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8
Restaurant 157. 두 가지 코스 요리
강지한은 지한 식당의 메뉴들 중 대표적인 것 몇 가지를 정해 코스 안에 넣기로 했다.
하지만 그대로 내서는 안 된다.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시켜야 했다.
맛도, 비주얼도 지금 이상이어야 도근한을 앞설 수 있다.
그는 우선 전식으로 우엉잡채와 매생이전복죽, 오이와 새우를 넣은 다시마쌈, 함초를 곁들인 계절채소냉채, 호박, 민어, 피망으로 만든 삼색전을 생각했다.
본식은 탕평채와 신선로, 도미회, 갈비찜, 만두, 맥적구이, 가지선을 내놓기로 했다.
탕평채는 녹두묵에 볶은 고기와 데친 미나리, 구은 김, 그 외 다른 채소들을 섞어서 무친 음식으로, 영조 때 탕평책을 논하는 음식상에 처음으로 등장한 데서 그 이름이 유래되었다.
신선로는 화통이 달린 쇠 냄비에 불을 지펴 끓여 먹는 음식인데, 사실 신선로라는 것은 이 쇠 냄비의 이름이고 제대로 된 음식 이름은 열구자탕(悅口資湯)이라고 한다.
신선로는 육수를 따로 내고, 그 안에 들어가는 여덟 가지의 고기, 채소 고명들도 일일이 만들어야 하므로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었다.
사실 열구자탕은 정통 한식이라기보다는 중국에서 들여와 우리나라 정서에 맞게 발전된 음식이다. 그래도 한식의 테두리 안에서 많이들 입에 오르니 코스에 섞어 내는 데 무리는 없을 것이었다.
맥적구이는 돼지고기를 된장양념에 재워서 구워 만든 꼬치요리다.
마지막으로 가지선은 가지를 파서 그 안에다 다진 소고기로 만든 소를 채워 장국을 부어 익히는 요리다.
본식들은 하나같이 손이 많이 가는 음식들이지만 제대로만 만들어 낸다면 심사위원들에게 제대로 어필할 수 있을 것이었다.
다음으로는 간단한 식사로 골동반과 세 가지 찬, 된장찌개, 겉절이를 낼 생각이었다.
골동반은 쉬운 말로 하면 비빔밥으로 그 유래를 1800년대 말엽의 시의전서(是議全書)에서 찾아볼 수가 있다.
하지만 각종 나물과 소고기 고명, 달걀지단 등을 넣어 고추장과 참기름으로 비벼낸 요즘의 비빔밥과는 그 형태가 조금 다르다. 강지한은 시의전에서 나오는 구절 그대로 골동반을 재현해 볼 생각이었다.
된장찌개와 겉절이는 강지한의 주특기 중 하나이므로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세 가지 찬은 지한 식당에서 손님들에게 내어주는 것 중 맛과 비주얼이 가장 괜찮은 것들로 채우기로 했다.
마지막으로 후식은 두텁떡과 오미자 아이스크림을 만들고 우엉차를 준비하는 것으로 끝.
상당히 거한 코스였다.
도근한 또한 강지한에 지지 않을 만큼 완벽한 코스 요리를 준비 중이었다.
에피타이저로는 감자칩과 하몽을 얹은 메론 한 조각을 생각했다.
스프는 포르치니(porcini: 식용 야생 버섯의 일종) 크림스프.
샐러드는 계절 야채를 특제 크림소스에 버무린 후, 그 위에다 참다랑어 대뱃살을 올려 내기로 했다.
그리고 튜브 모양으로 파스타를 만들어 그 안에 고트치즈와 호두로 속을 채우고 위에 캐비어를 살짝 얹은 카넬로니도 추가했다. 거기에 트러플관자구이를 내고 메인으로 넘어간다.
메인 디쉬는 총 세 종류.
랍스터 내장과 살을 이용해 만든 랍스터리조또.
껍질은 크리스피, 속은 촉촉하게 수분을 잡아 구워낸 도미구이.
소고기 안심 중에서도 가장 비싼 부위인 샤또브리앙으로 만든 스테이크.
특히 스테이크에는 곁들일 수 있는 소스를 네 가지나 준비할 예정이었다.
마지막으로 디저트는 레몬타르트와 수박소르베를 만들기로 했다.
강지한과 도근한, 두 사람 다 어마어마한 음식들을 만드는 만큼 키친에서 가지고 나오는 재료들의 양이 상당했다.
머릿속에서 완벽하게 구상을 끝난 요리들을 구현하기 위해 두 사람의 손이 바쁘게 움직였다.
그 모습을 객석에 앉은 가족들이 초조한 눈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 * *
파이널 라운드가 시작된 지 한 시간 반이 흘렀다.
“자, 이제 30분 남았습니다.”
최현식이 남은 시간을 공지했다.
두 사람의 코스 음식은 슬슬 그 윤곽을 드러내고 있었다.
하나둘, 음식이 완성될 때마다 객석에서 감탄이 터져 나왔다.
접시에 예쁘게 플레이팅 되는 음식들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예술 작품을 보는 것만 같았다.
한편, 단상 위에서 상황을 주시하던 최현식이 다른 두 심사위원에게 물었다.
“어떨 것 같습니까?”
레이먼 박이 먼저 대답했다.
“개인적으로는 도근한 씨의 상승세가 무서운 데다 양식 코스로서 퍼펙트한 맛과 멋을 잡았다고 생각되는군요.”
그에 질세라 한돈선이 강지한을 두둔했다.
“강지한 씨는 처음부터 지금껏 죽 우리들을 놀래켜 왔지요. 이번에도 그럴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러는 최 대가님께서는 누가 유리하다고 보시는지요?”
최현식이 잠시 고민하다 고개를 저었다.
“알 수 없습니다. 막상막하일 것 같네요.”
* * *
배틀 셰프의 무대는 항상 어려웠다.
남들이 보기엔 강지한이 무난하게 각 라운드를 넘겼다고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강지한은 매번 사력을 다해 덤벼들었다.
다만, 다른 지원자들의 발목 잡는 짓을 하지 않았을 뿐.
그게 자칫 타인의 입장에서는 다른 지원자들에게 핸디캡을 주지 않아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비추어질 수 있었다.
어찌 되었든 강지한은 매 순간 최선을 다해왔고,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하게, 열정적으로 음식을 만드는 중이었다.
어느덧 남은 시간은 10분 남짓.
“이제 10분 남았습니다.”
최현식의 음성이 그것을 확인시켜 주었다.
‘시간 내에 가능할까?’
강지한의 동공이 살짝 흔들렸다.
그가 도근한을 잠깐 쳐다봤다.
만들어야 하는 요리의 가짓수가 강지한보다 적은 도근한은 비교적 안정적으로 시간 분배를 했다.
그래서 계획대로 음식들이 척척 완성되고 있는 중이었다.
손은 쉬지 않고 바쁘게 움직였으나 그의 얼굴에서 조급함은 보이지 않았다.
반면 강지한은 조금 초조했다.
아직 완성해야 할 요리가 세 개나 남았다.
그가 정신을 집중하고 초 단위로 손을 움직였다.
3분여가 남은 시각.
도근한은 마무리 플레이팅에 들어갔다.
하나 강지한은 아직도 한 가지 음식을 마무리하지 못했다.
바로 만두였다.
만두피를 조금이라도 더 숙성시키려다 보니 모든 요리 중 가장 마지막에 만들게 됐다.
한데 요리들의 완성 시간이 조금씩 딜레이되며 만두가 찜기에 들어가는 시간도 늦어졌다.
남은 3분을 전부 사용하고 난 다음에 꺼냈을 때 과연 제대로 익어 있을지 의문이었다.
조금이라도 어설프다면 그냥 빼버리는 게 나았다.
만두가 찜통에서 익어가는 동안 강지한은 다름 음식들을 플레이팅 해나갔다.
“자, 10초 남았습니다.”
이제 남은 시간은 10초.
플레이팅을 마친 강지한이 찜기에서 만두를 꺼냈다.
‘제발 레벨6 이상 나와라.’
만두피를 충분히 숙성시킬 시간이 부족했으니 레벨7까지는 바라지도 않았다.
레벨6 정도만 나와준다면 그것만으로 족했다.
만약 만두를 찌는 시간이 부족해 레벨5로 하락하게 될 경우 만두는 상에 올라가지 못한다.
강지한의 눈에 만두의 등급창이 보였다.
만두의 레벨을 확인한 그가 살짝 멈칫했다가 미리 준비해 둔 접시에 담아냈다.
“제한 시간 끝났습니다. 두 분은 손을 떼어 주시기 바랍니다.”
최현식이 파이널 라운드의 종료를 알렸다.
강지한과 도근한이 두 손을 머리 위로 올리고서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그들의 앞에는 완벽한 한식 코스와 양식 코스 요리들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며 먹음직스럽게 놓여 있었다.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마주치는 시선에서는 어느새 전과 같은 어색함이 사라져 있었다.
두 시간 동안 오가는 말은 단 한마디도 없었지만 함께 고된 길을 끝까지 걸어왔다는 동지애 같은 것이 생겨났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고 서로를 응원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자신이 이 무대의 주인공이 될 것이라 서로 자신했다.
“그럼 먼저 요리를 마친 도근한 씨의 음식부터 맛보도록 하겠습니다.”
한돈선의 말에 도근한이 준비한 음식을 서빙카트에 옮겨 담아 단상 앞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음식 하나하나를 차례대로 내어주며 간단한 설명을 덧붙였다.
도근한의 음식은 과연 결승 진출자의 솜씨답게 하나하나가 맛이 있고 전체적인 밸런스 또한 완벽했다.
강지한의 눈에 비추어지는 그의 요리들은 일괄적으로 레벨6이었다.
요리를 만들며 약간의 실수도 없었다는 것이었다.
모든 코스 요리를 먹고 난 심사위원들의 얼굴에 미소가 드리워졌다.
특히 레이먼 박은 입이 귀에 걸릴 지경이었다.
그는 도근한의 음식 하나하나를 전부 극찬했다.
한돈선과 최현식도 도근한의 코스 요리에서 단점을 찾아내지 못했다.
오로지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만 무한하게 보일 뿐이었다.
“아주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퍼펙트한 코스 요리였어요. 판타스틱했습니다.”
레이먼 박의 말에 도근한이 고개 숙여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심사위원들의 심사평이 끝난 뒤, 도근한의 얼굴엔 자신감이 자리했다.
그의 가족들 역시 도근한의 승리가 확실시된 듯 소리 없는 환호를 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 승부는 알 수 없었다.
이어 강지한이 서빙 카트에 음식을 담아 내갔다.
양식 코스요리와는 확연히 다른 한식 코스요리가 하나하나 심사위원들의 테이블로 서빙되었다.
도근한의 음식들은 비주얼이 유독 화려했다.
그와 달리 강지한의 음식들은 정갈한 그릇에 소담스레 담아냈다.
음식들의 플레이팅도 요란함 없이 아름다웠다.
도근한의 음식이 동적이라면 강지한의 음식은 정적인 미의 극치를 담아낸 것 같았다.
비주얼부터 완전히 상반되는 강지한의 음식들이 심사위원의 입으로 하나둘 들어가기 시작했다.
심상위원들의 표정은 도근한의 음식을 먹을 때처럼 즐겁기 그지없었다.
요리를 업으로 삼으며 살아가는 이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만큼 기분 좋은 일이 또 있을까?
한데 그런 심사위원의 미소에 브레이크가 걸렸다.
원인은 강지한의 만두에 있었다.
최후의 최후까지 열심히 쪄낸 만두를 강지한은 상에 올렸고, 심사위원들은 만두를 나눠 먹더니 서로 의미심장한 시선을 교환했다.
그러한 반응에 강지한을 응원하는 지한 푸드 사람들이 손에 땀을 쥐었다.
음식 하나하나에 대해 자잘한 평가라도 내놓던 심사위원들은 만두의 맛에 대해선 노코멘트 했다.
그리고 이어진 다음 음식부터 다시 말문이 트였다.
그렇게 모든 코스 요리를 맛본 심사위원들은 만족스러운 한편 재미있다는 시선을 강지한에게 던졌다.
강지한은 세 쌍의 무거운 시선을 최대한 담담히 받아내려 애썼다.
“강지한 씨.”
최현식의 부름에 강지한이 답했다.
“네.”
“만두의 조리가 늦어져 마지막까지 고생했습니다. 맞습니까?”
“그렇습니다.”
“만두가 원했던 퀄리티대로 완성되었다고 생각하십니까?”
강지한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강지한은 만두의 맛을 보지 못했으니 심사위원들은 그가 만두의 완성도에 대해 모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강지한의 눈에는 자신이 만든 만두의 레벨이 고스란히 보였다.
그것으로 맛을 충분히 예상 가능했다.
“이 만두가 승패를 결정지을지도 모르겠군요.”
최현식이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저는 간만에 아주 만족스러운 한식 코스 요리를 맛봤습니다. 음식을 먹으면서 제가 정말로 대접받고 있다는 기분이 들 정도였어요. 정말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호호호.”
한돈선은 매우 흡족한 마음을 가득 담아 말했다.
“저 역시 퍼펙트한 코스 요리였다고 말씀 드리고 싶네요.”
레이먼 박도 극찬을 보냈다.
결국 강지한 역시 도근한과 비슷한 반응을 심사위원들에게서 끌어냈다.
하지만 지한 푸드 사람들은 못내 최현식의 마지막 말이 걸렸다.
만두가 승패를 결정지을지도 모른다는 것.
“그래서 만두가 좋았다는 거야? 나빴다는 거야? 하여튼 방송물 먹은 인간들은 말을 이상하게 돌려서 해.”
고중만이 답답한 마음에 투덜거렸다.
그러는 사이 심사위원들은 배틀 셰프의 최종 우승자를 가려내기 이위한 회의에 들어갔다.
무려 10분이 넘게 이어진 회의 끝에 드디어 우승자가 결정되었다.
“그럼 우승자를 발표하도록 하겠습니다.”
한돈선이 강지한과 도근한을 지그시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