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4
Restaurant 153. 광고 모델 강지한
전화를 건 사람은 신장호 사장이었다.
강지한이 반갑게 전화를 받았다.
“네, 사장님.”
-강 사장님. 밤늦게 실례했습니다. 하하하.
“아닙니다. 어쩐 일이세요?”
-일전에 제가 말씀 드렸던 신푸드 홍보 모델 건 기억하고 계시지요?
신장호는 강지한에게 즉석식품의 홍보모델이 되어 달라 부탁했었다.
강지한은 자신의 사업에 여러모로 도움이 될 것 같아 이를 허락한 뒤, 지한 식당의 오픈을 신경 쓰느라 잊어버리고 있었다.
지금 얘기를 들으니 다시 번뜩 떠올랐다.
“아, 네. 그럼요.”
-이제 2주 후면 신제품이 출시될 것 같아서 슬슬 촬영해야 할 것 같네요. 하하하.
“그렇군요.”
이후 강지한과 신장호는 촬영 스케줄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 * *
다음 날.
식당을 오픈한 강지한의 시야에 접시, 냄비, 밥 그릇 등등의 식기들이 일제히 파란색으로 비추어졌다.
[식기의 레벨 업이 가능합니다. 식기를 레벨 업 한 이후, 다른 것을 레벨 업 할 수 있습니다.]
[식기의 레벨 업 조건은 감추어져 있습니다. 이를 해금하기 위해서는 소기의 미션을 완수해야 합니다.]
[해금 미션: 랜덤 박스 한 개 뽑기]
‘랜덤 박스?’
랜덤 박스는 단골 포인트 상점에서 구입 가능하다.
하나의 가격은 100단골 포인트.
현재 강지한에게는 79단골 포인트가 누적되어 있었다.
단골 포인트는 단골 한 명이 생길 때마다 1씩 올라가므로 만족도만큼 빠르게 오르지는 않았다.
아무튼 랜덤 박스를 구입하기 위해서는 21단골 포인트가 모자라는 상황.
해서 강지한은 저번처럼 만족도 포인트를 단골 포인트로 환전하고자 했다.
[만족도 포인트를 100포인트당 1단골 포인트로 환전 가능합니다. 환전하시겠습니까?]
‘응.’
[몇 포인트를 환전하시겠습니까?]
‘2,100포인트.’
강지한은 딱 필요한 만큼만 환전했다.
[만족도 포인트 2,100을 단골 포인트 21로 환전했습니다.]
환전이 끝난 다음엔 바로 랜덤 박스 하나를 구매했다.
강지한의 앞에 물음표가 새겨진 박스가 나타났다.
그것을 건드리자 뚜껑이 여리며 펑! 하고 메시지가 쏟아졌다.
[축하합니다! ‘명성 맛 캔디’를 얻었습니다.]
[명성 맛 캔디: 설탕이에게 먹이면 명성이 1 증가합니다.]
‘오우.’
강지한은 이틀 전 설탕이 퀘스트를 얻었다.
내용인 즉 설탕이의 명성을 98까지 올릴 경우 새로운 특수 능력을 얻게 된다는 것.
강지한의 손 위에 은은한 빛을 발하는 캔디 하나가 나타났다.
그것을 주머니에 넣자마자 또 다른 메시지가 올라왔다.
[미션 클리어. 식기 레벨 업 조건이 해금됩니다.]
[식기의 레벨 업 조건: 20,000 만족도 포인트.]
결국 이번에도 ‘포인트 내놔라’였다.
강지한이 2만 만족도 포인트를 투자해서 식기들을 레벨 업 했다.
[식기를 레벨 업 했습니다.]
[식기의 레벨이 최대치입니다.]
[식기가 강화되어 기능이 향상됩니다.]
[식기들이 담아진 음식의 맛을 최상의 상태로 유지할 수 있도록 최적의 온도를 스스로 조절합니다. 내구도가 강화되어 어지간해서는 깨지거나 손상되지 않습니다.]
이번에 얻게 된 식기구의 강화 효과 역시 2만 포인트가 아깝지 않았다.
한돈선의 한정식집 아띠에서 나왔던 코스 요리들을 보면, 각각의 음식에 따라 접시의 온도가 전부 달랐다.
이렇듯 대가들은 요리 자체만이 아니라 그것을 담는 식기의 온도까지 신경을 썼다.
강지한은 그런 수고를 던 셈이다.
“오늘 음식은 어제보다 더 맛있겠네.”
그가 혼잣말을 흘리며 주방으로 들어섰다.
* * *
하루 일과가 끝난 밤 11시.
춘천의 한 촬영 스튜디오에서는 셔터 누르는 소리가 요란했다.
찰칵! 찰칵!
“좋습니다! 좋아요! 다른 포즈도 한 번 부탁드릴게요! 네네. 이번엔 조금 더 역동적으로 웍 한 번 돌려주시고! 좋습니다!”
강지한은 신 푸드 신제품의 모델 촬영에 임하는 중이었다.
촬영 스튜디오 안에는 모든 조리도구들이 갖추어져 있었다.
그리고 여러 대의 카메라와 환한 조명이 마련되었고, 수많은 스텝들이 각자 맡은 일에 충실하는 중이었다.
모든 것이 강지한 한 사람을 위해 준비된 것이었다.
찰칵! 찰칵!
“아주 좋아요!”
촬영 감독은 강지한의 몸짓 하나하나에 격한 반응을 보였다.
그만큼 그가 요리를 하는 모습은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사실 처음 의뢰를 받았을 때는 대충 찍어주고 얼른 끝낼 생각이었다.
한데 한 컷, 두 컷, 다섯 컷, 열 컷!
찍으면 찍을수록 점점 더 신이 나는 자신을 발견했다.
이건 돈을 받아서 한다기보단 스스로의 예술적 욕심에 불타오른다고 보는 게 맞았다.
화르륵!
솟구치는 불길 위에서 손에 든 웍을 현란하게 놀리며 요리를 하는 강지한의 모습은 멋지다 못해 장엄하기까지 했다.
“이번엔 재료 한 번 썰어볼게요!”
촬영 감독의 요구에 칼을 든 강지한이 양파와 양배추를 신명나게 썰어냈다.
정확하고 리드미컬하면서 바람처럼 빠른 그의 칼질은 지켜보던 스텝 전부의 넋을 쏙 빼놓았다.
이건 요리가 아니었다.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행위였다.
‘멋지다.’
‘와, 진짜 섹시해. 저 남자.’
이미 여성 스텝들은 주방에 선 강지한의 모습에 완전히 매료되어 버렸다.
이후로도 촬영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본래 한두 시간 정도로 계획했던 촬영은 새벽 세 시가 되어서야 끝이 났다.
“수고하셨습니다!”
“고생하셨어요.”
길고 긴 촬영이 끝나고 난 뒤 강지한은 내일 장사 때문에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먼저 촬영장을 떠났다.
여성 스텝들은 강지한의 부재에 아쉬워했다.
괜히 입맛을 다시는 사람들도 있었다.
반면 긴장이 풀린 남자 스텝들은 강지한이 촬영하며 만들어 둔 음식으로 모여들었다.
이를 본 촬영 감독이 혀를 찼다.
“쯧쯧. 너희들 그거 먹으려고?”
“안 돼요?”
남자 스텝 한 명이 고개를 갸웃했다.
“인마. 그게 제대로 된 요리냐?”
“감독님, 강지한 몰라요? 배틀 셰프 유력 우승 후보잖아요.”
“아니 누가 그걸 몰라? 내 말은 강지한이 오늘 요리를 하러 온 게 아니잖냐 이거야. 촬영 하러 온 거잖아. 그러니까 집중해서 제대로 만든 요리가 아닐 거라고. 촬영 내내 내가 부탁한 퍼포먼스 위주로 재주 부리기 바빴는데 맛을 제대로 낼 정신이 어디 있었겠어?”
“그런가…….”
“그리고 맛집이라는 건 그 집에서만 사용하는 고유의 양념이나 육수 같은 게 있게 마련이다. 그런 것도 하나 안 가져왔잖아. 우리가 준비해 둔 재료로 순식간에 척척 만들어냈지.”
사실 촬영 당시에는 조금만 손을 놀리면 요리 하나가 척! 하고 만들어지는 것이 멋있기만 했다.
흡사 마술을 보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그런데 지금 와서 촬영 감독의 말을 듣고 보니 그만큼 정성 들이지 않고 만든 게 아닌가 싶은 의심이 들었다.
“후회하고 싶으면 먹어라. 난 안 먹는다.”
촬영 감독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의 일장연설을 듣고 나니 남자 스텝들의 들떴던 마음이 축 가라앉았다.
강지한의 맛있는 요리를 먹을 수 있을 줄 알고 내심 기대했었는데.
대부분의 스텝이 숟가락을 내려놓으려 할 때였다.
유독 식탐이 많은 스텝 하나가 그러거나 말거나 김치 볶음밥을 한술 떴다.
“먹으려고?”
옆에 있던 동료 스텝이 물었다.
“맛 좀 없으면 어때. 나 지금 배고파서 눈 돌아가겠어.”
촬영 내내 아무것도 먹지 못했으니 허기가 진 건 다들 매한가지. 하지만 맛없는 건 먹기 싫어서 참았는데 식탐 많은 스텝 한 명이 기어코 밥 한술을 입에 넣었다.
이어 그의 동공이 활짝 열렸다.
“맛없지?”
동료의 물음에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한 숟갈, 두 숟갈, 김치 볶음밥만 퍼먹었다.
그 모습에서 그를 잘 아는 다른 동료들의 눈이 번쩍 뜨였다.
‘저 인간, 맛있는 거 먹을 때는 누가 말 걸어도 대답을 안 하잖아.’
이건 분명 맛있다는 신호였다.
숟가락을 놓으려던 남자 스텝들의 손에 다시 힘이 들어갔다.
그들이 일제히 김치 볶음밥을 퍼먹었다.
워낙 달려드는 인원이 많다 보니 한 숟갈씩만 펐는 데도 동이 났다.
“쩝쩝. 꿀꺽!”
“헐. 이거 못 먹었으면 서운했겠다.”
“겁나 맛있어!”
김치 볶음밥 한 그릇을 작살낸 남자 스텝들의 눈이 사위를 살폈다.
강지한이 여러 그릇을 만들어서 아직 남아 있는 김치볶음밥은 많았다.
뿐만 아니라 된장찌개, 제육덮밥, 비빔밥, 김밥, 떡볶이 등등 다른 메뉴들도 수두룩했다.
남자 스텝들은 숟가락을 여기저기에 꽂으며 맛을 봤고, 연신 감탄을 터뜨렸다.
그들의 반응에 여자 스텝들이 기웃거리며 다가왔다.
그리고 촬영 감독은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맛있을 리가…….’
그는 남자들이 오버하는 거라 여겼다.
그런데 이어지는 여자 스텝들의 반응은 남자 스텝들보다 더했다.
“어머어머. 이거 진짜 촬영 때문에 만든 음식 맞아? 돈 내고 사먹으래도 먹겠어.”
“분식집에서 먹은 것보다는 못하지만 그래도 진짜 맛있다.”
“지한 씨 진짜 퍼펙트하다. 하아, 맛있어.”
모든 이들은 한마음이 되어 강지한의 음식으로 배를 채워 나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촬영 감독의 목울대가 위아래로 크게 움직였다.
꿀꺽!
‘마, 맛있나?’
그 맛이 궁금하긴 한데 사전에 내뱉은 말이 있으니 감독 체면에 함부로 덤벼들 수가 없었다.
그때 눈치 빠른 여자 스텝 한 명이 김치 볶음밥과 김밥 한 줄을 따로 담아 촬영 감독에게 갖다 주었다.
“감독님. 그렇게 빼지 말고 드셔보세요. 진짜 맛있다니까요.”
“어흠! 내가 챙겨주는 것까지 마다할 만큼 정 없는 인간은 아니야.”
“호호호. 아무렴요.”
“그럼 어디……. 준 거니까 맛이나 볼까.”
촬영 감독이 김치 볶음밥을 한술 떴다.
그리고 눈이 커졌다.
이번엔 김밥 한 알을 입에 넣었다.
눈이 찢어질 뻔했다.
‘뭐야 이거?’
도저히 촬영 때문에 만든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맛이었다.
촬영장에 특별한 재료는 없었다.
가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재료들이 전부였다.
그런데 강지한은 그것들로 어마어마한 맛을 만들어냈다.
‘똑같은 재료도 누가 사용하느냐에 따라 다르다더니.’
같은 재료를 사용해도 간 하나로 맛의 격차가 어마어마해지는 법이다.
게다가 강지한은 신선한 재료들의 특징을 제대로 살릴 줄 안다.
촬영을 위해서 만든 음식이라고 한들 기본이 어디 가지는 않는다.
촬영장에 있는 음식들의 레벨은 전부 레벨 4에서 5 정도의 수준이었다.
이제 그는 특제 양념과 특제 육수가 없어도 그 정도의 음식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매일매일 꾸준히 맛의 정수를 끌어올리기 위해 노력하고 공부한 것이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이다.
촬영 감독은 몇 번 감탄하다 보니 자신의 접시가 텅 비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촬영장엔 여전히 음식 먹는 소리만 가득했다.
‘으음…….’
갈등하던 촬영 감독은 결국.
“거 좀 천천히 먹어라! 김치찌개랑 된장찌개도 가져와 봐!”
체면이고 뭐고 일단 먹고 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