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0
Restaurant 129. 건물주 강지한
강지한이 진상명과 백진목에게 양해를 구한 뒤, 예경천에게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네, 사장님.”
-어~ 강 사장! 어제 봤던 그 4억짜리 건물 말이야. 그거 어떻게 할 거야? 엄청 마음에 드는 눈치던데 대출 당겨서라도 매입하는 게 낫지 않겠어?
“네. 안 그래도 대출 생각 중이긴 한데……. 뭐 급한 일 생겼어요?”
-지금 또 다른 고객한테 연락이 왔어요. 어제 저녁에 여기 건물 보고 간 사람인데 아직 물건 있으면 바로 계약하고 싶대. 그래서 먼저 본 사장님이 있으니까 일단 의견 여쭤보고 바로 연락드린다고 했지. 어떻게? 강 사장 생각 있어? 있으면 강 사장한테 계약서 넘기고.
경쟁자가 생기니 강지한의 마음이 급해졌다.
‘내가 대출이 얼마나 될까?’
그간 수중에 열심히 모은 돈은 2억이 좀 넘었다.
포인트를 환전하면 1억 정도를 쥘 수 있지만 세금 문제 때문에 어려웠다.
‘형수님한테 부탁해 봐?’
고중만의 아내 유진아는 어제부터 지한 푸드의 총무실장으로서 회계업무를 맡고 있는 중이다.
지금은 사무실도 없고 법인회사도 만들어지지 않아서 개인적으로 일을 의뢰한 상황이지만 뛰어난 인재인 만큼 세금 관련한 문제 역시 해결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강지한 본인의 양심에 찔렸다.
결국 포인트 환전은 접어두기로 하고 다른 것을 생각했다.
어제 배틀 셰프 측에서 5라운드 상금을 통장으로 지급했으니 그것까지 포함해 보면…….
‘그래도 1억 이상이 모자란데.’
부족한 돈이 쉽게 해결되기는 힘들었다.
결국 강지한은 아깝지만 그곳을 포기하기로 했다.
“예 사장님, 아무래도 지금 상황으로는 제가 그 건물을 매입하기 힘들 것 같아요.”
-그래? 으음……. 그렇게 마음에 들어 하는 강 사장 얼굴은 처음 봤었는데 말이야. 사정이 그러면 어쩔 수 없지.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한 30분 묶어놓을게.
“아니, 안 그러셔도…….”
-그 안에 방도 생기면 연락해요!
예경천은 강지한의 말을 다 듣지도 않고 전화를 끊었다.
강지한이 난감해서 애꿎은 스마트폰만 보다가 다시 진상명과 백진목에게 시선을 돌렸다.
“말씀 중에 죄송했습니다.”
그때 백진목이 호기심을 드러냈다.
“방금 전화는 어디에서 걸려온 것이오?”
“부동산 사장님이요.”
“난감한 것처럼 뵈던데 내가 사정을 조금 들어봐도 괜찮겠소?”
크게 어려운 일도 아니었기에 강지한은 지금의 상황을 그대로 들려주었다.
그러자 얘기를 듣고 난 백진목이 돌연 껄껄대며 웃기 시작했다.
“껄껄껄! 아주 잘됐구만!”
그 말을 듣고 있던 용성우의 미간이 잔뜩 구겨졌다.
그런 용성우의 어깨를 고중만이 툭툭 치며 귓속말을 건넸다.
“저 영감님이 우리 강 사장을 놀리려는 게 아닌 것 같으니까 흥분하지 마, 용 선배.”
“네?”
눈치 빠른 고중만은 무슨 일이 벌어질지 예상하고 있었다.
웃음을 그친 백진목의 입에서 나온 말은 과연 그의 예상대로였다.
“내 무엇으로 보답을 하면 좋을까 고민하던 중이었는데 기다렸다는 듯 답안지가 내려왔어.”
그에 진상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네요.”
강지한이 설마 하는 시선을 두 사람에게 던졌다.
“마음에 드는 건물이 있는데 자금이 부족한 모양이오?”
“아……. 네.”
“얼마나?”
“아니요, 어르신. 괜찮습니다.”
그때 강지한의 눈앞에 메시지가 나타났다.
[퀘스트 보상, 백진목의 보답이 주어집니다.]
그랬다.
지금 벌어지려 하는 이 일이 퀘스트의 성공 보상이었다.
그 문구를 읽고 나니 강지한의 마음에 가득했던 부담감이 상당 부분 덜어져 나갔다.
“나는 한번 뜻을 세우면 굽히는 성격이 아니니 거절할 생각 마시오. 다시 물어보지. 얼마인가?”
“……네. 2억 정도가 모자랍니다.”
강지한의 대답에 백진목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건물 매매 가가 총 얼마냐고.”
“아, 4억입니다.”
“4억? 몇 평이기에?”
“50평입니다.”
“50평에 4억? 거 어디 다 무너져 가는 건물 산 거 아닌가?”
“아닙니다. 춘천 건물 가격들이 그리 센 편이 아니라서 그렇습니다.”
“허허. 그렇구만. 당장 방금 통화했던 부동산 사장한테 연락 넣어요. 4억. 바로 보내주겠다고.”
* * *
“제가 백 회장님을 다 뵙게 되고. 이거 정말 가문의 영광입니다!”
예경천은 자신의 사무실 소파에 앉아 있는 백진목 앞에서 허리를 펼 줄 몰랐다.
부동산 업자인 그에게는 어마어마한 부동산 재벌인 백진목이 신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부동산은 백진목이 가진 재산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이 4억을 쉽게 얘기하는 사람의 사이즈였다.
굽신거리는 예경천을 보며 백진목이 물었다.
“그럼 이제 계약 성사된 것이오?”
“그러믄요.”
부동산 사무실 안에는 건물주도 함께였다.
그는 강지한과 매매 계약서를 작성해 나눠가졌다.
4억은 현장에서 백진목이 바로 지급했다.
그가 비서에게 문자를 한 통 넣자마자 4억이 건물주의 통장에 입금된 것.
이제 50평 식당 건물은 강지한의 것이 되었다.
백진목에게 맛있는 음식 한 끼를 대접해 준 것이 4억 건물로 되돌아왔다.
그야말로 자고 일어났더니 건물주가 된 격이었다.
계약서를 바라보는 강지한의 가슴이 두근거리며 뛰었다.
‘이게 정말 내 건물이라고?’
작은 분식집 하나를 계약했을 때도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고, 확장 공사를 해서 30평으로 늘렸을 때는 여기가 천국인가 싶었다.
하지만 자신의 건물이 생긴 지금의 기분에는 비교할 수가 없었다.
설탕이가 물어온 아이템이 강지한을 건물주로 만들어줬다.
“그럼, 식당 번창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한참 전부터 백진목의 기운에 압도되어 있던 건물주는 급히 부동산을 나섰다.
“강 선생님, 건물주 되신 걸 축하드립니다.”
진상명이 진심을 담아 말했다.
그의 얼굴엔 미소가 가득 담겨 있었다.
강지한이 아직도 얼떨떨한 기분에 사로잡혀 대답했다.
“감사합니다.”
진상명에게 감사하다 말한 그가 백진목에게도 고개 숙여 마음을 전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백 어르신.”
“그깟 건물 하나 선물한 게 뭐 대수라고.”
“그래도 4억이 어디 적은 돈인가요.”
“4억. 서민들 입장에서 적은 돈은 아니지. 하지만 나한테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돈이란 말이오. 반면 오늘 먹어본 자네의 잔치국수는…… 근래 느껴보지 못했던 맛과 향수를 되찾게 해줬소. 그건 돈으로 살 수 없는 가치야. 그렇지 않소?”
백진목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하지만 4억이란 돈이 워낙 크게 다가온 강지한은 선뜻 동의하지 못했다.
그 반응을 본 백진목이 피식 웃었다.
“우리 며느리나 손자 녀석들이 한 달에 얼마를 쓰는지 알면 기절초풍하겠구만.”
확실히 백진목은 강지한과 사는 세상이 다른 사람이었다.
예경천은 경외가 가득 담긴 시선으로 강지한을 바라보고 있었다.
‘대체 잔치국수를 얼마나 맛있게 만들면 보답으로 4억짜리 건물이 굴러 들어오는 거야?’
그 4억짜리 잔치국수, 자신도 한 번 먹어봤으면 싶었다.
“그럼 은혜를 갚았으니 이만 가봐야겠군.”
백진목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진상명도 몸을 일으켰다.
“강 선생.”
“네, 백 어르신.”
“내 종종 분식집에 들러도 되겠소?”
“그건 상관없지만 오늘처럼 브레이크 타임에 음식을 따로 마련해 드리기는 힘들 겁니다. 영업시간에 오셔야 하는데 웨이팅이 걸리면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하실 겁니다. 그래도 괜찮으시다면 언제든 환영하는 마음입니다.”
“허허, 드라마에서 너무 개차반 같은 부자들만 봐와서 우리 같은 사람들에 대한 인식이 안 좋게 박힌 모양이오?”
“그게 아니라…… 어쩐지 줄을 서서 기다렸다가 식당에 들어오시는 모습이 상상이 가질 않아서요.”
“물론 난 안 기다리지. 돈 많아서? 아니, 몸이 힘들어서. 나 대신 비서들이 기다릴 거요. 차례 되면 같이 들어가서 음식 먹을 거고. 돈 많은 사람들이 전부 세상 제멋대로 살아가는 거 아니오.”
“네, 알겠습니다.”
백진목이 미소 짓는 강지한의 얼굴을 눈에 오래도록 담았다.
‘참 보기 드문 젊은이야.’
대부분의 사람들은 백진목이 누군지 알면 무조건 허리를 조아리고 아부를 하기 바빴다.
그를 위해서는 자신이 지켜왔던 규칙을 깨서라도 과하게 잘해주려 하는 경우도 있었다.
백진목은 그런 이들의 작태에 구역질이 났다.
한데 강지한은 달랐다.
자신이 누군지 아는 데다 4억짜리 건물을 보답으로 받았음에도, 비굴하거나 천박하게 굴지 않았다.
그리고 스스로를 포장하려 들지도 않았다.
있는 그대로 담백하게 사람을 대하는 그의 모습이 참 마음에 들었다.
“그럼 또 봄세.”
백진목이 옅게 웃고서는 뒤돌아서 부동산을 나섰다.
비서들이 그의 뒤를 따랐고 진상명은 강지한의 두 손을 꼭 마주 잡았다.
“오늘 정말 감사했습니다, 강 선생님.”
“저야말로 어르신 덕에 상상도 못했던 선물을 받게 되었어요. 뭐라 감사의 말을 드려야 할지.”
“그건 제 덕이 아닙니다. 전부 강 선생님 본인의 덕이지요. 조만간 따로 연락드리겠습니다.”
“살펴 가세요, 어르신.”
두 사람은 서로 묵례하며 인사를 주고받았다.
진상명까지 나가고 난 뒤, 부동산엔 예경천과 강지한 두 사람만 남게 됐다.
예경천이 강지한의 곁으로 귀신처럼 다가와 말을 걸었다.
“이봐, 강 사장. 자네 정말 난 사람이구만.”
그에 강지한이 넌지시 물었다.
“저 같은 사람 사윗감으로는 어떠세요?”
순간 예경천의 얼굴이 야차처럼 변했다.
“자네 혹시 우리 딸한테 흑심 있나?!”
놀란 강지한이 양손을 내저으며 도리질 쳤다.
“농담입니다. 저 그럼 저녁 장사 시작해야 해서 가볼게요.”
강지한이 바람처럼 부동산을 떠나고 난 뒤, 곰곰이 생각하던 예경천은 혼잣말을 흘렸다.
“음……. 강 사장 정도면 나쁘지 않을 것도 같고…….”
* * *
드디어 신 푸드에서는 강지한과 협업으로 만들어 낸 네 가지 레토르트 식품을 전국 각지에 돌리기 시작했다.
정식 판매는 다음 주였다.
이번 주에 풀린 물품들은 홍보용이었다.
신장호 사장은 김치찌개, 김치찜, 김치볶음밥, 김치 만두의 네 가지 식품을 유명 유튜버와 블로거, 화제성 있는 SNS 유명인, 친분이 있는 연예인들에게 보냈다.
바야흐로 먹방이 대단한 인기를 끄는 시대인 만큼 이것보다 확실한 홍보 방법은 없었다.
물론 홍보를 해주는 이들에게는 그들의 인기에 따라 일정 금액의 수고비를 지급했다.
요새 한창 분식집 막내아들에서의 열연으로 인기가 고공 행진 하고 있는 윤선아에게도 신푸드의 신제품이 배달되었다.
윤선아는 세 달 전부터 인튜브 라이브 방송을 시작했다.
그녀는 아이돌 그룹을 탈퇴한 후 예능에서 얻은 먹방요정의 이미지를 인터넷 생방송에도 가져왔다.
당연히 윤선아의 방송 콘텐츠는 먹방이었다.
많이 먹기보다는 적은 양도 복스럽고 맛있고, 재미있게 먹었다.
주로 신제품을 먹으며 지극히 주관적인 입맛으로 평가를 내리는 콘텐츠가 많았다.
처음에는 연예인 치고 크게 화제가 되지는 않았다.
그런데 분식집 막내아들이 대히트를 치며 그녀의 인터넷 채널 역시 시청자가 어마어마하게 늘어났다.
한 달 전만 해도 20만에 그쳤던 것이 지금은 50만을 넘어서고 있었다.
때문에 신이 난 윤선아는 촬영이 고되고 힘들어도 시간이 날 때마다 인터넷 방송을 진행했다.
오늘도 사흘을 꼬박 촬영하곤 난 뒤에야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잠이라고는 촬영장에서 쪽 잠을 몇 시간 정도 나눠 잔 게 고작이었다.
그럼에도 윤선아는 인터넷 방송을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선아예요. 오늘도 촬영 마치자마자 집으로 와서 바로 여러분들 만나러 왔지용. 오늘 방송은 신제품 리뷰고요, 보시다시피 여기 차려져 있는 네 가지 즉석식품을 맛보고 지극히 객관적인 평가해 드릴게요.”
윤선아의 앞엔 신푸드에서 보낸 요리들이 잘 조리되어 예쁜 그릇에 담겨 있었다.
“아직 먹어보지는 않았지만 솔솔 올라오는 냄새가 개인적으로 취향 저격이네요. 아, 여기 음식들 전부 신푸드 거고, 오른쪽부터 차례대로 돼지고기 김치찌개, 돼지목살김치찜, 김치볶음밥, 김치 만두입니다. 그럼 김치찌개부터 먹어볼게요. 어디~ 호로록.”
김치찌개를 한입 떠먹은 윤선아는 그대로 굳었다. 이어, 그녀의 동공이 갑자기 확장됐다.
‘이거 뭐야? 즉석식품 맞아?’
신푸드 김치찌개는 그녀가 지금껏 먹어왔던 즉석식품과는 맛의 궤를 달리했다.
손맛 좋은 사장님이 운영하는 식당의 김치찌개를 먹는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였다.
김치찌개를 한입 맛본 윤선아가 한참 동안 말이 없자 채팅창은 난리가 났다.
-왜그래? 무슨 일이에요?
-굳어버릴 만큼 노맛인가 ㅋㅋㅋㅋ
시청자들은 윤선아의 반응이 무엇을 뜻하는지 몰라 궁금해했다.
그렇게 한참 동안 가만히 있던 윤선아의 입이 드디어 열렸다.
“여러분…… 이거…… 개맛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