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7
Restaurant 136. 만두의 비밀
반죽이라는 놈은 상당히 예민하다.
반죽에 들어가는 물의 양, 주변의 온도, 숙성 시간, 치댄 정도에 따라 그 식감과 탄력이 전부 달라진다.
그런 만큼 날씨의 영향 역시 예민하게 받아들일 터.
똑같은 반죽이라 하더라도 비가 오는 습한 날과 해가 쨍쨍한 맑은 날의 상태는 분명 다를 것이다.
그렇다면 반죽의 상태에 따라 찌는 시간 또한 달라져야 했다.
‘괜히 날씨 얘기를 한 게 아니었어.’
한돈선은 강지한에게 간접적으로 힌트를 준 것이다.
강지한의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카운터에서 계산을 마친 강지한이 직원에게 말했다.
“대가님께 큰 가르침 감사하다는 말 꼭 전해주세요.”
“네, 그대로 전해드리겠습니다.”
종업원이 미소로 화답했다.
강지한은 예소린과 함께 아띠를 나섰다.
그러자 주방에서 슬쩍 나선 한돈선이 식당 입구를 바라보며 흐뭇하게 미소 지었다.
“대가님, 다 들으셨죠?”
종업원의 말에 한돈선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 * *
가끔 강아지 주인들은 장난이랍시고 강아지에게 툭 던지는 말이 있다.
‘돈 벌어와!’
물론 진심은 아니다.
그런데, 지금 돈을 바가지로 벌어오는 강아지가 있었다.
바로 설탕이였다.
둠칫! 둠칫! 둠칫! 둠칫!
설탕이는 핑크핫 색상의 옷을 걸치고 분홍테 선글라스를 걸친 채 이향숙의 무릎 위에 앉아 있었다.
이향숙은 컴퓨터 앞 모니터에서 열심히 어깨를 들썩이는 중이었다.
그런 와중 설탕이의 앞발 두 개는 나란히 컴퓨터 책상 위에 놓여 있었는데 그 모습이 앙증맞기 그지없었다.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은 인튜브 라이브 방송으로 송출되고 있는 상황.
설탕이의 등장으로 채팅창은 난리가 났다.
글이 정신없이 올라가는 것은 기본이고, 꽃풍선이 100개, 200개, 500개, 심지어 1,000개씩 마구 터졌다.
“우리 향단이들~! 설탕이를 이렇게나 환영해줘서 고마워. 보답의 의미로 설탕이가 리액션 보여준대.”
이향숙이 카메라를 가져와 설탕이에게 가까이 가져갔다.
그러자 설탕이는 렌즈 가까이 앞발을 들이댔다.
순간 연갈색 곰돌이 젤리가 렌즈를 가득 채웠다.
이를 본 시청자들은 육성으로 비명을 지르며 키보드를 두들겼다.
-꺄아아아악! 곰돌이 미쳐!
-저기에 코 박고 죽고 싶다♥
-날 가져 설탕아. 엉엉ㅠㅠ
점점 시청자들의 반응이 달아오르자 이향숙이 오늘 방송의 목적인 신 푸드 신제품 네 가지를 꺼내 들었다.
“오늘 내가 하려는 컨텐츠는 신제품 리뷰 먹방이야. 먹으려고 가져온 건 보시다시피 신 푸드 신제품 4종 세트! 아직 시중에서 판매하지는 않는데 아는 지인 통해서 얻었어. 그 지인이 누구게? 바로 설탕이 주인~ 지한 오빠야. 이번 신 푸드 신제품은 지한 오빠랑 협업으로 만들어진 거거든. 나도 이번에 처음 먹어보는 거니까 솔직한 평가 해줄게.”
그때 누군가가 채팅창에 질문을 던졌다.
-가만 보니까 설탕이는 자기 주인 관련된 제품 리뷰하거나 홍보할 때마다 등장하는 것 같은데, 인정?
그 질문을 고대로 읽은 이향숙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어, 인정.”
그러자 시청자들이 우다다다 키보드를 두들기기 시작했다.
-그럼 내일도 설탕이 주인이랑 관련된 상품 홍보 부탁함!
-설탕이를 계속 볼 수 있는 방법이 요기잉네!
-설탕이만 나온다면 맨날 홍보해도 노상관♥♥♥♥♥
-시청자의 마음을 단 두 번 출연으로 사로잡은 갓설탕 당신은 도덕책…….
시청자들이 열심히 떠들어대는 걸 보며 이향숙은 먹방을 시작했다.
“그럼 우선 김치볶음밥부터 먹어보겠어.”
사실 이향숙은 레토르트 식품의 맛을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강지한의 솜씨를 의심하는 건 아니었다.
다만, 레토르트 식품이라는 것에 한계가 있으니 강지한의 손맛을 그대로 담아내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맛없어도 개오바해서 맛있다고 해줘야지.’
강지한을 친오빠처럼 생각하고 있는 이향숙이다.
어떻게든 그가 잘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김치볶음밥을 야무지게 입에 넣었다.
그리고 한입 씹자마자 기계적인 리액션이 튀어나오려던 찰나,
“와~ 여러분.”
이향숙이 말하다 말고 눈을 깜빡였다.
열리려던 그녀의 입이 다시 닫히더니 턱만 부지런히 움직였다.
그리고 입에 담긴 김치볶음밥을 다 먹고 난 뒤 이향숙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왜 그래?
-먹었으면 리뷰를 해라!
시청자들이 한참 난리를 치고 난 이후에야 비로소 이향숙의 입이 다시 터졌다.
“나 선아 언니 심정 알 것 같아. 개 맛있어, 여러분. 와, 감동! 시……!”
순간 너무 격해진 나머지 이향숙의 입에서 욕이 튀어나오려 했다.
그때, 설탕이가 짖었다.
“발.”
왕!
설탕이의 목소리가 이향숙의 뒷말을 잡아먹었다.
이를 본 시청자들은 거의 환장할 지경이 됐다.
-설탕이 타이밍 보소!
-저거 노리고 짖은 거지? 욕하는 거 막아준 거지?
-오늘도 설탕이는 사랑입니다.>_<
그렇게 레전드가 될 영상이 만들어졌다.
* * *
강지한과 예소린은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른 채 즐겁게 데이트를 즐겼다.
그러다 저녁이 되어 허기를 달래기 위해 또 다른 맛집을 찾았다.
동작역 근처에 있는 ‘밥 짓는 집’이라는 곳으로 아띠보다 대중적으로 더 유명한 곳이었다.
가격도 가장 비싼 코스 메뉴가 1인 5만 원 수준으로 저렴한 메뉴는 2만 원 코스까지 있어서 큰 부담이 없었다.
그럼에도 나오는 메뉴들이 제법 풍성하고 맛이 있어서 사람들의 평가가 상당히 좋았다.
내부의 분위기는 아띠처럼 개개인 방으로 꾸며져 있지 않고 오픈되어 있는 홀의 형식이었다.
워낙 사람이 많이 몰리다 보니 예약은 따로 받지 않았다.
강지한과 예소린도 15분 정도 웨이팅을 해서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두 사람이 앉자마자 밑반찬부터 세팅되었다.
주문은 기다리면서 종업원이 이미 받아간 터였다.
둘은 1인 5만 원 메뉴를 주문했다.
시작은 호박죽과 샐러드 궁중 잡채 같은 가벼운 음식을 시작으로 더덕무침, 보쌈, 한우떡갈비, 옥돔구이 등등의 요리들이 줄줄이 이어져 나왔다.
거기에 간장게장과 된장찌개, 돌솥밥까지 서빙이 됐다.
아띠처럼 한 가지 메뉴를 다 즐기면 다음 메뉴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 모든 요리들이 완성되는 대로 날라져 테이블 위를 가득 채웠다.
강지한이 테이블에 놓은 요리들의 레벨을 확인했다.
대부분 4에서 5수준이었다.
레벨 6까지 가는 음식은 하나도 없었다.
“어때?”
예소린이 이것저것 집어먹는 강지한에게 물었다.
“응, 맛있어. 상당히 대중적인 맛이야.”
“아띠랑은 다르게 조미료도 제법 들어간 것 같은데.”
“5만 원에 이 메뉴들을 다 감당하려면 어쩔 수 없지. 따로 육수 내고 비싼 부재료들을 사용하면 거덜날 거야.”
어찌 되었든 사람들이 다시 찾을 만한 맛과 가성비를 갖췄다는 생각이 들었다.
‘확실히 차이가 크구나.’
한돈선이 만든 요리들이 단순히 그의 이름값 때문에 비싼 게 아니었다.
그 요리들에는 그만큼의 좋은 재료와 정성과 수많은 연구로 이루어낸 맛의 정수가 담겨 있었다.
대중적인 식당과 셰프의 고집이 담긴 파인 다이닝 식당.
어느 것이 더 낫다고는 할 수 없다.
애초에 타깃층을 다르게 잡고 시작한 장사이고, 그들은 스스로가 정한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기에.
어디에서 식사를 할 건지에 대한 선택은 오로지 손님들의 몫이다.
강지한은 오늘, 두 번의 식사로 여러 가지를 배우게 됐다.
* * *
밤.
춘천으로 돌아온 강지한은 예소린을 바라다 준 뒤, 설탕이를 찾아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바로 만두피의 반죽에 들어갔다.
‘날씨에 따라 찌는 시간을 달리해야 하는 건 알겠어.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만두피의 비밀이 전부 풀리지 않는다.
한돈선의 만두피는 강지한이 모르는 또 다른 비밀이 담겨 있었다.
강지한은 그것을 파헤치기 위해 밀가루를 강력분과 중력분 두 가지를 번갈아 사용하며 반죽을 만들고 있었다.
강력분으로 다섯 덩이, 중력분으로 다섯 덩이를 만들었다.
다섯 덩이 모두 들어간 물의 양과 재료들이 달랐다.
저것들을 냉장고에 24시간 숙성해 두고 내일 밤, 만두를 쪘을 때 하나라도 한돈선의 만두피와 비슷한 식감을 보인다면 로또를 맞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강지한이 총 열 덩이의 반죽을 랩으로 싼 뒤, 신문지로 말아 냉장고에 넣었다.
찬기운이 반죽에 직접 닿으면 좋지 않기 때문이다.
“됐다.”
그가 냉장고 문을 닫고 손을 탁탁 털었다.
그런데 뒤에서 불길한 소리가 들렸다.
철푸덕.
“철푸덕?”
고개를 돌려보니 밀가루 두 봉지가 모두 쓰려져 있었다.
그 바람에 강력분과 중력분의 밀가루가 와르르 쏟아져 뒤섞여 버렸다.
이런 짓을 저지른 범인은 바로 설탕이였다.
“헐. 설탕아, 웬일로 안 하던 실수를 다 했어?”
설탕이는 엎어진 밀가루 봉지 근처에 앉아서 강지한을 보며 헥헥 댔다.
강지한은 평소에 보지 못한 설탕이의 모습이 귀여워서 큭큭 대며 웃었다.
“그래그래. 강아지가 사고도 한 번 쳐주고 그래야지.”
강지한이 설탕이를 혼내지도 않고 쏟아버린 밀가루를 치워 나갔다.
그때 갑자기 무언가가 번뜩이며 지나갔다.
“잠깐……. 이거 설마.”
무슨 생각이 떠오른 그가 바닥을 치우다 말고 큰 대접에 강력분과 중력 밀가루를 섞기 시작했다. 그리고 물과 소금을 넣어 열심히 반죽했다.
반죽 하나가 다 완성되자 이번엔 다른 비율로 밀가루를 섞어서 다시 반죽했다.
그런 식으로 총 다섯 덩이의 반죽이 새로 완성됐다.
‘한돈선 대가님의 만두피는 단단하면서도 면을 씹는 것 같은 쫄깃함이 있었어. 혹시 이게 답일지도 모른다.’
강지한은 다섯 덩이의 믹스 반죽도 냉장고에 넣으며 기대를 가득 품었다.
‘내가 왜 이 생각을 못했을까?’
어쩐지 느낌이 좋았다.
그동안 답답했던 실마리가 믹스 반죽으로 인해 풀릴 것 같았다.
그리고 이런 발상을 가능하게 해준 건 바로 설탕이였다.
“설탕아, 이거 잘되면 순전히 네 덕이다.”
왕! 헥헥.
강지한이 설탕이를 들어 올려 품에 안고 마구 얼굴을 비벼댔다.
이 녀석이 사고를 친 줄 알았는데, 길을 열어주었다.
빨리 내일이 오기를 바라는 강지한이었다.
* * *
다음 날, 밤.
강지한은 숙성된 열다섯 개의 반죽을 꺼냈다.
그리고 만두소를 만들어 총 열다섯 개의 만두를 만든 다음 헷갈리지 않도록 나름의 표시를 해서 찜통에 넣은 뒤 쪄냈다.
이후 하나하나 맛을 보기 시작했다.
우선 강력분으로 만든 만두피는 영 별로였다.
글루텐이 많이 함유되어 있는 강력분은 원래 빵을 만드는 데 적합한 밀가루다. 그렇다 보니 만두피로는 영 어울리지 않았다.
중력분으로 만든 만두피들은 약간씩의 차이는 있었으나 상당히 괜찮았다.
그러나 한돈선의 만두피만큼의 식감은 주지를 못했다.
강지한은 마지막으로 강력분과 중력분이 믹스된 만두를 맛보았다.
만두 자체의 레벨은 6으로 중력분 밀가루로 만든 만두와 같았다.
참고로 강력분을 사용한 만두는 레벨 5였다.
“냠.”
강지한이 만두 하나를 입에 넣고 씹었다.
동시에 그의 눈이 크게 떠졌다.
‘이거야.’
한돈선이 만든 만두피와 그 식감이 근접해지고 있었다.
강지한은 다른 만두 네 개도 맛을 봤다.
확실히 중력분 하나만 사용한 것보다 식감이 훨씬 좋았다.
중구난방 헤매던 차가 비로소 방향을 제대로 잡았다.
* * *
다시 하루가 더 지났다.
강지한은 어제의 일을 발판 삼아 반죽을 새로 만들어 숙성시켜 뒀다.
반죽에 소금이 많이 들어가면 간이 세서 잘 만들어진 만두소의 맛을 오히려 제대로 느낄 수 없게 된다.
마찬가지의 이유로 다른 물과 소금 외에 다른 재료가 들어가는 것 역시 좋지 않았다.
해서 오로지 강력분과 중력분, 물의 비율을 조정하고 소금간을 줄여서 반죽을 만들어 숙성시켰다.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오자마자 그것으로 만두를 빚었다.
여기서 또 중요한 포인트 하나.
한돈선의 만두피는 속의 소가 다 비출 정도로 대단히 얇았다.
특유의 탄력으로 인해 얇게 눌러 빚어도 터지지가 않았다.
만두피는 그저 만두소를 안전하게 보듬어 주는 것과 식감을 더해주는 용도로 족했다.
그에 강지한도 만두피를 얇게 눌러서 빚어내 쪘다.
약간의 시간이 흐르고 드디어 대망의 순간,
강지한이 찜기 안에 들어 있는 만두를 꺼내 확인했다.
그러자 만두의 등급창이 나타났다.
이를 본 강지한의 입이 감격으로 쩍 벌어졌다.
[강지한이 만든 최고의 만두]
요리 등급: LV 7
-쫄깃하고 탄력 있으면서도 얇은 만두피가 환상적이다. 스무 가지의 재료를 섞어 만든 만두소 역시 각 재료의 장점이 확실히 살면서 조화롭기까지 하다. 보통의 한국식 만두에서 경험하기 힘든 육즙까지 잡아낸 것이 특징.
“됐다!”
강지한이 두 주먹을 꽉 쥐고 환희에 차 만세를 불렀다.
드디어 그가 레벨7의 요리를 만들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