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7
Restaurant 156. 파이널 라운드
촬영장엔 그 어느 때보다도 긴장감이 감돌았다.
배틀 셰프 키친의 단상 위에 선 삼 인의 심사위원은 최후까지 살아남은 두 청년을 가만히 응시했다.
강지한과 도근한.
수많은 경쟁자들을 제치고 결승의 무대에 어깨를 나란히 한 두 사람이었다.
한돈선의 눈에는 강지한을 향한 애정이, 레이먼 박의 눈에는 제자 도근한에게 보내는 애정이 가득했다.
최현식은 두 후보 모두에게 처음으로 따듯한 시선을 보냈다.
“드디어 배틀 셰프, 그 대망의 파이널 라운드가 시작되려 합니다.”
오늘의 오프닝 대사는 레이먼 박이었다.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최현식이 입을 열었다.
“여기까지 올라온 강지한 씨, 도근한 씨, 두 지원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존경을 표합니다.”
마지막으로 한돈선이 바통을 이어 받았다.
“두 분께 현재의 감상을 듣고 싶네요. 강지한 씨부터 말씀해 보시겠어요?”
“음……. 그냥 얼떨떨하네요. 간혹 꿈같이 느껴집니다. 배틀 셰프에 참가해서 여기까지 올라온 모든 순간들이요.”
강지한이 짧은 소감을 말하자 한돈선의 시선이 도근한에게 향했다.
도근한은 기다렸다는 듯 말을 쏟아냈다.
“저는 단 한 번도 이 치열한 순간들을 꿈이라 여긴 적이 없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도근한의 말이 끝나자마자 강지한의 고개가 옆으로 휙 돌아갔다.
‘저 자식이.’
말로 완전히 한 방 먹었다.
강지한이 도근한을 쏘아봤다.
도근한은 뺨에서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으나 모른 척하고 쳐다보지도 않았다.
다만 그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그려졌다.
위에서 그런 두 사람을 지켜보는 심사위원들이 껄껄 웃었다.
마치 친한 라이벌 관계의 고등학생들이 짓궂은 장난을 치는 듯한 광경이었기 때문.
“듣기로 두 분은 고등학교 동창이라지요?”
한돈선이 묻자 둘은 고개를 끄덕였다.
“도근한 씨는 인터뷰에서 강지한 씨에게 꼭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고 하셨다는데, 맞습니까?”
도근한이 머쓱한 얼굴로 대답했다.
“네.”
사실 배틀 셰프에서 처음 마주쳤을 때부터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그 이후에도 몇 번이고 기회를 잡아 다가갔지만 숨 막힐 것 같은 어색함에 의미 없는 말만 내뱉고 말았다.
“지금 기회를 마련해 주면 하시겠어요?”
도근한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결승 무대 끝나고 얘기하겠습니다.”
한돈선이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그러도록 하세요. 그럼 결승 무대를 시작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물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지금 가장 보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까? 도근한 씨부터 대답해 볼까요?”
가장 보고 싶은 사람이라.
생각할 필요도 없는 문제였다.
“가족이요.”
“강지한 씨는요?”
“……저도 그렇습니다.”
강지한은 도근한과 달리 한참 머뭇거리다 입을 뗐다.
가족이 모두 살아 있는 도근한과 달리 자신의 부모님은 모두 돌아가셨으니 그 말이 입 밖으로 쉬이 나오지를 않았다.
그런데,
“그래서 오늘 여러분의 가족을 이 자리에 모셨습니다.”
한돈선의 말에 강지한의 눈이 번쩍 뜨였다.
‘가족이라고?’
그에게 가족이라 할 만한 사람은 없었다.
그래도 굳이 꼽아보라 한다면 친가 쪽 사람들이 유일했다.
그의 어머니는 친족이 없는 고아 출신이었고, 아버지에겐 형이 한 명 있었다.
한데 그 형이라는 사람이 형수의 치맛바람에 둘러싸인 후부터 아버지와의 사이가 급격히 안 좋아졌다.
결국 남남처럼 등을 지고 살았는데, 강지한이 부모를 잃으면서 그 처지가 딱해 잠시 큰아버지가 받아주었었다.
하지만 강지한은 그 집안에서 사는 하루하루가 부담이었다.
큰어머니의 눈칫밥이 너무도 힘들고 서러웠다.
해서 홀로서기를 할 만한 자금을 열심히 모았고 스물세 살이 되던 해에 춘천으로 독립을 했다.
이후로 단 한 번도 큰아버지 내외와 연락을 한 적이 없었다.
강지한이 번호를 바꾼 것도 아니었다.
그때 사용하던 번호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큰집에서는 지금껏 연락이 없었다.
그랬던 사람들이 이제와 강지한을 보겠다고 걸음 했을 리는 만무했다.
강지한의 궁금증이 증폭되던 그때,
“두 지원자의 가족분들은 입장해 주십시오.”
최현식의 말에 배틀 셰프 키친 정문이 활짝 열리며 수많은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 들어왔다.
먼저 입장한 건 도근한의 부모님과 일가친척들이었다.
“근한아~!”
“우리 아들~ 자랑스럽다.”
도근한의 부모님이 자신의 아들을 꼭 끌어안았다.
이어 친척들도 도근한과 반가운 인사를 나눴다.
“오빠! 몇 년 연락도 없이 지내더니 방송 타서 서프라이즈하려 그런 거야?”
“근한이 이 자식. 너 이렇게 훌륭하게 큰 건 삼촌 덕도 있다.”
도근한의 주변이 시끌벅적해졌다.
그 소란의 중심에 선 도근한의 얼굴엔 행복한 미소가 가득했다.
이를 강지한이 부러움과 쓸쓸한 마음이 뒤섞인 얼굴로 바라보았다.
그때였다.
“지한 총각!”
강지한의 귀로 반가운 목소리가 흘러 들어왔다.
“어머님?”
이건 김숙자의 목소리였다.
강지한이 크게 놀라 뒤돌아섰다.
활짝 열린 문 너머로 생각지도 못했던 얼굴들이 우르르 몰려오고 있었다.
“강 사장! 우리가 왔다! 하하하!”
일단의 선두에 선 고중만이 크게 소리쳤다.
“사장님! 응원 왔습니다!”
“오빠~ 리나가 승리의 기운 불어넣어 주려고 행차했어요.”
“선생님! 멋져요. 진짜진짜 감격이에요.”
“오빠, 지면 죽여 버릴 거야.”
차례대로 용성우, 이리나, 한지민, 이향숙의 말이었다.
그 뒤로 지한 분식 식구들 최지민, 이주희, 김아랑과 딸의 손을 잡고 있는 고중만의 아내 유진아의 모습이 보였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뒤로도 계속해서 사람들이 줄줄이 밀려 들어왔다.
“강 사장, 이런 자리에 내가 빠지면 섭하지? 호호호!”
“사장님! 저도 왔습니다! 그냥 이겨 버리세요!”
“이게 얼마만이에요.”
“사장님~ 오랜만이에요. 호홍.”
조미옥, 독고진, 진경혜, 문정연이 강지한을 보는 족족 한마디씩 건넸다.
이어 지한 식당의 멤버 유지호와 설인아, 전덕진, 강희주도 키친 안으로 발을 들였다.
강지한의 눈에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이 알알이 박혀들었다.
이내 가슴이 뜨겁게 벅차올랐다.
“아니…… 다들 어떻게?”
강지한이 더듬더듬 묻자 김숙자가 대표로 대답했다.
“방송국에서 연락 왔었어. 오늘 올 수 있겠느냐고. 이런 날 어떻게 우리가 안 와볼 수 있겠어? 지한 총각 응원하러 식당 하루 문 닫고 달려왔지. 나 허락도 없이 문 닫았다고 혼내면 안 돼?”
“감사하지는 못할망정 제가 왜 혼내겠어요, 어머님.”
말을 하며 강지한이 세트 밖에 있는 노영철 피디와 작가들을 바라봤다.
다들 강지한과 눈을 맞추며 빙긋 웃었다.
강지한이 살짝 고개를 숙여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그에게 가족이랄 사람들이 없는 것을 알고서 같이 일하는 이들에게 연락을 돌린 것.
이미 열흘 전에 모든 이들은 연락을 받은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강지한에게 단 한마디를 하지 않았다.
그야말로 엄청난 단결력을 보여주는 지한 푸드 사람들이었다.
강지한은 제작진의 배려가 진심으로 고마웠다.
지금의 강지한에게는 지한 푸드 사람들이야말로 진정 가족이라 할 수 있는 이들이었으니.
한데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모든 사람들이 입장하고 난 뒤에, 갑자기 입구에서 밝은 빛이 흘러들어오는 것 같은 착각이 일었다.
빛이 한 차례 걷히고 난 뒤엔 천사처럼 아름답고 청초한 여인의 얼굴이 나타났다.
예소린이었다.
그녀의 등장에 모든 남성들의 동공이 풀리고 입에 살짝 벌어졌다.
경국지색(傾國之色) 이라더니 딱 그녀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강지한은 달려가서 그녀를 끌어안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배틀 셰프는 그녀의 아버지인 예경천도 즐겨 보는 프로였다.
아직 둘이 사귀는 것도 모르는 상황이니 티를 낼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저 들끓는 애정을 잔뜩 담은 시선만 보내고 있었는데,
와락.
“어?”
성큼성큼 다가온 예소린이 강지한을 품에 꽉 끌어안았다.
“소, 소린 씨?”
당황한 강지한이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예소린은 강지한과 달리 너무나 담담한 태도로 그를 살짝 밀어내고서 윙크를 보냈다.
“방금 내 한 달 치 행운 전부 보냈으니까 꼭 이기세요.”
예소린에게서 간만에 들어보는 존댓말이었다.
그제야 강지한은 예소린이 무슨 생각인지 알 수 있었다.
“고마워요, 소린 씨. 꼭 이길게요.”
“화이팅.”
예소린이 두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고서 물러났다.
그 모습이 연인인지 스스럼없이 친한 오빠 동생 사이인지 애매했다.
진실을 아는 지한 푸드 식구들만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두 지원자를 응원하며 힘을 불어넣어 준 가족들은 양쪽 객석으로 빠졌다.
강지한과 도근한의 마음이 든든해졌다.
자신을 응원하는 소중한 사람들을 위해서 기필코 이기리라는 필승을 다짐했다.
“그럼 본격적으로 배틀 셰프 파이널 라운드를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번 파이널 라운드는 베네핏 배틀과 페일 배틀이 따로 없습니다. 단 한 번의 경합으로 승자가 가려집니다.”
한돈선의 말이 그 어느 때보다 무겁게 다가오는 강지한이었다.
도근한 역시 마찬가지였다.
“배틀 셰프 파이널 라운드의 경합 주제를 알려드리겠습니다. 경합 주제는 ‘최고의 코스 요리’입니다. 한식, 양식, 중식, 일식, 그 외에 어떤 나라의 음식을 주제로 해도 무관합니다. 가장 맛있고 밸런스가 잘 맞는 완벽한 코스 요리를 준비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최고의 코스 요리.
요리의 종목은 자유. 어떤 재료를 사용할 것인지도 본인의 마음대로.
그저 자신이 가장 내세울 수 있는 최고의 코스 요리를 만들면 되는 것이다.
“파이널 라운드의 제한 시간은 두 시간입니다.”
한돈선의 말을 들으며 강지한이 생각했다.
‘한식 코스로 가자.’
코스 요리라는 주제를 듣자마자 강지한은 한식을 떠올렸다.
현재의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이기 때문.
‘도근한의 요리 레벨은 6.’
배틀 셰프에 참여할 초기에만 해도 레벨 4에서 5사이를 왔다 갔다 하던 그가 이제는 일괄적으로 레벨6의 음식들을 만들어내는 수준까지 올랐다.
짧은 순간 장족의 발전을 이룩한 것이다.
강지한 역시 레벨 6의 음식들은 재료만 주어지면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여기서 식당의 김치찌개와 된장찌개를 만들어 낼 수 있다면.’
식당에서 파는 두 메뉴의 레벨은 7이다.
하지만 김치찌개의 맛을 재현하기 위해서는 오래 삭은 지한 김치가 필요하다. 지금 배틀 셰프 키친에는 그 김치가 없었다.
된장찌개 또한 강지한이 직접 제조한 특제 된장 양념이 필수였다.
‘비슷하게 만들어 낼 수 있을까?’
배틀 셰프 키친에 그 맛을 재현할 수 있는 재료들이 전부 구비되어 있기를 그는 바랐다.
만약 된장찌개의 맛을 재현할 수 없다면 도근한과 강지한의 대결은 막상막하로 부딪히게 될 터.
둘 다 레벨6의 음식을 만들어 낼 수 있으니 누군가 실수를 하느냐 마느냐가 승패의 갈림길이 될 것이었다.
한편 도근한은 양식 코스를 머릿속에서 그려내느라 바빴다.
도근한에게도 강지한을 누를 수 있는 한 방이 있었다.
바로 스테이크.
배틀 셰프 경선을 진행하는 동안 그는 레벨 6의 스테이크를 우연히 구워낸 일이 있었다.
이후로 그것을 우연이 아닌 자신의 실력으로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지금은 언제 어디에서 스테이크를 구워도 그 정도 수준을 유지하는 것이 가능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같은 6레벨이라도 맛의 격차가 그 사이에 또다시 존재한다는 것.
도근한의 스테이크는 6레벨에서도 상위에 속했다.
어쩌면 오늘, 저번처럼 한 레벨 위의 스테이크가 또다시 탄생할지도 모르는 일.
강지한과 도근한, 두 사람 모두 비장한 각오를 다졌다.
“그럼 지금부터…… 시작해 주세요.”
한돈선의 시작 신호가 떨어졌다.
두 사람의 몸이 바람처럼 배틀 셰프 키친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