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9
Restaurant 138. 주인의 위기
강지한은 한지민과 20분가량 대화를 나눴다.
그때 용성우가 출근했다.
평소보다 이른 시간이었다.
이제 강지한이 지한 식당으로 가면 분식집을 용성우가 책임져야 하므로 출근 시간도 앞당기고 퇴근 시간은 늦춰야 했다.
물론 그만큼 용성우의 월급은 늘어났다.
아울러 지한 분식 순이익의 15%를 그에게 주기로 했다.
용성우로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조건이었다.
“사장님! 좋은 아침입니다! 어? 손님 계시네요?”
여느 때와 같이 기합이 잔뜩 들어간 목소리로 인사를 건넨 용성우가 한지민을 보고 물었다.
한지민이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 숙여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한지민이라고 해요.”
“아, 네. 용성우라고 합니다! 근데…… 혹시 이분이?”
강지한이 웃으며 대답했다.
“지한 식당에서 함께 일하게 될 분이야.”
그 말에 한지민이 화들짝 놀라 한 손을 자기 가슴 위에 얹고 물었다.
“저 됐어요? 합격이에요?”
20분 동안 면접을 보면서 합격했다는 말은 한마디도 안 했던 강지한이었다.
“아, 네. 이미 매장 들어오셨던 순간부터 합격이었어요.”
“어머나. 감사해요, 강 선생님.”
한지민이 감동에 찬 얼굴로 말하다가 다리에 힘이 풀려 풀썩 주저앉았다.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겠어요.”
“꿈 아니에요.”
“그럼 저 어떻게 하면 돼요? 내일부터 나오면 될까요?”
“음……. 일단 식당일에 적응할 기간이 필요해요. 일주일 정도는 저랑 같이 주방에서 연습 하는 시간을 갖는 게 좋겠어요. 한데 서울에서 춘천까지 출퇴근하려면 힘들지 않겠어요?”
“안 그래도 그 문제로 부모님이랑 상의해 봤어요. 개인적으로는 이곳에서 거주하며 일을 하고 싶어서요.”
그렇게 말하는 한지민의 눈에는 굳은 결의로 가득 차 있었다.
이미 마음을 그렇게 굳히고 왔으니 강지한이 다른 의견을 제시해도 듣지 않을 터.
무엇보다 춘천에서 일을 하려면 사실 같은 동네에 사는 것이 제일 좋긴 했다.
하지만 최소한의 도움은 주고 싶었다.
“알겠어요. 방은 제 쪽에서 알아봐 드릴게요. 이 동네 빠삭한 부동산 사장님이랑 친분이 좀 있어요.”
“그렇게 해주시면 정말 감사하죠.”
“원룸 정도 생각하고 계시나요?”
“네, 풀옵션으로요.”
“풀옵션이면 춘천은 대략 보증금 300에서 500에 월 28, 35 정도 생각하면 될 거예요.”
“정말요? 진짜 싸다. 서울이랑 물가 차이가 크네요.”
“직원 월급은 넉넉히 들어가니 월세 정도는 충분히 낼 수 있을 겁니다.”
“적게 주셔도 아껴서 잘 사용할게요.”
“그럼 언제쯤 들어오실 수 있을까요?”
“이것저것 정리하고 고정 알바도 구하고 하려면…… 다음 주 월요일이요.”
오늘이 금요일이다.
다음 주 월요일에 이사 들어올 생각이라면 당장 집을 알아봐야 했다.
“성우야, 오픈 준비 잘할 수 있지?”
강지한의 물음에 용성우가 엄지를 척! 치켜세웠다.
“물론입니다!”
이를 본 강지한이 피식 웃었다.
“너 제스쳐가 점점 중만 아저씨 닮아간다?”
“헉!”
용성우은 올렸던 엄지를 얼른 내렸다.
평소에는 고중만과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않는 그였다.
한데 행동을 미러링까지 하는 거 보니 마음속으로는 은근히 고중만을 좋게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럼 부동산부터 가볼까요?”
“네.”
당황하는 용성우를 내버려두고 강지한은 한지민과 분식집을 나섰다.
* * *
역시 예경천이었다.
그는 한지민이 바라는 조건을 듣더니 바로 몇 군데의 원룸을 추천해 줬다.
자신의 구역이 아닌 곳은 그 지역 담당 업자에게 전화 연락까지 해가며 열심히 집을 알아봐줬다.
그렇게 해서 한지민은 마음에 드는 곳을 정할 수 있었다.
12평의 풀옵션 원룸이었는데 물 잘나오고 난방 문제 없고 볕도 잘 드는 곳이었다.
보증금이 500으로 조금 센 편이었지만 월세가 관비리와 수도세 포함 31만 원으로 저렴했다.
위치도 후평동이라 지한 식당이 있는 거두리에서 멀지 않았다.
조금 일찍 일어나면 걸어서 25분 거리였다.
마침 집주인이 춘천에 있어서 직접 만나 계약서를 작성하는 것까지 일사천리로 진행이 됐다.
보증금과 한 달 선월세는 한지민이 그 자리에서 인터넷뱅킹으로 바로 쏴주었다.
월세 계산은 실제로 그녀가 입주하는 다음 주 월요일부터 계산하기로 했다.
집 문제를 해결하고 난 뒤, 한지민은 강지한과 지한 식당으로 향했다.
“여기가…….”
한지민은 지한 식당의 입구에 서서 한동안 말이 없었다.
강지한이 잠긴 문을 여는 동안 그녀의 시선은 위에 걸린 ‘지한 식당’이라는 간판에 꽂혀 있었다.
“들어가죠.”
“아, 네.”
강지한의 뒤를 따라 안으로 들어서자 50평이나 되는 넓은 실내가 그녀를 반겼다.
주방은 오픈형이었다.
깔끔한 홀에는 4인용 테이블이 17개나 배치되어 있었고, 한쪽엔 최대 16명이 좌식으로 식사를 할 수 있는 공간 또한 존재했다.
강지한은 한지민을 주방으로 안내했다.
주방 또한 넓었다.
그녀의 부모님이 운영하고 있는 작은 분식집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규모였다.
대부분의 식기는 전부 갖추어져 있었으며 아직 손때의 흔적이 전혀 없었다.
“어때요?”
“짱 좋네요. 강 선생님이 새로 오픈하는 식당에서 함께할 수 있으리라곤 생각도 못했어요.”
“자신 없어요?”
한지민이 고개를 휙휙 저었다.
그러자 양 갈래로 땋아 내린 머리가 그네처럼 움직였다.
“저한테 주신 기회 말아먹지 않고 열심히 해내 보일게요.”
“그런 마음가짐이면 됐어요. 그럼 이제 우리도 계약서를 작성해야죠.”
강지한이 미리 가져온 근로계약서와 펜을 꺼내며 내밀었다.
감격한 얼굴로 계약서를 받아든 한지민의 귀로 강지한의 낭랑한 음성이 흘러 들어왔다.
“다음번에 오실 때 주민등록증 사본이랑 통장 사본 준비해 주세요.”
“그럼요!”
어쩜 생긴 것도 훈훈한데 마음씨도 좋고 목소리까지 곱다.
자기 자신은 참 완벽한 스승님을 만났다는 생각이 드는 한지민이었다.
* * *
일요일.
배틀 셰프의 본선 6라운드가 시작되는 날이다.
지금까지 살아남은 사람들은 강지한, 도근한, 강지영, 왕소홍, 신일중, 이만우, 염동화, 조중훈. 정재영, 김주민, 박일구, 정대만으로 총 12명이었다.
“배틀 셰프 본선 6라운드까지 올라오신 여러분께 격려와 존경의 박수를 보내드립니다. 호호호.”
한돈선이 멘트를 하자 세트장에 있던 모든 이들이 박수를 보내며 서로를 축하했다.
박수 소리가 잦아든 뒤 최현식의 말이 이어졌다.
“이제 대망의 결승까지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이번 라운드에서는 지금 남아 있는 인원의 절반이 탈락하게 될 테고, 남은 분들은 세미파이널에 진출하게 됩니다.”
12명 중 무려 6명이 탈락한다는 말에 자축하던 분위기는 씻은 듯 사라졌다.
지원자들의 반응을 살피던 레이먼 박이 최현식의 배턴을 이어 받았다.
“오늘은 한돈선 대가님의 건강상 이유로 투 위크(two week) 만에 다시 보게 된 날입니다. 시간이 더 주어진 만큼 훨씬 업그레이드된 스킬을 보여주실 거라 기대해 봅니다.”
레이먼 박의 말이 끝나자마자 강지영이 입을 열었다.
“한돈선 대가님! 몸은 괜찮으세요?”
“네. 이제 괜찮습니다. 배틀 셰프 관계자들과 지원자 여러분께 걱정 끼쳐 드려 죄송합니다.”
한돈선이 살짝 묵례를 한 뒤, 베네핏 배틀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다.
“자, 본론으로 들어갈까요. 이제 여러분은 6라운드 베네핏 배틀을 치르게 될 겁니다. 그런데 명심해야 할 것이 있어요. 오늘 베네핏 배틀은 정말 중요합니다. 베네핏 배틀에서 승리한 분은 다음 라운드에서 상당히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게 될 겁니다.”
그에 왕소홍이 손을 들고 물었다.
“주어지는 베네핏이 얼마나 유리한 겁니까?”
“이어지는 페일 배틀에서 다른 지원자들의 7라운드 진출 당락을 좌지우지할 수 있을 정도로 유리하지요.”
사실 지금까지 베네핏을 가진 자가 다른 지원자들을 곤경에 빠뜨릴 수 있는 기회는 많았다.
하지만 그만큼의 위기가 찾아오지 않았다.
이유는 대부분의 베네핏을 차지한 강지한이 굳이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다른 지원자들에게 위기를 주기보다는 스스로의 실력으로 페일 배틀에서 살아남았다.
방송국 관계자들은 어떻게든 지원자들의 위기를 담아내야 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장치를 해놓았다.
이번에는 그 장치가 거의 역대급이라고 봐야 했다.
베네핏을 가진 사람은 거의 절대 권력을 손에 쥐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바로 베네핏 배틀의 주제를 발표하겠습니다. 이번 베네핏 배틀의 주제는 동남아 음식입니다.”
동남아 음식이라는 주제에 대부분이 탄식을 뱉었다.
강지한 역시 동남아에 대한 지식은 다른 분야에 비해 빈약한 편이었다.
“동남아 음식은 세계적으로 유명하죠. 한국에서도 근래 들어 대단한 붐이 일었고요. 몇 년 전만 해도 동남아 음식이라고 하면 쌀국수나 월남쌈밖에 모르던 사람들이 이제는 뿌팟퐁커리와 분짜를 찾아다니곤 합니다. 비단 제대로 된 요리사라면 다양한 요리를 먹어보고 그 맛을 재현할 줄 알아야 하겠죠. 편협한 식습관과 좁은 시야는 스스로의 가능성을 축소시킬 뿐이니까요.”
맞는 말이다.
그런데 맞는 말만큼 어려운 말이 또 없다.
생각 못했던 주제에 지원자들이 한숨을 푹푹 쉬고 있을 때 유일하게 미소를 짓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타이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박일구였다.
“그럼 지금부터 한 시간을 드리겠습니다. 자신이 만들 수 있는 최고의 동남아 음식 한 그릇을 내오도록 하세요.”
한돈선의 말이 끝나자마자 벽면에 걸린 커다란 시계의 초침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이향숙은 결국 집에서 나와 회사를 차렸다.
향스리닷컴의 덩치가 빠르게 커지기 시작하며 더는 집에서 일을 해나갈 수가 없었기 때문.
하지만 주말엔 집에 있으면서 홈페이지 관리만 했다.
일이 있어도 나가지 않을 판이었다.
강지한이 설탕이를 맡겼으니까.
“설탕아~ 누나 쓰담쓰담 해주세요~”
이향숙이 설탕이에게 머리를 들이밀며 말했다.
그러자 설탕이가 앞발로 그런 이향숙의 머리를 톡톡 건드렸다.
“꺄항~! 넘 좋아!”
이향숙이 설탕이의 발바닥에 마구 뽀뽀를 했다.
강아지 발바닥에서 맡아지는 특유의 냄새는 이향숙에게 거의 마약이나 다름없었다.
“흐아아.”
이향숙의 눈이 헤롱헤롱거렸다.
몇 번을 맡아도 중독성 있는 냄새였다.
이향숙이 바닥에 벌렁 드러누워 바닥을 탁탁 쳤다.
“설탕아 이리와~ 누나랑 같이 누워 있자.”
왕!
설탕이가 꼬리를 흔들며 이향숙에게 달려가려다가 그대로 멈췄다.
……?!
뭔가를 느낀 듯 설탕이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설탕이의 저런 표정을 처음 본 이향숙이 놀라 물었다.
“설탕아, 왜 그래?”
하지만 설탕이는 대답 않고 갑자기 허공을 쏘아봤다.
세상에 둘도 없는 사랑하는 주인이 위기에 처했다.
녀석의 시선에 하늘에 두둥실 떠다니는 선물 상자들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