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8
Restaurant 137. 지한 식당의 부주방장
신 푸드의 신제품 이른바 ‘김치 4총사’가 지난 월요일부터 판매에 들어갔다.
선주문 물량부터 모두 납품한 뒤 추가 주문들을 소화해내느라 신 푸드의 공장은 쉼 없이 돌아가는 중이었다.
수요일 아침.
신장호는 아직 오픈 준비 중인 지한 분식에 찾아왔다.
그러고는 강지한에게 일이 돌아가는 상황을 자랑하며 떠들어댔다.
“이 정도 속도로 팔려나가면 강 사장도 곧 부자되겠어요! 하하하하.”
“네, 더 좋은 소식 기대하고 있을게요.”
“그나저나 이제 슬슬 다른 식품들도 손잡고 개발해 봐야죠?”
신장호가 지한 분식을 찾아온 진짜 목적은 바로 그것이었다.
이에 대해서는 강지한 역시 구두로 협의한 바였기에 거부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강지한의 반응에 신장호는 서류가방에서 바로 계약서를 꺼냈다.
“자, 메일로 보냈던 계약서 그대로 출력해 왔어요.”
신장호는 강지한에게 가계약서를 메일로 보낸 뒤, 세부 내용에 대한 조율을 전화로 마쳤다.
이후 서로 만족스런 조건으로 완성된 계약서 2부를 뽑아서 가지고 왔다.
사전에 조율된 계약서임에도 강지한은 모든 글자들을 꼼꼼히 살피고서 도장을 찍었다.
그 신중한 모습이 신장호는 참 마음에 들었다.
‘슬하에 딸내미 하나만 있었어도 그냥 딱 사윗감인데.’
그런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이번 계약엔 함께 만들어 나갈 음식의 종목을 정하지 않았다.
앞으로 강지한이 제안하는 레시피로 레토르트 식품을 만들어 보고 자체 평가에서 통과해 출시되면, 팔리는 족족 수익금의 일부를 준다는 내용으로 계약을 체결했다.
신장호가 만족하며 떠난 뒤, 지한 분식의 하루가 시작됐다.
이번 주 월요일부터 이리나는 주방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메인 주방장은 용성우가 맡았고, 부주방장은 고중만의 몫이었다.
강지한은 카운터를 지켰다.
지한 분식을 완전히 넘겨줄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홀에서는 최지민과 이주희, 그리고 사흘 전에 새로 들어온 스물네 살 김아랑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김아랑은 고작 일한 지 사흘밖에 된 사람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발군의 기량을 선보였다.
원체 요식업 관련한 알바를 많이 해온 데다 등급 자체가 준수한 편이었기 때문이다.
김아랑이 홀의 스텝으로는 늦게 들어왔어도 직원으로 지원을 했고 나이도 최지민과 이주희 보다 많았기에 선배 대접을 받았다.
두 사람은 괜한 텃세 같은 건 부리지 않았다.
물론 능력도 없이 선배 노릇 해먹으려 들면 아니꼬울 수 있으나 김아랑은 성실하고 착한 사람이었다.
강지한이 정보의 눈으로 봤던 김아랑의 등급은 C+.
최지민과 이주희의 등급은 둘 다 C-였다.
종합 능력치로만 보면 현재는 최지민이 이주희보다 앞서 있었다.
아무래도 알바 경력이 더 길어서 당연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두 사람의 등급이 같다는 건 이주희의 잠재력이 최지민보다 높다는 얘기였다.
‘정말 놀랐던 건 성우였지.’
용성우를 바라보는 강지한의 눈에 상태창이 나타났다.
<용성우의 능력치>
직급: 주방 직원
등급: B
능력: 요리 LV 7, 청소 LV 5
정직도: 99/100
신뢰도: 90/100
종합 평가: 개화된 능력은 두 가지밖에 없으나, 잠재력이 뛰어나며 배움 또한 빠르다. 고용주를 크게 신뢰하며 일을 함에 있어 꾀를 부리거나 대충 넘어갈 줄 모르는 성정이다.
용성우의 등급은 무려 B였다.
게다가 요리의 레벨은 7.
용성우의 현재 실력을 기준으로 놓고 볼 때 요리 레벨의 최대치는 15 정도가 아닐까 싶었다.
강지한에게 적용되는 레벨과 직원, 알바에게 적용되는 레벨 값의 기준치는 전혀 다른 것 같았다.
용성우의 옆에 서서 열심히 보조하는 고중만에게서도 상태창이 보였다.
<고중만의 능력치>
직급: 주방 직원
등급: C-
능력: 요리 LV 4, 청소 LV 3, 회계 LV 6, 진상 진압 LV 4
정직도: 87/100
신뢰도: 99/100
종합 평가: 돈을 인생 최고의 가치로 생각하는 만큼 회계 쪽으로 머리가 텄다. 진상을 진압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인다. 각 능력의 잠재력은 뛰어나진 않으나 배움이 빠르고 특수한 능력을 갖고 있으며 고용주에 대한 신뢰도가 매우 높다.
강지한은 자신에 대한 고중만의 신뢰도가 무려 99나 될 줄은 생각도 못했었다.
열심히 요리하는 고중만의 모습을 강지한이 미소로 바라봤다.
그러다 무심코 고개를 들어 올린 고중만과 강지한의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그에, 고중만이 오버하며 웍에 스냅을 크게 줘서 마구 돌렸다.
“웃샤!”
이를 본 용성우가 기겁했다.
“재료 다 튀어 나가잖아요!”
“읏차차! 갑자기 기운이 번쩍 나서 그만. 미안, 용 선배.”
고중만이 뒷머리를 긁으며 멋쩍어 했다.
“흐흐.”
강지한이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 * *
저녁 피크 타임.
항상 주방에만 있던 강지한이 카운터에 서 있으니 그를 바라보는 여자 손님들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원체 훈훈하게 생긴 것도 이유였지만 배틀 셰프로 한창 주가를 올린 터라 연예인을 보는 기분이 들었던 것.
강지한은 식사를 마친 손님들의 결제를 도와주며 분식집이 돌아가는 전체적인 분위기를 지속적으로 살폈다.
주방과 홀이 마찰 한 번 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마치 잘 맞물린 톱니바퀴의 운동을 보는 것만 같았다.
‘이 정도면 걱정 없겠다.’
지한 식당의 오픈을 앞둔 강지한의 마음이 든든해졌다.
* * *
밤 10시 반.
일과를 마치고 설탕이와 집에 돌아온 강지한은 고민에 빠졌다.
‘아무래도 오픈 시기를 좀 더 늦춰야겠다.’
본래 지한 식당은 배틀 셰프가 끝난 뒤에 오픈하려 했었다.
배틀 셰프가 진행되는 동안은 통 정신이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방송이 익숙해지면서 배틀 셰프가 스트레스로 다가오기는커녕 즐거움으로 자리했다.
때문에 강지한은 지한 식당을 배틀 셰프의 진행과 상관없이 오픈하는 것으로 계획을 바꿨다.
예정대로라면 늦어도 이번 주 중에는 오픈을 해야 했다.
한데 생각지도 못했던 부분에서 문제가 터졌다.
주방에서 같이 일할 사람을 도저히 뽑을 수가 없었다.
그들의 능력치가 눈에 훤히 보였기 때문이다.
주로 아주머니들이 많이 지원을 해왔는데 하나같이 등급이 D에서 C- 정도였다.
그런 평가를 받은 이유는 종합 능력치에 적혀 있었다.
오랜 세월 요리를 해오다 보니 고집이 굳은살처럼 박여서 주방장의 말이라 해도 잘 듣지를 않는다는 것.
게다가 정직도 역시 대부분 낮아, 고용주가 보지 않을 때는 요리의 많은 과정을 생략하고 편한 대로 만들어 나갈 위험까지 존재했다.
그 때문에 종합 등급이 높을 수가 없었다.
물론 고집대로 하지 않는 지원자도 있었지만 능력이 D였다.
이런 정보가 눈에 보여 버리니 함께 일할 사람을 쉽게 들이기 힘들었다.
홀이야 C나 D 정도만 되도 정직도가 높다면 고용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주방에서 강지한의 요리를 도와줄 주방 보조는 적어도 C+ 이상은 되어야 했다.
“후우.”
이렇게 되면 사람이 제대로 구해질 때까지 지한 식당은 오픈을 연기해야 할 판이었다.
거실 소파에 앉아 고민을 하던 강지한이 지갑에서 명함 한 장을 꺼냈다.
‘역시 여기에 기대를 걸어봐야 하나.’
그것은 서울에서 가져온 한지민의 명함이었다.
* * *
아침 여섯시.
맞춰 놓은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한지민은 잠에서 깼다.
“아우우웅~!”
힘껏 기지개를 켜는 그녀의 얼굴엔 설렘이 가득했다.
한지민은 요즘 하루하루가 즐거웠다.
비로소 천직을 찾은 기분이었다.
김밥으로 인기몰이를 하는 바람에 분식집을 찾는 손님들로 매일이 바빴다.
그럼에도 고되지가 않았다.
재미있었다.
눈을 뜨자마자 화장실로 들어가 샤워를 하고 나왔다.
위이이잉-
드라이기로 젖은 머리를 말리고 스마트폰을 확인했다.
그런데 간밤에 문자가 하나 와 있었다.
‘누구지?’
한지민이 문자를 확인했다.
-안녕하세요, 지민 씨. 강지한입니다. 드릴 말씀이 있어서 문자 드렸습니다. 한밤중이라 전화는 실례일 것 같아서요. 문자 확인하시면 연락 주세요.
“강 선생님?”
한지민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녀가 이것저것 생각할 것 없이 바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뚜루루루. 뚜루루루.
컬러링 없이 무미건조한 신호음이 흘렀다. 이어, 강지한의 음성이 들려왔다.
-여보세요.
“아, 네. 안녕하세요. 저 한지민인데요……. 강 선생님 전화 맞나요?”
-네, 맞아요. 전화 주셔서 감사해요, 지민 씨.
“아니요! 연락 주셔서 제가 감사하죠. 호호. 근데…… 번호는 어떻게 아셨어요?”
-분식집 들렀을 때 명함 챙겼었죠.
“아! 그랬겠네요, 참. 호호. 어쩐 일로 연락 주셨어요?”
-지민 씨 저번에 저한테 말씀하셨던 거 아직 유효한가요? 배우고 싶다던…….
그 말을 듣는 순간 한지민이 다급히 대답했다.
“그럼요!”
한지민은 결코 가벼운 마음으로 그런 말을 한 게 아니었다.
진심으로 강지한에게 요리 기술이라던가 음식을 만드는 자세와 마음 같은 것들을 배우고 싶었다.
-왜 저한테 배우고 싶으신 거죠?
“그건…….”
한지민은 강지한에게서 기술을 빼와 자기 부모님이 운영하는 분식집에 적용하려는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지금 그녀는 부모님의 일을 잠시 도와주는 입장이었다.
한지민이 궁극적으로 바라는 것은 언젠가는 홀로 서서 본인의 식당을 차리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혼자서 음식 공부를 해나갔다.
그러다가 한식 조리사 자격증을 따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레시피가 있으면 거기에 맞춘 일반적인 음식은 만들겠는데 창의적인 요리가 나오지를 않았다.
그래서는 진정한 요리사라 할 수 없었다.
본인의 식당을 가지려면 다른 곳에서 맛볼 수 없는 시그니처 메뉴가 한 개쯤은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녀의 지론이었다.
한지민이 그런 본인의 속사정을 전부 털어놓았다.
-그랬군요.
“네, 이런 고민을 하던 와중에 부모님이 분식집을 차리게 됐어요. 그래서 일단 현장 경험이라도 해보자는 생각으로 일을 돕게 된 거죠. 저한테는 스승님이 필요해요. 강 선생님은 제가 그리는 이상적인 스승님이시고요.”
한지민은 어쩌면 강지한이 그녀의 스승이 되어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
일전에 배우고 싶다고 한 말을 그냥 흘려듣지 않고 문자를 준 것일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일었다.
하지만 그것은 너무 성급한 생각이었다.
-글쎄요. 제가 누군가의 스승이 될 정도로 대단한 사람은 아니라서요.
강지한의 말에 한지민은 괜히 들떴던 자신을 책망했다.
“어머, 죄송해요. 부담스러우셨겠어요. 그냥 제 생각이 그렇다는 거였어요. 호호.”
허튼 생각은 접고 지금의 현실에 최선을 다하자고 속으로 다짐했다.
그런데, 다음 순간 스마트폰 너머로 의외의 말이 들려왔다.
-지민 씨, 제가 스승은 못되어드려도 현장 경험은 얼마든지 시켜 드릴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네?”
-물론 지민 씨와 저의 니즈가 서로 맞는다면요.
“가, 강 선생님. 지금 저 캐스팅, 아니, 직원으로 스카웃해 가시는 건가요?”
-그 전에 면접부터 봐야 하겠죠? 그래서 제가 지민 씨가 마음에 들고 지민 씨도 춘천에서 일할 여건이 되신다면 같이 일해 볼 수 있지 않을까요?
한지민이 제자리에서 방방 뛰며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잠시 동안의 기쁨을 만끽한 뒤, 그녀가 대답했다.
“안 되면 되게 해야죠. 일하고 싶어요. 배우고 싶고, 경험하고 싶어요. 면접 볼게요. 저한테 기회를 주세요.”
-그럼 제가 서울로 뵈러 갈게요.
“아니요! 제가 춘천으로 갈게요. 오늘은…… 분식집 일 때문에 안 되고, 대타 구해놓고 내일 갈게요, 선생님.”
-알겠습니다. 그럼 연락 주세요.
“네. 들어가세요!”
강지한과의 통화가 끝난 후, 한지민은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다.
그러다 비명처럼 웃음이 터져 나왔다.
어둡기만 하던 망망대해에서 인생의 등대를 만난 기분이었다.
* * *
다음 날, 오전 아홉시.
아직 강지한 말고 다른 직원들은 출근도 하지 않은 시각.
한지민은 지한 분식을 찾아왔다.
홀로 오픈 준비를 하고 있다가 갑자기 나타난 한지민을 안으로 들인 강지한이 살짝 당황했다.
“지민 씨? 이렇게 일찍 오실 줄은 몰랐어요.”
“얼른 만나 뵙고 싶어서 견딜 수가 있어야죠. 호호. 제가…… 혹 실례되는 행동을 한 거라면 죄송해요.”
“아니요. 그런 건 아니에요. 식사도 못하셨겠네요.”
“배고픈 줄도 모르겠어요.”
“그럼…… 저와 일할 생각이 있어서 면접을 보러 오신 거죠?”
“네.”
한지민이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지한 분식에서 일할 마음이 있는 그녀였으니 정보의 눈으로 상태창을 보는 게 가능해졌다.
강지한이 한지민의 상태창을 띄웠다.
그리고 그의 입에 진한 미소가 어렸다.
<한지민의 능력치>
직급: 주방 직원 면접자
등급: B+
능력: 요리 LV 6, 서빙 LV 7, 청소 LV 5, 회계 LV 4
정직도: 100/100
신뢰도: 98/100
종합 평가: 각 능력의 잠재력이 뛰어나며 배움이 빠르다. 특히 요리의 경우 창의력만 길러진다면 대성을 이룰 수 있다. 게으르지 않고 필요 이상으로 정직하다. 아직 고용주와 일을 하지도 않았는데 신뢰도가 높이 쌓여 있는 특이한 케이스.
지한 식당의 부주방장을 드디어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