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9
Restaurant 148. 공갈빵보다는 호떡
진상명은 확실히 일처리가 빠른 사람이었다.
조만간 연락을 한다더니 그다음 날로 찾아가겠노라 의견을 전했다.
한데 그날은 신장호가 후속 즉석식품 개발 건으로 강지한을 찾아오기로 한 날이기도 했다.
이에 강지한은 신장호와 함께 자리를 해도 괜찮겠느냐 물었다.
진상명은 어려울 게 무엇이겠냐며 차라리 잘됐다고 답했다.
그리하여 6월 28일 목요일 저녁에 네 사람이 지한 식당에 모이게 되었다.
신장호는 조금 일찍 와서 강지한과 사업에 대한 이야기를 모두 나눈 이후였다.
만나기로 한 7시가 몇 분 남지 않은 시각.
지한 식당의 문이 열리며 진상명과 백진목이 들어섰다.
그에 강지한과 신장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강지한은 두 사람을 반갑게 맞으며 살가운 인사를 주고받았다.
그리고 진상명과 백진목의 시선이 신장호에게 향했다.
신장호는 바로 허리를 깊이 숙였다.
“백 회장님! 간만에 뵙겠습니다. 하하.”
“나를 아시는가?”
백진목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3년 전, 김진만 의원 조모상 자리에서 한번 뵌 적이 있습니다.”
“그래요? 기억력도 좋구만. 상명이한테 듣기로 강 선생이 신 푸드 사장과 함께 자리하기를 청했다던데. 그럼 그쪽이 신장호 사장이겠구만.”
“그렇습니다.”
신장호가 시선을 옆으로 돌려 진상명에게도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십니까, 진상명 선생님. 신장호라고 합니다.”
“만나 뵈어 영광입니다. 진 아무개입니다.”
두 사람이 악수를 나누고서 세 사람은 한자리에 앉았다.
강지한은 엉덩이를 붙이지 않고 그들에게 물었다.
“식사부터 하실 거죠?”
“암. 그래야지.”
“조금만 기다리세요.”
* * *
강지한은 세 사람에게 지한 식당의 미니 한정식을 대접했다.
국은 전부 된장찌개로 준비해서 내왔다.
이미 강지한의 손맛을 익히 알고 있던 신장호는 한층 더 맛이 깊어진 된장찌개에 기함을 했다.
진상명은 강지한의 주력 음식을 먹어본 적이 없었다.
벌써 세 번째 만남이건만, 다 남에게 대접하기 위해 찾았던 터라 직접 사 먹은 김치 말고는 입에도 대지 못했다.
그런 상황에서 강지한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음식들로 가득한 상을 받으니 입에 들어오는 것 마다 감동이었다.
진상명의 눈에 강지한의 모습이 새로이 담겼다.
이미 그에게 강지한은 큰 사람이었다.
한데 지금은 태산처럼 거대해 보였다.
한편 다른 두 사람들에 비해 혀가 무뎌진 백진목은 그만큼 풍부한 맛을 느낄 수는 없었지만 최근 들어 가장 맛있는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일전에 잔치국수를 워낙 맛있게 먹은 덕일까?
이제는 강지한의 얼굴만 보면 괜히 군침부터 도는 그였다.
세 사람이 식사를 모두 마친 후, 강지한은 음식이 어떤지 물었다.
“최고였어요, 강 선생님. 마음 같아서는 내 집에 모셔 놓고 하루 세끼 꼬박꼬박 챙겨 달라 하고 싶을 정도입니다. 허허.”
진상명이 농담 속에 진담을 담아 말했다.
“강 사장님, 이번에도 절 놀래키시는군요. 된장찌개 맛이 그새 더 좋아졌어요.”
신장호가 혀를 내둘렀다.
마지막으로 백진목은 엄지를 치켜세웠다.
그것은 그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찬사였다.
“다들 만족하셨다니 뿌듯하네요.”
“이런 음식을 먹고 만족 못한다면 그가 염치없는 사람인 것이겠지요.”
그때 백진목이 강지한에게 넌지시 물었다.
“한데 강 선생, 춘천에 풍물장 말고 다른 데 또 장시 서는 곳은 없는가?”
“있습니다.”
춘천에는 풍물시장 말고도 중앙시장과 동부시장, 후평일단지시장 등 여러 장이 있다.
“호떡을 파는 곳도 있는가?”
“그럼요.”
호떡을 먹으려면 중앙시장 보다 후평일단지시장으로 가는 것이 나을 터.
강지한이 백진목의 의사를 여쭈었다.
“지금 바로 드시고 싶으세요?”
“그랬으면 좋겠는데.”
“바로 가시죠.”
* * *
강지한 일행은 후평일단지시장을 거닐고 있었다.
그들의 손에는 종이컵에 담긴 따뜻한 호떡이 하나씩 들려 있었다.
백진목이 호떡을 후후 불어 뜯어 먹으며 흡족해했다.
“맛있네. 혀가 부실해도 이 기름 냄새하며 쫀득하니 씹히는 반죽하며…… 이런 것들이 다 잃어버린 맛을 찾아준다니까.”
“그래서 사람이 추억을 먹고 산다지 않습니까. 하하하.”
신장호가 백진목의 비위를 맞춰주며 크게 웃었다.
강지한도 간만에 먹는 호떡을 충분히 음미했다.
기름지고 쫄깃한 반죽을 한입 뜯어 먹으면 그 속에 가득 담겨 있는 흑설탕 시럽이 혀 위를 달콤하게 적시며 살짝 곁들인 계피가루 향이 기분 좋게 올라온다.
시럽 속에 간간이 씹히는 땅콩은 끝내주는 별미였다.
강지한이 시장 호떡의 맛에 푹 빠져 있을 때 백진목의 입이 다시 열렸다.
“신 사장이라 그랬었는가?”
“네, 백 회장님.”
“자네는 이 호떡을 언제 처음 먹어봤나?”
“확실하지는 않지만 어렸을 적 부모님따라 시장을 가면 하나씩 손에 쥐어주고는 하셨습니다. 아마 그 무렵의 언젠가가 아닐까 합니다.”
“그런가. 나는 열다섯 살이 되었을 때 처음으로 먹어봤다네. 아직도 그때 그 호떡 맛이 잊히지가 않아.”
“그러셨군요.”
“이후에 머리가 좀 크고 나서 공갈빵이라는 걸 접한 적이 있었지.”
공갈빵.
꿀을 바른 안쪽이 잔뜩 부풀어서 텅 비어 있는 중국식 호떡이다.
“대륙의 호떡이라기에 한 번 먹어봤는데 속이 텅텅 빈 것이 영 별로더군. 부피는 어마어마한데 공기만 씹히는 걸세. 이래서 공갈빵이구나. 정말 영양가 없구나. 난 그렇게 느꼈네. 안 그런가?”
“회장님께서 그렇다고 하시면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하하.”
시원하게 웃어넘기는 신장호를 보며 백진목도 덩달아 미소 지었다.
“거 웃음소리 한 번 맘에 드는군.”
“감사합니다, 회장님.”
“신 사장.”
“네.”
갑자기 백진목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이를 본 신장호의 입가에 걸려 있던 웃음이 싹 사라졌다.
분위기를 읽은 것.
백진목의 걸음이 느려졌다.
그에 다른 세 사람도 백진목과 템포를 맞췄다.
“듣자하니 강 선생과 신 사장이 손을 잡고 즉석식품을 만들었다지?”
“그렇습니다.”
“반응이 좋아서 판매고가 상당하다던데.”
“사실 자체적으로 감당이 되지 않아 외부 업체과 공장 계약을 따로 맺어야 하나 고민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요즘 판매량이 빠르게 떨어지면서 고민 하나가 줄어들었습니다.”
“대신에 다른 고민들이 수두룩하게 달라붙었겠군. 공갈빵 같은 기사들이 우후죽순 달려들어 신 푸드를 물어뜯고 있으니.”
“다 제 업이라 생각하고 현명하게 이겨내려 노력하는 중입니다.”
“그건 자네 ‘업’이 아닐세. 거짓으로 받게 된 ‘피해’지. 듣기로 처음 기사를 낸 한명식이라는 기자가 삼영 식품 마케팅 전략부 서재용 과장의 대학 선배라던데. 공적인 자리에선 남 보듯 하지만 사적으로는 죽마고우가 따로 없다더군.”
백진목의 입에서 술술 나오는 정보에 신장호는 놀란 얼굴이 됐다.
자신은 아직 허위 기사의 근원지가 어딘지 파악도 못한 상황이었다.
물론 시간이 더 있었다면 어떻게든 밝혀낼 수는 있었겠으나 이토록 빠른 정보 수집은 불가능했다.
“아울러 다음 주로 잡혀 있던 삼영 식품의 신제품 공개 날짜가 보름 뒤로 미뤄졌다네. 거기에 대해서 삼영 식품은 말을 아끼고 있지만 그 속내야 뻔하지. 원래 출시하기로 했던 신제품을 폐기하고 그 자리에 신 푸드의 김치 사총사와 비슷한 제품들을 끼워 넣을 셈인 게야. 아마 지금쯤 자네 회사 음식들을 열심히 물고 뜯고 씹으면서 분석하고 있겠지.”
“그럼 신제품 공개 날짜를 뒤로 미룬 건…… 우리 제품의 맛을 연구할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겠군요.”
“그것뿐이지. 그럼 여기서 자네는 어찌할 텐가? 소송하겠나?”
신장호가 입을 꾹 다물었다.
삼영 식품은 자신의 회사 보다 몇 배나 규모가 큰 곳이다.
정면으로 부딪혀서 이길 승산이 전혀 없었다.
“솔직히 이런 짓을 벌인 배후가 삼영 식품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군요.”
“단순하게 생각하면 돼. 초등학생이 중학생한테 얻어맞았어. 그럼 고등학생 형을 불러오면 끝나는 일일세.”
의미심장한 백진목의 말에 신장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회장님, 그 말씀은……?”
“여기 오기 전에 우리 회사 식품 계열 간부들에게 신 푸드의 신제품에 대해 물어봤네. 여태 즉석식품으로는 도달하지 못한 경지를 담아낸 훌륭한 음식이라고 하더군. 그 말을 듣고 나니 욕심이 나더구만.”
백진목의 말이 이어질수록 신장호의 가슴이 두근거리며 뛰었다.
“자네, 앞으로도 사업을 계속 확장시켜 나갈 셈인가?”
“물론입니다. 이미 후속 식품들도 강 사장님과 함께 준비 중에 있습니다.”
“흥미롭군. 이런 얘기는 공적인 자리에서 하는 게 맞겠지만 사심을 갖고 물어보겠네. 그 사업에 내가 숟가락 좀 얹어도 되겠는가?”
이건 동업에 대한 제의였다.
신장호의 두 주먹에 힘이 들어가며 호떡이 담긴 종이컵이 와작 구겨졌다.
“손에 힘 빼. 아까운 호떡 찌그러져. 안에 있는 설탕 다 삐져나오겠네.”
“백 회장님! 영광입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한 번 믿고 손 내밀어 주신다면 실망하시는 일 없도록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그럼 우리 뜻이 맞은 겐가?”
“그러믄요!”
“이 자리에서 구두계약 한 걸로 생각하겠네. 종이 쪼가리에 빽빽이 적힌 글 하나하나 곱씹어 읽고 사인하는 지루한 짓거리는 내일 따로 만나서 하도록 하지. 우리는 신 푸드에게 적극적인 기술 지원과 각종 필요 시설의 아낌없는 개방을 약속하겠네.”
“그렇게만 해주신다면 더할 나위 없겠습니다.”
세진 그룹이 어디인가.
한국의 10대 그룹 중 하나다.
특히 세진 그룹 계열 중 하나인 세진 푸드는 그쪽 바닥에서의 연매출이 늘 3위권 안에 들 정도로 덩치가 거대했다.
사실상 세진 그룹을 가장 많이 먹여 살리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세진 푸드였다.
그런 만큼 세진과 손을 잡는다는 건 신 푸드에게 있어서는 어마어마한 일이었다.
그때 백진목이 갑자기 비서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야. 내가 말한 기사 있지? 그거 지금 당장 전 신문사에 뿌려. 그래.”
간단한 명령만 내리고서 백진목이 전화를 끊었다.
“백 회장님, 기사라니요?”
신장호가 궁금함을 못 참고 물었다.
“내가 성질이 좀 급해서. 이제 한 시간 내로 세진 그룹이 신 푸드와 손을 잡고 즉석식품 개발에 기술적 협약을 약속했다는 기사들로 도배가 될 게야.”
“……!”
신장호는 너무 놀라 말문이 턱 막혔다.
이 정도의 기사가 터진다면 조금 전까지 자신을 괴롭혔던 삼영 식품 측의 허위 기사는 바람 앞의 등불처럼 사라져 버릴 터.
감탄하는 신장호의 귀로 백진목의 걸걸한 음성이 흘러 들어왔다.
“속이 빈 공갈빵은 속이 꽉 찬 호떡을 이길 수가 없네.”
* * *
다음 날.
포털 사이트의 인기 검색어 순위권은 신 푸드와 관련된 것들로 도배가 되었다.
신 푸드와 세진 푸드가 손을 잡고 새로운 즉석식품을 개발한다는 기사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파생되어 나갔다.
한데 인기 검색어 1, 2, 3위를 차지하고 있는 건 이런 기사와는 조금 동떨어진 것이었다.
1위는 삼영 식품. 2위는 커넥션. 3위는 한명식 기자였다.
현재 신 푸드와 세진 푸드의 기술 협약만큼 뜨거운 기사는 다름 아닌 삼영 식품과 신문 기자 사이에 있었던 커넥션에 대한 것이었다.
삼영 식품이 신 푸드를 작정하고 음해하려 한명식 기자에게 뒷돈을 주었다는 사실이 빠르게 퍼져 나가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 사실은 한명식 기자 본인이 실토한 것이기 때문.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모르겠으나 그는 서재용과의 의리를 저버리고 모든 사실을 자신의 SNS에 털어놓으며 대중에게 사죄했다.
그 바람에 삼영 식품의 이미지는 바닥까지 곤두박질쳤고 반대로 신 푸드의 입지는 전보다 더 굳건해지는 분위기였다.
“대단하네, 백 회장님.”
햇살이 따스한 오후.
지한 식당의 홀에 앉아 인터넷 기사를 읽던 강지한이 저도 모르게 그리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