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하는 식당-136화 (136/330)

# 136

Restaurant 135. 파인 다이닝 한정식 아띠

일요일.

강지한은 일찍부터 예소린과 만나 맛집 투어를 시작했다.

그가 정한 맛집 리스트는 간단했다.

한돈선, 최현식, 레이먼 박이 직접 운영하고 있는 식당의 본점이었다.

세 사람의 식당은 전부 서울에 있었다.

하지만 하루 안에 세 곳을 전부 가기란 무리였다.

해서 오늘은 한돈선의 한식당 ‘아띠’ 본점에 가서 점심을 먹고 데이트를 하다가 저녁엔 한식으로 유명한 또 다른 식당을 찾을 예정이었다.

일정을 그렇게 잡은 이유엔 세 가지가 있었다.

첫째, 한돈선이 만든 만두의 비밀을 찾아내기 위함이었다.

둘째, 수준 높은 음식을 먹음으로서 스스로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함이었다.

셋째, 맛의 정수를 보여준다는 격조 높은 식당의 음식과 대중적으로 많은 이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식당의 차이를 비교해보기 위함이었다.

아띠는 무조건 예약제로 진행되어지고 있었다.

적어도 식사하기 하루 전 날에는 예약을 해야 했다.

휴일은 둘째, 넷째 주 월요일.

다행히 일요일에 문을 닫지 않았기에 강지한은 어제 예약을 해놓은 상황이었다.

인터넷 기사로 한돈선이 빠르게 쾌유를 하고 다시 주방으로 복귀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촬영을 하기는 힘들지만 식당은 운영해 나갈 수 있는 상황인 모양이었다.

강지한은 서울을 향해 달려가는 차 안에서 생각했다.

‘사고로 입원하기보다는 무슨 병에 걸린 것 같던데.’

인터넷 기사에서는 한돈선의 병명에 대해 일절 언급이 없었다.

그저 건강 악화로 입원했다가 이틀 만에 쾌차해서 퇴원했다는 사실만 적혀 있었다.

금방 회복이 가능하지만 촬영은 어렵고 주방에 서는 것은 가능한, 그런 병이 뭐가 있을까?

‘기사에 드러나지 않았다면 한돈선 본인이 밝히기를 꺼렸다는 얘긴데.’

고민을 하는 사이 강지한의 차는 서울로 진입하고 있었다.

* * *

“대가님, 괜찮으세요?”

아띠의 주방.

오늘 예약자 명단을 살피는 한돈선에게 부주방장이 물었다.

“괜찮아요.”

한돈선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그래도 조금 쉬시는 게 어떻습니까. 수술이 잘되었다고 해도 그 부위가 다시 터져 버리면 답도 없는데.”

“어허, 괜찮다니까.”

“제가 걸려봐서 아는 게 만만히 볼 게 아닙니다.”

부주방장이 말을 하며 한돈선의 엉덩이를 슬쩍 살폈다. 그 시선을 느낀 한돈선이 부주방장의 이마를 탁 때렸다.

“이 사람이 경망스럽게.”

“걱정되니 그렇죠.”

“됐어요. 어차피 난 지휘봉 들고 휘두르기만 하면 되는데 뭐 그렇게 유난을 떱니까.”

“하여튼 조금 이상하다 싶으시면 바로 퇴근하세요. 견과류 많이 드시고요.”

한돈선이 부주방장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예약 손님 명단을 마저 살폈다.

그런데 거기에 익숙한 이름 하나가 보였다.

‘강지한? 설마…… 그 강지한?’

* * *

강지한과 예소린은 은은하고 안락한 분위기의 방으로 안내됐다.

테이블 위엔 오늘 갓 꺾어온 듯한 싱그러운 홍자색 자란 꽃이 작은 유리병 위에 담겨 있었다.

자란 꽃은 아름다운 색감과 모양에 비해 향이 없는 것으로 유명하다. 음식에 조금이라도 해가 되지 않도록 향기 없는 꽃을 선택한 한돈선의 센스가 테이블에 고스란히 보였다.

강지한과 예소린이 예약한 것은 아띠의 대표 코스 메뉴 중 하나인 ‘달보드레 점심상’이었다.

달보드레는 순우리말로 달달하고 부드럽다는 뜻이다.

가격은 1인 17만 원으로 상당했다.

음식은 식전 주전부리를 시작으로 간단한 에피타이저 요리가 죽, 편채, 겉절이의 형식으로 세 가지가 나왔다.

종업원들은 하나의 요리가 나올 때마다 그 요리들이 어찌 만들어졌으며 어디에서 재료를 공수해 왔는지에 대해 친절하고 공손한 자세로 설명을 해주었다.

게다가 요리 하나를 다 먹으면 접시와 수저를 매번 새것으로 갈아주는 정성을 보였다.

요리들이 담겨 나오는 식기들도 하나같이 다른 모양으로 개성이 있었지만 큰 테두리 안에서의 톤 앤 매너는 어긋나지 않도록 유지하고 있었다.

그것 역시 한돈선의 감각이었다.

강지한은 종업원들이 내오는 음식 하나하나를 천천히, 그리고 깊이 음미했다.

시각, 청각, 후각, 미각을 동원해 요리가 품고 있는 맛의 정수를 전부 느끼기 위해 애썼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의 테이블에 놓인 요리들은 한결같이 레벨 7~8의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으니.

과연 그 레벨만큼이나 음식들은 최고였다.

각각의 요리들은 하나같이 제철 식재료를 사용했다. 게다가 그 식재료들은 전국팔도를 직접 발로 뛰어 찾아낸 가장 맛있는 곳에서 공수해 왔다.

제철을 맞은 좋은 식재료.

이미 그것만으로도 요리의 반 이상이 완성되었다고 볼 수 있었다.

한돈선은 그 식재료들의 장점을 최대한 끌어내고 단점을 감추어 손님들의 입안을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요리들을 만들어냈다.

요리 하나하나에서 강지한은 그것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재료가 가지고 있는 특징을 어느 하나 죽이지 않았다. 전부 알알이 살려서 한돈선만의 과하지 않은 조리법으로 잘 버무려 손님상에 올렸다.

‘미치겠다.’

이것은 식재료 본연의 맛과 성질, 특성에 대해 완벽히 이해하고 있지 않은 이상 불가능한 경지였다.

한돈선이 얼마나 끊임없이 연구하고 공부해 왔는지를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에피타이저 다음으로는 갈비찜과 관자 요리, 낙지 젓갈이 들어간 육회 등등의 무게감 있는 메인 요리가 서빙됐다.

메인 요리는 하나같이 8레벨이었다.

특히 갈비찜은 먹기 편하도록 뼈를 제거하고 내왔는데 입에 넣는 순간 부드럽게 살살 녹았다.

강지한은 살아가면서 이토록 맛있는 갈비찜을 먹어본 적이 없었다.

대체 어떻게 하면 갈비찜이 녹아내리는 것 같은 착각이 들 만큼 부드럽게 만들 수 있는 건지 감탄스러울 지경이었다.

마치 요리에 어떤 마술을 부린 것만 같았다.

메인 요리를 다 먹고 난 뒤엔 식사가 나왔다.

종업원이 강지한의 앞에 정성스럽게 놓아준 건 싱싱한 성게와 제철 채소가 듬뿍 들어간 성게비빔밥이었다.

강지한이 그것을 슥슥 비벼서 맛봤다.

“와.”

그저 감탄만 나오는 맛이었다.

일반적인 성게 비빔밥과 달리 튀긴 곡물과 물에 박박 씻은 묵은지를 잘게 썰어 넣었는데, 그 식감과 맛이 성게와 기가 막히게 잘 어울렸다.

강지한이 다시 한입 크게 밥을 떴다.

이번에는 맛과 식감보다 향에 더욱 집중했다.

처음에는 성게 본연의 바다내음이 확 하고 퍼지더니 다음에는 은은한 참기름 향이 과하지 않은 고소함을 안겨주었다.

성게비빔밥에 곁들여 나오는 세 가지 나물 반찬과 미역국 또한 맛이 기가 막혔다.

식사가 끝난 뒤엔 디저트로 흑임자 아이스크림과 수정과가 나왔다.

코스 요리의 마지막은 향이 그윽한 매화차와 삼색 다식(茶食)이었다.

그렇게 한 코스를 전부 먹고 난 강지한은 여태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것 같았다.

배움에는 끝이 없다더니 그것을 몸소 체험하고 있었다.

‘정말 대단했어.’

한돈선에 비하면 자신은 우물 안 개구리에 불과했다.

순간 배틀 셰프의 매 라운드마다 자신있게 이런저런 요리를 내놓았던 스스로의 모습이 부끄러워졌다.

심사위원들은 이 정도의 실력이 있음에도 잘 만든 지원자들의 음식을 칭찬하고 감탄해 주었다.

그런 자세가 스스로를 계속해서 발전시켜 나아가는 원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코스 요리가 끝난 뒤, 강지한은 따로 고기만두를 주문했다.

고기만두는 15분 정도가 지나서야 나왔다.

한 접시에 네 알 담긴 것이 20,000원이었다.

대단히 비쌌지만 일단 한 번 먹어보면 그 어마어마한 가격도 절로 수긍이 갔다.

강지한은 만두를 먹으며 자신이 만든 만두와 무엇이 다른지 연구했다.

‘만두소는 내가 만든 것이 크게 부족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아. 그런데…… 만두피가 다르다.’

비밀은 만두피에 있었다.

강지한도 나름대로 만두피를 신경 써서 만들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이만큼 쫀득하고 맛있는 만두피가 나오지 않았다.

만두 네 알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후아, 잘 먹었다.”

예소린이 크게 만족한 얼굴로 배를 어루만졌다.

“나, 이런 파인 다이닝(fine-dining: 고급 식당)은 처음이야.”

“그래?”

“응. 뭐든 첫 경험이 중요하다고 하는데 정말 대만족했어. 지한 씨는?”

“나도. 사실 이 정도일 줄은 몰랐어.”

“난 여태까지 지한 씨 음식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거라고만 생각했었는데, 그 위도 있었네?”

예소린이 괜히 놀리듯 그리 말하며 생글생글 웃었다.

“일부러 자존심 긁는 거지?”

“그래야 더 열심히 해서 빨리 이 경지에 오르지.”

“안 긁어도 그럴 거야. 나도 어서 이 요리들을 따라잡고 싶거든.”

지금 강지한의 안에서는 어마어마한 열정과 투지가 활활 불타오르고 있었다.

그때였다.

똑똑.

노크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그러고는 예상치 못했던 사람이 방 안으로 들어섰다.

그는 한돈선이었다.

“대가님!”

놀란 강지한이 벌떡 일어나려 하자, 한돈선이 손짓으로 만류했다.

“편히 앉아 있도록 해요. 오늘은 우리 식당의 손님으로 오신 거니까요. 호호호.”

“아……. 네. 그나저나 몸은 좀 괜찮으세요? 어정원 작가님한테 연락 받고 깜짝 놀랐어요. 어디가 안 좋으셨던 거예요?”

강지한의 물음에 한돈선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돌렸다.

“별거 아니었으니 걱정 안 해도 돼요. 그보다 음식은 입에 맞으셨나요?”

“정말 맛있었어요.”

“저도요.”

강지한과 예소린이 차례대로 대답했다.

자신의 요리를 맛있게 먹어주었다는 말에 한돈선의 미소가 짙어졌다.

“언제 들어도 기분 좋은 말이네요. 호호호. 그나저나 여기 아름다운 여성분께서는 강지한 씨 애인 되시나요?”

“네. 예소린이라고 해요. 뵙게 돼서 영광이에요, 대가님. 지한 씨가 대가님 얘기를 자주 했었거든요.”

“어머, 그래요? 어떻게 좋은 얘기를 하던가요? 아니면 흉을 보던가요?”

“전 자극적인 걸 좋아해서 흉을 봤으면 싶은데 항상 저 입에서는 칭찬만 나오더라고요.”

그 말에 한돈선이 가늘게 뜬 눈을 강지한에게 돌렸다.

“지한 씨는 참 여러모로 복 받은 사람이네요. 이렇게 예쁘고 지혜로운 여인 얻기가 하늘의 별 따기만큼이나 힘든 일인데.”

“들었지, 지한 씨?”

“하하하.”

난데없는 두 사람의 쿵짝에 강지한은 그저 웃어 버렸다.

“아무튼 이렇게 찾아주어서 감사하네요. 그나저나 내 만두의 비밀은 밝혀냈나요?”

한돈선은 강지한이 굳이 만두를 따로 주문한 내심을 전부 꿰뚫고 있었다.

속을 읽혀버려 멋쩍어진 강지한이 뺨을 긁적였다.

“그게 참…… 어렵네요. 만두소는 어떻게 흉내라도 낼 수 있을 것 같은데 만두피가 오리무중이에요.”

답답해하는 강지한에게 한돈선이 뜬금없는 질문을 던졌다.

“지한 씨, 오늘 날씨가 어떤가요?”

“네? 음……. 맑았어요.”

“그렇죠? 구름 한 점 없이 쾌청해서 파란 하늘을 오래간만에 봤어요. 해서 가만히 올려다보고 있자니 내 마음도 덩달아 맑아지는 것 같더군요. 그런데 비가 주륵주륵 내리는 날은 우중충한 하늘따라 내 마음도 구겨지는 것 같아요.”

“아…… 네.”

강지한은 한돈선의 말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런 강지한을 가만히 바라보던 한돈선이 방긋 웃더니 작별인사를 건넸다.

“그럼 모처럼 서울에 왔으니 데이트도 즐기다가 느긋하게 내려가도록 하세요. 다음 주에 배틀 셰프 키친에서 뵙도록 할게요.”

말을 마친 한돈선은 두 사람에게 목례하고 방을 나섰다.

“그만 갈까?”

“응.”

강지한은 예소린과 함께 방을 나와 계산을 하려고 카운터 앞에 섰다.

한데 그때, 갑자기 뒤통수가 쾅! 하고 울렸다.

‘……알았다.’

한돈선이 왜 갑자기 날씨 타령을 했는지 강지한은 비로소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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