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0
Restaurant 139. 위기의 우승후보들
설탕이가 위기를 느끼기 두 시간 전.
베네핏 배틀의 우승자가 가려졌다.
“우승자는 박일구 씨입니다.”
최현식의 입에서는 당연하다는 듯 그 이름이 흘러나왔다.
박일구는 동남아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사람이다.
올해 서른두 살의 남자로 나이에 비해 탈모가 일찍 찾아와 머리를 박박 밀어버리고 콧수염만 기르는 중이었다.
몸매는 호리호리한 것이 살짝 여성스런 말투와 행동은 한돈선과 비슷했다.
박일구는 자신의 주 종목이 나왔으니 기량을 마음껏 뽐냈고 이는 결국 베네핏 배틀의 우승으로 이어졌다.
강지한 역시 우승 후보 중 한 명으로 호명되어 나름 호평을 받았지만 박일구의 벽을 넘지는 못했다.
“우승하신 박일구 씨에게는 예고했던 대로 어마어마한 베네핏이 두 가지 주어집니다. 그중 하나는 팀 결정권입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베네핏에 박일구가 설마 하며 물었다.
“혹시…… 페일 배틀은 팀 배틀인가요?”
최현식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6라운드 페일 배틀은 세 명이 한 팀이 되어 총 네 팀으로 배틀을 벌이게 될 겁니다.”
“좋았어!”
박일구가 파이팅 포즈를 취했다.
“그렇게 기뻐하는 걸 보니 나머지 혜택은 받지 않아도 될 것 같네요.”
레이먼 박의 농담에 박일구가 얼른 차렷 자세를 취했다.
“아직 덜 기쁩니다.”
박일구의 방정에 지원자들이 웃음을 참지 못했다.
최현식도 잠시 웃고 나서는 나머지 베네핏에 대해 알려주었다.
“다른 하나는 트럭 배치권입니다.”
“트럭 배치권이요?”
“이번 페일 배틀의 주제는 ‘푸드 트럭’입니다. 여러분은 세 명씩 한 조로 팀을 이뤄 각각 한 대의 푸드 트럭을 맡아 장사를 하게 될 겁니다.”
푸드 트럭이라니, 생각지도 못했던 미션이었다.
“세 시간 동안 푸드 트럭에서 장사를 한 뒤, 몇 인분이 팔렸는지를 집계해서 가장 적게 판 두 팀은 탈락하게 될 겁니다.”
거기까지 말한 최현식이 입을 닫았다.
그러자 레이먼 박이 말을 이어 받았다.
“단, 여러분들은 스스로의 정체를 드러내선 안 됩니다.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만들어내는 음식의 테이스트 하나로만 손님에게 어필해야 합니다.”
이미 배틀 셰프의 출연자들은 시청자에게 얼굴이 널리 알려진 상태였다.
당연히 팬덤도 생겨났다.
이런 상황에서 얼굴이 드러나면 가장 많은 팬덤을 가지고 있는 출연자가 유리해질 수 있었다.
또다시 강지한의 독무대가 될지도 모르는 것.
노영철 피디는 그동안 강지한이 여러 드라마를 만들어준 것이 고마웠으나 파죽지세로 우승을 해나가는 바람에 경연의 긴장감이 떨어지는 게 걱정됐다.
해서 얼굴을 가려야 한다는 조건을 붙였다.
아울러 긴장감을 높이기 위해 한 가지 장치를 더 해놓았다.
그것에 대해서는 한돈선이 설명했다.
“네 팀은 홍대 입구 푸드 트럭 존에서 장사를 하게 될 겁니다. 한데 각각의 푸드 트럭에 주어지는 식재료는 전부 다릅니다. 가장 좋은 식재료가 다양하게 주어지는 트럭이 하나, 그보다 못하지만 나쁘지 않은 수준의 트럭이 둘, 마지막으로 부실한 식재료를 갖게 되는 트럭이 하나입니다. 조금 심하게 말해서 최악이라고 할 수 있지요. 여기서 중요한 것 하나. 여러분들이 어떤 메뉴를 만들든, 가격은 5천 원으로 동일합니다.”
한돈선의 말을 듣자마자 박일구는 환희에 가득 차 벌어지는 입을 손으로 가렸다.
반면 다른 지원자들은 불안한 시선으로 박일구를 바라봤다.
지금 그에게는 두 가지 베네핏이 주어졌다.
팀 결정권과 트럭 배치권.
즉 그는 최강의 팀을 꾸려 가장 좋은 트럭에서 시합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제 자신에게 얼마나 큰 혜택이 주어진 건지 아시겠죠?”
한돈선이 물었고 박일구는 고개가 떨어질 것처럼 끄덕였다.
“그럼 팀 결정권부터 사용하도록 하죠. 박일구 씨는 지금부터 페일 배틀에서 경쟁하게 될 네 팀의 구성원을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습니다.”
“네? 네 팀 전부 제 마음대로 조합할 수 있다고요?”
본인의 팀뿐만 아니라 나머지 팀의 조합까지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으리라곤 생각지도 못했었다.
지원자들은 너무 파격적인 혜택에 술렁대기 시작했다.
“해도해도 너무하네.”
중식집을 운영하고 있는 왕소홍이 결국 볼멘소리를 냈다.
그는 박일구와 별로 친분이 없는 터라 이번 라운드에서 불리한 포지션을 차지할 게 뻔했기 때문이다.
지원자들이 대혼란에 빠져 있을 때 노영철 피디는 웃었다.
그림이 자신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이제 박일구가 누구를 택하느냐에 따라 게임의 판도가 또 달라질 터.
‘이제 어떻게 할 건가, 박일구 씨.’
노영철은 자신의 바람대로 그가 움직여주기를 원했다.
최현식이 박일구에게 말했다.
“우선 본인의 팀부터 결정하도록 하죠. 박일구 씨는 자신과 함께할 두 사람을 정해 주세요.”
그에 지원자들은 박일구가 당연히 강지한과 도근한을 택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들과 함께라면 이번 라운드는 그냥 떼어 놓은 당상이나 다름없는 게임이었다.
그런데 박일구의 입에서는 의외의 이름이 튀어나왔다.
“주민이랑 대영이를 선택하겠습니다.”
김주민과 정대영은 스물여섯 살의 동갑내기 남자로 배틀 셰프가 진행 되는 내내 별다른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었다.
현재 남아있는 12명 중에서는 가장 실력이 떨어지는 이들이었다.
한데 박일구는 바로 그 두 사람을 자신의 팀원으로 선택했다.
몇몇 지원자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몰라 의아해했다.
반면 세트 밖에서 이를 지켜보던 노영철 피디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됐다.’
노영철은 박일구가 강지한과 도근한을 택하지 않기를 바랐다.
그가 조금이라도 머리를 굴릴 줄 아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그럴 것이라 믿었다.
다행히 박일구는 노영철의 생각대로 움직여 줬다.
“그럼 다른 세 팀의 멤버를 조합해 주세요.”
“네. 우선 소홍 아저씨, 일중이, 이만우 씨를 한 팀으로 묶을게요.”
호명 된 세 사람이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계속해주세요.”
“그리고 동화 씨랑 중훈이, 정재영 씨를 한 팀으로 묶겠습니다.”
“마지막 세 분의 이름도 호명해 주시죠.”
“마지막 팀은 강지한 씨, 도근한 씨, 강지영 씨입니다.”
박일구의 팀 매치에 지원자들이 웅성댔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번 대회 가장 강력한 우승 후보인 셋을 한 팀으로 묶었단 말인가?
좌중에 이상한 정적만 흐르던 와중 누군가 저도 모르게 탄성을 뱉었다.
“아……!”
그것이 신호라도 된 듯 다른 사람들도 전부 박일구의 의중을 파악했다.
그는 가장 실력이 없는 두 사람을 자신의 팀으로 묶었고, 우승 후보 셋을 한 팀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이제 트럭 배치권을 사용할 때였다.
바로 이게 포인트였다.
매칭이 된 사람들은 레이먼 박의 지시에 따라 같은 테이블로 모여 섰다.
한돈선은 단상 아래로 내려와 작은 테이블 앞에 카드 네 장을 두었다.
카드에는 차례대로 ‘길(吉)’, ‘평(平)’, ‘평(平)’, ‘흉(凶)’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이 네 장의 카드 뒷면에는 푸드 트럭에 주어질 재료들이 표기되어 있습니다. 보시다시피 ‘길’이라고 써진 건 다양한 양질의 재료들이 주어질 테고 ‘평’은 그보다 못하지만 나쁘지는 않고, ‘흉’은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떨어지는 재료가 나오겠지요. 박일구 씨는 우선 한 장의 카드를 선택해 주세요.”
박일구는 망설임 없이 ‘길’ 카드를 집었다.
“뒷면을 확인해 보세요.”
박일구가 카드를 뒤집었다.
거기에 적힌 재료들은 소고기, 닭고기, 돼지고기의 육류부터 시작해서 새우, 가리비, 문어, 오징어 등 다양한 해산물류, 각종 야채, 여러 종류의 유제품 등이 한가득 적혀 있었다.
“뭐가 참 많죠? 그 중에서 원하는 재료를 마음껏 사용해서 음식을 만들면 됩니다. 단, 재료원가가 5천 원을 초과해서는 안 됩니다.”
박일구는 크게 좋아하며 팀원들과 하이파이브를 했다.
원재료 값으로 5천 원이면 얼마든지 질 좋은 음식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그럼 나머지 세 장의 카드를 원하는 대로 나누어 주도록 하세요.”
한돈선이 남은 카드 세 장을 박일구에게 넘겼다.
박일구는 ‘평’ 카드 두 장을 왕소홍 팀과 염동화 팀에게 줬다.
그리고 ‘흉’ 카드는 강지한 팀에게 건네주었다.
이로써 그의 목적이 여실히 드러났다.
박일구는 우승 후보들의 도움을 받아 이번 라운드를 무난히 넘어가려 하지 않았다.
우승 후보 셋을 한데 묶어 이번 라운드에서 탈락시키기로 한 것이다.
만약 이번 라운드에서 우승 후보가 다 떨어져 나가면 남은 라운드는 충분히 할 만한 게임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될 경우 박일구와 다른 지원자들에게는 좋을지 몰라도 배틀 셰프의 제작자들 입장에서는 썩 반길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시청률을 확보하는 데 가장 큰 공헌을 하는 강지한이 탈락하면 다음 화부터 많은 시청자들이 눈을 돌릴게 뻔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노영철 피디는 아무런 걱정을 하지 않았다.
지금 박일구가 놓치고 있는 부분이 있었다.
강지한에게는 저번 라운드에서 받은 ‘탈락면제권’이 존재했다.
그 때문에 노영철은 이런 전개 속에서도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도근한과 강지영의 안에서는 성난 파도가 몰아치는 중이었다.
‘이거…… 잘못하면 이번 라운드에서 끝장난다.’
도근한의 이마에 식은땀이 맺혔다.
‘박일구 저 문어 새끼.’
강지영이 원망 가득한 시선으로 박일구의 뒤통수를 노려봤다.
두 사람과 나란히 선 강지한은 굳은 얼굴로 깊은 생각에 잠겼다.
‘이렇게 죽이겠다?’
하지만 본인은 어떤 상황에서도 죽지 않는다.
그렇다고 어찌 되든 상관없다는 투로 방관하긴 싫었다.
박일구가 짜놓은 판에 놀아나 줄 마음은 없었다.
무엇보다 실력 있는 두 사람, 도근한과 강지영이 이런 식으로 떨어지는 게 용납되지 않았다.
‘설마 재료가 부실하다고 해도 그렇게 엉망은 아닐 거야.’
어쨌든 강지한의 팀원들은 하나같이 실력이 뛰어난 만큼 없는 재료로도 먹힐 만한 아이템을 맛있게 만들어 내놓으면 필시 장사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
“자, 그럼 나머지 세 팀 전부 재료를 확인해 주시기 바랍니다.”
최현식이 말했고 강지한이 카드를 뒤집었다.
그에 도근한과 강지영의 시선이 카드에 집중됐다.
거기에 적혀 있는 재료를 본 세 사람의 눈동자가 하나같이 파르르 떨렸다.
그들에게 주어진 재료는 식빵, 계란, 쌀, 버터, 우유, 치즈, 참치 통조림과 각종 조미료, 원하는 한 가지 잼이 전부였다.
“이걸로 뭘 하라는 거야?”
강지영의 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나와 있는 조합으로 봐서는 토스트가 그나마 할 만한데 경쟁력이 없는 메뉴였다.
도근한이 관자놀이를 지그시 눌렀다.
재료들을 곱씹어 볼수록 머리가 지끈거렸다.
“생뚱맞게 쌀은 또 무슨…….”
도근한의 입에서 노기 어른 음성이 흘러나왔다.
주어진 재료들은 누가 봐도 토스트 조합인데 거기에 쌀이 왜 끼어 있는 건지 의문이었다.
강지한 역시 심각해졌다.
재료가 아무리 형편없다고 해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그리고 가장 문제인 건 가격이었다.
푸드 트럭에서 지원자들이 파는 음식은 5,000원으로 통일이다.
‘같은 가격이면 나 같아도 토스트를 사 먹진 않을 거야.’
세 사람의 씁쓸한 얼굴을 보며 박일수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 장면이 카메라에 고스란히 잡혔다.
그때 최현식의 입이 열렸다.
“강지한 씨, 도근한 씨, 강지영 씨. 지금 심정이 어떻습니까?”
“착잡하네요.”
의사표현에 거침없는 강지영의 대답이었다.
“그럴 것 같았습니다. 저 같아도 그쪽 팀에 주어진 메뉴를 보게 된다면 힘이 빠질 겁니다. 그래서 한 가지 재료에는 선택의 자유를 드렸습니다.”
그랬다.
적어도 잼만큼은 원하는 것으로 택하는 개미 손톱만 한 배려가 적용되어 있었다.
강지영은 콧방귀를 꼈고 도근한은 입을 꾹 다물었다.
두 사람이 말을 기미를 보이지 않아 최현식의 시선은 강지한에게 향했다.
“강지한 씨, 원하는 재료가 있습니까?”
지금 이 조합에서 그나마 도움이 되는 것이 있긴 했다.
강지한은 자신이 말을 해도 되느냐는 시선을 다른 팀원들에게 던졌고, 그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있습니다.”
“말씀하세요.”
“케찹입니다.”
강지한의 대답에 다른 팀원들의 입이 쩍 벌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