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하는 식당-156화 (156/330)

# 156

Restaurant 155. 기차와 김밥

이중견이 도그 푸드의 홍보팀장 자리에 앉은 지도 1년이 지나가고 있었다.

도그 푸드는 훌륭한 사료를 거품 없는 가격으로 꾸준히 내놓고 있는 좋은 업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년 내도록 판매 실적이 업계 2위에 머물렀다.

도그 푸드의 앞에는 결코 넘어설 수 없는 태산이 우뚝 서 있었다.

‘도그 프렌즈’라는 경쟁 업체였다.

도그 프렌즈의 상품이 도그 푸드와 견주어서 어마어마하게 좋은 건 아니었다.

두 회사의 제품은 건사료, 캔사료, 간식 등 전부 그 질이 비슷비슷했다.

한데도 도그 프렌즈가 늘 영업 실적에서 앞서는 이유는 마케팅 때문이었다.

도그 프렌즈 측은 매번 그 해 가장 화제성이 있는 강아지들과 1년에서 2년씩 전속 계약을 맺으며 자사의 상품들을 광고했다.

도그 푸드 측도 이에 밀리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섭외력에서 매번 밀려나곤 했다.

우선 도그 프렌즈는 15년이 넘는 기간 동안 업계 1위라는 타이틀을 고수해 왔다.

그런 만큼 견주들도 같은 조건이라면 2위 업체보다 1위 업체의 손을 잡고 싶어 하는 것이 인지상정.

게다가 도그 프렌즈는 도그 푸드에서 견주들에게 제시한 조건보다 늘 조금 더 높은 조건을 제시하고는 했다.

이건 곧 정보가 새나가는 구멍이 있다는 것.

한데 그게 어디로 새나가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이중견은 아침 일찍 눈을 뜨자마자 스마트폰부터 확인했다.

그러나 강지한에게 온 연락은 없었다.

“이번에는 꼭 잡아야 하는데.”

그가 이 바닥에 발을 들인지도 10년째.

여태 제대로 된 기회를 잡지 못하다가 이번에 홍보팀장이라는 막중한 직책을 맡았다.

늘 도그 프렌즈에게 홍보에서 밀리는 만큼, 그가 실적을 낸다면 고속 승진은 떼어 놓은 당상.

“지금쯤이면 도그 프렌즈 측에서도 접촉했을 텐데…….”

사실 한 달 전까지는 도그 프렌즈와 도그 푸드 측에서 하반기 론칭하는 신제품 광고 모델로 설탕이가 아닌 다른 강아지를 생각하고 있었다.

설탕이도 충분히 인기가 있고 예뻤다.

아니, 외모로만 따지면 두 업체가 낙점한 강아지보다 훨씬 나았다.

그런데 전국적인 인지도와 화제성에서는 설탕이가 밀렸다.

무엇보다 모델로 낙점된 강아지는 이번년도 전국미견대회에서 우승까지 차지한 경력이 있었다.

한데 얼마 전 공중파 예능 프로 동물의 왕국에서 설탕이 방송이 나가고 난 뒤 상황이 급격하게 바뀌었다.

전국의 애견인들에게는 이른바 설탕이 열풍이 불 정도였다.

그로 인해 시바견을 분양받으려는 사람들도 어마어마하게 많아졌다.

결국 고심 끝에 두 업체는 하반기 신제품 광고모델을 설탕이로 낙점했다.

이번 신제품은 많은 공을 들인 야심작인 만큼 확실하게 푸쉬를 해야 했다.

“하필이면 도그 프렌즈에서도 같은 시기에 신제품을 내 가지고 말이야.”

참 여러모로 눈에 걸리는 회사가 아닐 수 없었다.

한탄을 한 이중견이 다시 스마트폰을 확인했다.

여전히 연락은 오지 않았다.

“씻자.”

일요일이라 늦잠을 자도 되지만 그럴 기분이 아니었다.

그가 샤워를 하러 화장실로 들어간 사이,

띵동-.

스마트폰으로 문자가 한 통 도착했다.

* * *

강지한이 이중견에게 답문자를 보내자마자 어디선가 전화가 왔다.

이번에도 모르는 번호였다.

강지한의 번호는 지한 분식 명함에 전부 나와 있다.

때문에 그의 개인 연락처를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 알아내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여보세요.”

전화를 받으니 예의바른 남성의 음성이 들려왔다.

-안녕하십니까. 혹시 강지한님 전화 맞습니까?

“네, 그런데요.”

-아, 영광입니다. 저는 도그 프렌즈의 마케팅 팀장 조세민이라고 합니다.

“그러시군요. 한데 어쩐 일로 전화를 주셨는지.”

-아, 네. 실은 강지한님의 훌륭한 반려견 설탕이를 우리 도그 프렌즈 하반기 신제품 모델로 채용하고 싶어 의사를 여쭙기 위해 전화 드렸습니다.

“그렇군요. 한데 다른 곳에서 먼저 연락이 와서 만나보겠다고 답을 보낸 상황이라…….”

-혹시 도그 푸드에서 연락이 온 것인지요?

“맞아요.”

-아직 만나지는 않으셨고요?

“네.”

-그럼 먼저 약속을 잡고 만나 보십시오. 괜찮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얼마를 부르는지 솔직하게 말씀 주세요. 우리 회사에서는 무조건 그보다 조금 더 높은 가격을 깔끔하게 제안 드리겠습니다.

도그 프렌즈 측에서 늘 도그 푸드보다 살짝 높은 가격으로 모델 계약을 맺는 비밀은 바로 이것이었다.

구멍이 있어서 정보가 새는 게 아니었다.

너무 단순무식한 방법으로 밀어붙여서 미처 이런 식일 거라고는 생각을 못했을 뿐이다.

-아, 참고로 저희 도그 프렌즈는 15년이라는 긴 기간 동안 동종 업계 매출 1위를 놓치지 않은 건실한 회사입니다. 자회사의 광고 모델로 지한님의 소중한 반려견이 채택될 경우 인지도가 놀랍도록 높아질 것이고 이는 곧 또 다른 수익의 원천이 될 수 있을 겁니다.

누가 들으면 혹할 만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강지한은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그는 설탕이로 돈을 벌 궁리를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설탕이가 좋으면 시키고 싫어하면 시키지 않는 것이 전부였다. 무엇보다 설탕이의 건강이 강지한에게는 최우선이었다.

돈이 된다고 이 광고 저 광고에 설탕이를 출연시켜 혹사시킬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알겠습니다. 제가 다시 연락드릴게요.”

-네, 감사합니다. 연락 기다리겠습니다.

통화가 끝나고 강지한이 영 탐탁지 않은 얼굴로 설탕이를 바라봤다.

“설탕아. 이 사람은 좀 아닌 것 같지?”

왕! 헥헥헥.

말투가 상당히 예의 발랐으나 너무 기계적으로 느껴졌다.

강지한은 설탕이의 CF 출연 건에 대해서는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서울행을 준비했다.

* * *

샤워를 하고 나온 이중견이 강지한에게 온 문자를 확인했다.

-안녕하세요, 강지한입니다. 문자 잘 받아 보았습니다. 한번 만나 뵙고 얘기 나누었으면 합니다. 회사가 서울에 있으신가요? 오늘 제가 서울에 일이 있어 올라가기는 하는데 스케줄이 다 끝나고 나면 너무 늦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차후 다시 연락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좋아!”

문자를 확인한 이중견이 빠르게 답문을 보냈다.

-늦게라도 괜찮으니 꼭 연락 주십시오! 제가 사장님 계시는 곳으로 나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 *

강지한은 손수 김밥을 싸 기차에 올랐다.

워낙 대식가인지라 다섯 줄 정도를 넉넉하게 싸서 챙겼다.

그런데,

‘아……. 기차 안에서 음식 먹는 거 불편해하는 분들도 있다던데.’

언젠가 그런 얘기를 들어서 걱정이 됐다.

어렸을 적, 가족끼리 기차여행을 갈 때 엄마가 싸준 김밥을 기차 안에서 먹었던 추억이 있다.

강지한이 아직 미취학 아동이었던 까마득한 예전이었다.

당시에는 기차에서 음식을 먹는 것으로 뭐라는 사람이 없었다.

한데 요즘은 세상이 달라졌다.

‘옛날 생각나서 쌌는데 난감하게 됐네.’

가족과 함께했던 옛 추억이 그리워 기차 안에서 먹을 김밥을 쌌는데 자칫하면 먹지 못할 판이었다.

그런 걱정 속에서 본인의 좌석을 찾아가는 강지한.

“와아~”

“나 이 기차 타봤는데!”

“나도 타봤지롱!”

강지한이 자리한 탑승 칸에는 초등학교 유치원생들로 점령이 되어 있었다.

그는 며칠 전, 인터넷으로 ITX기차의 맨 앞쪽 칸 좌석을 예매했었다.

ITX는 양쪽 끝 칸이 12좌석으로 이루어진 독립된 공간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기존의 칸보다 좌석수가 반 이상 적었다.

그 공간 안에는 10명의 어린이가 타고 있었는데, 그 아이들을 한 명의 여성이 통제하고 있었다.

“여러분~ 선생님이 기차 안에서는 어떡하라 그랬죠?”

“조용히 있으라고 했어요~”

“여기 우리만 있는 거 아니니까 실례되거나 피해주는 행동은 하면 안 돼요. 알았죠?”

“네~”

아이들은 그제야 조금 조용해졌다.

그때 여자아이가 손을 들고 여성에게 물었다.

“선생님~ 그럼 오늘은 교회 안 가도 되는 거예요?”

“네. 교회 대신 다 같이 서울로 체험 학습 가는 거예요.”

“와아~”

아이들이 마냥 좋아했다.

강지한의 옆에도 아이가 한 명 앉아 있었다.

한데 신나서 떠들어대는 다른 아이들과 달리 그 아이는 어쩐지 기운이 없어 보였다.

뭔가 사연이 있어 보였으나 이내 신경을 껐다.

기차가 출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기차에 앉아 있던 아이 한 명이 메고 있던 가방에서 과자를 꺼냈다.

아이는 과자봉지를 고사리 같은 손으로 능숙하게 찢더니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아그작. 아그작.

그 소리에 다른 아이들도 바쁘게 집에서 준비해 온 간식을 꺼냈다.

다들 집에서 부모님이 챙겨준 것이었다.

하지만 강지한의 옆에 앉아 있는 아이는 아무것도 꺼내지 않았다.

그저 부러운 시선으로 옆좌석 아이들이 먹는 과자를 슬쩍슬쩍 바라볼 뿐이었다.

“지한아!”

그때 옆좌석의 남자아이가 강지한의 이름을 말했다.

화들짝 놀란 강지한이 뭐라 대답을 하려 할 때, 옆에 있던 아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응?”

아이의 이름도 지한이었다.

서지한.

“너 간식 안 싸왔어?”

“…….”

서지한이 아무런 말도 없자 아이는 들고 있던 과자봉투를 내밀며 말했다.

“이거 되게 맛있는데. 너도 다음에는 이걸로 사와.”

“으, 응.”

그리고 아이는 서지한에게 관심을 끄고 다시 자기 과자를 먹기 바빴다.

‘허어.’

강지한이 조금 속상한 얼굴로 그 아이를 바라봤다.

‘과자 좀 주지.’

이름이 같기 때문일까?

강지한은 옆에 앉은 아이가 괜히 더 신경 쓰였다.

아이들을 통솔하는 선교사는 깊은 잠에 빠져 있어 돌아가는 상황을 몰랐다.

서지한은 전보다 더 풀이 죽어서 고개를 푹 숙이고 바닥만 바라봤다.

강지한이 더는 두고 볼 수 없어서 집에서 싸온 김밥을 꺼내며 아이에게 물었다.

“너 이름이 지한이니?”

“네? ……네.”

“아저씨 이름도 지한이야. 강지한.”

“정말요?”

서지한의 눈이 동그래졌다.

“응. 근데 너는 왜 간식 안 싸왔어?”

“……엄마랑 둘이 사는데요. 엄마가 요즘 아파서 절 못 챙겨줘요.”

서지한은 편모 가정에서 살고 있는 아이였다.

어떻게 돌아가는 상황인지 빠르게 파악한 강지한이 들고 있던 김밥 도시락을 서지한에게 건넸다.

“지한아, 이거 같이 먹자.”

“이게 뭔데요?”

“아저씨가 먹으려고 싸온 김밥인데 욕심을 내서 너무 많이 싸왔더니 혼자 다 못 먹을 거 같네. 같이 먹어줄 거지?”

서지한이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자, 먹어봐.”

그러고는 강지한이 건네는 김밥을 입에 쏙 넣었다.

작은 입을 오물거리며 김밥을 먹은 서지한이 깜짝 놀라 눈을 빠르게 깜빡였다.

“먹을 만하니?”

“엄청 맛있어요!”

서지한이 저도 모르게 소리를 빽 질렀다. 그러자 다른 아이들이 궁금해서 우르르 몰려들었다.

“뭐야? 뭔데?”

“뭐가 맛있어? 너 맨날 간식 안 가져오잖아. 오늘은 가져왔어?”

거기에 대한 대답은 강지한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지한이가 오늘 김밥 많이 싸왔다고 아저씨한테도 이만큼이나 나눠줬는데?”

그러고서는 서지한에게 살짝 윙크를 날렸다.

영민한 서지한은 그게 무슨 뜻인지 알아채고 쿵짝을 맞췄다.

“응. 김밥 싸왔어. 엄청 맛있어.”

“나도 하나 먹어봐도 돼?”

서지한은 친구들의 관심이 자신에게 몰리자 기분이 좋아졌다.

“응!”

허락이 떨어지자 친구들이 너도나도 김밥에 손을 뻗었다. 그리고 김밥을 먹는 차례대로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와! 진짜 맛있다!”

“우리 엄마 꺼보다 더 맛있는데?”

“지한아, 레알 졸맛.”

“나 하나 더 먹어도 돼?”

“응! 먹어. 다 먹어도 돼!”

친구들의 계속되는 관심에 서지한의 입이 헤 벌어졌다.

여태 교회에 다니면서 이토록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본 적이 없었던 아이는 이 순간이 꿈만 같았다.

서지한의 품에 있던 김밥은 순식간에 동이 났다.

아이들은 이미 본인이 싸온 간식에 관심도 없었다.

마냥 행복해하는 서지한을 본 강지한이 들고 있던 김밥마저도 전부 건네줬다.

“아저씨 배가 별로 안 고프네. 이거 그냥 너희들 다 먹어. 지한이 거니까 지한이한테 고맙다고 하고 먹어.”

“와아! 지한아 고마워!”

“잘 먹을게, 지한아!”

“응~ 많이 먹어, 얘들아.”

서지한의 얼굴에 함박웃음이 어렸다.

강지한이 그런 서지한을 뿌듯하게 바라봤다.

김밥 하나가 외로웠던 아이에게 마법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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