다.
하지만 강지한은 크게 놀라지 않았다. 그는 만약 자신이 이 경합에서 이기게 된다면 만두 덕분일 것이라 예상했던 터였다.
그 만들었던 음식들 중 만두만 유일하게 7레벨이었기 때문이다.
강지한이 요리를 만들던 도중 만두의 레벨을 보고 멈칫거렸던 건, 예상보다 낮아서가 아니라 높아서였다.
그는 경합이 시작되자마자 만두피부터 반죽해서 숙성을 시켰다.
그리고 만두 속에 들어가는 재료들을 기존 레시피에서 조금 변화시켰다.
한데 바로 이것이 신의 한 수였다.
변화시킨 레시피가 기존의 레시피보다 더욱 깊은 맛과 풍미, 그리고 좋은 식감을 가져다 줬다. 무엇보다 한입 씹자마자 입안 가득 퍼지는 육즙이 최고였다.
강지한이 기존의 레시피에서 바꾼 것은 별게 없었다.
만두를 피에 쌀 때 그 안에다가 ‘피동(皮?)’을 조금 넣어준 것뿐이었다.
피동은 돼지껍질을 삶아 녹인 뒤 냉장해 젤라틴처럼 굳힌 것이다.
이 피동은 열을 받으면 다시 물처럼 흐물흐물해진다.
그래서 만두 안에 육즙을 채워주는 한편, 만두 소 안으로 스며들어 각각의 재료가 더욱 조화롭게 어우러지도록 만들어준다.
피동에 대한 힌트는 본선 4라운드 단체 겹합 미션 때 왕소홍이 만들었던 샤오롱바오에서 가져왔다.
물론 만두소가 업그레이드되었다 해도, 반죽이 엉망이면 레벨 7의 만두는 나올 수 없었다.
다행스럽게도 반죽 또한 80퍼센트 정도 원하는 대로 나왔다.
최상의 상태는 아니지만 쫀득하고 탱탱한 식감을 유지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한돈선의 말을 최현식이 이어나갔다.
“재미있게도 그 만두의 맛은 본선 1라운드 때 한 대가님께서 시범 삼아 만든 것과 비슷하더군요.”
“네. 그 맛을 벤치마킹했습니다.”
강지한의 대답에 심사위원들이 웃어버리는 한편, 이채로운 시선을 던졌다.
“한 번 맛을 본 것만으로 그 이상의 맛을 재현해 내다니. 놀랍습니다.”
최현식이 진심으로 감탄했다.
배틀 셰프를 진행하며 처음으로 듣는 그의 칭찬에 강지한이 방긋 웃었다.
“하지만 놀라운 건 만두뿐만이 아니었어요. 골동반을 재현한 건 대단한 서프라이즈였어요.”
레이먼 박의 말이었다.
한돈선이 설명을 덧붙였다.
“골동반에 대한 설명은 누구든 찾아볼 수 있으나 그 맛과 모양을 옛것 그대로 재현하기란 참으로 힘든 일입니다. 특히 시의전서를 보면 첫 구절부터 ‘밥을 정히 짓고 고기는 재워 볶고 간납은 부쳐 썬다’는 설명이 나오지요. 여기서 간납이라는 건 전을 말하는 것인데, 평소에 이에 대해 신경 써서 공부하지 않는다면 뭔지 모르고 지나칠 수도 있는 일입니다. 한데 강지한 씨는 골동반에 올라가는 모든 고명들을 완벽하게 재현했습니다. 정말 멋진 골동반이었습니다.”
말을 하면서 한돈선은 자신의 마음이 계속 강지한에게 끌려감을 느꼈다.
오늘 강지한의 음식들은 어쩐지 돌아가신 그의 아버지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물론 아버지의 손맛에 비하면 아직 한참 모자라는 강지한이었다.
그럼에도 여러 구석들이 묘하게 많이 닮아 있었다.
강지한이 레벨 업 시스템으로 얻은 한식의 지식들이 오래전, 세상을 떠난 그의 친아버지 한정신의 것이었으므로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
“정말 종잇장 차이였습니다. 골동반의 재현과 만두의 뛰어난 맛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결정을 내리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네요. 다시 한 번 강지한 씨의 우승을 축하드리겠습니다. 호호호.”
한돈선과 심사위원들이 동시에 박수를 쳐 강지한을 축하했다.
그러자 객석의 지한 푸드 식구들이 다시 달려 나와 강지한을 둘러쌌다.
비로소 길고 길었던 배틀 셰프의 모든 여정이 끝이 났다.
영광의 우승 트로피와 3억 원의 상금은 강지한에게 주어졌다.
그때, 도근한이 자신을 위로하는 가족들을 잠시 물리고 강지한에게 다가왔다.
“지한아.”
도근한의 부름에 강지한을 비롯한 지한 푸드 식구들의 모든 시선이 그에게 몰렸다.
‘……갑자기 확 부담되는데.’
도근한이 움찔했다.
강지한이 그런 도근한에게 다가갔다.
“나한테 할 말 있다고 그랬었지.”
파이널 라운드가 시작되기 전, 도근한이 강지한에게 할 말이 있음을 어필했었다.
배틀 셰프 키친에서 강지한과 재회했을 때부터 하고 싶었던 말.
그런데 염치도 없고 용기도 없어서 차마 꺼내지 못했던 말.
지금이 아니면 평생 못 꺼낼 것 같은 그 말을 도근한이 힘들게 내뱉었다.
“……미안했다.”
“……어?”
도근한의 사과를 받은 강지한이 놀라 되물었다.
그 바람에 도근한은 확 뻘쭘해졌다.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그가 이를 빠드득 갈았다.
“못 들었으면 말고.”
“아니……. 들었어.”
“……그게 다냐?”
“어……. 그래, 알았다.”
단순하기 그지없는 반응.
도근한의 이마에 힘줄이 섰다.
‘이 자식이.’
갑자기 콧김을 팍팍 내뱉는 도근한을 바라보던 강지한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몰라 슬금슬금 뒤로 물러났다.
그 모습을 보며 도근한은 저도 모르게 버럭 소리 질렀다.
“이런 기회가 만에 하나라도 또 생긴다면 그때는 안 진다!”
울컥해서 말을 해놓고 보니 바로 민망해지는 도근한이었다.
강지한이 씩씩대는 도근한을 보며 피식 웃었다.
“알았다.”
* * *
배틀 셰프 키친을 나서는 강지한의 품에는 황금빛 트로피와 꽃다발이 한아름 안겨 있었다.
강지한은 그것들을 사람들에게 부탁해서 춘천까지 가져가 달라 말했다.
이중견과의 약속으로 인해 바로 내려갈 수가 없었기 때문.
그에 지한 푸드 식구들은 축하 자리 마련해 놓을 테니 최대한 빨리 오라 했다.
강지한은 그러겠다 약속하고서 이중견에게 전화를 걸었다.
마침 이중견은 여의도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어디서 만나는 게 좋겠냐고 묻는 이중견에게 강지한이 말했다.
“여의도 역 근처 지민 분식에서 보시죠.”
* * *
간만에 지민 분식을 찾은 강지한을 한지민의 부모님이 반갑게 맞아줬다.
강지한은 그들에게 한지민에 대한 칭찬을 한바탕 늘어놓아 주었다.
그때쯤, 이중견이 시끌벅적한 분식집 안으로 들어섰다.
그가 강지한을 대번에 알아보고서는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십니까, 이중견입니다. 이렇게 만나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반갑습니다. 강지한입니다.”
두 사람은 가볍게 악수를 나눴다.
이중견이 강지한의 맞은편에 앉으며 속으로 생각했다.
‘분식집에서 계약 얘기를 나눠보기는 또 처음이네.’
그는 강지한에게 드시고 싶은 것이 있다면 직접 대접하겠다고 전화상으로 말한 터였다.
한데 강지한은 굳이 이런 분식집을 골랐다.
“어유, 여기 맛집인가 봐요? 사람들이 많네요.”
분식집 음식에 큰 기대가 없는 이중견이었지만 괜히 그렇게 말했다.
“특히 김밥이 맛있죠.”
강지한이 김밥을 추천했다.
그의 조언을 받아 맛의 레벨이 4까지 올라간 김밥이다.
맛이 없으면 이상했다.
이중견이 주변을 둘러보니 거의 대부분 김밥을 먹고 있었다.
“아 그렇습니까? 그럼 김밥을…….”
“여섯 줄 시킬까요?”
“여섯 줄이나요?”
“많으세요?”
“아닙니다. 여기요! 김밥 여섯 줄 주세요.”
김밥을 주문한 이중견이 본격적으로 광고 계약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그의 얘기 속에는 실무적인 정보가 반, 제발 우리 회사에 계약을 해 달라는 호소가 반이었다.
그에 강지한이 이중견의 말을 잘랐다.
“이 팀장님.”
“네?”
“필요한 정보만 알려주시면 됩니다.”
“아……. 네.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인정에 호소를…….”
“아뇨. 그런 게 아니라 애초부터 도그 푸드와 계약할 마음으로 나온 거니 계약금과 계약 조건에 대한 얘기들만 하시면 된다는 말이었어요.”
“……네?”
이중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그게 정말입니까? 정말 우리 회사랑 계약을 하실 생각이신가요?”
“네.”
“혹…… 도그 프렌즈라는 업체에서 연락이 오지 않으셨는지?”
“왔었어요.”
“그런데도 우리랑 하시겠다고요?”
“그럴 생각입니다.”
강지한이 도그 푸드를 선택하게 된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 도그 프렌즈가 너무 지저분한 전략으로 접근해 온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둘째, 설탕이에게 도그 푸드 얘기를 꺼내면 꼬리를 흔들며 좋아했지만 도그 프렌드 얘기를 꺼낼 때는 으르렁거렸다.
이건 명백한 거절이었다.
해서 강지한은 이것저것 더 볼 것도 없이 도그 푸드로 마음을 굳혔다.
이중견은 지금 이 순간이 꿈만 같았다.
어떻게 해서든 설탕이만 잡으면 모든 일이 해결될 것이라 생각하고 전심전력을 다해 달려들려 했다.
그런데 그러기도 전에 강지한이 선뜻 내민 손을 잡아주었다.
이중견이 벅차오르는 감격에 뭐라 말을 잇지 못하고 있을 때였다.
“주문하신 김밥 나왔습니다. 그리고 나머지는 사장님 서비스입니다.”
가지런히 썰어진 김밥 여섯 줄과 제육덮밥, 떡볶이, 튀김, 어묵이 나왔다.
주문한 것보다 서비스가 더 많았다.
이중견이 놀라서 식탁에 놓인 음식과 알바를 번갈아봤다.
“아니……. 강 사장님, 여기 분식집 분들과 무슨 연이라도 있으신가 봅니다.”
“네. 하하. 김밥부터 어서 드셔 보세요.”
“그럴까요?”
이중견이 얼른 젓가락을 놀렸다.
지금 그에겐 강지한이 생명의 은인이나 마찬가지였다.
김밥이 아니라 땅에 떨어진 떡을 주워 먹으래도 감사히 먹을 판이었다.
“냠.”
이중견이 김밥을 입에 넣고 씹었다.
그러고는 입안을 가득 채우는 맛의 향연에 눈이 커졌다.
“김밥 맛집 맞네요.”
“맛있죠?”
“정말 맛있습니다.”
맛집이라서 맛있는 건지, 본인의 기분이 좋아서 김밥이 꿀맛 같은 건지 헷갈리는 이중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