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7
Restaurant 146. 카더라 기사
“먹어봐.”
일요일.
강지한은 아침부터 예소린을 집으로 초대했다. 자신이 요리를 해줄 테니 같이 밥을 먹자며 레벨7 김치찌개를 만들어 내어 주었다.
예소린이 기대 가득한 얼굴로 김치찌개를 한입 떠먹었다.
“호록.”
그러자 기존의 김치찌개보다 몇 배나 진하고 깊은 국물이 혀를 부드럽게 감싸며 이루 말할 수 없는 감동을 안겨주었다.
“와아.”
“어때?”
“최고. 정말 맛있어, 지한 씨. 어떻게 만든 거야?”
예소린의 물음에 강지한이 냉장고에 있던 삭은 김치를 내어 주었다. 이를 본 예소린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이걸로 만들었다고? 정말?”
“응.”
“신기하다. 이 김치가 어떻게 이렇게 변신할까.”
“나도 신기했어. 삭은 김치로 이런 맛을 낼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거든.”
“그럼 이 위대한 발견은 우연의 산물?”
“그런 셈이지.”
“대단하다, 지한 씨.”
예소린이 강지한을 한껏 띄워주고서 다시 김치찌개를 맛봤다.
두부와 파는 재료 본연의 싱싱함을 아직 잃지 않아 식감이 좋은 데다 푹 우러난 고기 기름으로 자칫 느끼할 수 있는 김치찌개의 밸런스를 잘 잡아줬다.
푹 익은 김치와 삼겹살은 입에 들어가자마자 녹듯이 사라졌다.
“정말 밥도둑이다.”
이 김치찌개는 고슬고슬 잘 지어진 쌀밥을 계속 부르는 매력이 있었다.
뿐만 아니라 소주 한 잔에도 기가 막히게 잘 어울릴 것 같았다.
예소린은 속으로 연신 감탄하며 찌개를 먹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밥 한 공기가 사라져 있었다.
“지한 씨, 밥그릇에 구멍 뚫렸나 봐. 난 이렇게 먹은 기억이 없는데?”
예소린이 밥그릇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그 모습이 귀여웠던 강지한이 빙그레 웃으며 물었다.
“한 공기 더 줄까?”
“응.”
강지한이 밥 한 공기를 더 퍼다 주었다.
그런데 밥만 나온 게 아니라 된장찌개도 함께였다.
“이것도 맛이 한층 업그레이드된 거?”
“응, 김치찌개에서 힌트를 얻었어.”
강지한은 어제, 삭은 김치를 푹 끓인 것에서 힌트를 얻어 된장찌개 역시 오래도록 끓여보았다.
그러자 당장 빠르게 끓여내는 것보다 풍미가 배가되었다.
찌개에 들어간 모든 재료들의 맛이 국물에 푹 우러난 것.
하지만 기존에 들어가는 재료와 육수, 육수와 된장 양념으론는 이 조리법의 묘미를 제대로 살릴 수가 없었다.
강지한의 된장찌개엔 씹히는 재료로 애호박과 양파, 두부가 들어간다.
양파와 두부는 그렇다 쳐도 애호박은 너무 오래 끓이면 물러 퍼져서 식감이 영 좋지 않았다.
그에 강지한은 애호박 대신 무를 넣기로 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특제 육수와 된장 양념의 비밀은 한정신의 지식 안에서 찾아낼 수 있었다.
‘꿈에도 몰랐지. 그 특제 육수와 된장 양념의 레시피가 푹 끓인 된장찌개에 어울리는 것일 줄은.’
현재 강지한이 얻은 한정신의 지식은 레벨 2까지 개방된 상황.
때문에 그가 생전에 연구했던 레시피의 모든 비결이 전부 담겨 있는 건 아니었다.
일부는 그런 경우도 있지만, 어떤 레시피들은 절반 혹은 삼분의 이 정도만 공개된 채로 뒤가 없는 경우도 많았다.
해서 일전에 강지한이 한정신의 된장찌개용 육수와 된장 양념 레시피를 가져다 쓴 적이 있었는데 맛은 나쁘지 않았지만 미묘하게 밸런스가 안 맞았고 조금 싱거웠다.
완성된 된장찌개의 레벨 역시 4에 그쳤다.
강지한은 당시엔 이유가 뭔지 몰랐었다.
한정신의 레시피는 오래 푹 끓이는 된장찌개에 어울리는 것이었다.
거기에 강지한은 한 가지 재료를 더 추가했다.
바로 소고기.
그중에서도 차돌박이 부분을 잘게 썰어 넣었다.
결국 차돌박이 된장찌개에 한정신의 비법 레시피를 더한 뒤 강지한 본인의 노하우까지 곁들여 환상적인 맛의 경지를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지금 예소린의 앞에 놓인 된장찌개의 레벨은 7이었다.
“호록.”
된장찌개를 음미한 예소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지한 씨, 진짜 나날이 발전하는구나.”
“듣기 좋은 말이네.”
“음……. 나도 그냥 안주하고 있으면 안 되겠다. 계속해서 카페 메뉴들 발전시켜 나가야지.”
“강아지들 관리하느라 정신없는데 그럴 새가 있겠어?”
“지한 씨가 혼자서 사업 몇 개나 하는지 잊었어? 그거에 비하면 난 새 발의 피야.”
예소린은 말을 하는 와중에도 숟가락을 놓지 못했다.
뚝배기에서 하얀 김을 모락모락 피어내는 마성의 된장찌개가 그녀의 식욕을 계속 자극했다.
먹어도 먹어도 배가 부르기는커녕 줄어드는 게 안타깝다는 기분만 들었다.
“근데 지한 씨.”
“응.”
“이 메뉴들 지한 식당에서 선보일 거지?”
“그러려고.”
분식집에서 내놓기엔 단가가 맞지 않는 음식들이었다.
지한 분식의 김치찌개엔 돼지고기 전지가 들어간다. 전지는 앞다리살로 가장 싼 부위 중 하나다.
그런데 레벨7 김치찌개에는 삼겹살이 들어간다.
지금 지한 식당의 가격으로는 단가가 맞지 않는다.
차돌박이가 들어가는 된장찌개 역시 마찬가지였다.
고개를 끄덕인 예소린이 한 가지를 더 물었다.
“김치찌개랑 된장찌개, 둘 다 오래 끓인 거지?”
“먹어보고 그걸 바로 알았어? 요리사 다 됐네.”
“그럼 음식 나가는 데 시간이 너무 지체되는 거 아니야?”
예소린의 우려에 강지한이 그녀의 뺨을 톡 두드렸다.
“그래서 미리 한 솥 끓여놓고 장사할 거야. 주문이 들어오면 바로바로 뚝배기에 옮겨 담아 끓기만 하면 내보낼 수 있게.”
“아, 그럼 되겠네. 내가 너무 단순했다. 호호.”
“그 정도면 장사 잘되겠지?”
“훌륭하지. 아, 가격은?”
“1인분에 9천 원.”
예소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강지한에게 이미 미니 한정식 한 상을 받아본 적이 있었다.
미니 한정식이라는 타이틀을 놓고 봤을 때 언뜻 비싸 보이지만, 막상 차려지는 메뉴들의 종류와 맛을 보면 그런 생각이 싹 사라질 것이었다.
‘그렇게 훌륭한 음식들에 김치찌개랑 된장찌개 맛이 훨씬 좋아졌으니 게임 끝났지.’
예소린은 지한 식당이 무조건 대박 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예소린의 만족스러운 반응들에 비로소 마음이 놓인 강지한은 그제야 맞은편에 앉아 수저를 들었다.
한편, 설탕이는 소파에 누워 앞발에 턱을 괸 채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특히 강지한을 향한 시선에는 애정이 듬뿍 담겼다.
주인을 바라보고만 있어도 좋은지 강지한이 불러주지도 않았는데 꼬리는 살랑살랑 봄바람을 탄 것처럼 움직였다.
그런 설탕이의 귀에 째깍째깍 초침 소리가 들려왔다.
설탕이가 고개를 들어 벽시계를 살폈다.
9시 7분.
이를 본 설탕이가 크게 짖었다.
왕! 헥헥.
그에 두 사람의 시선이 설탕이에게 향했다.
“설탕아? 왜 그래. 심심했어? 누나가 놀아줄까?”
마침 강지한보다 먼저 식사를 끝낸 예소린이 설탕이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설탕이가 소파에서 내려와 텔레비전 리모컨을 물고 예소린에게 다가왔다.
“응? 텔레비전 틀어 달라고?”
왕!
“하여튼 너 의사표현 확실하게 하는 거 보면 웃긴다니까.”
예소린이 애정을 가득 담아 설탕이를 어루만져 주면서 다른 손으로는 리모턴의 전원 버튼을 눌렀다.
모니터 화면이 밝아지며 예능 프로가 흘러나왔다.
설탕이가 그걸 보고서는 또 한 번 짖었다.
왕!
“이거 아니야? 다른 거 보여줄까?”
그 말을 알아듣기라도 하는 듯 헥헥 대며 꼬리를 팽팽 돌리는 설탕이.
예소린이 채널을 이리저리 돌렸다.
설탕이는 그것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원하는 방송이 나오는 순간,
왕!
크게 짖었다.
“이거?”
예소린과 강지한의 시선이 브라운관으로 향했다.
거기에서는 KBM 아침 예능 ‘동물의 왕국’이 송출되는 중이었는데 익숙한 강아지의 모습이 보였다.
그 강아지는 바로 설탕이였다.
그에 강지한과 예소린이 동시에 손가락을 딱! 튕겼다.
“아! 오늘 설탕이 방송 나오는 날이었지?”
“와~ 설탕아. 너 이거 알고서 보여 달라 그런 거야?”
헥헥!
“어쩜~ 이러니 천재견 소리 듣지. 천재견 타이틀을 아무나 따는 게 아니야. 그치?”
예소린이 설탕이를 품에 안고 털에 뺨을 마구 비볐다.
설탕이는 텔레비전에 나오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흐뭇해했다.
강지한은 그런 설탕이를 보는 것이 흐뭇했다.
* * *
6월 25일, 수요일.
오늘도 지한 식당은 문을 걸어 잠근 채 주방만 요란했다.
강지한은 오후 3시까지 한지민과 최종 메뉴들을 만들어 보고, 더 추가할 것이 있는지, 뺄 것이 있는지 아이디어 회의를 이어나갔다.
지한 식당이 오픈하기 전까지 만반의 준비를 갖추겠다는 강지한의 의지가 엿보였다.
식당에서 나온 강지한은 오래간만에 지한 분식을 찾았다.
양손에는 반찬통이 담긴 보자기가 한가득이었다.
그 안엔 오늘 한지민과 함께 만든 음식들이 담겨 있었다.
브레이크 시간에 맞춰 예고도 없이 등장한 강지한을 분식집 식구들이 격하게 맞아주었다.
“강 사장~ 식당 차린다고 우리한테 너무 소홀한 거 아니야?”
고중만이 강지한에게 핀잔을 주었다.
“맞습니다. 요새 조금 서운할라 그럽니다!”
용성우도 고중만의 말을 거들었다.
“저 없어도 잘 돌아가는 것 같은데 굳이 얼굴 비칠 필요 있겠어요?”
“강 사장 말하는 거 너무 정 없다!”
고중만이 연신 툴툴댔다.
“그래서 없어진 정 다시 찾아드리려고 왔어요.”
“어떻게요?”
이리나가 기대하는 눈빛으로 물었다.
“맛있는 밥 한 상 차려주는 것 보다 더한 정이 있겠어? 조금만 기다리세요, 다들.”
강지한의 말에 모두가 환호했다.
* * *
“와, 존맛.”
“진짜 맛있다.”
“강 사장. 이거 맛이 미쳤어, 아주!”
지한 분식의 식구들은 지한 식당의 메뉴를 맛보며 하나같이 감탄을 흘렸다.
그런 와중 이리나가 쓴소리를 뱉었다.
“근데 플레이팅이 좀 더 섬세했으면 좋겠어요.”
“그건 동감.”
최지민이 이리나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푸드스타일리스트 수업 등록했어. 오늘부터 나갈 거야.”
“와~ 오빠 완전 본격적이네요?”
“처음으로 갖게 된 내 건물에서 시작하는 장산데, 더 열심히 해야지.”
“그렇다고 우리 너무 뒷전으로 놓지 마요. 서운해.”
“하하, 알았다. 그럼 식사 마저 맛있게들 하세요.”
강지한이 분식집을 나섰다.
멀어지는 강지한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지한 분식 식구들은 다시 식사에 열중하기 시작했다.
모든 찬들과 요리가 다 맛있었지만 특히 김치찌개와 된장찌개가 가히 예술이었다.
이거야말로 둘이 먹다가 하나가 죽어도 모를 맛이었다.
* * *
오후 7시.
강지한이 푸드스타일리스트 수업을 받기 위해 강림 대학교 평생교육관으로 들어서는 시각.
신장호는 자신의 사무실에서 신 푸드의 매출 전표를 심각하게 살펴보고 있었다.
‘나흘 전부터 매출이 주춤하더니 어제는 처음으로 하락세를 보였어. 그런데…….’
신장호의 시선이 컴퓨터 모니터로 향했다.
커다란 모니터에는 여러 사람의 SNS가 떠 있었다.
SNS의 내용은 거의 대동소이했다.
요즘 핫한 X푸드 사의 김치 신제품 네 종류를 먹었는데 배탈이 크게 나서 고생했다는 것.
한데 이상한 것이 그런 글을 게시한 사람들은 전부 여자였다.
그것도 프로필 사진을 보면 하나같이 엄청난 미인들뿐.
참 이상한 일이었다.
그 사람들의 대동소이한 글은 적게는 수십에서 많게는 수천 번까지 공유되어 퍼져 나간 상황이었다.
신장호는 모니터 하단으로 내려놓았던 인터넷 창을 클릭해 화면 전체로 띄웠다.
그러자 어느 기자가 쓴 기사 한 면이 나타났다.
기사의 제목은 ‘승승장구하던 S푸드의 김치 신제품 먹고 집단 식중독 증세…… 병원 치료’였다.
내용은 조금 전 신장호가 확인한 SNS의 글들을 인용하여 S푸드사의 김치 관련 즉석식품을 섭취한 이들이 하나같이 식중독 증상을 호소한다는 것이었다.
대상을 확실히 지칭하지 않았으나 누가 봐도 신 푸드를 저격하는 글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사실이 아니야.’
신장호는 그것이 꾸며진 글이며 기사임을 알았다.
하지만 대중들에게 그것은 상관없었다.
우선 불안감이 조성되면 눈을 돌리게 된다.
신 푸드가 명예회복을 위해 재판을 걸어 소송을 한다 해도 상대 쪽에서 미꾸라지처럼 빠져 나가며 대응하면 결과가 나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 시간 동안 대중들의 경계는 더더욱 심해진다.
결국 신 푸드 측이 소송에서 이긴다고 해도 이미 돌아선 대중의 마음을 다시 잡기는 어려워진다.
‘대체 어떤 개자식들이!’
쾅!
신장호가 책상을 거세게 내려쳤다.
‘수를 내야 하는데…….’
차마 강지한에게는 말을 못한 채 신장호의 가슴만 타들어갔다.
* * *
진상명의 하루는 뉴스로 시작해서 뉴스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의 취미는 인터넷 기사 검색이었다.
해서 오늘도 열심히 이런저런 기사들을 살펴보는 와중, 그의 관심을 끄는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승승장구하던 S푸드의 김치 신제품 먹고 집단 식중독 증세…… 병원 치료?”
기사를 빠르게 읽어 내려간 진상명이 턱을 쓰다듬었다.
“이거 신 푸드 얘기하는 것 같은데.”
진상명도 신 푸드의 김치 사총사가 그렇게 맛있다고 하기에 몇 번 사먹어 본 일이 있었다.
그리고 신 푸드의 즉석식품에서 강지한의 손맛을 느꼈다.
그는 강지한을 만난 이후부터 김치는 줄곧 지한 김치에서 주문해 먹는 중이었다.
때문에 그 맛을 혼동할리 없었다.
해서 알아본 결과 신 푸드가 강지한과 손을 잡고 김치 사총사를 출시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디 보자. 기자 양반 이름이…… 한명식.”
신사 진상명의 노트에 한명식의 이름이 적혔다.
기사가 아니라 소설을 썼다면 키보드를 두들긴 열 손가락이 다 부러질 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