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하는 식당-123화 (123/330)

# 123

Restaurant 122. 본선 5라운드

6월 10일 일요일.

한 주간을 잘 쉬고 나니 배틀 셰프에 참여하는 출연자들의 컨디션이 제법 좋았다.

서로 경쟁자이긴 하지만 함께 프로그램을 하는 와중 정이 들었는지, 2주 만에 보는 얼굴들이 하나같이 반가웠다.

그러나 반가움도 잠시.

심사위원들이 단상 위에 올라서고 녹화가 시작되자 다시금 장내는 긴장감으로 가득 찼다.

한돈선이 좌중을 훑으며 입을 열었다.

“배틀 셰프 지원자 여러분. 지난 주말은 알차게 보내셨나요?”

오래간만에 듣는 그의 여성스러운 말투가 귀에 착착 달라붙는 것 같았다.

“네~”

“심사위원님들 얼굴 보지 못해서 우울했어요!”

대답을 하는 지원자들 사이에서 유독 튀는 음성이 있었다.

빼어난 미모의 주부 참가자 강지영이었다.

그녀의 말에 사람들이 웃음을 흘렸다.

심사위원들도 같이 미소를 지었다.

강지영은 분위기를 유쾌하게 만들어주는 능력이 있었다.

“강지영 씨께서 기분 좋은 말 해주셨으니, 저도 한마디 안 할 수가 없겠네요. 여러분 이번 주 배틀 셰프 즐겁게 시청하셨죠?”

다들 대답하기보다는 민망하게 웃었다.

카메라엔 이제 익숙해졌으나 텔레비전에 나오는 본인의 모습엔 익숙해지기가 힘들었다.

이번 주 배틀 셰프 5화에서는 본선 1라운드 페일 배틀과 2라운드 베네핏 배틀, 페일 배틀이 방영되었다.

2라운드 베네핏 배틀의 과제는 닭을 발골하는 것이었다.

강지한이 신들린 손놀림으로 닭을 발골하는 장면에 이어 재료 우선권을 가졌음에도 닭목과 닭연골을 택하는 것이 전파를 탔다.

마무리는 강지한이 만든 음식을 보고 놀라는 심사위원들과 지원자들의 모습이었다.

물론 강지한이 어떤 음식을 만들었는지는 방영되지 않았다.

아울러 5화부터 강지한과 도근한이 친구 사이임을 강조하며 두 사람 사이의 라이벌 구조를 잡아나가기 시작했다.

본선 5라운드에 진출한 20명의 지원자들은 전부 배틀 셰프를 매주 시청해 왔다.

본방을 놓치면 다시 보기를 해서라도 챙겨보곤 했다.

편집된 영상은 현장 분위기와 또 다른 식으로 비추어지는 것이 재미있으면서도 신기했기 때문.

질문을 던진 한돈선이 지원자들의 반응을 살핀 뒤 말을 이었다.

“알고 계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배틀 셰프의 시청률이 이번 주 금요일 방송된 5화를 기준으로 20퍼센트가 넘어갔습니다.”

“와우!”

“축하해요, 피디님!”

“여러분 수고하셨어요!”

“심사위원님들의 공이 큽니다!”

지원자들이 박수치고 휘파람을 불며 방송 관계자들과 심사위원들, 그리고 서로를 격려했다.

자축의 시간이 짧게 지나자 이번엔 레이먼 박의 입이 열렸다.

“지난 주, 배틀 셰프의 레이팅(rating: 시청률)이 투엔티 퍼센트가 넘을 수 있었던 건 여러분의 덕이 가장 큽니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그에 대한 보답으로 오늘 우리는 한국에서, 아니 이미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셀럽 한 분을 모셨습니다.”

레이먼 박의 말에 지원자들은 설레는 마음을 감추지 못하며 웅성댔다.

이를 본 최현식이 물었다.

“누군지 기대됩니까?”

“네!”

다들 한마음으로 입을 모아 대답했다.

“그럼 바로 모셔보도록 하겠습니다. 나와주시죠.”

심사위원들의 시선이 단상 우측에 있는 출입구로 향했다.

그곳은 심사위원들만 드나드는 출입구였다.

지원자들은 늘 세트장의 뒤쪽에 있는 정식 출입문을 이용하고는 했다.

모두의 시선과 카메라 여러 대의 앵글이 출입구로 집중되며 정적이 흘렀다.

잠시 후, 그 정적을 깨고 말도 안 되는 셀럽이 모습을 드러냈다.

“헐…….”

“이거 실화냐.”

“어머나. 어머나. 어쩜 좋아.”

“배틀 셰프 섭외력 미쳤네.”

예상치도 못했던 셀럽의 모습을 보는 순간 모든 이들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180이 넘는 키에 다부진 몸, 감히 어지간한 연예인들은 근처에도 오지 못할 미모를 자랑하는 스물한 살의 청년. 거기에다 몸에 딱 붙는 슈트는 그의 패션센스가 보통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었다.

카메라 여러 대와 수십 명의 시선을 받으면서도 전혀 주눅 들지 않고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은 채 단상 위로 올라서는 그의 이름은 ‘김두찬’이었다.

그는 한국에서 가장 잘나가는 소설가이자 애니메이션 시나리오 작가이면서 영화 시나리오 작가였다. 그리고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작가이기도 했다.

그가 출간한 모든 작품은 전 세계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구사하며 꾸준히 팔려 나가 늘 베스트셀러가 됐다.

해리포터나 반지의 제왕보다 더욱 많은 판매고를 올린 것이 한국의 소설가 김두찬의 작품이었다.

중요한 건 이 위대한 업적을 그는 단 일 년 동안 이루어낸 것이라는 점.

그가 소설가로 혜성처럼 등장했던 건 바로 작년이었다.

이후 집필하는 모든 글들이 초대박을 터뜨리며 수출된 해외에서도 대성공을 거두어 지금은 한국의 어느 연예인보다 잘나가는 슈퍼 월드스타가 됐다.

한국에서는 김두찬이라는 이름 세 글자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그런 그가 배틀 셰프에 모습을 나타냈으니 지원자들의 눈이 휘둥그레지는 건 당연한 일.

특히 여자 지원자들과 여자 스텝들은 김두찬을 보는 순간 황홀경에 빠져 어쩔 줄 몰라 했다.

남자들은 그런 김두찬에게 질투조자 들지 않았다.

어느 정도 비벼볼 만한 수준이어야지. 이건 차원을 달리하는 사람이다 보니 그저 경이로울 따름이었다.

그 근엄하던 심사위원들도 아이처럼 들뜬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서 김두찬과 악수를 나눴다.

서로 인사가 끝나자 한돈선이 다시 한 번 김두찬을 소개했다.

“지원자 여러분, 오늘의 특별 게스트를 소개하겠습니다. 세계적인 월드스타이자 위대한 글쟁이, 김두찬 소설가님을 모셨습니다.”

“와아!”

짝짝짝짝!

좌중에서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김두찬이 그 환호에 깊이 허리 숙여 보답했다.

“반갑습니다, 배틀 셰프 지원자 여러분. 김두찬입니다. 오늘 제가 자격도 안 되면서 특별 심사위원으로 이 자리에 오게 됐네요. 모쪼록 맛있는 음식 부탁드리겠습니다.”

김두찬의 말에 한돈선이 웃으며 말했다.

“자격이 안 되시다니요. 김 작가님께서는 엄청난 미식가에 절대 미각으로도 유명하신데요. 게다가 부모님께서는 부대찌개 식당을 차려 초대박이 나셨죠.”

“하하, 부끄럽습니다.”

한돈선의 말에 멋쩍어하는 김두찬을 강지한이 경외의 시선으로 바라봤다.

강지한 역시 김두찬을 익히 알고 있었다.

책과는 그다지 친하지 않은 그인데도 김두찬의 소설은 몇 권 읽어보았다.

지난 1월에 출간되었던 그의 신작 ‘호감 받고 성공 더!’도 이미 일독을 한 이후였다.

한돈선은 김두찬에게 정신이 팔려 있는 지원자들에게 베네핏 배틀의 심사 과제를 발표했다.

“지원자 여러분께서 들으신 것처럼 김두찬 작가님은 오늘 특별 심사위원으로서 여러분의 음식을 평가해 주실 겁니다. 즉, 본선 5라운드 베네핏 배틀의 과제는 특별 심사위원이 좋아할 음식을 만드는 것이죠.”

한돈선의 말이 끝나자마자 최현식이 바로 입을 열었다.

“방금 한돈선 대가님께서 하신 말씀을 잘 귀담아 들으셔야 합니다.”

최현식의 조언에 지원자들이 술렁였다.

한돈선의 말은 크게 신경 쓸 부분이 없었다.

특별 심사위원이 나왔으니 그가 좋아할 음식을 만들어 주는 건 당연한 일 아닌가?

다들 최현식의 말이 무얼 뜻하는 것인지 몰라 아리송해했다.

강지한 역시 마찬가지였다.

‘무엇을 숨겨놓은 걸까.’

당연하고 단순해 보이는 한돈선의 말속에 다른 무엇이 감추어져 있는 건지 강지한은 생각했다.

그러는 사이 한돈선이 김두찬에게 질문을 건넸다.

“요즘 집필 활동은 어찌 되어가고 계시죠? 많은 사람들이 김 작가님의 신작을 기대하고 있는데요.”

“제 글을 기다려 주신다는 건 늘 감사한 일이에요. 아마 이달 말쯤이면 신작을 접하실 수 있을 겁니다.”

“그간 김 작가님의 집필 활동을 보면 신작을 발표하는 텀이 길어야 한 달 정도로 짧았었는데, 이번에는 유독 길어지네요. 뭔가 다른 이유라도 있으신 건가요? 이를테면 슬럼프라던가.”

그것은 작가들이 나누어준 대본에 미리 적혀 있는 질문이었다.

질문의 의도는 결코 김두찬을 놀려먹으려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축하해 주기 위함이었다.

김두찬은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네. 이미 기사로 접하신 분들도 계시겠지만 1월에 신혼여행을 가며 허니문 베이비가 생기는 바람에 여러모로 신경 쓰느라 글에 조금 소홀해졌던 게 사실이에요. 벌써 임신 5개월 차네요.”

“더할 나위 없는 경사로군요. 축하드립니다.”

한돈선이 박수를 치자 다른 사람들도 일제히 환호를 보냈다.

김두찬 같은 거물을 모셨을 때 꼭 빠지지 말아야 할 기분 띄워주기 같은 질문이었다.

지원자들 역시 방송물 조금 먹었다고 이러한 사실을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파악할 수 있었다.

그의 신작 집필 소식과 아내의 임신 소식, 두 가지에 대한 문답은 편집되지 않고 고스란히 방송을 탈 것이었다.

“그럼 이제 우리 지원자 여러분께 도움이 될 만한 질문을 드려볼까요? 김 작가님께서 좋아하는 음식이나 식재료 같은 것이 있다면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그에 대한 김두찬의 대답은 간단했다.

“고기 들어간 음식 좋아하고 야채 위주의 음식을 기피합니다.”

다들 소설가인 만큼 뭔가 있어 보이는 말을 할 거라 기대했는데, 소탈한 매력에 웃음이 터졌다.

“그렇군요. 여러분 잘 들으셨죠?”

“네!”

“고기가 들어간 음식들을 좋아하신답니다. 오늘은 김 작가님께서 좋아할 음식이라면 무엇을 만들더라도 상관없습니다. 지금부터 30분 드리겠습니다. 시작하세요.”

레이먼 박의 신호에 지원자들이 바쁘게 팬트리로 향했다.

도근한은 이번 베네핏 배틀이 자신에게 충분히 승산 있는 싸움이라 생각했다.

다른 건 몰라도 고기로 하는 요리만큼은 자신이 있는 그였다.

‘끝내주는 스테이크를 구워 드리겠어.’

도근한은 바로 소고기 안심 부위를 집었다.

거기에 곁들일 소스의 재료도 바구니에 넣고, 야채는 방울토마토와 양송이버섯 정도만 챙겼다.

야채를 싫어한다고 했는데 굳이 가니쉬로 많이 넣을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구운 방울토마토와 양송이버섯은 스테이크와의 조화가 아주 좋다. 야채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스테이크를 먹다 보면 절로 손이 가는 매력이 있었다.

‘버터에 구워 시즈닝 하면 더더욱 땡기는 맛이 될 거야.’

도근한이 자신 있게 모든 재료를 챙겨 팬트리를 나서려 할 때였다.

그와 비슷하게 재료 선정을 끝내고 나서는 강지한의 모습이 보였다.

한데 그의 바구니를 슬쩍 본 도근한이 헛웃음을 터뜨렸다.

강지한의 바구니에 담긴 건 전부 야채밖에 없었다.

‘……대체 무슨 생각인거야?’

도무지 강지한의 속내를 알 수 없는 도근한이었다.

* * *

“무슨 생각인 걸까요?”

지원자들의 요리를 단상 위에서 지켜보던 최현식이 대뜸 다른 심사위원들에게 물었다.

정확한 대상을 짚어서 얘기한 게 아닌데도 그가 누굴 보며 이런 말을 하는 건지 알 수 있었다.

지원자들 중에서 이해할 수 없는 재료를 선택한 이가 단 둘뿐이었기 때문이다.

바로 왕소홍과 김두찬이었다.

왕소홍은 김두찬이 즐기지 않는다던 채소들만 잔뜩 가져와 그것을 손질해서 중화풍으로 볶아내는 중이었다.

이를 본 한돈선이 나름의 해석을 내놓았다.

“왕소홍 씨는 채소를 진한 중화소스로 볶아내 불맛을 입힐 생각인가 보네요. 자신이 있다는 거겠죠. 고기가 아니더라도 맛있게만 해주면 필시 김 작가님이 좋아할 것이라는 계산이겠군요.”

“싫어하는 재료를 맛있게 드실 수 있도록 조리하는 것만큼 대단한 일은 또 없으니까요.”

최현식이 한돈선의 말을 받았다.

과연 왕소홍의 계산대로 일이 돌아갈지는 두고 봐야 했다.

“그럼 강지한 씨는 어떤 속셈일까요? 왕소홍 씨와 같은 생각인 것 같기도 한데요.”

최현식이 정말 얘기하고 싶었던 사람은 바로 강지한이었다.

그는 브로컬리와 시금치, 미역, 감자, 현미 등을 가져와서 음식을 만드는 중이었다.

그에 레이먼 박이 의견을 내놨다.

“왕소홍 씨와 같은 생각 아닐까요?”

그때 잠자코 있던 김두찬이 입술을 달싹였다.

“어쩌면 이번 문제의 출제 의도를 정확히 깨달았을 수도 있겠죠.”

그 말에 김두찬이 만드는 음식들을 다시 한 번 확인한 세 심사위원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럴 수도 있겠네요.”

최현식이 나직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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