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1
Restaurant 130. 가르치는 설탕이
윤선아의 ‘망부석 리액션’은 인터넷상에서 화제를 일으키며 빠르게 퍼져 나갔다.
그녀가 직접 올린 인튜브의 채널의 본영상의 조회수는 단 하루만에 100만을 돌파했다.
심지어 ‘망부석 리액션’ 부분만 움짤로 만들어 퍼뜨리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윤선아의 신제품 리뷰가 대박을 치며 신푸드의 신제품을 찾는 고객들이 늘어났다.
뿐만 아니라 다른 인터넷 BJ들과 블로거들, SNS 유명인사들 역시 신푸드의 신제품을 극찬하고 있었다.
그로 인해 신푸드의 영업부 전화기엔 불이 붙었고 신장호는 기분 좋은 비명을 질렀다.
“하하하하하!”
사장실에 그의 웃음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그는 소파에 몸을 깊이 파묻고 앉아 강지한과 통화를 하는 중이었다.
“강 사장님 덕분에 우리가 노나게 생겼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아니에요. 사장님께서 마케팅을 잘해주신 덕분이죠. 특히 윤선아 씨의 망부석 리액션이 재미있던데요.
“아, 보셨습니까?”
-네.
강지한은 그런 걸 직접 찾아보는 성격이 아니었다.
이런 영상은 주로 이리나가 먼저 접하고서 강지한에게 보여주곤 했다.
“윤선아 씨는 아직 아이돌로 데뷔하기 전, 우리 회사 광고 모델로 잠깐 활동했던 연이 죽 이어지고 있지요. 해서 신제품이 나올 때마다 보내드리곤 했는데 이번에 대박을 쳤습니다! 하하하!”
호방한 웃음에서 신장호의 기분이 얼마나 좋은지 알 수 있었다.
강지한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앞으로도 분식집 막내아들 꾸준히 시청해야겠네요.
“잘하면 그 드라마에 PPL도 살짝 밀어 넣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 중입니다.”
-잘됐으면 좋겠네요.
“아, 그리고 강 사장님. 이제 슬슬 다른 제품들도 리스트 업 해보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
신장호는 애초 강지한과 김치 관련 제품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제품들에 대한 레시피 지원 계약을 맺으려 했다.
하지만 이를 강지한이 고사했다.
아직 이런 사업을 하는 것은 처음인 데다 둘 사이의 관계가 돈독하지 못하니 한발 뺐던 것.
한데 김치 공장을 가동하면서 보아왔던 그의 인품과 사업을 부지런히 진행하는 그의 모습에서 강지한은 어느 정도의 믿음이 생겨났다.
-좋습니다.
스마트폰 너머로 신장호가 애타게 원했던 대답이 들려왔다.
그는 신제품이 화제가 되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보다 더욱 기뻤다.
“아이고! 고맙습니다, 강 사장님! 제가 근일간 찾아뵙지요!”
-네. 연락 주세요.
강지한과 전화를 끊은 신장호가 껄껄 웃었다.
“우리 일중이가 복덩이를 물고 온 거지. 아, 강지한 사장. 정말 난 사람이야.”
* * *
하준수는 지상파 방송국 KBM의 예능 피디다.
그가 지금 맡고 있는 프로그램은 ‘동물의 농장’이었다.
동물의 농장은 KBM에서 15년 간 롱런하고 있는 장수 코너였다.
INTV에서 방영 중인 ‘신비한 동물의 세계’가 마이너라면 동물의 농장은 메이저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팬층이 두터웠고 시청률이나 인지도가 크게 차이 났다.
한데 요즘 INTV의 시청률 상승세가 예사롭지 않았다.
설탕이가 출연한 이후 많은 사람들이 신비한 동물의 세계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는 걸 인지하게 됐다.
시청률이 오르지 시작한 것은 바로 그때부터였다.
하준수도 그 프로그램을 봤던 터였다.
설탕이라는 강아지는 처음 본 순간부터 스타성이 확연히 느껴지는 그런 녀석이었다.
‘왜 저 녀석을 먼저 찾지 못했지?’라는 생각이 들 만큼 아까운 아이템을 하나 빼앗겨서 속이 쓰린 하준수였다.
실상 두 프로그램은 방송 시간대가 달라 다른 프로가 잘되더라도 시청률 등락에는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
그래도 좋은 아이템을 선점하지 못했다는 건 아쉬운 일이었다.
요즘은 작가들도 이렇다 할 아이템을 가져오지 못해 조금 머리가 아픈 상황.
하준수가 평소 알고 지내는 도그 앤 라이프 서브 디렉터 로버트 정에게 전화를 걸었다.
-준수 씨~ 아침부터 무슨 일? 내 목소리 듣고 기분 좋은 하루 시작하고 싶어서?
이놈의 느끼한 멘트는 백 번을 들어도 적응이 되질 않았다.
“영양가 없는 소리 그만하시고. 정 디렉터, 혹시 주변에 아주 신박한 강아지 어디 없을까?”
-있지.
“정말? 어디? 어떤 녀석인데?”
-설탕이라고 춘천에 똑똑한 아이 있는데.
로버트 정의 말에 하준수는 김이 팍 빠졌다.
“이미 다른 프로에서 방영했던 애잖아.”
-뭐 어때? 시청자들은 설탕이 다시 한 번 출연 안 하냐고 난리가 났던데.
“에이. 아무리 그래도 방송 탄 지 얼마나 됐다고. 지금 가서 촬영하는 건 너무 우라까이지.”
-준수 씨는 그게 문제야. 너무 고지식하단 말씀. 당시 설탕이가 방송을 탔을 때는 완전 애기였어요. 근데 지금은 어느 정도 컸단 말이야. 그러니까 설탕이의 이력을 모른 척 촬영하는 컨셉으로 가는 거지.
그 말을 듣는 순간 하준수의 입에 미소가 맺혔다.
“아하. 그리고 이런 식으로 편집하면 되겠네. 근데 이 녀석 이미 한 번 방송을 탄 전적이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상대 프로 방송 탔던 장면 삽입해 주고?”
-역시 고지식해도 피디 짬밥 어디 안 가네.
그렇게 되면 신비한 동물의 세계도 한 번 더 사람들에게 회자된다.
프로그램이 어떤 식으로든 대중에게 노출된다는 건 좋은 일이다.
때문에 이렇게 진행하면 상대 프로에서도 크게 다른 말을 하지 않을 터.
“흐흐. 고마워, 정 디렉터. 조만간 식사 한 번 해.”
-오! 그럼 춘천에서 봐요.
“춘천? 거긴 왜?”
-설탕이 주인이 분식집을 하는데, 거기 음식이 기가 막혀. 아! 설탕이 촬영할 때 어차피 춘천 갈 테니 거기서 보면 되겠네.
“……그래요, 그럼.”
전화를 끊고 난 하준수는 코웃음을 쳤다.
“분식집 음식이 거기서 거기지. 오바는.”
* * *
6월 13일, 수요일.
하준수 피디는 VJ 두 명과 직접 춘천을 찾았다.
설탕이의 촬영 허가는 전날 밤에 미리 받아놓은 상황.
사실, 일이 빠르게 진행될까 싶었는데 강지한은 의외로 순순히 촬영에 협조 의사를 밝혔다.
강지한이 이런 결정을 한 것은 백 퍼센트 설탕이 본인의 의사를 존중한 결과였다.
강지한과 설탕이는 교감이 남다르다.
해서 강지한은 설탕이가 무엇을 원하는지 대체로 알 수 있었다.
어젯밤, 하준수에게 섭외 전화를 받았을 때 강지한은 바로 설탕이의 의사를 물었다.
그에 설탕이는 제자리에서 두 바퀴를 빙글빙글 돌더니 꼬리를 마구 흔들며 헥헥 댔다.
마치 또 한 번 방송을 타게 된다는 사실에 들뜬 어린아이 같았다.
강지한은 설탕이의 뜻을 받잡아 촬영을 허락했고 하준수 피디는 오전부터 예소린의 애견 카페, 뽀삐의 하루를 방문했다.
예소린과도 사전에 촬영 약속이 끝난 터였다.
촬영 장비를 들고 우르르 카페 안으로 들어오는 방송 관계자들을 예소린이 반갑게 맞이했다.
“안녕하세요.”
“네~ 반갑습…… 니다.”
반사적으로 인사를 건네던 하준수의 동공이 멍하니 풀렸다.
예소린의 예상 못한 미모에 제대로 기습을 당한 것.
‘일반인 맞아?’
예소린의 외모와 몸매의 피지컬은 그가 숱하게 보아왔던 S급 탤런트 못지않을 정도였다.
넋이 나가 있던 하준수는 함께 온 여자 VJ가 옆구리를 툭 치고 난 뒤에야 정신을 차렸다.
“아, 저기. 설탕이는 어디 있…… 응?”
하준수가 주변을 두리번거릴 때 그의 오른쪽 발등에 약간의 무게감이 실리는 게 느껴졌다.
그에 밑을 쳐다본 하준수의 시선에 들어온 건, 앞발로 하준수의 발등을 살포시 누르면 꼬리를 흔드는 설탕이의 모습이었다.
마치 ‘나 여기 있어요~’ 하는 것 같았다.
“우와.”
“어머나.”
설탕이의 실물을 처음으로 접한 하준수 피디를 비롯한 방송 관계자들은 감탄을 터뜨렸다.
여전히 하준수의 발을 지그시 누르고 헥헥거리며 꼬리치는 설탕이의 모습이 그렇게 예쁠 수가 없었다.
“네가 설탕이구나.”
하준수가 바로 무릎을 꿇어 설탕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에 다른 이들도 하나같이 무릎을 꿇고 설탕이를 만지기 바빴다.
한편 그 모습을 한발 떨어져서 보고 있던 예소린은 살짝 웃음이 났다.
강아지 한 마리가 방송 관계자들 모두의 무릎을 꿇려 버리다니.
설탕이의 귀여움은 정말이지 막강한 무기였다.
그렇게 한참 동안 설탕이를 쓰다듬는 데 정신이 팔려 있던 하준수 피디는 카페에 첫손님이 들어서고 나서야 본인의 위치를 찾아갔다.
카페 안으로 들어서는 손님들은 밖에서 대기하는 스텝들에게 촬영이 진행 중이라는 설명을 들었다.
촬영을 허가한 손님들의 얼굴은 그대로, 거부한 손님들의 얼굴을 모자이크 처리가 되어 나갈 것이다.
“우선 오전 중에는 설탕이가 카페에서 지내는 자연스러운 모습들을 카메라에 담아볼까 해요.”
하준수가 예소린에게 말했다.
“네. 저도 카메라 의식 안 하고 평소처럼 행동할게요.”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 * *
본격적인 촬영이 시작됐다.
카메라를 든 VJ들은 앵글에 담기는 설탕이의 모습을 보며 속으로 몇 번이나 고함을 질렀다.
하마터면 저도 모를 신음이 입 밖으로 나올 뻔한 게 몇 번인지 몰랐다.
그만큼 설탕이는 귀엽고, 예뻤고, 영리했고, 사랑스러웠다.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에 안식이 찾아주는 그런 존재였다.
‘이러니 방송 탔을 때 그 난리가 났지.’
하준수는 설탕이의 파급력이 어마어마할 수밖에 없었다는 걸 새삼 느꼈다.
설탕이는 카페 내의 모든 강아지들을 두루 챙기면 손님들이 부를 땐 튕기는 일 없이 달려가서 팬서비스를 해주었다.
손님들의 반 이상은 전부 카페에서 설탕이만을 찾았다.
그러다 어느 여인이 네 살 난 쌍둥이 형제를 데리고 애견 카페를 찾았다.
이 나이 때의 아이들은 좀 과격한 면이 있어서 강아지들을 우악스럽게 만지는 경향이 없지 않아 있었다.
어지간하면 부모들이 아이들을 케어했고 오늘 카페를 찾은 여인도 쌍둥이 형제를 잘 케어해 나갔다.
그러다 여인이 잠깐 화장실을 간 사이 일이 터졌다.
쌍둥이 형제가 카페에서 가장 덩치 큰 소금이에게 흥미를 보이며 다가간 것.
두 아이 중 한 명이 소금이에게 올라타려 했고, 다른 한 명은 큰 귀를 잡아 당겼다.
끼잉. 낑.
소금이가 괴롭다는 신음을 흘리기에 예소린이 가서 아이들을 말리려 했다.
한데 설탕이가 더 빨랐다.
왕!
소금이 근처에 가서 크게 짖으니 쌍둥이 형제가 설탕이를 바라봤다.
그때, 설탕이가 앞발을 들고 뒷발만으로 우뚝 섰다.
얼마 전 강지한에게 배운 신기술 ‘일어서!’였다.
설탕이가 두 발로 서 있으니 그게 신기한 아이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와! 강아지가 두 발로 섰다!”
“사람 같다. 그치?”
두 아이의 관심을 끄는 데 성공한 설탕이가 슬금슬금 뒷걸음질 쳤다.
“어? 뒤로 걷는다!”
“헤헤헤!”
아이들은 소금이를 언제 괴롭혔냐는 듯 설탕이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이를 지켜보던 하준수와 VJ들이 혀를 내둘렀다.
‘저, 저게 지금 말이 되는 상황이야?’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하고 문제를 짚어내 그것을 해결하는 모습이 기가 막힐 지경이었다.
설탕이는 뒷발만 사용해서 물러나다가 아이들이 뛰기 시작하자 네 발로 땅을 딛고 술래잡기 하듯 이리저리 도망 다녔다.
“하하하!”
“강아지 잡아라~ 헤헤.”
그러다 한 아이가 설탕이의 꼬리를 잡았다.
순간 설탕이가 갑자기 휙 돌아서더니 도망치던 것을 그만두고 아이들에게 저돌적으로 달려들었다.
그에 아이들은 쫓던 걸 멈추고서 반대로 돌아서서 뛰었다.
술래잡기를 하다가 꼭 술래가 바뀐 모양새였다.
“꺄하하하!”
“강아지가 쫓아와!”
헥헥헥!
설탕이를 피하려고 이리저리 뛰어 다니던 쌍둥이 형제는 발이 꼬여서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런 두 아이의 앙증맞은 손 위에 설탕이의 앞발이 살짝 포개졌다.
아이들을 바라보는 설탕이의 눈빛은 마치 ‘잡았다’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설탕이는 즐거워하는 아이들의 뺨을 마구 핥아주었다.
그러고는 저쪽 구석에 있는 소금이를 지그시 바라봤다.
그에 뭔가를 느낀 아이들이 소금이에게 다가가더니 겁에 질린 녀석에게 사과를 하는 게 아닌가?
“미안해, 강아지야~ 앞으로는 아프게 안 할게.”
“나도 미안해.”
소금이를 만지는 아이들의 손길이 전에 없이 상냥하고 조심스러웠다.
그 모습에 하준수의 입이 쩍 벌어졌다.
설탕이가 지금 한 건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일이었기 때문.
녀석은 아이들과 동등한 입장에서 놀아줬다. 이로 인해 아이들에겐 강아지가 장난감 같은 것에서 자신들처럼 생각을 하고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친구로 인식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이건 정말이지.
‘강아지가 사람을 가르친 격이잖아.’
헥헥헥.
설탕이가 만족스럽게 아이들을 바라보며 꼬리를 흔들었다.
하준수의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그때 카페 문이 열리며 로버트 정이 들어섰다.
“안녕하세요~! 로버트 정이 왔어요!”
들어오자마자 손으로 쌍권총을 만들어 날리며 윙크를 찡긋하는 로버트 정.
예소린이 그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왔어?”
“한창 촬영 중이네? 점심들 아직 안 드셨지?”
“자기 도착하기 전까지 먹지 말라 신신당부했는데 먹었겠어?”
“그럼 촬영 잠깐 접고 당장 먹으러 갑시다.”
“이 옆에 있는 지한 분식, 거기 말하는 거지? 거기 사장님이 설탕이 주인 되시고.”
“빙고!”
“음……. 지금 한창 전율이 흐르는 중이었는데. 쩝.”
“가자고! 자자, 스텝들도 전부 다 갑시다!”
하준수는 로버트 정의 재촉에 아쉬운 마음을 접고 분식집으로 향했다.
그런데 그는 알지 못했다.
분식집 안에서 더욱 큰 전율을 맛보게 되리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