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8
Restaurant 147. 푸드스타일리스트
푸드스타일리스트 첫 수업.
강지한은 본의 아니게 조금 늦어버리고 말았다.
늦장을 부린 건 아니었다.
수업에 나갈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고 설탕이도 오늘은 일찍부터 애견 카페에 맡겨두었다.
그런데 끌고 나간 차가 말썽이었다.
별 이상 없이 잘나가던 차가 갑자기 한쪽으로 주저앉는 느낌이 들더니 덜컹덜컹거리며 굴러갔다.
강지한이 놀라서 차를 세워 바퀴부터 확인했다.
예상대로 앞바퀴 한쪽의 바람이 다 빠져 나가 있었다.
이 정도면 구멍이 난 게 아니라 타이어가 찢어진 것.
바퀴에 바람이 빠진 것을 늦게 인지하고 차를 계속 굴릴 경우 이 지경이 되어 버린다.
차를 처음 산 초보들이 주로 하는 실수였다.
스페어타이어로 교체하는 법도 몰라서 보험사에 전화를 했다.
결국 출동한 보험사 직원에게 도움을 받아 타이어를 교체 후 강림대학교 평생교육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첫째 날 등교시간은 6시 40분.
강지한이 평생교육관 주차장에 차를 세운 건 7시.
무려 20분이나 늦고 말았다.
건물 안으로 향하는 강지한의 발걸음이 바빠졌다.
* * *
푸드스타일리스트 수업을 맡은 구자영은 올해 쉰다섯 살의 강림대학교 교수였다.
그녀는 또래의 사람들보다 얼굴에서 나이가 덜 묻어났다.
동안이라는 개념보다는 고생을 한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전형적인 엘리트 코스를 밟고 살아온 느낌이 확 풍겼다.
마른 체형에 은은한 미소가 마스코트처럼 항상 걸려 있었고, 옷은 분홍색 계열의 하늘하늘한 스커트를 입었다.
목에는 얇은 스카프를 두른 것이 그녀의 분위기에 잘 어울렸다.
구자영은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한 특별교육을 3년 전부터 맡아 해오고 있었다.
올해 1분기 수업에 지원한 이들의 수는 총 17명.
그런데 제시간에 나온 이들은 14명이었다.
한 명은 오늘 부득이한 사정으로 나오지 못하겠다고 연락이 왔으며 두 명은 무단지각이었다.
“음…….”
구자영이 벽시계를 확인했다.
7시.
20분 전에 도착한 사람들에게는 7시까지만 사람들을 더 기다려 보자고 양해를 구한 상황.
더 이상은 기다려 줄 수가 없었기에 출석 체크를 시작했다.
“그럼 선생님들 출석 부를게요. 이양숙 선생님.”
“네~ 왔어요.”
올해 예순아홉 살의 할머니가 손을 들었다.
여기 모인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이 지긋한 할머니, 혹은 아주머니였다.
극단적으로 젊은 사람과 남자가 없었다.
하지만 이런 광경은 구자영에겐 익숙했다.
원체 푸드스타일리스트라는 수업이 남자들의 관심사에서 많이 벗어난 것이기 때문.
해서 작년에도 남자는 마흔두 살의 식당을 운영하는 신사 한 분밖에 없었다.
아울러 젊은 사람들은 이런 수업을 직접 찾아서 받으러 다니는 경우가 드물었다.
그래서 이 공간엔 늘 나이가 좀 있는 여성분들이 많았다.
구자영은 한 명 한 명 차근차근 출석을 불러나갔다.
그러다 마지막 한 사람의 이름을 호명했다.
“강지한 선생님. 안 오셨죠?”
구자영이 모여 있는 사람들을 훑었다.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그때 덩치가 넉넉한 아주머니 한 명이 혹시나 하며 말했다.
“강지한? 요새 그 배틀 셰프에 나오는 미남 요리사 이름이랑 같네요.”
그 말에 상대적으로 비쩍 마른 아주머니가 맞장구를 쳤다.
“그렇네요? 그 사람도 춘천 산다던데.”
“진짜 그 미남 요리사가 지원한 건 아니에요?”
“그러면 대박이죠! 수업 들으러 오는 맛 나겠어요~”
“근데 그럴 일이 있겠어요?”
“그냥 희망사항이라고 말해보자는 거죠. 호호호.”
아주머니와 할머니들이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다.
그때, 강의실의 문이 열리며 훤칠한 키의 남성이 헐레벌떡 들어왔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구자영 교수를 비롯 모든 이의 시선이 자연스레 뒤로 돌아갔다.
그리고 잠시간의 정적이 흘렀다.
강지한은 필요 이상의 정적에 자신이 너무 늦어 분위기를 망친 건가 싶었다.
그에 어찌해야 하나 눈치를 살피는데.
“가, 강지한 씨? 배틀 셰프 강지한 씨 맞죠?”
아주머니 한 분이 강지한에게 물었다.
“네? 아…… 네. 맞습니다.”
“어머나, 어머나! 진짜 강지한이야!”
“세상에. 설마가 사람 잡는다더니 그 말이 딱이네.”
“아이고~ 잘생긴 총각이 진짜로 나타나 부렀어.”
농담으로 던진 말이 현실로 이루어지자 모두가 놀랐다.
강지한도 덩달아 놀랐다.
하지만 놀람은 곧 반가움과 즐거움으로 바뀌었다.
“유명 인사가 우리랑 같이 수업 받는겨?”
“지한 씨~ 악수 좀 해줘요. 우리 딸이 지한 씨 팬이야!”
“어떻게 결혼은 하셨나? 싱글? 애인은 있으시고?”
“실례 안 되면 이따 사인 좀 부탁 드려도 될까요?”
푸드스타일리스트 수업이 강지한의 팬클럽 모임처럼 바뀌었다.
* * *
푸드스타일리스트 수업에서 강지한은 여러 가지를 배울 수 있었다.
우선 테이블을 꾸미기 위해서는 큰 주제를 정해야 한다는 것.
본인이 원하는 분위기와 컨셉에 따라 클래식, 엘레강스, 모던, 매니쉬, 로맨틱, 심플, 캐쥬얼, 내추럴, 에스닉, 뉴웨이브 등등의 큰 틀을 정한 뒤, 거기에 맞게 전체적인 색감부터 식기의 디자인과 모양, 배치를 다르게 해야 한다.
테이블 보와 테이블 매트, 커트러리(Cutlery:식기구), 냅킨, 그 외에 다른 장식품들도 신중히 선택해서 컨셉의 톤 앤 매너에 맞게 꾸며야 비로소 아름다운 한 상이 완성될 수 있는 것.
음식을 예쁘게 담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었다.
더불어 테이블 매너라던가 커트러리의 올바른 사용법 같은 것도 간단하게 알려주었다.
아직 그러한 부분은 강지한에게 중요하지 않았으나 그는 소홀히 하지 않았다.
그가 요식업계에서 종사하는 이상 알아두면 언젠가는 사용하게 될 테니.
두 달이 조금 못되는 시간 동안 수업을 진행한 뒤, 마지막 시간에 시험을 봐서 통과하면 푸드스타일리스트로서의 자격증이 주어진다.
강지한은 새로운 배움에 즐거운 마음으로 임해 나갔다.
* * *
삼영 식품의 마케팅 전략부는 축제 분위기였다.
그들의 전략이 꼭 들어맞았기 때문.
오후 8시.
신이 난 공치산은 팀원들을 데리고 회식을 즐기는 중이었다.
서재용은 공치산의 옆에 앉아 연신 그의 기분을 맞춰주고 있었다.
두 사람의 대화는 다른 직원들이 듣지 못할 만큼 은밀했다.
“이번 일은 전부 공 부장님 덕입니다.”
“서 과장도 고생했어. 그 한명식이라는 네 선배 기자는 이후로 다른 소설 안 올리고 있지?”
“네. 그 기사 하나만 치고 바로 빠졌습니다.”
하지만 한명식의 기사는 곧 그것을 비슷하게 베낀 또 다른 기사들로 말도 못하게 증식한 상황이었다.
공치산이 그 점을 짚고 넘어갔다.
“우라까이 기사들 많이 나왔지?”
우라까이란 그 바닥 은어로 비슷하게 베껴 사용한 것을 뜻한다.
“네. 여기저기서 지금 난리입니다.”
“그래. 아마 곧 신 푸드 측에서 고소 들어올 거야. 선배 기자한테 최대한 늦장 대응 하라고 해. 이미 식품 개발부에서 신 푸드 음식 연구 들어갔어. 아마 보름 이내로 최대한 비슷한 맛 만들어 낼 거야.”
신 푸드가 악의적인 기사와 진흙탕 싸움을 하는 동안 삼영 식품은 신제품을 낸다.
그것도 신 푸드에서 출시했던 김치 사총사와 비슷한 맛으로 만들어서.
거기에 광고 모델로 유명 배우나 아이돌을 데려오면 이건 무조건 삼영 식품의 승리였다.
재판에서 신 푸드가 이겨도 상관없다.
결국 소비자들은 보름이라는 시간 동안 삼영 식품으로 눈을 돌릴 것이니까.
“그리고 SNS 조작도 그만해.”
“네? 분위기 탔는데 조금만 더 몰아치는 게 어떻겠습니까?”
서재용의 의견에 공치산이 고개를 저었다.
“사냥꾼이 없으면 마음대로 설쳐도 괜찮아. 근데 사냥꾼이 있을 땐 움직임이 커지면 눈에 더 잘 띌 뿐이야. 지금은 몸 사리고 가만히 있는 게 좋아. 계정들 다 터뜨려서 없애.”
“네, 부장님. 바로 조치하겠습니다.”
“자자, 오늘밤은 즐겁게 마셔보자고! 건배!”
“건배!”
넓은 화로구이집 홀에 잔 부딪히는 소리와 삼영 식품 마케팅 전략부원들의 함성이 요란했다.
* * *
푸드스타일리스트 수업은 두 시간가량 진행됐다.
하루의 수업을 끝마친 강지한이 애견 카페에 들러 설탕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이리나에게서 전화가 왔다.
“응, 리나야.”
-오빠. 혹시 신 푸드 저격기사 봤어요?
“신 푸드 저격기사? 아니.
-완전 어이없어요. 이거 아무래도 다른 기업에서 신 푸드 죽이려고 약 치는 것 같아요. 제가 링크 보내드릴 테니까 보세요.
“알았어, 고마워.”
역시 이런 쪽에는 항상 강지한보다 빠른 이리나였다.
전화를 끊자마자 이리나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접속해 보니 그녀의 말대로였다.
실제 회사 이름은 밝히지 않았으나 누가 봐도 신 푸드를 저격하는 기사가 맞았다.
이어 이리나는 몇 장의 캡쳐 사진을 보내주었다.
그것은 신 푸드의 음식을 먹고 탈이 났다는 SNS 게시글들이었다.
강지한이 바로 신장호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강 사장! 잘 지냈어요? 하하하!
신장호는 아무 일도 없는 듯 평소와 다름없는 음성이었다.
하지만 이런 사태에 대해 그가 모를 리 만무했다.
강지한은 바로 본론을 꺼냈다.
“신 사장님, 안녕하세요. 기사 봤습니다.”
신장호가 강지한의 말을 바로 알아들었다.
-아, 그거 별거 아닙니다. 우리 쪽에서 처리할 테니 강 사장님께서는 레시피 개발에만 주력해 주시면 됩니다.
“그런가요?”
-그럼요. 이미 소송 준비 중이고, 어느 업체에서 이런 더러운 짓을 꾸민 것인지도 밝혀낼 겁니다. 모쪼록 강 사장님까지 골머리 썩지 마세요. 하하하!
신장호는 자신만만하게 대답했지만 강지한은 영 께름칙했다.
“신 사장님, 사실대로 말씀해 주세요.”
-제가 뭘 숨기겠습니까? 그 기사들이랑 SNS글 때문에 판매지수가 조금 떨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끄덕없습니다. 여전히 다른 식품 업체보다 높은 판매량을 자랑하고 있으니까요.
“알겠습니다. 저는 레시피 개발에 더 신경 쓸게요.”
-아무렴요. 모쪼록 잘 부탁드립니다. 하하하.
신장호와의 통화를 끝낸 강지한이 인터넷에 신 푸드 관련 기사를 검색해 나갔다.
그러자 강지한이 봤던 것과 비슷한 기사들이 벌써 빠르게 증식한 이후였다.
이 기사들을 공유한 네티즌들도 상당했다.
‘아무래도 일이 커질 것 같은데.’
신장호는 강지한을 안심시키려 했으나 강지한이 어린애도 아니고 그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긴 힘들었다.
뭔가 이 상황을 타개할 좋은 방법이 없을까 전화가 걸려왔다.
발신인은 진상명이었다.
강지한이 반갑게 전화를 받았다.
“네, 어르신. 안녕하셨어요?”
-저야 늘 유유자적하며 잘 지내고 있지요. 강 선생님께서는 별고 없으신지요?
“저는 어르신 덕분에 식당 오픈 준비 잘하고 있습니다.”
-허허허. 그게 어디 제 덕분입니까. 강 선생님께서 백 회장님의 입맛을 되찾아 주신 덕에 잡게 된 복이지요. 전부 본인이 이루신 겁니다.
강지한은 한국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기업 세진 그룹 백진목 회장에게 국수를 대접해 잃어버린 입맛을 되찾아 주었던 일이 있었다.
그 덕분에 4억짜리 식당 건물이 공짜로 굴러들어왔다.
-아, 말이 나와서 얘긴데 제가 우리 은사님과 식사 한 번 하러 가도 될는지요?
“그럼요. 요즘에는 분식집 일에 손을 떼서 언제든 대접해 드릴 수 있습니다.”
-아, 그런가요? 우리 은사님께서 며칠 전부터 한 번 더 강 선생님 음식을 맛보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시지 않겠습니까. 제가 이번 주 안으로 은사님 모시고 인사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언제든 연락 주세요.”
진상명과의 통화가 끝난 후 강지한은 스마트폰을 말없이 만지작거렸다.
아무래도 그가 밥 한 끼 먹고 싶어서 자신을 보러 오려는 건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다가왔다.
어쩌면 이번 문제가 쉽게 해결될 수도 있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