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하는 식당-143화 (143/330)

# 143

Restaurant 142. 네 덕분이야

탈락.

그 단어가 이토록 가까이 와닿긴 처음이었다.

강지한의 입이 저도 모르게 열렸다.

“38인분을 판매했다고요?”

그 물음에 한돈선은 묘한 웃음을 머금었다.

“많이 놀란 모양이네요, 강지한 씨.”

“아……. 죄송합니다.”

평소 경거망동하지 않는 그였다.

그래서 심사위원의 말을 끊어가며 끼어드는 모습이 의외였다.

강지한의 입이 다시 꾹 다물어졌다.

한편, 동화팀은 입꼬리가 말려 올라가는 걸 꾹 참으면서 서로의 눈치만 살폈다.

방금 전 강지한의 반응으로 보아 그 팀은 자신들 보다 적게 판 것이 분명했기 때문.

다들 환호성을 내지를 타이밍만 재고 있었다.

한돈선은 손에 들린 카드를 흘긋 본 뒤 입술을 달싹였다.

“그럼 지한팀의 성적에 따라 탈락팀이 결정되겠네요. 바로 발표하도록 할게요. 지한팀은 총…….”

한돈선이 잠시 뜸을 들이며 좌중을 훑었다.

지한팀은 긴장했고, 동화팀은 기대하는 시선을 던졌다.

두근. 두근. 두근.

여섯 지원자의 심장이 서로 다른 의미로 격하게 뛰다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한돈선의 입에서 결과가 나왔다.

“39인분을 판매했습니다.”

“…….”

“……!”

한순간에 희비가 엇갈렸다.

지한팀의 팀원들은 스스로의 귀를 의심하며 서로를 바라보기 바빴다.

동화팀은 환호성을 지르려다 뒤통수를 얻어맞고 바닥에 널브러진 기분이었다.

“39인분을 팔았다고요? 우리가요?”

강지영이 눈을 빠르게 깜빡이며 질문했다.

“그래요. 왜 그러시죠? 본인들이 계산한 것과 결과가 다른가요?”

“아니 저 그게…… 37인분을 팔았던 거 같은데.”

강지영이 우물거렸다.

한돈선은 부드럽게 고개를 저었다.

“정확하게 39인분을 팔았습니다. 막판에 손님들이 한꺼번에 몰려 셈을 잘못한 모양이네요.”

“정확한 겁니까?!”

판정에 쉽게 굴복할 수 없었던 염동화가 목청을 높였다.

그에 최현식이 날카로운 시선을 쏘아붙였다.

“정확합니다. 제작진들은 세 시간 동안 여러분들의 푸드 트럭을 모니터링하며 손님들에게 총 몇 접시를 팔았는지 정확하게 기입했습니다.”

“…….”

최현식의 단호한 말에 염동화는 더 따지고 들 수가 없었다.

그가 얼마나 정확한 사람인지는 염동화 본인도 잘 알고 있었으니까.

“다들 집중해 주세요.”

한돈선은 어수선해진 장내의 분위기를 정돈해 나갔다.

“경합 결과 동화팀의 염동화, 조중훈, 정재영 씨가 최종 탈락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아쉽지만 여러분의 여정은 여기까지예요. 앞치마를 벗고 배틀 셰프 키친을 떠나 주세요.”

생각지도 못했던 탈락의 고배를 마신 세 사람은 한 동안 얼떨떨해 있다가 결국 눈물을 흘리며 앞치마를 벗었다.

마지막 소감 한마디씩을 남긴 그들이 배틀 셰프 키친을 나서자 한돈선이 지체 없이 종합 결과를 발표했다.

“이로써 배틀 셰프 본선 6라운드 페일 배틀의 합격자는 박일구, 김주민, 정대만, 강지한, 도근한, 강지영 씨가 되었습니다.”

“꺄아악! 미쳤어, 미쳤어!”

“나이스!”

“하하.”

한돈선의 확정 멘트에 강지영, 도근한, 강지한이 동시에 기쁨을 표출했다.

그들의 흥분이 가라앉고 나서 한돈선은 하던 말을 마무리 지었다.

“여기 계신 여섯 분은 험난한 역경을 꿋꿋이 이겨내고 살아남은 결과 드디어 준결승전에 도전할 자격이 주어졌어요.”

준결승.

이제 시합은 단 두 번만이 남게 되었다는 말이다.

결승이 코앞에 다가왔음을 체감하자 강지한을 비롯한 다른 지원자들이 말로 다 표현 못할 흥분에 몸을 떨었다.

하지만 단 한 명, 박일구만큼은 지금의 승리를 만끽할 수가 없었다.

‘이런 젠장! 왜 지한팀이 살아남은 거야?’

그의 계획은 지한팀을 떨어뜨리는 것이었다.

그렇게만 된다면 다른 사람들은 누가 남아 있든지 상관없었다.

어차피 다 거기서 거기인 실력.

결승의 판도는 그날그날의 컨디션과 운이 좌지우지할 터였다.

한데 떨어뜨리려 했던 최강의 팀이 살아남아 버렸으니 답이 나오질 않는 상황.

준결승전에서는 또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나 궁리하던 그가 한돈선에게 물었다.

“한 대가님. 이번 라운드는 팀 대결이니 우승한 팀 전원에게 탈락면제권이 주어지는 건가요?”

탈락면제권만 있으면 무조건 결승까지는 진출할 수 있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 보면 그 질문은 참으로 멍청하기 그지없는 질문이었다.

“이번 라운드에는 탈락 면제권이 없습니다. 준결승전에서는 여섯 명이 경합을 해 세 명이 살아남습니다. 한데 우승 팀에게 탈락면제권을 줘버리면 이미 결과를 알고 보는 경합이 되겠죠?”

“…….”

괜히 물었다가 본전도 못 찾아먹은 박일구의 얼굴이 붉어졌다.

“모든 분들 고생 많으셨습니다. 오늘은 모쪼록 돌아가셔서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시고 우리와는 2주 뒤에 다시 뵙도록 하지요.”

준결승전에 들어가기에 앞서 제작진은 2주라는 휴식 기간을 주었다.

어차피 지금 세이브 해놓은 분량도 넉넉한 터라 2주를 쉬어도 방영 스케줄에 무리가 가지 않았다.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어요.”

“다다음주에 뵐게요, 다들!”

배틀 셰프 6라운드는 5명의 환희와 1명의 찜찜함을 남긴 채 마무리 되었다.

* * *

역으로 향하는 길.

강지한은 지금 이 모든 사실이 꿈만 같았다.

‘준결승이라니.’

스스로의 역량이나 알아보고자 가볍게 도전했던 배틀 셰프였다.

그런데 정신을 차려보니 준결승 무대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시청자들에게 과분한 사랑까지 받게 되었다.

배틀 셰프로 인해 지한 분식이 더욱 많이 알려졌고 매출은 전과 비교도 안 될 만큼 크게 뛰었다.

더불어 한돈선이라는 대가와의 인연도 만들어 주었다.

그의 요리를 먹어보지 않았다면 강지한은 아직도 레벨 7의 음식을 만들 수 없었을 것이다.

꼬르륵.

역 근처에 다다르자 오늘도 어김없이 배꼽시계가 울렸다.

그는 고민하지 않고 지민 분식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여전히 지민 분식은 몰려드는 손님들로 정신없는 광경이었다.

“어머! 강 선생님~ 어서 오세요!”

한지민은 홀에서 알바들 두 명과 열심히 서빙을 하다 강지한을 반겼다.

“지민 씨, 이사 준비는 잘되어 가요?”

“그럼요. 부모님 도와드리는 것도 오늘로 끝이에요. 저 대신 할 알바도 구해놨으니까 걱정 없어요. 일단 앉으세요. 뭐 드시겠어요?”

강지한이 자리에 앉자마자 한지민이 물었다.

“가장 빨리 되는 걸로 아무거나 주세요. 배가 너무 고파서 죽겠어요.”

“그럼 사장님한테는 제가 직접 만든 음식으로 대접해 드릴게요!”

생긋 눈웃음을 흘린 한지민이 후다닥 주방으로 들어갔다.

강지한은 뭐든 좋으니 얼른 음식이 나오길 바랐다.

그런데 옆 테이블에서 갑자기 소란이 일었다.

“아, 왜 그러는데 진짜.”

“내가 뭘.”

“아까부터 이유도 없이 툴툴대잖아, 나한테.”

“이유가 왜 없어?”

강지한이 슬쩍 옆을 바라봤다.

거기엔 2인 테이블에 남녀 한 쌍이 마주 앉아 있었는데 분위기가 영 좋지 않았다.

“그럼 왜 그러는 건데? 내가 오늘 뭘 어쨌길래 계속 뚱한 얼굴로 틱틱 대냐고.”

남자가 답답하다는 듯 물었다.

그에 여자는 황당한 얼굴로 코웃음을 쳤다.

“하. 내가 왜 이러는지 몰라?”

“말을 해줘야 알지.”

“오빤 그게 문제야.”

“아니, 뭐가 문젠데, 또?”

“뭐가 문제인지 모르는 거, 그것도 문제야!”

“환장하겠네.”

말다툼을 듣고 있는 강지한도 가슴이 턱턱 막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남녀 커플은 그 이후로도 계속해서 누가 잘했니, 못했니 하며 싸워댔다.

그때 남자 알바생이 김밥 두 줄과 라면 하나를 테이블에 서빙했다.

“주문한 음식 나왔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음식을 본 남자가 젓가락을 들었다.

“일단 먹자. 먹고 얘기해.”

“오빠는 지금 이 기분에 밥이 넘어가?”

“그럼 시켰는데 안 먹고 나가?”

“됐어. 오빠 다 먹어.”

“씨…… 진짜.”

남자는 욕이 나오려는 걸 겨우 참고 신경질적으로 김밥 하나를 입에 넣어 씹었다.

‘이건 뭐 기분이 뭣 같으니까 김밥도 무슨 맛인 줄 모르겠…… 어라?’

당장에라도 활화산처럼 폭발할 것 같던 남자의 짜증이 김밥 하나를 먹는 순간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아니, 더 정확히는 그의 신경이 여자에 대한 짜증에서 김밥의 맛으로 옮겨갔다고 하는 게 정확했다.

남자가 김밥을 하나 삼키자마자 다시 한 알을 입에 넣었다.

그 모습을 여자는 어이없다는 듯 지켜봤다.

“지금 뭐해?”

“김밥 먹어.”

“누가 그걸 몰라서 물어? 이 상황에서 김밥이 넘어 가…… 압!”

남자가 떠들어대는 여자의 입에다 김밥을 밀어 넣었다.

순간 여자의 미간이 확 구겨졌다.

그녀가 입에 들어온 김밥을 그냥 뱉어버리려고 했다.

그런데 생각뿐이었다.

김밥이 혀에 닿는 순간 입은 이미 그것을 안으로 끌어당기는 중이었다.

이윽고 여자는 자기도 모르는 새 김밥 한 알을 꼭꼭 씹어 삼켰다.

‘어머나.’

김밥을 맛본 여자의 눈도 남자처럼 휘둥그레졌다.

그녀가 뭐에 홀리기라도 한 듯 젓가락을 들었다. 그리고 김밥을 하나 하나 집어먹기 시작했다.

두 사람의 앞에 놓인 김밥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와, 진짜 맛있다.”

“김밥 맛집이라더니 진짜 인정.”

조금 전까지만 해도 성난 강아지처럼 으르렁대던 커플은 어느새 김밥 맛에 대해 품평을 하고 있었다.

“어떻게 만들면 이런 맛이 나지?”

“완전 간도 대박이고 속에서 바삭바삭 씹히는 튀김가루도 예술이야.”

“오늘 여기 오길 잘했다. 그치?”

“오빠 선택이 탁월했어. 짱짱!”

“울 애기 한 줄 더 콜?”

“꺄아~ 넘 좋아!”

“여기요! 김밥 한 줄 더 주세요!”

철전지 원수처럼 싸워대다가 맛있는 김밥 덕분에 화해한 커플을 보며 강지한은 뿌듯함을 느꼈다.

결국 그 김밥은 강지한의 조언에서 만들어진 것이었으니 당연했다.

커플들을 관찰하고 있는 사이 강지한의 테이블에 음식이 서빙됐다.

“짜잔~ 한지민 특제 제육덮밥 나왔습니다.”

강지한이 제육덮밥을 등급을 확인했다. 요리의 등급은 레벨 4였다.

‘이것 봐라?’

한지민이 면접을 보러 왔던 날.

강지한은 그녀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가 제육덮밥에 대한 팁을 몇 개 던져 주었었다.

그러자 바로 이렇게 레벨 4의 제육덮밥을 만들어 낸 것이다.

‘내가 사람을 제대로 들였지.’

지한 식당의 미래는 밝았다.

* * *

늦은 밤.

강지한의 집 거실 바닥엔 설탕이가 엎드려 있었다.

강지한은 그런 설탕이를 애처롭게 바라봤다.

벌써 두 시간이 넘도록 저 자세였다.

기운이 축 빠져서는 강지한이 불러도 눈길조차 주지 않고 한숨만 푹푹 쉬어 댔다.

“설탕아, 왜 그래? 혹시 오늘 도움 못 줘서 그래?”

설탕이는 말을 할 수 없다.

그러나 강지한과 설탕이의 교감도는 상당히 높았다. 해서 굳이 대화를 하지 않아도 서로의 기분이나 심리 상태 등등을 알 수 있었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전해지곤 했다.

필시 설탕이는 자신의 위기를 느끼고서 물어오기를 시전했을 것이다. 한데 그게 실패해서 지금 저렇게 상심한 것일 테지.

피익.

설탕이의 등이 살짝 올라갔다가 축 꺼지더니 코에서 바람이 빠져나왔다.

또 한숨을 쉰 것.

오늘 주인을 돕지 못했다는 것에 스스로 크게 낙담해 버린 설탕이었다.

그런 설탕이를 바라보던 강지한이 손가락을 딱 튕겼다.

“설탕아! 나 오늘 네 덕분에 이겼어.”

그 말에 설탕이의 귀가 쫑긋하고 섰다.

“손님 부스터. 그게 네가 네잎 클로버 물어오는 바람에 갖게 된 아이템이잖아. 그러니까 결국 네가 날 도왔던 거야, 설탕아.”

벌떡!

설탕이가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초롱초롱한 눈으로 강지한을 바라봤다.

그 눈빛은 마치 ‘그게 정말이야?’라고 묻는 것 같았다.

“그럼~ 정말이지! 우리 설탕이가 도와줘서 아빠가 이겼지!”

강지한이 설탕이의 턱을 쓰다듬었다.

그제야 비로소 설탕이의 얼굴에 미소가 감돌기 시작했다.

헥헥헥!

설탕이가 강지한의 손을 마구 핥았다.

“이 녀석, 드디어 기운 차렸네. 하하.”

강지한이 설탕이를 품에 꼭 안았다.

“아빠를 그렇게까지 신경 써줘서 고마워.”

왕!

“아이구, 잘 짖네, 내 새끼.”

왕! 헥헥헥.

강지한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이 비로소 설탕이를 웃음 짓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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