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하는 식당-141화 (141/330)

# 141

Restaurant 140. 계란 한 상

‘망했다.’

강지영의 머릿속에는 그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악마의 초콜릿 잼 누텔라를 달라 그래도 모자를 판에 케첩이라니?

하다못해 ‘카야 잼’ 정도는 얘기를 할 줄 알았다.

카야 잼은 코코넛과 달걀, 판단 잎을 첨가하여 만든 것으로 싱가포르의 대표적인 잼이다.

요즘은 한국에서도 유행을 타, 잘 구운 식빵 안에 치즈와 차가운 버터, 카야 잼을 바른 카야 토스트가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상황.

카야 잼은 강지영이 순간적으로 판단했던 커트라인이었다.

강지한은 자신보다 더하면 더 했지 못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해서 맡겼다.

그런데 케첩이라니?

도근한도 넋 나간 얼굴로 강지한에게 물었다.

“너 제정신이야?”

강지한이 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최현식의 질문이 날아들었다.

“강지한 씨. 방금 케찹이라고 하셨습니까?”

“네.”

“강지한 씨의 팀원들은 전혀 동의 못하겠다는 얼굴들인데요.”

강지한이 두 사람의 안색을 살폈다.

하나같이 벌레 씹은 표정이 되어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있었다.

“무엇보다 케찹은 잼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최현식의 말이었다.

“그럼 안 됩니까?”

“토스트 케찹이라. 나쁜 조합은 아니지만 잼을 바르는 게 더 좋지 않을까요?”

이번 강지한의 선택은 최현식도 말리고 싶었는지 계속 대화를 끌어나갔다.

한데 돌아온 강지한의 대답은 케첩을 선택했을 때보다 더 의외였다.

“토스트에 사용하려는 게 아닙니다.”

“그럼 토스트를 만들지 않을 거라는 말입니까?”

“그건 생각을 더 해봐야겠지만 지금 주어진 재료로 판단해 보건대, 제가 만들려는 메뉴가 토스트보다는 맛있을 것 같습니다. 아니, 맛있습니다.”

강지한이 확신을 했다.

그 말에 최현식이 다른 두 심사위원을 바라봤다.

레이먼 박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돈선이 미소 띤 얼굴로 말했다.

“굳이 케찹을 쓰겠다면 드리지요. 큰 범주 안에서 놓고 보면 잼과 그렇게 크게 어긋나는 재료도 아니니까요.”

두 심사위원은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최현식은 도근한과 강지영에게 질문했다.

“두 분은 강지한 씨의 선택을 존중하십니까?”

솔직히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하지만 지금까지 강지한이 보여준 그의 행보를 보면 이번에도 기막힌 수가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들었다.

도근한과 강지영이 시선을 주고받고서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한숨을 쉬었다.

“존중합니다.”

“저두요.”

팀원들의 동의까지 떨어졌으니 최현식도 더는 다른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케찹을 특별 재료로 내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아울러, 모든 팀에겐 쉽게 기본 육수를 낼 수 있는 육수팩이 주어집니다.”

최현식의 말에 카메라가 각 팀의 테이블 위에 놓인 육수팩을 크게 잡았다.

그것은 멸치, 건새우, 다시마 등등이 담겨 있어 간편하게 육수를 낼 수 있는 제품으로 협찬이 들어와 PPL을 해주는 것이었다.

“그럼 지금부터 지원자 여러분께서는 30분의 아이디어 회의 후, 홍대로 이동하도록 하겠습니다.”

* * *

홍대입구역 3번 출구 경의선철길공원.

그곳에 네 대의 푸드 트럭이 주차되어 있었다.

각각의 푸드 트럭 안에는 세 명씩 팀을 이룬 지원자들이 얼굴을 가린 채 탑승한 상황이었다.

네 팀은 노영철의 요구에 따라 각각 팀 주장을 뽑아야 했다.

해서 각각 박일구, 염동화, 왕소홍, 강지한이 각 팀의 주장으로 선출됐다.

팀명은 주장의 이름에서 따 일구팀, 동화팀, 소홍팀, 지한팀이 되었다.

푸드 트럭 존에는 눈에 띄게 설치된 카메라가 단 한 대도 없었다.

시민들에게 이것이 방송이라는 것을 모르게 하도록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여러 대를 설치했다.

오후 2시.

메뉴 회의와 장사 준비를 거쳐 본격적인 판매가 시작되는 시각.

앞으로 세 시간 동안 최대한 많은 양을 팔아야 했다.

맥시멈은 50인분.

세 시간이 되기 전에 50인분을 소진한다면 더 이상 경합을 펼칠 필요 없이 다음 라운드 진출을 확정하게 된다.

재료가 가장 풍부했던 일구팀은 돼지고기 전지 살을 넣어 만든 김치 볶음밥에 소고기 안심 찹스테이크를 얹어서 내어주고, 파인애플을 갈아 만든 생과일주스까지 곁든 메뉴를 선보였다.

그렇게 푸짐하게 내놓은 음식이 고작 5,000원이었다.

만약 이게 진짜 남겨야 하는 장사였다면 꿈도 꿀 수 없는 가격이었다.

하지만 원가율이 5,000원을 넘지 않으면 된다고 했으니, 이렇게 만들어 내는 것이 가능했다.

게다가 볶음밥이나 찹스테이크 모두 빠르게 만드는 것이 가능해 회전률도 나쁘지 않을 게 분명했다.

소홍팀은 왕소홍의 특기를 살려 굴소스 볶음밥과 고추탕수육, 미니 짜장면을 선보였다.

탕수육은 전부 초벌로 튀겨놓았고, 자장 소스 역시 50인분을 만들어 놓았다. 주문이 들어오면 왕소홍은 볶음밥에만 집중하면 된다.

그러는 동안 다른 팀원들이 탕수육을 한 번 더 튀겨 매운고추소스를 입히고, 면을 삶아 자장소스를 얹어 내어주면 빠르게 메뉴를 완성할 수 있었다.

동화팀은 일식집을 운영 중인 조중훈의 주도하에 치킨 가라아게와 튀김 우동, 알밥을 한 세트로 내놨다.

욕심 같아서는 이것저것 더 만들고 싶었으나 회전률을 생각하면 그 정도가 적당했다.

그렇게 세 팀 모두 약간의 편차는 있지만 선뜻 5,000원을 주고 사 먹을 만한 메뉴들이었다.

들어간 재료들이 괜찮으니 샘플로 만든 음식의 비주얼 또한 끝내줬다.

그런데.

“우리…… 되겠냐.”

도근한의 음성에 착잡함이 가득했다.

지한팀의 메뉴는 다른 팀에 비해 소박하기 그지없었다.

계란 볶음밥에 계란말이, 계란국, 토스트가 전부였다.

완전히 계란으로만 만들어진 ‘계란 한 상’이었다.

그나마 메뉴의 가짓수가 세 개는 되는 데다가 플레이팅에 일가견이 있는 강지영이 맛깔나고 있어 보기에 음식을 담아 초라한 느낌은 면했다.

“일단 먹어보면 눈 번쩍 뜨일 텐데.”

지한팀의 음식은 겉보기와 달리 그 안에 감추고 있는 맛이 대단했다.

우선 황금빛이 감도는 계란볶음밥은 고슬고슬 지어진 쌀밥에 계란 옷을 잘 입혀 센 불로 바짝 볶아내 불맛과 계란 특유의 고소함이 그대로 살아 있었다.

간은 소금과 후추로만 했다.

감칠맛은 밥을 지을 때 물 대신 육수팩으로 낸 육수 물을 넣는 것으로 잡았다.

계란말이는 속에 참치가 들어간 참치계란말이였다.

그건 강지한의 기억 속에 있는 어머니의 레시피였다.

비법이라고 할 만한 건 없었다.

계란말이를 할 때 기름을 살짝 빼서 으깬 참치를 속에 넣어 돌돌 말아주는 것으로 끝이다.

계란물에 간은 맛소금으로 아주 살짝만 했다.

통조림 참치 자체에 짭짤한 맛이 있기 때문이다.

곱게 말아서 잘 익힌 참치계란말이는 케첩에 살짝 찍어 먹으면 그 맛과 풍미가 어마어마했다.

강지영과 도근한도 맛보기 전까지는 탐탁지 않아 했지만, 맛을 보고 나서 이 음식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강지한이 잼 대신 케첩을 선택했던 것도 참치계란말이 때문이었다.

이 음식은 케첩과 함께 먹을 때 맛의 시너지가 몇 배 이상으로 폭발한다.

케첩의 어시스트로 맛이 한층 풍부해짐을 느낀 강지영, 도근한은 이해되지 않았던 강지한의 선택을 비로소 수긍했다.

아무튼 맛으로는 확실한 참치계란말이를 한입 크기로 잘라 볶음밥 주변으로 빙 둘러놓으니 밥과 어우러진 형태가 마치 만개한 산국 꽃 같았다.

계란국은 육수팩으로 가볍게 우려낸 육수에 소금 후추로 간을 한 뒤, 미리 풀어 놓은 계란을 반 국자 넣어서 살짝 익었을 때 그릇에 담아냈다.

이 작업 도근한이 전담하기로 했다.

양식 전문이면서 나름 계란국에 일가견이 있는 그는, 계란국의 포인트에 대해 말하길, 한입 떠먹으면 입에서 부드럽게 흩어지는 계란의 상태라고 했다.

그 상태를 유지해서 손님에게 나가려면 계란 국에 푼 계란을 미리 넣어 익히면 안 된다.

반드시 손님에게 나가기 전 푼 계란을 넣어 살짝 익혀야 했다.

실제로 강지한이 먹어보니 입에 들어간 계란 건더기가 그대로 녹아 사라지는 것 같아 식감이 환상적이었다.

마지막으로 토스트는 강지영의 아이디어였다.

한데 토스트가 일반적인 토스트와는 모양새가 달랐다.

식빵 안쪽에 다른 재료가 일절 없이 큼직한 계란말이 한 덩이만 가득 들어가 있었다.

그것은 계란말이 토스트였다.

강지영이 언젠가 밖에서 사 먹어보고 집에 와서 조금 변형해서 자주 만들어 먹는 요리였다.

원래의 형태는 토스트가 아닌 샌드위치였다.

하지만 식빵을 버터에 구워 설탕을 살짝 묻혀 내는 것만으로 토스트가 되었다.

계란말이는 잘 풀어놓은 계란 물에 육수를 섞고 소금으로 간해서 말았다. 한식보다는 정통 일식에 가까운 형태로, 두껍게 잘 부풀어 있으면서 포슬포슬했다.

이 계란말이 토스트는 풍부한 달걀의 맛이 포인트인 만큼 얼마나 계란말이를 맛있게 하느냐가 중요했다.

그렇게 계란 한 상 메뉴가 완성된 것이다.

누군가 먹어만 준다면 필시 지한팀의 음식을 선택한 걸 후회하지 않을 터.

그러나 사람들의 눈은 계란 한 상보다는 고기로 가득한 다른 메뉴들로 향하게 마련이었다.

페일 배틀이 시작된 지 30분이 경과했다.

일구 팀과 소홍 팀, 동화팀의 트럭에는 식사 때가 아님에도 지속적으로 손님이 들었다.

특히 5,000원으로 소고기 안심과 돼지고기, 생과일주스까지 맛볼 수 있는 일구 팀의 푸드 트럭은 가장 많은 손님을 유치하며 벌써 10인분을 팔아치운 상태였다.

이 기세대로라면 세 시간이 채 되기 전에 50인분이 매진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소홍팀은 5인분, 동화팀도 5인분을 사이좋게 팔았다.

그런데 지한팀은 아직 한 팀도 손님을 받지 못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정말 탈락할지도 모르는 일.

‘뭔가 수를 내야 해.’

세 명의 팀원들은 전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 * *

설탕이가 20분째 허공만 바라보고 있었다.

곁에서 그런 설탕이를 걱정하던 이향숙은 어제 밤을 샌 여파로 어느샌가 곯아 떨어져 있었다.

새근새근 숨을 내뱉으며 잠이 든 이향숙의 곁에서 설탕이는 여전히 허공만 살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눈을 번뜩이더니 높이 뛰어 올랐다.

이어 녀석의 눈에만 보이는 상자들 중 하나를 향해 입을 쩍 벌렸다.

왕!

벌린 입이 허공에서 닫혔다.

타탓!

그리고 부유했던 몸이 다시 바닥으로 내려왔다.

한데, 설탕의 입엔 선물이 없었다.

물어오기에 실패해 버린 것이다.

끼잉. 낑.

설탕이의 귀와 꼬리가 힘없이 축 늘어지고 어깨에 힘이 빠졌다.

주인이 걱정된 설탕이의 세상 애처로운 신음 소리가 방 안에 울려 퍼졌다.

* * *

페일 배틀이 시작된 지 한 시간 반이 지났다.

일구 팀은 20인분을 팔며 계속해서 치고 나갔다.

그 뒤를 동화 팀이 12인분, 소홍 팀이 11인분으로 바짝 추격했다.

반면 지한 팀은 이제 겨우 3인분을 판 게 고작이었다.

“하아, 기운 빠지네요.”

“나는 똥줄 타요.”

도근한과 강지영이 차례대로 한마디씩 했다.

강지한은 심각한 얼굴로 계속해서 이 상황의 타계책을 궁리했다.

그때.

‘……그거다.’

강지한의 눈이 번쩍 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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