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3
Restaurant 132. 드라마 PPL
강지한은 조금 어리둥절해지는 기분이었다.
세 번째 스테이지의 보상이 잃어버린 기억이라니?
사람은 누구나 살면서 과거의 기억을 조금씩 잃어버리게 마련이다.
강지한 역시 잃어버린 많은 기억들이 있다.
한데 그 기억들을 전부 되살려 주는 것도 아니고 ‘한 조각’을 살려준다고 한다.
그렇다고 레벨 업 시스템이 그에게 해가 되거나 쓸데없는 것을 보상으로 내어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필시 강지한에게 상당히 필요한 보상일 텐데, 잃어버린 기억이 어떤 식으로 도움이 될지 짐작할 수가 없었다.
어차피 답이 안 나올 걸 오래도록 붙잡고 있는 걸 강지한은 싫어했다.
거기에 대해서는 넘겨두고 다른 걸 살폈다.
‘난이도가 상급자로 바뀌었네.’
보너스 스테이지 2까지는 중급자의 난이도가 적용됐었다.
그런데 스테이지 3부터 난이도가 상급자로 바뀌었다.
그에 따라 만족도를 습득 가능한 기간이 10일로 줄어든 것 같았다.
이번 스테이지의 목표는 분점을 하나 내는 것.
강지한은 여태 분점 같은 것은 내지 않고 새로운 업종을 만들어 나갔다.
시작은 지한 분식으로 김치 사업을 이어나갔고 김치전골집을 차렸으며 이제는 김치 공장까지 돌리고 있었다.
한데 지한 식당부터는 필연적으로 분점을 만들어야 하는 상황.
‘나쁠 건 없지.’
어차피 분점을 꾸려나갈 수 있는 시스템은 만들어 놓았다.
강지한이 요리하는데 필수적인 육수와 양념장들을 만들어 놓으면 그것을 레시피대로 요리할 경우 레벨5의 수준은 충분히 끌어 낼 수 있었다.
중요한 건 분점을 낼 수 있을 정도로 장사가 잘되어야 한다는 것.
괜히 퀘스트를 깨려고 상황도 되지 않는데 분점을 열었다간 나머지 사업도 다 말아먹기 십상이다.
‘아직 오픈 전이라 모든 정보가 다 열리지는 않았네.’
오픈을 하면 저기서 몇 가지 정보가 더 추가된다.
강지한은 불을 켜서 식당 내부를 둘러봤다.
전 건물주가 식당을 오픈한 지 얼마 안 되어서 내놨기에 손때도 묻어 있지 않고 전체적으로 깔끔했다.
건물 자체가 신축은 아니었지만 리모델링을 새로 한 데다가 의지와 테이블 같은 것들도 전부 새것이라 따로 손을 볼 필요가 없었다.
주방에는 식기와 가재도구까지 그대로였다.
아무래도 전 주인이 어설프게 식당일에 도전했다가 아니다 싶어서 빨리 발을 뺀 모양.
제대로 꾸려갈 자신이 없으면 유지해 나가며 돈 낭비 말고 이렇게 하는 것이 차라리 현명했다.
식당을 살 때 들어간 권리금은 단골 때문이 아니라 내부적으로 들어간 설비와 기재 값으로 인한 것이었다.
‘주방도 깨끗하네.’
강지한이 주방을 살펴보는 동안 설탕이는 홀의 입구에서 얌전히 앉아 있었다.
여기가 곧 식당을 할 장소라는 걸 아는 것처럼 털을 날리며 돌아다니지 않았다.
주방에서 나온 강지한은 그런 설탕이의 모습이 기특했다.
“우리 설탕이, 여기서 기다리고 있었어?”
헥헥헥!
강지한이 설탕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녀석의 머리 위에 떠 있는 하트는 붉은색이 거의 다 차올라 있었다.
이제 조금만 더 애정도를 채워주면 15레벨이 될 터였다.
“이게 가자.”
강지한이 설탕이와 함께 식당을 나섰다.
내일부터는 식당의 오픈을 위해 신경 써야 할 일들이 많아질 테니 오늘은 일찍 들어가서 쉬기로 했다.
그때 강지한의 스마트폰으로 문자가 도착했다.
보낸 사람은 배틀 셰프 메인 작가였다.
문자의 내용은 이랬다.
-안녕하세요, 강지한님. 배틀 셰프 메인 작가 어정원입니다. 늦은 시간에 문자 드린 이유는 이번 주 녹화 예정이었던 배틀 셰프가 한돈선 심사위원님의 건강상 문제로 한 주 지연되었다는 공지를 전해드리기 위함입니다. 갑작스런 일정 변경으로 혼란을 드려 죄송합니다. 단톡방에도 공지해 놓았지만 혹시 몰라 문자 남깁니다. 내일 늦지 않은 시간에 다시 전화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한돈선 심사위원님이?’
녹화를 하지 못할 정도면 상당히 안 좋다는 얘기다.
자신에게 유독 호감을 보였던 이가 아프다고 하니 괜히 마음이 안 좋았다.
강지한은 부디 큰일이 아니기를 바랐다.
* * *
6월 15일, 금요일.
동이 터오는 와중에도 잠 한숨 자지 못하고서 열심히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분식집 막내아들의 촬영팀과 출연자들이었다.
총 20부작 예정인 분식집 막내아들은 어제까지 총8화가 방영됐다.
현제 세이브된 회차는 3회차였고 오늘은 12화를 촬영 중이었다.
그런데 송만대 감독의 얼굴이 구겨졌다.
또다시 배우들의 연기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음식을 먹고 나서 풍부한 표현을 해내지 못하고 있었다.
벌써 두 달 넘게 이어진 촬영 강행군에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었기 때문이었다.
그걸 잘 아는 송만대인지라 배우들을 마구 꾸짖을 수도 없는 노릇.
곰곰이 타계책을 고민하던 그가 윤선아를 불렀다.
“선아야, 이리와 봐.”
“네. 감독님.”
윤선아가 후다닥 달려 송만대의 곁에 섰다.
“전에 네 매니저가 사온 떡볶이 있지?”
“아, 지한 분식 떡볶이요?”
“사장님이 배틀 셰프 출연중인 강지한 씨라 그랬었나?”
“네.”
“그 집 춘천에 있다고?”
“네. 사오라고 할까요?”
그에 송만대가 잠시 고민하다가 뜻밖의 얘기를 꺼냈다.
“사장님을 좀 모셔오면 좋겠는데.”
“……네?”
“지금 맛의 전달력도 문제지만 요리하는 장면도 내 성에 안 찬다고.”
배우들은 이 드라마에 투입되기 전 전문 요리사에게 이것저것 요리에 대한 교육을 받았다.
하지만 송만대 감독의 눈엔 그렇게 어설프기 짝이 없었다.
해서 진짜 요리사를 모셔다가 요리하는 장면만 대역을 부탁했다.
그렇게 하고 나니 조금 나았지만, 여전히 마음에 확 들지는 않았다.
좌경우가 맡은 주인공 나세민은 분식계의 전설로 우뚝 서나가는 캐릭터다.
드라마가 초반에야 조금 어색해도 넘어갈 수 있었다.
중반까지는 대역으로 커버했다.
한데 중반을 넘은 지금에 와서는 대역의 손놀림도 영 눈에 차지 않았다.
나세민은 스물 중반의 나이로 설정된 만큼 그 나이대의 요리사를 대역으로 구해야 했다.
한데 스물 중반이라고 하면 빨리 성공한 케이스라고 해도 이제 겨우 주방장 딱지를 달까 말까 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런 사람들의 손놀림이 분식계의 전설 나세민의 손놀림을 흉내내기에는 부족함이 많았다.
그 때문에 나이 좀 있더라도 손이 젊어 보이는 요리사들을 알아보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 송만대는 배틀 셰프의 방송으로 강지한을 접했다.
이십대 중반 정도 되어 보이는 고운 얼굴에 반해 요리를 하는 손놀림은 그야말로 귀신같았다.
물론 편집의 힘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해도 그 나이 대에 결코 오를 수 없는 경지를 그는 보여주었다.
송만대가 생각하고 있는 나세민의 역할에 딱 맞았다.
그러니 이왕 대역을 쓸 거라면 강지한을 데려오고 싶었다.
“선아는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게 아니라고 했지?”
“네.”
“조감독.”
송만대가 옆에 있던 조감독을 부리부리한 눈으로 쏘아보며 물었다.
“모셔올 수 있지?”
이건 모셔올 수 없어도 모셔오겠다고 대답해야 할 판이었다.
조감독이 뭐라고 입을 열기도 전에 송만대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지금 당장 춘천으로 쏴.”
* * *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
그게 드라마 판이다.
드라마를 찍다 보면 별의별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다 일어난다.
그때마다 스텝들은 머리가 터지고 몸이 힘들어진다.
지금도 그랬다.
조감독은 예정에도 없던 춘천으로 가서 분식집 사장을 모셔 와야 했다.
안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부딪혀 보기 전까지는 불가능을 논해서는 안 되는 일.
네비에 찍힌 목적지까지는 1킬로미터도 안 남은 시점.
지한 분식이 가까워질수록 조감독의 가슴이 콩닥거리며 뛰었다.
* * *
-하하하하! 강 사장님. 오늘도 무탈하신가요?
요즘 신장호는 하루에 한 번씩 꼭 전화를 걸어오곤 했다.
그것도 강지한이 바쁘지 않을 이른 아침이나 브레이크 타임만 골라서.
통화를 할 때마다 신장호는 신제품이 얼마나 순풍에 돛 단 듯 좋은 반응을 이어가고 있는지 알려주기 바빴다.
-어제부터 선주문을 받기 시작했는데 난리도 아닙니다. 하루 동안 예상했던 것의 세 배 넘는 주문이 쏟아져 들어왔어요.
자신이 함께한 제품들의 반응이 괜찮다고 하니 강지한도 기분이 좋았다.
아울러 신제품의 판매 수익 중 일부는 강지한에게 돌아온다.
애초에 계약할 당시 다른 기술 지원금 같은 걸 받지 않고 판매 수익의 2퍼센트를 갖기로 했던 강지한이었다.
때문에 신푸드의 신제품 반응이 좋을수록 수익에 대한 기대가 커졌다.
-이대로 분식집 막내아들 PPL만 따내면 더 좋을 텐데. 알아봤더니 그건 좀 어려울 것 같습디다. 시청률이 40퍼센트가 넘어가는 드라마인지라 이미 이곳저곳에서 경쟁이 심한가 봐요. 하나같이 고래 싸움인지라 우리는 감히 들이 밀어볼 엄두를 내지 못하겠어요.
“그렇군요.”
확실히 그렇게 시청률이 높은 드라마에 PPL을 넣으면 기대수익이 어마어마하게 높아진다.
-조금 아쉽지만 그래도 이게 어딥니까. 하하하하. 앞으로도 더 멀리 갈수 있도록 열심히 홍보하겠습니다.
“네. 부탁드릴게요.”
-그럼 오늘도 파이팅하는 하루 되십시오.
통화가 끝난 후 강지한은 입맛을 다셨다.
“인기드라마 PPL은 역시 어렵구나.”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설탕이와 출근한 강지한은 녀석을 애견 카페에 맡긴 뒤 식당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아직 오픈하지도 않은 식당 앞에 누군가가 서 있었다.
조금 전까지는 없었던 사람이다.
“누구세요?”
강지한이 물으니 그 사람은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아! 강지한 씨, 맞으시죠?”
“네, 그런데요?”
“반갑습니다! 배틀 셰프 정말 잘 보고 있습니다.”
거짓말이다.
그걸 볼 시간이 없었다.
그냥 가끔 뒤지던 연예기사에서 몇 번 그의 얼굴을 접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귀로는 딱지가 앉을 만큼 그의 얘기를 많이 들었다.
좌경우와 윤선아는 드라마 회식 때마다 강지한의 이야기를 하기 바빴다.
특히 좌경우는 강지한이야말로 살아 있는 요리계의 전설이 될 인물이라고 늘 치켜세우곤 했다.
자신의 인생을 바꿔놓은 은인이기도 하다는 말 역시 자주 뱉었다.
“저, 분식집 막내아들 조감독 윤신현입니다.”
“아……. 저도 드라마 잘 보고 있습니다. 한데 조감독님께서 여긴 왜……?”
강지한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아니 제가 워낙 강지한 씨 팬이기도 하고 우리 주조연 배우님들이 강지한 씨에 대한 칭찬을 입에 침이 마르도록 해대기에 어떤 분이신지 궁금하기도 해서 이렇게 찾아뵈려고 왔죠.”
윤신현이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말을 빙 돌렸다.
“네? 지금 드라마 촬영으로 바쁘지 않으세요?”
“바쁘죠. 눈 코 뜰 새가 없어요. 그런 와중에도 제가 지대한 팬심으로 지한 씨를 보러온 겁니다. 아, 식당 오픈하러 나오신 거죠?”
“네.”
“제가 도와드릴게요.”
“괜찮아요. 혼자 할 수 있고 곧 직원들 출근할 거예요.”
“그 전까지만 도와드릴게요.”
그리 말한 윤신현이 강지한이 문을 열자마자 홀로 들어와 능숙하게 빗자루를 찾아내 바닥을 쓸었다.
“아유, 얼마나 관리를 잘하시는지 별로 쓸 것도 없네요. 하하.”
강지한은 갑자기 찾아와서 이러는 윤신현의 의중을 알 수가 없었다.
한데 그가 얼마 안 있어 의중을 슬쩍 드러냈다.
“저…… 지한 씨. 혹시 오늘 많이 바쁘실까요?”
“손님이 많이 오셔서 아무래도 그렇죠.”
“아……. 그럼 하루 정도 식당 비우기 어려우실까요?”
“왜 그러세요? 이유부터 듣고 싶네요.”
“실은 드라마 촬영에 주연 대신 요리하는 장면을 연출해 주실 대역이 필요하거든요. 아무리 생각해도 강지한 씨만 한 적임자가 없어서 이렇게 왔습니다. 하루. 딱 하루만 고생해 주시면 됩니다.”
아무리 드라마를 위해 앞뒤 안 가리는 송만대라 하더라도 본업으로 바쁜 사람을 며칠씩이나 잡아둘 생각은 없었다.
하루 동안 앞으로 드라마에 등장할 요리 컷을 전부 따 놓을 셈이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윤신현의 제안에 강지한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의 머릿속에서 조금 전 통화했던 신장호의 음성이 맴돌았다.
-이대로 분식집 막내아들 PPL만 따내면 더 좋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