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4
Restaurant 143. 이걸 어떻게 잡냐
월요일.
강지한은 오늘부터 지한 분식에 나가지 않았다.
그의 걸음은 오픈을 일주일 앞둔 지한 식당으로 향했다.
잠긴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가장 먼저 메시지가 그를 반겼다.
[Stage 3. 지한 식당]
[목표: 분점을 한 개 이상 내십시오.]
[성공 보상: 잃어버린 강지한의 기억 한 조각]
[오픈 전입니다.]
[레벨 업은 오픈 이후 가능합니다.]
[상급자의 난이도가 적용됩니다.]
[만족도는 10일 동안만 습득 가능합니다.]
강지한의 시선이 성공 보상에 가만히 멈춰 있었다.
대체 저 잃어버린 기억 한 조각이 무언지 궁금했다.
보상의 실마리라도 찾으려고 집에 있는 앨범을 다 뒤적여 보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건질 수가 없었다.
강지한의 어릴 적 앨범 자체가 소실되었기 때문이다.
그가 중학교 3학년이 되었을 무렵, 세 가족은 비닐하우스 촌에 살았던 적이 있다.
모든 주택들이 비닐하우스의 형식으로 지어진 곳이었는데, 대부분 벌이가 좋지 않은 환경의 가정들이 그곳에서 안주하고 있었다.
한데 어느 날 어마어마한 비가 쏟아졌고 홍수가 터졌다.
한껏 불어난 물은 비닐하우스 안을 가득 채웠고 온 동네 사람들이 집에 들어온 물을 퍼내느라 난리도 아니었다.
모든 전기를 내려놓고 양동이와 바가지를 든 채 계속해서 물을 퍼냈지만 비가 그치기 전까지는 계속 물이 더 차오를 뿐이었다.
그때 장롱 아랫 서랍에 넣어두었던 앨범들이 전부 물을 먹어버려 버리고 말았다.
그 바람에 중3 이전까지의 앨범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사진에서 찾을 수 있는 추억은 고1 때부터였다.
결국 강지한은 기억에 의존하기로 했다.
자신이 떠올릴 수 있는 가장 오래된 기억부터 하나하나 떠올려 나갔다.
그러다보니 까맣게 잊고 있었던 사소한 일들 몇 가지가 곁가지로 떠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 일상적인 것들뿐이었다.
퀘스트의 보상이 될 만큼 대단한 기억은 없었다.
그 이후로도 강지한은 시간이 날 때마다 기억을 되짚었지만 결과는 늘 지지부진했다.
“퀘스트를 깨는 것이 빠르겠다.”
강지한은 고개를 휘휘 젓고 주방으로 들어섰다.
그러자 허공에 떠 있던 메시지가 사라졌다.
“웃차.”
그가 양손 가득 들고 온 식재료들을 조리대 위에 얹었다.
당장 사용할 것들은 놓아두고 나머지는 냉장고에 차곡차곡 정리했다.
그때 식당 문이 열리며 한지민이 들어섰다.
“선생님~ 저 왔어요.”
“일찍 오셨네요.”
아직 아홉시 반밖에 안 된 시간이었다.
그녀가 여의도에서 춘천까지 오려면 적어도 여섯시에는 일어나서 부지런히 준비를 했다는 얘기였다.
강지한은 한지민의 그런 부지런함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아침 먹었어요?”
“아니요. 오늘 새집으로 이사 간다는 생각에 설레서 식욕도 없더라고요. 호호.”
그렇게 말하는 한지민은 커다란 트렁크 가방 하나를 질질 끌고 있었다.
“가방 안 무거워요?”
“옷이랑 생필품 밖에 안 들었어요. 나머지 짐은 저녁 즘에 용달차가 날라줄 거예요.”
“그렇구나.”
오늘은 한지민이 드디어 춘천에 입성하는 날이었다.
그녀는 벌써부터 잔뜩 상기 된 얼굴로 춘천에서의 하루하루를 기대하는 것 같았다.
“그럼 일단 우리 밥부터 먹을까요?”
“좋아요!”
* * *
강지한과 한지민에게 식사라는 건 단순히 허기를 채우는 목적만 있는 건 아니었다.
두 사람이 함께 식당을 이끌어가야 하는 만큼 어떤 메뉴를 어떻게 내놓으면 좋을지에 대한 연구와 공부도 절로 겸하게 됐다.
아침 메뉴로 강지한이 만든 건 돼지고추장 찌개였다.
김치찌개와는 달리 고추장을 베이스로 국물 맛을 내서 돼지고기, 애호박, 청양고추, 양파, 파가 들어가 장맛이 강렬하고 얼큰한 찌개였다.
“와, 진짜 대박 맛있어요.”
한지민은 돼지고추장찌개를 먹는 족족 감탄을 뱉었다.
“비결이 뭐예요?”
“만드는 거 다 봤잖아요.”
“본다고 다 똑같이 만들어지나요. 손맛이 다른데.”
“방금 본인 입으로 정답 말했네요.”
“네? 뭐가요?”
“맛의 비결. 손맛이라고.”
“아…….”
결국 강지한의 맛을 흉내내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열심히 노력하는 수밖에 없었다.
“선생님의 명성에 누가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게요.”
한지민이 돼지고추장찌개를 먹다 말고 결의를 다졌다.
“명성이랄 것까지는 없어요. 그리고 지민 씨는 결국 잘 해낼 거예요.”
눈에 훤히 보이는 그녀의 상태창은 한지민의 미래를 믿게 만들었다.
‘그나저나 리나는 잘하고 있으려나?’
문득 리나가 걱정되는 강지한이었다.
* * *
“중만 아저씨, 참치 김밥 하나랑 비빔밥 부탁드립니다!. 리나는 제육볶음 스타트!”
지한 분식의 주방장 용성우가 들어온 주문을 확인하자마자 이리나와 고중만에게 업무를 분담시켰다.
“오케이!”
“네, 주방장님!”
시원하게 대답한 두 사람이 자신에게 주어진 요리들을 만들어 나갔다.
그 사이 용성우는 라면 두 개를 동시에 끓였다.
사실 분식집의 모든 메뉴 중에서 가장 손에 늦게 익는 것이 바로 라면이었다.
다른 요리들이야 강지한이 워낙 레시피를 잘 만들어 놔서 들어가는 재료의 양과 넣는 순서, 조리 시간만 정확히 지키면 못해도 레벨4 이상의 음식은 만들 수 있었다.
그러나 라면이라는 건 최적으로 익는 면의 상태를 잡아내기가 영 힘들었다.
해서 라면은 용성우가 직접 만들어 내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건 주방 막내인 이리나가 제육볶음을 만들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짬대로 따지면 고중만이 제육을 볶고 이리나가 김밥을 말고 비빔밥을 말아야 했다.
그 두 가지 메뉴는 있는 재료들을 넣기만 하면 되는 만큼 실패할 위험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한데 두 사람의 역할 바뀌어 있었다.
용성우도 그것이 신경 쓰이는지 가끔씩 고중만을 흘깃거리며 안색을 살폈다.
눈치 빠른 고중만이 그런 용성우의 시선을 못 느낄 리 없었다.
“용 선배!”
“네!”
“왜 자꾸 날 관찰해? 신경 끄라니까.”
“알겠습니다!”
“거 참.”
지난 토요일.
고중만은 지한 푸드 단톡방에서 스스로 주방 막내 자리를 고수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본인에 대해서 냉정하게 관조했고 아직 막내 자리를 벗어날 만큼 실력이 쌓인 것 같지가 않았다.
무엇보다 시험 삼아 만들었던 리나의 요리가 본인의 요리보다 훨씬 괜찮았다.
해서 리나를 자신의 위로 올려 버린 것이다.
사람에게는 각자 당장 맡는 위치가 있는데, 그것을 무시하면 탈이 나버린다는 게 그의 말이었다.
워낙 강경한 태도로 입장을 고수하니 강지한도 그를 말릴 수 없었다.
게다가 강지한이 봤을 때도 고중만보다는 이리나의 실력이 더 좋았다.
그 바람에 주방에서 지금 이런 상황이 펼쳐진 것이다.
하지만 고중만은 전혀 불만이 없어 보였다.
오히려 계속해서 발전해 나가는 지한 푸드로 인해 기분이 좋았다.
강지한이 받아주지 않았으면 여태 길거리에서 분식만 팔고 있었을지 모르는 일이다.
한데 강지한은 그에게 일자리를 주었고 몸담은 직장은 승승장구하고 있으니 앞날이 걱정되지 않았다.
그저 모든 것이 감사할 따름이었다.
* * *
서울의 어느 마트.
즉석식품 코너에서 남자 손님 한 명이 어슬렁거리며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그러다 도통 원하는 게 보이지 않는지 사장님을 불렀다.
“사장님! 여기 신 푸드 신제품 없어요?”
“김치 사총사요?”
“네. 김치 볶음밥이랑 김치찌개만 사려고 하는데.”
“들여온 게 오늘 아침에 다 나갔어요. 부랴부랴 발주를 넣긴 했는데 내일이나 되어야 들어와요.”
“많이 좀 들여놓으세요.”
“아이고 거기 매대 하나 전체를 신 푸드 제품으로 채워놨었는데 나간 거예요.”
사장님의 손짓에 남자가 시선을 돌리니 텅 비어 있는 매대가 보였다.
“아니, 업체 측에서 신 푸드 대박이라고 워낙 추천을 해서 큰 맘 먹고 많이 들여놨는데도 싹 나가 버렸어.”
“와……. 여기가 세 군데짼데 진짜 먹기 힘드네요.”
“내일 오전 중에 와봐요. 손님 같은 분 여럿 있었어요. 내일도 늦으면 먹기 힘들지 몰라요. 아니면 그냥 인터넷으로 구매를 하시던가.”
“그러려고 했는데 파는 곳이 없어요. 물량이 딸리나 봐요.”
“그래요? 거 제품 들어오면 나도 좀 먹어봐야겠네.”
“알겠어요. 많이 파세요.”
“들어가세요~”
딸랑.
남자 손님이 마트를 나섰다.
한편 그 모습을 조금 떨어진 곳에서 지켜보던 정장의 사내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공치산.
올해 서른다섯 살의 사내로 삼영 식품 마케팅 전략부에서 부장으로 일하고 있었다.
‘아, 이거 소문대로 센데.’
공치산이 무테안경을 치켜 올리며 미간을 구겼다.
그는 신 푸드에서 발매한 김치 사총사가 핵폭탄급의 화제성으로 출시부터 어마어마한 매출을 올리고 있는 현상을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냥 서류로만 그 실적을 파악하다가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하고서는 요즘엔 이렇게 마트를 직접 찾아다니고 있었다.
매진되어 텅텅 비어 버린 신 푸드의 매대와 달리 그 옆 매대는 여러 즉석식품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그 식품들 중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하는 건 바로 삼영 식품이었다.
‘이건 좀 너무한데.’
고작 일주일이다.
발매한 지 일주일밖에 되지 않았는데 사람들은 김치 관련 동일 제품에 한해서는 신 푸드 것만 찾는다.
다른 제품들의 판매고가 조금씩 깎여 나가고 있었다.
‘뭔가 방법을 내야겠어.’
공치산이 같은 부서 부하 직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서 과장. 신 푸드 신제품 공수됐어? 발품 뛰는 데도 영 잡히지가 않네. 아, 그래? 알았어. 당장 들어갈게.”
서재용 과장과 통화를 끝낸 공치산이 후다닥 마트를 나섰다.
마트 사장은 그런 공치산 부장의 뒷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저분도 어지간히 먹어보고 싶은가 보네. 부하 직원 시켜서까지 공수하라는 거 보면. 에휴, 직책이 깡패지. 이래서 내가 사장 하는 거 아니야.”
완전히 상황을 오해하고 있는 마트 사장이었다.
* * *
삼영 식품 마케팅 전략부 직원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12명의 직원들을 서재용이 공수해 온 신 푸드 신제품을 나눠 먹으며 그 맛을 평가하는 중이었다.
아니, 평가하는 중이어야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평가는 뒷전이고 시식을 하며 주린 배를 채우고 있었다.
그들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던 즉석식품의 신세계에 반쯤 넋이 나가 버렸다.
거기서 정신줄을 더 놓아버리면 저도 모르게 맛있다는 말이 튀어나올 것 같아서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그런데.
“아, 더럽게 맛있네.”
부서의 최고참 공치산의 입에서 맛있다는 말이 불쑥 튀어나왔다.
“그쵸, 공 과장님. 진짜 맛있는데요, 이거.”
서재용이 바로 공치산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다들 어때?”
공치산이 직원들을 둘러보며 물었다.
직원들은 서로 눈치를 살피다가 하나둘 고개를 끄덕이며 맛있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맛있지? 딱 까놓고 말해서 우리 회사 동일 제품들 보다 훨씬 맛있어. 아니, 이런 맛을 어떻게 낸 거야?”
말을 하다 보니 성질이 났다.
애초에 식품 개발부에서 더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냈으면 이렇게 밀리는 일이 없을 것 아닌가?
시중에 내놓은 건 신 푸드보다 질이 떨어지는데 홍보 마케팅 전략으로 누르라니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맛을 보니까 더 답이 안 나왔다.
“이걸 어떻게 잡냐.”
그저 푸념만 나오는 공치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