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하는 식당-146화 (146/330)

# 146

Restaurant 145. 삭은 김치의 마법

지한 식당의 메뉴가 정해지자마자 강지한은 디자인 업체에 메뉴판 제작을 의뢰했다.

보통은 광고사에다 저렴하게 부탁하곤 하지만, 지한 식당의 메뉴판은 돈을 더 주더라도 고급스럽게 만들고 싶었다.

그러고는 정해진 메뉴와 반찬들을 조금 더 보기 좋게 담아내기 위한 연습을 해나갔다.

그것은 오로지 강지한의 몫이었다.

한지민은 주방에서 요리 연습을 하기 바빴다.

어떻게든 강지한에게 조금이라도 더 도움이 되고 싶은 그녀였다.

우선은 지한 식당의 한정식에 들어가는 메뉴들만이라도 빨리 손에 익게 하려고 쉼 없이 노력했다.

“음…….”

강지한은 한 상에 담아낸 메뉴들을 가만히 바라봤다.

“지민아.”

“네?”

한지민이 주방에서 고개를 쏙 내밀었다.

“어떤 것 같아?”

강지한이 테이블 위에 꾸며놓은 한 상을 가리키며 물었다.

한지민은 그것을 훑어보더니 해맑게 웃으며 대답했다.

“네! 별로예요!”

그러고는 다시 고개를 집어넣고 요리에 열중했다.

“……고맙다.”

한지민은 솔직해도 너무 솔직한 데가 있는 여인이었다.

‘이걸 어쩐다.’

그냥 반찬들을 늘어놓기만 하는 개성 없는 차림으로는 내놓기가 싫었다.

그래서 그릇의 디자인부터 음식을 담아내는 모양새와 그것들의 배치까지 계속 다르게 꾸며보고 있는데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런 건 어디서 배워야 하나.’

고민을 하던 강지한이 스마트폰을 뒤적였다.

그러자 어렵지 않게 답이 나왔다.

‘푸드스타일리스트?’

푸드스타일리스트 수업을 춘천의 강림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진행한다는 것.

푸드스타일리스트란 음식이나 각종 식기를 보기 좋게 배열하여 테이블 공간을 디자인하는 일이다.

지금의 강지한에게 꼭 필요한 수업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오늘이 접수 마지막 날이었고 정원이 차지 않아 지원이 가능했다. 게다가 대학교에서 많은 시민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주기 위해 시행하는 것인지라 교육비도 저렴했다.

강지한은 바로 인터넷 접수를 마쳤다.

수업 합격 결과는 다음 주 월요일 날 통보해 주며, 수업은 수요일부터 시작해 두 달 간 속성으로 진행된다고 한다.

‘이거 오픈 예정일을 늦춰야 하나?’

이미 한지민을 교육시키느라 예정된 오픈일을 한 주 미룬 상황.

이왕 미뤄둔 거 완벽을 기하기 위해서라도 조금 더 미루자는 쪽으로 생각이 기우는 강지한이었다.

무엇보다.

탁탁탁탁탁! 치이이익. 보글보글.

주방에서 열심히 연습을 하고 있는 한지민이 조금이라도 더 능숙해질 시간을 주고 싶기도 했다.

‘급한 게 아니니까.’

강지한은 조금만 돌아가기로 했다.

* * *

오후 여섯시.

집으로 돌아온 한지민의 얼굴에 절로 미소가 어렸다.

“좋다~!”

그녀가 바닥에 깔려 있는 이불에 몸을 뉘었다.

어제 세탁해서 볕에 말려 깔아놓은 이불은 포근하지 그지없었다.

요즘은 하루하루가 꿈만 같은 그녀였다.

자신이 존경하는 스승의 밑에서 실력을 쌓는 것도, 태어나 처음으로 독립을 한 것도,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된 것까지.

날마다 선물을 받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잠시 누워 있다 벌떡 일어난 한지민은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주방에 섰다.

원룸에 딸린 주방이라 협소하기 그지없는지라 요리를 하기엔 불편했다.

그래도 한지민은 열정을 가지고 오늘 배웠던 요리들을 다시 복기하며 만들어 나갔다.

그녀는 조금이라도 더 빨리 성장하고 싶었다.

* * *

지한김치 홈페이지의 김치 주문량은 나날이 늘어만 가는 추세였다.

입소문이라는 게 그토록 무서웠다.

특히 장기계약을 하자며 연락 오는 식당들이 많아졌다.

아울러 신 푸드의 김치 사총사가 대박을 치며 생산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할 정도였다.

이제는 김치 공장을 하나 더 늘려야 할 판.

그에 대한 회의를 나누기 위해 조미옥은 강지한에게 한 번 보자고 했다.

강지한은 지한 식당의 문을 닫고 나오자마자 횡성으로 향했다.

그가 김치 공장에 도착하니 사무실에 있던 조미옥과 진경혜가 그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강 사장! 오랜만이네!”

“사장님~ 얼굴 까먹겠어요. 호호.”

두 사람은 강지한의 손을 하나씩 잡고 마구 흔들었다.

“잘들 지내셨어요?”

“우리야 공장 잘 돌아가면 만사 오케이지.”

“근데 요새는 너무 잘 돌아가서 탈이에요. 눈 코 뜰 새가 없다니까요, 호호.”

“일단 앉아, 강 사장. 커피 한 잔? 아차차. 우리 강 사장은 커피 안 마시지. 녹차 어때?”

“네, 녹차 주세요.”

강지한이 의자에 앉자 조미옥이 녹차 한 잔과 믹스 커피 두 잔을 타서 내왔다.

“언니는 이런 거 나 시키라니까. 부담스럽게.”

진경혜의 투정을 무시하고서 조미옥이 강지한에게 물었다.

“그래서 생각해 봤어?”

“네. 연락 받고 바로 신 사장님께 전화 드렸어요. 이미 조 사장님이랑 얘기 끝난 것 같던데요?”

조미옥은 신 사장과 통화를 해서 다음 달부터 김치 공장 하나를 더 계약하는 쪽으로 말을 맞췄다.

하지만 아무리 그녀가 김치 사업을 도맡고 있다 해도 상사의 허락 없이 돈 나가는 일을 추진할 수는 없는 법.

해서 강지한의 허가가 필요했고, 겸사겸사 얼굴도 볼 겸, 앞으로의 이야기도 나눌 겸 횡성으로 초대한 것이다.

사실 조미옥 본인이 움직일 수 있으면 그리하려 했는데, 김치 공장에서 한시도 눈을 뗄 수 없기에 강지한이 직접 출장을 마다 않았다.

“그럼 허가 내려주는 거지, 강 사장?”

“무조건 그래야죠. 근데 참 운이 좋은 것 같아요. 한창 바빠질 때 다른 공장 하나가 계약이 끝난다니까요.”

“그러게나 말예요. 꼭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는 것 같아요. 호호호!”

세 사람은 술술 풀려나가는 상황에 웃음 지었다.

한데 사실 다른 쪽 김치 공장을 돌리던 업체가 계약을 연장하지 않게 된 것은 지한 김치 때문이었다.

안 그래도 겨우 적자를 면하며 굴러가던 와중이었는데 혜성처럼 나타난 지한 김치가 시장을 무섭게 장악해 나가니 한 달 전부터 적자가 나며 미래가 어두워졌다.

해서 연장 계약을 하지 않고 손을 떼기로 한 것.

누군가가 흥하면 누군가는 힘들어지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이 바닥 생리였다.

* * *

횡성에 강지한이 들른다고 하자 신장호와 신일중도 김치 공장으로 향했다.

그 바람에 좁은 사무실이 사람으로 가득차고 말았다.

“이렇게 모이는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네요.”

조미옥이 모두를 둘러보며 말했다.

“강 사장이 워낙 바빠야지 말입니다. 더군다나 요즘엔 우리 신 푸드의 신제품 레시피 연구도 겸하고 있는 데다 배틀 셰프도 준결승을 코앞에 둔 터라 더 정신이 없을 겁니다. 그렇죠?”

“먹고 자고 싸고 할 시간은 충분히 있어요.”

강지한의 농에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보다 일중 씨도 같이 준결승 무대에 나갔다면 좋았을 텐데. 아쉽게 됐어요.”

여태 사람을 사이에서 어색한 침묵을 지키던 신일중을 강지한이 챙겨줬다.

그러자 신일중이 배시시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거기까지 갈 수 있었던 것도 지한 씨 덕인데요. 흐흣.”

신일중의 웃음소리는 언제 들어도 특이했다.

“아, 그리고 강 사장님. 이번 신제품부터는 홍보 모델을 강 사장님으로 하려 하는데 어떠신지요?”

“제가 모델을요?”

“네, 사실 지금 요식업계에서는 우리 신 푸드보다 강 사장님의 존함이 더 네임벨류가 강력합니다. 게다가 직접 레시피에 참여하신 만큼 모델로 나서주시면 판매고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거라는 판단인데 어떠신지?”

신장호의 제안에 조미옥이 기뻐하며 박수를 쳤다.

“어머나, 어머나. 그보다 더 좋을 수 있겠어요? 강 사장! 해봐. 어차피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인데, 조금이라도 더 팔릴 수 있으면 해야지! 이제 방송 하도 타서 카메라 울렁증도 없을 거 아니야?”

강지한이 생각하기에도 매출에 도움이 된다면 나쁘지는 않을 것 같았다.

“모델이라는 게 즉석식품 포장지에 제 사진이 실린다는 거죠?”

“그건 기본이고 여기저기 뿌리는 홍보 전단에도 실리겠지요! 어떻습니까? 물론 모델료도 지급하겠습니다! 하하하!”

신장호가 호탕하게 웃었다.

강지한에게는 나쁠 것이 없는 조건.

“그럼 조만간 일정을 잡아보죠.”

그가 흔쾌히 이를 수락했다.

* * *

강지한이 집으로 돌아오고 나니 밤이 늦은 시간이었다.

“배고픈데.”

왕!

부엌을 어슬렁거리며 배를 쓰다듬는 강지한.

그런 그의 뒤를 설탕이가 그림자처럼 쫄래쫄래 따라다녔다.

“뭘 만들어 먹을까.”

강지한이 냉장고를 뒤졌다.

그런데 장을 봐놓지 않았더니 냉장고가 텅텅 비어 있었다.

그나마 남은 건 두부 반 모와 돼지고기 삼겹살 한 덩이, 그 외에 양파와 파, 고추 같은 야채 약간이 전부.

요즘 지한 식당 오픈이며 신 푸드 레시피 개발이며 다른 곳에만 신경을 쓰다 보니 집안 살림에는 소홀하고 말았다.

강지한이 김치 냉장고를 뒤적였다.

그런데 저 안쪽에 한동안 손을 전혀 타지 않았던 김치통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아차.”

강지한이 그것을 얼른 꺼냈다.

배추김치가 들어 있는 통이었는데 평소 먹는 것보다 더 푹 익혀 먹으려다가 깜빡하고 방치해 버린 것이었다.

뚜껑을 여니 김치 특유의 삭은 내가 코끝을 확 찔렀다.

“세다.”

이미 잘 익은 상태에서 몇 달 정도가 훌쩍 지나 버린 터라 김치는 상당히 곰삭아 있었다.

그대로 먹기에는 조금 신맛이 강해서 요리를 해 먹는 게 나았다.

‘근데 이거 괜찮으려나.’

지한 김치가 가장 맛있게 익는 시기는 5도에서 2~3주간 숙성시켰을 때였다.

거기서 조금 더 익으면 요리를 하기에 알맞았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삭은 김치로는 요리를 해본 적이 없었다.

아니, 그럴 일 자체가 없었다.

그 전에 이미 다 팔아 버리고 없었으니.

이건 묵은지라고 하기에도 애매했다.

‘한 번 해볼까.’

강지한은 이 김치로 찌개를 끓여보고자 마음먹었다.

마침 집에 남은 재료도 김치찌개에 꼭 알맞았으니 실험을 해보고 싶었다.

강지한이 뚝배기에 특제육수를 부어 양념장을 풀고 김치를 송송 썰어 넣었다. 거기에 삼겹살도 큼직하게 잘라 투하한 뒤 가스레인지 위에 올렸다.

보글보글.

김치찌개가 끓기 시작하자 두부와 파를 넣고 한소끔 더 끓인 뒤 천연조미료로 간을 하는 것으로 완성.

강지한의 요리의 등급을 살폈다.

[강지한의 대단한 김치찌개]

요리등급: LV5

-육수, 양념은 흠 잡을게 없다. 삭은 김치를 활용해 풍미가 깊다. 하지만 들어간 재료들의 신선도가 조금 아쉽고, 삭은 김치의 군내가 약간 남아 있는 것이 오점. 신맛을 약간만 더 잡아주는 것도 좋다.

‘이것 봐라.’

몇 가지의 흠이 있음에도 요리등급은 5레벨이었다.

강지한은 김치찌개의 맛을 봤다.

‘음.’

확실히 특유의 군내가 덜 잡힌 데가 신맛도 더 잡아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런데 중요한 건 맛있다는 사실.

강지한은 지금껏 지한 김치가 요리 재료로서 가장 맛있어지는 상태를 정해놓고 그 밖의 경우의 수는 생각하지 못했다.

요리 레벨도 꾸준히 오르는 데다 맛은 갈수록 좋아지는 상황이니 의심의 여지가 없었으며 김치에만 신경을 쓰고 있기는 힘들 만큼 바쁘기도 했다.

게다가 지금 사용한 김치는 신김치의 정도를 넘어선 삭은 김치가 아니던가.

강지한은 혹시나 하는 생각에 당장 밖으로 나가 김치찌개에 들어갈 재료들을 신선한 것으로 공수해 왔다.

그리고 뚝배기가 아닌 냄비에 특제 육수와 양념장을 풀고 삭은 김치와 삼겹살을 썰어 넣어 끓였다.

이번에는 저번과 달리 오랫동안 푹푹 끓여냈다.

김치와 고기가 흐물흐물해질 때까지 오래 삶은 뒤 그제야 두부와 다른 야채들을 넣었다.

거기서 한소끔 더 끓인 후에 설탕으로 신맛을 잡고 천연조미료로 간을 맞췄다.

“됐다.”

강지한이 완성된 김치찌개를 뚝배기에 담아 식탁에 올렸다.

그리고 떨리는 마음으로 김치찌개의 레벨을 확인했다.

순간, 그는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와아!”

[강지한의 최고의 김치찌개]

요리 등급: LV7

-육수, 양념, 들어간 재료들까지 무엇 하나 흠 잡을 게 없다. 삭은 김치와 삼겹살을 오래 끓여 풍미가 깊어졌고, 비계에서 퍼진 기름과 살짝 첨가한 설탕이 신맛을 적당히 잡았다. 그야말로 극찬을 받을 만한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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