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하는 식당-145화 (145/330)

# 145

Restaurant 144. 지한 식당의 메뉴

6월 21일, 목요일 오전.

한지민은 지한 식당의 주방에서 열심히 음식을 만들고 있었다.

그녀의 손에서 탄생되고 있는 건 김치찌개와 된장찌개.

두 가지 요리를 동시에 조리하는 중이었다.

손님들이 바쁘게 밀려드는 상황을 가정해서 시험을 보고 있는 것.

김치찌개와 된장찌개에는 강지한이 직접 만든 특제 육수와 비법양념, 비법된장이 들어간다. 그 외에 필요한 다른 재료들도 지한 분식에서 만들던 레시피 그대로다.

한지민은 그동안 배워왔던 것을 상기하며 한 번의 실수 없이 두 가지 요리를 완성시켰다.

강지한이 테이블로 서빙되어 나온 찌개들의 등급창을 살폈다.

둘 다 레벨5였다.

용성우가 레벨4에서 레벨5의 음식을 만들어 내는 데 걸린 시간이 한 달 이상임을 생각하면 어마어마한 성장이었다.

물론 강지한이 만든 육수와 양념장, 그리고 레시피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일주일 만에 이렇게 발전할 수 있다는 건 대단한 요리 감각이 있다는 것이었다.

강지한은 찌개들을 먹어보지도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합격. 이 정도면 부주방장 자격이 충분해.”

그동안 요리를 가르쳐 주며 두 사람 사이의 관계가 많이 편해졌다.

강지한도 자연스레 한지민에게 말을 놓게 됐다.

기대했던 합격 판정에 한지민이 눈을 초롱초롱 빛냈다.

“정말요?”

“응. 훌륭해.”

“근데 안 먹어보셨잖아요.”

“안 먹어봐도 알아. 홀에 내놓아도 되는 수준이야.”

“와, 정말 멋져요! 선생님.”

강지한에 대한 한지민의 신뢰도는 현재 100이었다.

이는 그를 절대적으로 믿는다는 것.

강지한이 팥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믿을 터였다.

“다른 메뉴들도 한 번 해볼까?”

“네!”

한지민이 신나서 크게 대답했다.

* * *

결과적으로 한 지민은 강지한이 가르쳐 준 모든 메뉴 중 70퍼센트 이상을 레벨5 수준으로 만들 수 있었다.

이 정도면 함께 손을 맞추는 데 전혀 무리가 없을 정도였다.

이제 남은 건 지한 식당의 메뉴를 정하는 것이었다.

두 사람은 홀의 테이블에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눴다.

“우선 김치찌개와 된장찌개, 비빔밥, 제육덮밥은 필수인 거 같아요. 어느 한식집에 가도 그 메뉴는 있지 않아요?”

“응, 그렇지.”

“그리고 추가적으로 청국장 순두부찌개 볶음밥 등등 넣으면 되지 않을까요?”

“흠…….”

나쁘지는 않은데 특징이 없는 메뉴였다.

어느 한식당을 가도 다 볼 수 있는, 한마디로 천편일률적인 데다가 심심한 메뉴들인 것.

게다가 그렇게 해버리면 지한 분식집과 큰 차별점이 없었다.

한식당의 메뉴를 가져가면서도 조금 더 특별하게 끌어 나갈 수 없을까?

강지한의 화두였다.

반면 한지민은 더 쉽게 생각하고 있었다.

“음식은 일단 맛이 중요하잖아요. 선생님 손맛이면 메뉴가 같아도 입소문 퍼져서 금방 사람들로 북적일 거예요. 무엇보다 만두! 저 진짜 그렇게 맛있는 만두는 처음 먹어봤어요. 사실 만두 하나만 팔아도 충분히 대박 날 것 같다고 생각해요.”

강지한은 레벨7의 만두를 한지민에게 만들어 줬었다.

이를 먹어본 한지민은 소스라치게 놀라 물개처럼 박수 세례를 퍼부었었다.

사실 지금 강지한의 실력이면 무엇을 팔아도 망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일반 한식당과는 약간의 차별성을 두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그러한 욕심의 시작은 한돈선의 한정식 식당을 다녀온 후 부터였다.

아띠에서 맛본 요리들은 하나같이 감동이며 충격을 안겨주었다.

강지한도 그런 음식을 만들고 싶어서 열심히 노력하고 있었다.

그러나 만두 외에 다른 음식들은 아직 레벨7의 경지에 올라서지 못했다.

만두가 만두피의 중요성을 깨우치자마자 레벨7로 업그레이드된 것처럼, 다른 음식들도 사소한 한끗 차이가 어마어마한 변화를 불러올 터였다.

한데 그게 무언지 알아내는 게 쉽지 않았다.

‘그건 지금 생각할 문제는 아니고.’

강지한은 다시 메뉴에 대해 고민했다.

쉽게 답이 나오지 않자 본인이 손님의 입장이 되어 생각을 이어 나갔다.

가장 좋은 건 가격 대비 맛있고 양이 많은 것이다.

거기다 다양한 종류를 맛볼 수 있으면 그보다 좋은 게 없다.

욕심 같아서는 아띠의 한정식처럼 내놓고 싶은데 우선은 실력이 따라주지 않고, 가격 역시 어마어마하게 높아진다.

강지한은 아직까지는 문턱이 높지 않아 모두가 쉽게 발걸음할 수 있는 그런 식당을 운영해 나가고 싶었다.

‘한 가지 메뉴를 시켜서 다양하게 먹을 수 있는 건 한정식만 한 게 또 없는데.’

물론 한식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봤을 때의 얘기다.

하지만 한정식을 제대로 내어놓으려면 인당 1만 5천 원은 받아야 했다.

가격은 무조건 1만 원 밑으로 받고 싶었다.

강지한이 그런 자신의 생각에 대해 한지민에게 말해주었다.

그러자 한지민이 곰곰이 생각하다가 손뼉을 짝! 쳤다.

“아! 그건 어때요? 미니 한정식.”

“미니 한정식?”

“네, 몇 달 전에 역삼역 근처에서 미니 한정식 판다는 식당에 들른 적이 있었는데 나름 괜찮았어요.”

“어떻게 나왔는데?”

“기본적으로 모든 메뉴가 그날그날 달라지는 것 같더라고요. 제가 갔을 때는 쌀밥에 우거지된장국이랑 계란프라이, 김치볶음, 두부조림, 무쌈, 도토리묵, 어묵볶음이랑…… 나물 종류 몇 개 나왔고 제육볶음도 있었어요. 아! 잡채도 먹었다.”

뭔가 했더니 그냥 저가 한정식을 말하는 것이었다.

한데 그게 나쁘지 않은 아이디어였다.

강지한은 지금 너무 아띠에만 포커스가 맞춰져서 이걸 미처 생각 못했다.

“가격은?”

“7천 원이요.”

강지한이 예상한 그대로의 가격이었다.

“맛은 괜찮고?”

“가격 대비 괜찮다는 느낌이었어요. 그냥 5천 원 하는 백반집이나 분식집보다는 비싼데 요즘 어지간하면 한 끼에 그 정도는 쓰잖아요. 맛만 있으면 됐죠.”

“그렇지.”

이제야 조금 돌파구가 생기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강지한의 욕심을 전부 담기에는 미니 한정식이 딱이었다.

“그럼 어떤 것들을 넣는 게 좋을까?”

강지한의 물음에 한지민이 바로 대답했다.

“만두! 만두 한 알은 후식 개념으로 꼭 넣었으면 해요.”

“아주 좋은 생각이야.”

만두는 강지한이 만들 수 있는 유일한 7레벨 음식이다.

그것 한 알을 음식에 곁들여 주면 손님들의 입을 크게 만족시킬 수 있을 터였다.

“그리고 만두 자체도 사이드 메뉴로 추가해서 넣자.”

“와! 좋네요. 서비스로 나온 만두 먹어본 손님들은 분명히 한 접시 추가할걸요?”

“응, 그럴 거야.”

강지한의 자신 있는 말에 한지민이 헤헤 웃었다.

그녀의 눈에는 강지한이 뭘 해도 멋지게만 비추어졌다.

하지만 너무나 큰 경외감으로 인해 이성적으로는 느껴지지 않았다.

우상을 사랑하기보다는 존경하는 것처럼.

강지한도 그런 한지민의 마음을 알고 있었기에 더 편하게 대할 수가 있었다.

“그럼 미니 한정식에 들어갈 만한 메뉴들을 한 번 적어보자.”

“네.”

강지한과 한지민은 메모지에다 생각나는 메뉴와 반찬들을 적어나갔다.

그러고는 중복되는 느낌이 들거나 효율성이 떨어지는 것, 강지한이 아직 자신 있게 내놓을 수 없는 것들을 제외시켰다.

그러자 최종적으로 나온 메뉴들은 계란말이, 생선 한 토막, 김치, 무쌈말이, 두부조림, 버섯볶음, 콩나물무침, 무채, 시금치무침, 고사리볶음, 잡채, 계란프라이, 만두였다.

강지한은 여기서 1,000원을 추가할 경우 계란말이를 참치계란말이로 바꾸면서 양도 조금 더 주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이번 배틀 셰프 경합에서도 증명했지만 참치계란말이의 맛은 정말로 대박이었다.

때문에 자신의 식당을 찾는 손님들에게도 그 맛을 전해주고 싶었다.

미리 만들어 놓고 식힌 다음 나가는 계란말이와 변경 즉시 바로 조리해서 나가는 참치계란말이는 맛의 레벨이 다를 터였다.

“이제 남은 건 메인을 무엇으로 하느냔데…….”

한정식인 만큼 국과 메인 반찬을 하나 택해야 했다.

“선생님은 뭐가 가장 자신 있으세요?”

“응? 그냥 뭐든 다 비슷한 수준으로 만들 수 있지.”

“그럼 다 해요!”

“다 하다니? 어떻게?”

“그러니까 방금 말한 반찬에다가 메인만 선택해서 나갈 수 있게 하는 거예요. 일단 고기반찬은 제육볶음이랑 불고기가 가장 대중적이고 많이 찾는 거잖아요.”

“그렇지.”

“그럼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게 해요. 그리고 찌개 같은 것도 김치찌개, 된장찌개, 비지찌개, 청국장 등등 많을 거 아녜요. 그중에 하나를 또 선택하게 하는 거죠.”

“아……. 정리해 보면 메인메뉴와 먹고 싶은 국물을 선택하게 만든다는 거지?”

“네. 반찬 가짓수가 많으니까 메인으로 나가는 고기반찬이랑 국물도 그렇게 많이 줄 필요는 없을 거 같아요. 우리가 손해 보지 않을 만큼 적당히 주면 되지 않을까요?”

“그렇지. 저렴하게 한정식을 파는 식당들 가보면 다들 그러니까.”

한데 아직도 뭔가 좀 부족한 것 같은 강지한이었다.

그가 상에 올려놓기로 한 반찬 목록을 죽 곱씹어봤다.

그러자 불현듯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지민아, 여기 보면 버섯볶음이랑 콩나물무침, 시금치무침, 고사리볶음, 무채, 계란프라이. 이렇게 있잖아.”

“네.”

“이 재료들 보면 뭔가 떠오르지 않아?”

“아……! 비빔밥!”

“그래. 이 재료들에 고추장 넣고 참기름 둘러서 비비면 그대로 비빔밥이야.”

“정말 그러네요.”

“이렇게 하자. 밥은 양푼에다가 주고, 각각 테이블마다 참기름이랑 들기름을 놓아두는 거야. 기호에 맞는 것으로 비벼먹을 수 있게.”

강지한이 아이디어를 내가 한지민이 거들었다.

“고추장도 미리 놓아두는 건 어떨까요? 알아서 양 조절해서 넣을 수 있게요. 그리고 된장도 있었으면 좋겠어요. 된장에다 비벼먹어도 맛있을 것 같은데요?”

“그래. 좋은 생각이다.”

하나가 터지자 그럴듯한 아이디어들이 줄줄 흘러나왔다.

한정식이라고 해서 단일 메뉴로만 즐기는 게 아니라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경우의 수가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음식을 즐기다가 나중엔 비빔밥으로도 만들어 먹을 수 있다는 것이 참 매력적이었다.

“이렇게 가자. 더 생각할 필요도 없겠다.”

“좋아요!”

“고마워, 지민아. 아주 많은 도움이 됐어.”

강지한의 말에 한지민은 잔뜩 감동해서 활짝 미소 지었다.

이로써 지한 식당의 메뉴가 준비되었다.

* * *

삼영 식품의 마케팅 전략부는 골머리를 썩는 중이었다.

신 푸드의 신제품 김치 4총사는 날이 갈수록 무서운 판매고를 기록하는데, 그에 반해 자신들의 김치 관련 제품은 계속해서 매출이 하락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공치산 부장은 최후의 수단을 사용하기로 했다.

그가 업무를 마친 후, 서재용 과장을 따로 불러 술집으로 향했다.

둘은 술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회사 돌아가는 얘기를 나눴다.

그러다 취기가 조금 오르려 할 때, 공치산이 은밀한 목소리로 서재용에게 물었다.

“서 과장, 아니, 재용아.”

“네, 공 부장님.”

“아이, 새끼. 밖에서 내가 재용아 하면 어쩌라 그랬어?”

“네, 형님!”

“그래. 지금 여기서는 우리 형 동생이야. 알았어?”

“네!”

“재용아. 난 그렇게 생각한다. 우리 앞에 어떤 위기가 닥친들, 서로 손을 잡아서 힘을 합치면 못 헤쳐 나갈 게 없다고. 너도 그러냐?”

“당연하죠. 형님이랑 제가 손잡으면 뭐가 무섭겠습니까?”

공치산이 서재용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바로 그거야. 그래서 말인데,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뭔가 보여줘야 할 때 아니겠냐.”

“뭘…… 신 푸드 건 말씀이세요?”

공치산의 목소리가 더 은밀해졌다.

“너 친하게 지내는 기자 중에 대학 선배 한 명 있잖아. 돈 주면 부르는 대로 기사 써주는.”

“명식이요?”

“그래 걔. 부탁해서 그럴듯한 소설 하나 뽑아봐.”

“그게…… 쉽지 않을 거예요. 그렇게 기사 썼다 괜히 명예훼손으로 소송이라도 들어가면…….”

“재용아, 실루엣만 보여줘야지.”

“……아, 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확실히 드러내지 마. 실루엣만 보여주는 거야. 그런데 말이야. 코끼리의 실루엣을 보여주면 누구라도 그게 코끼리인지 다 알겠지?”

“그렇죠.”

“뭐, 그것 가지고도 트집 잡아서 명예회복 하겠다고 고소 들어올 수도 있어. 그런데 그러는 동안 이미 신 푸드에서는 민심이 떠난단 말이야. 너, 89년도 11월 달에 라면 업계에 있었던 우지 파동 사건 알지?”

“압니다.”

“그걸 재현하자고. 잘할 수 있지?”

“네 형님! 최선을 다할게요.”

공치산이 비릿한 미소를 머금고서 서재용의 잔에 술을 채워주었다.

“이번 일 잘되면 다 네 덕이라고 보고 올릴 거야.”

“실망 없게 할게요.”

“그래. 마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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