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0
Restaurant 149. 미안한 게 많아서
7월의 시작은 일요일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휴식을 취하는 날, 강지한은 촬영을 위해 서울로 향해야 했다.
오늘은 배틀 셰프의 준결승전이 있는 날.
경합을 벌이는 지원자들은 강지한과 도근한을 포함한 6인이었다.
한데 그 6인 중 3인은 전라운드의 베네핏을 잘 잡아 올라왔으니 준결승전에서 큰 빛을 발하지 못했다.
그나마 강지한, 도근한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한 사람은 강지영이 유일했다.
준결승전은 베네핏 배틀 없이 페일 배틀만 두 번 치르는 형식이었다.
첫 번째 페일 배틀에서는 6명 중 반이 탈락하게 된다.
그 경합에서 예상했던 3인방 박일구, 김주민, 정대만이 맥없이 떨어져 나갔다.
실로 싱거운 경기일수도 있었으나 강지한과 도근한, 강지영이 워낙 수준 높은 요리들을 만들어 내는 바람에 나름의 카타르시스가 있었다.
서바이벌 예능에서는 드라마도 중요하지만 요리 방송이니만큼 얼마나 먹음직스러운 요리가 완성되느냐 하는 것이 가장 잘 살아야 했다.
다행스럽게도 다음 라운드 진출자 세 명이 그 역할을 톡톡히 해주었다.
이어 잠깐의 개별 인터뷰와 휴식시간을 가진 뒤 페일 배틀 후반전이 시작됐다.
이번에 주어진 과제는 레드 푸드를 만드는 것이었다.
붉은색을 내는 식재료를 적절히 사용해서 맛있고 화려한 비주얼의 레드 컬러 푸드 한 접시를 만들어 내야 했다.
붉은색이라는 주제를 잘 살렸다면 재료는 무엇을 사용해도 무관했다.
단, 디저트가 아닌 메인 디쉬를 만들어야 한다.
그에 도근한은 킹크랩과 칠리소스를 이용한 음식을 만들어 냈다.
킹크랩은 계절과 상관없이 언제든 살 수율이 괜찮고 달달했다. 때문에 푹 쪄내서 특제 칠리소스를 곁들이면 그 맛이 대단히 조화로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울러 킹크랩의 껍질은 쪄내면 붉은색으로 변하는 데다 칠리소스 역시 붉은 계열이니 이번 경연 주제와 딱 들어맞았다.
도근한은 킹크랩의 살을 파내 접시에 담고 그 위에 칠리소스를 얹은 뒤, 게딱지와 집게발로 데코를 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조금 심심했기에 바질을 섞은 녹색 스패출을 만들었다. 스패출은 우리 나라의 올챙이국수처럼 생긴 파스타면이다. 그것으로 데코에 포인트를 주면서 쫄깃한 식감을 더했다.
그렇게 완성된 도근한의 요리는 킹크랩의 고소한 맛과 풍부한 바다향이 간소고기를 가득 품은 매콤한 칠리소스와 기가 막히게 어우러졌다.
그 안에서 간간이 씹히는 스패출은 씹는 맛을 배가시켰고 안에 품고 있는 바질의 향이 풍미를 극대화시켜 주었다.
도근한은 매력적인 한 접시를 만들어냈다는 극찬을 받았다.
다음으로 강지영은 소고기 안심, 토마토를 사용한 비프 스트로가노프를 만들었다.
심플한 메뉴였지만 그만큼 맛을 내는 데 자신이 있었기에 도전을 했고, 결과물은 성공적이었다.
그녀의 음식을 맛보는 심사위원들의 얼굴에 하나같이 웃음꽃이 활짝 폈다.
마지막으로 강지한이 선택한 메뉴는 레드와인을 곁들인 양갈비 스테이크와 사이드로 곁들일 쿠스쿠스, 라따뚜이였다.
양갈비 스테이크는 제이미 램지의 지식에서 가져온 기술을 사용해 몇 번이나 연습해 봤다. 때문에 자신 있게 구워낼 수 있었고, 레드 와인 소스 역시 자산이 있었다.
중요한 건 사이드.
쿠스쿠스는 세몰리나 밀가루를 손으로 비벼 좁쌀 모양으로 만든 뒤 수분을 가해 만든 파스타다.
쿠스쿠스 자체는 레드 컬러 푸드가 아니지만, 그 위에 라따뚜이를 올릴 예정이었다.
라따뚜이는 프랑스 음식으로 가지, 호박, 토마토 등의 야채에 허브와 올리브 오일을 넣고 오래 끓여낸 채소 스튜다.
라따뚜이의 기본 베이스는 토마토로 만든 소스다.
때문에 완성하고 난 비주얼은 레드 컬러가 확 사는 음식이 된다.
그런 점에서 음식의 선택은 괜찮았다. 하지만 과연 라따뚜이의 맛을 얼마나 잘 살리느냐가 관건이었다.
요즘엔 라따뚜이를 만들 때 모든 재료를 한꺼번에 넣고 익히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전통적인 레시피에 따르면 각 재료를 따로 익혀서 섞는 것이 정석이다.
다행스럽게도 강지한은 전통의 레시피대로 조리를 해나갔다.
라따뚜이라는 것이 누구나 쉽게 만들 수는 있지만 제대로 된 맛을 내기는 어려웠다.
자칫 잘못하면 다른 채소의 특징이 다 죽어버리고 토마토 소스맛만 나는 음식이 되어버리기 십상이다.
강지한은 정신을 바짝 차리고서 위의 세 가지 요리를 완성해 한 접시에 담아냈다.
진한 레드 와인 소스가 뿌려진 양갈비 스테이크는 미디움 레어로 완벽하게 조리되어 고기를 입에 넣는 순간 풍부한 육즙이 가득 뿜어져 나왔다.
시즈닝과 시어링, 레스팅도 완벽했다.
아울러 쿠스쿠스와 라따뚜이의 조합 역시 기가 막혔다.
두 음식은 본래 프랑스 사람들도 곁들여 먹기 좋아하는 조합이니 완벽하게 조리만 한다면 두말할 것 없이 맛있었다.
세 지원자의 음식을 모두 맛본 심사위원들은 장고 끝에 두 명의 결승진출자를 정했다.
한돈선의 입에서 호명된 두 사람은 강지한과 도근한이었다.
‘됐다!’
세트장 밖에서 이를 지켜보던 노영철 피디가 미소 지었다.
드디어 배틀 셰프는 그가 가장 원하는 구도로 결승전을 맞게 되었다.
친구 사이이자 라이벌 관계인 두 사람의 결승전 대결은 세간의 화제가 될 것이 틀림없었다.
* * *
준결승전을 마치고 세트장을 나선 강지한과 도근한은 나란히 걸어가면서 말이 없었다.
서로의 거리는 친구라기엔 멀고 남이라기엔 가까웠다.
두 사람은 상대방을 힐끔힐끔 바라봤다.
그러다 갑자기 눈이 마주치자 번개같이 눈을 돌렸다.
“…….”
“…….”
누가 보면 남자끼리 썸이라도 타고 있는 줄 알 만한 상황.
결국 어색함을 참지 못하고 먼저 말을 건 사람은 도근한이었다.
“너 프랑스 음식은 또 언제 공부한 거냐.”
사실 강지한은 프랑스 음식의 전반에 대해 공부를 한 건 아니었다.
그러기엔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때문에 만약 경합 주제가 프랑스 요리로 나올 때를 대비해 몇 가지만 확실히 자기 것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었다.
그런 식으로 각국의 나라를 모두 조금씩 손댄 강지한이었다.
사실 오늘 요리 주제가 레드 컬러 푸드였을 때 고추장이나 고춧가루를 이용한 한식을 만들어 볼까도 생각했었다.
하지만 단 한 접시에 담아내기엔 무언가 부족한 감이 들지 않을까 싶어 프랑스 요리로 전환했던 것.
덕분에 결승 때까지 어쩌면 써먹을 일 없을지도 모를 라따뚜이를 만들게 됐다.
사실 양갈비와 쿠스쿠스도 라따뚜이를 떠올린 다음 그에 어울리는 것을 생각하다가 정한 메뉴였다.
순서가 바뀌긴 했지만 아무튼 그가 만든 요리들은 레벨6으로 대성공이었다.
한데.
‘도근한의 칠리소스 킹크래도 레벨6이었지.’
전 라운드까지만 해도 레벨 5와 6 사이를 넘나들던 도근한이었다.
그런데 오늘 그가 만든 음식은 페일 배틀 전반, 후반 모두 레벨 6으로 일관됐다.
‘그렇게까지 지기 싫은 건가.’
도근한의 자존심은 학창시절부터 알아줬다.
너무 지나친 자존심이 화가 된 적도 많았고, 그로 인해 강지한을 업신여기며 미워했지만.
아무튼 지금은 그 자존심이 스스로를 채찍질했고 짧은 시간 무서운 성장을 이룰 수 있게 해줬다.
‘그러고 보면 진짜 대단해, 저 녀석도.’
레이먼 박은 도근한의 천재성을 알아보고 자신의 제자로 삼았다.
물론 그를 개인지도 하는데 어마어마한 돈을 받긴 했으나, 떡잎부터 글러먹었다면 천만금을 줘도 받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레이먼 박의 눈은 정확했고 강지한으로 인해 정신을 차린 도근한은 전에 없이 피나는 노력을 이어나갔다.
그 덕에 지금의 도근한으로 성장할 수가 있었다.
“씹냐.”
생가에 잠겨 있던 강지한이 아무 대답도 내놓지 않자 도근한의 이마에 힘줄이 불뚝 돋아났다.
“어? 아, 딴생각 좀 하느라.”
“이 자식이 사람을 면전에 두고 딴생각을 해?”
“너 내 옆에서 걷고 있는 게 그게 면전이냐.”
“말장난하고 있네. 대답하기 싫으면 말아.”
“프랑스 요리는…… 정말 제대로 할 줄 아는 건 몇 개 안 돼.”
“……그래?”
“네가 양식 전문이라고 해서 한식, 일식, 중식을 아예 못하는 건 아니잖아. 나도 그렇지, 뭐.”
“그렇네.”
어색한 침묵을 깨려고 너무 당연한 걸 질문해 버렸다.
그 바람에 괜히 멋쩍은 도근한이었다.
“이제 다다음주면 결승이네.”
“그러게.”
결승 역시 준결승전처럼 2주간의 휴식 기간을 주었다.
“결승에서는 내가 너 잡는다.”
도근한이 갑작스럽게 선전포고를 했다.
그간 강지한에게 매번 지기만 했던 것이 적잖이 마음에 쌓여 있었다.
그 설욕을 결승전에서 갚아버리고 싶었다.
해서 나름 힘주어 진지하게 말을 건넸는데.
“그래 뭐.”
강지한은 대수롭잖게 받아치고 계속 자기 갈 길만 갔다.
순간 어마어마한 후회와 부끄러움이 몰려드는 도근한이었다. 그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이후로 또 오가는 말이 없다가 강지한은 전철역으로 도근한은 근처 도로에서 택시를 잡기 위해 갈라져야 했다.
“나 만나기로 한 사람 있어서 택시 타려고.”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도근한이 그리 말했다.
“어……. 그래. 잘 타.”
“그래. 너도. 전철 막히겠다. 어서 가.”
말이 도근한의 뇌를 거치지 않고 그냥 막 튀어나왔다.
이미 저질러 놓고 주워 담을 수 없는 것이 말이다.
‘이런 멍청한 놈. 전철이 왜 막히냐.’
도근한은 스스로를 자책하며 필사적으로 택시를 잡아탔다.
멀어지는 택시를 바라보며 강지한이 저도 모르게 킥킥 웃었다.
* * *
도근한은 마포역 근처 카페에서 요리 잡지 ‘굿레시피’의 여성 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여기자는 이런저런 편안한 질문들을 던지다가 갑자기 민감한 질문을 쑥 찔러 넣었다.
“오늘이 배틀 셰프 준결승 녹화날이었는데, 최종 후보는 누가 됐나요?”
하지만 도근한은 거기에 넘어가지 않았다.
“알려주면 계약 위반으로 출연료 다 토해내야 돼요.”
유연하게 대처하는 도근한을 보며 여기자가 빙긋 미소 지었다.
“아, 그렇죠. 제가 너무 궁금한 마음에 무심코 실례했어요.”
그 사과가 지극히 계산된 말이라는 걸 알면서도 도근한은 따지고 들지 않았다.
“아무튼 요즘 화제인 배틀 셰프에서 근한 씨와 지한 씨, 두 분의 라이벌 대결 구도에 본격적으로 불이 붙으면서 양쪽의 팬덤이 강해지고 있다는 건 아시죠?”
“네.”
“팬클럽까지 생겼고요.”
“저도 가입했어요.”
“근데 강지한 씨는 본인의 팬클럽에 가입도 하지 않고 있는 모양이더라고요.”
“걔는…… 그냥 요리에만 관심 있는 녀석이에요. 은근히 촌스러워요.”
“하지만 매회 입고 나오는 옷 보면 패션 센스가 남다르던 걸요. 제가 아는 패션 잡지사에서도 강지한 씨를 눈여겨보고 있을 정도예요.”
“누가 코디라도 해주나 보죠.”
“아무튼 이대로 두 분이 결승 무대에 오른다고 가정을 해볼게요.”
도근한에게서는 제대로 된 대답을 들을 수 없을 것 같았던 여기자가 그렇게 말을 돌렸다.
“네. 상상은 자유니까요.”
“학창시절 친구였던 사람이 결승 무대에서 이겨야 할 상대로 서게 된다면, 기분이 어떨까요?”
그 물음에 가만히 생각하던 도근한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 전에 지한이가 나를 친구로 생각하는지부터 알고 싶네요.”
“그 말은 친구가 아니라는 건가요?”
“친구라고…… 하기 힘든 사이였죠.”
“같은 학교만 나왔고 데면데면 했나 봐요?”
“아뇨 그냥…….”
도근한이 말을 아끼자 여기자가 계속 그의 대답을 유도해 나갔다.
“그럼 근한 씨는 지한 씨를 친구라고 생각하세요? 뉘앙스를 보니 그런 것 같긴 한데요.”
“어느 순간부터 저도 모르게 그리 생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글쎄요. 뭣보다 지한이 앞에서는 친구라고 못하겠어요.”
“어째서 그렇죠?”
“어렸을 적 일이지만…… 미안한 게 너무 많아서요.”
인터뷰를 하며 스스로의 과거를 되돌아보고 진심으로 후회하는 도근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