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하는 식당-122화 (122/330)

# 122

Restaurant 121. 스님이 원하는 것

이상한 질문이었다.

곡차와 두부가 뭔지 아냐니?

곡차는 말 그대로 곡물로 우려낸 차일 테고, 두부는…… 더 설명이 필요할까?

바쁜 시간이었다면 대수롭잖게 생각하고 넘어갔을 강지한이었겠지만 지금은 조금 한가했다.

“질문의 의도를 잘 모르겠네요.”

강지한이 답했다.

그러자 하경춘이 허공에 삿대질을 해댔다.

“봐요! 요리사도 모른다는데 점쟁이인 내가 어찌 알겠느냐고. 그만 좀 성불하세요!”

하경춘의 행태에 최지민이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아으……. 나 저런 거 진짜 싫어.”

최지민은 은근히 귀신을 무서워했다.

그리고 여기 귀신이라면 치를 떠는 사람이 한 명 더 있었으니.

“가, 강 사장. 저 손님…… 아, 앞으로 안 받으면 안 될까? 좀 이상한데.”

바로 고중만이었다.

강지한의 뒤에 숨어 하경춘을 힐끔힐끔 살피는 것이 참 생긴 것답지 않게 논다는 말이 딱이었다.

“에휴. 환장하겠네.”

반면 귀신을 별로 두려워하지 않는 강지한은 피식 웃으며 하경춘에게 물었다.

“왜요? 누가 계속 곡차랑 두부를 달래요?”

“지금 요 앞에 누가 앉아 있는 줄 알아요?”

“전 안 보이네요.”

“스님이 앉아 있어요, 스님이.”

죽은 스님이 성불하지 않고 귀신이 되어 점쟁이 앞에 앉아 있다니.

참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다.

“며칠 전부터 내 눈에 띄어 아는 척 좀 했더니 이렇게 붙어 다니면서 귀찮게 하고 있어요.”

“그 스님이 곡차랑 두부를 달라는 거예요?”

“아, 그렇다니까요. 그래서 내가 다 해줬어요. 자기는 무덤도 없다고 해서 집안에 손수 제사상 만들어, 매일 밤 이런 곡차, 저런 곡차, 요런 두부, 조런 두부들을 아주 종류별로 올렸다고요. 그런데 들려오는 대답은 한사코 그게 아니래요. 그럼 대체 뭘 원하는 거냐고요.”

하경춘의 목소리가 커질수록 최지민과 고중만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반면 이리나는 하경춘의 맞은편에 앉아 생긋 웃었다.

“아주머니, 정말 귀신이 보여요?”

“색시. 지금 그 스님 무릎에 앉아 있어. ……아니 근데 이 스님, 알고 보니까 완전 땡중이네. 색시 엉덩이가 닿았으면 기겁하고 일어나야지, 얼굴 붉히면서 즐기고 있어.”

그 말에 주방에 있던 용성우가 홀로 나와 이리나의 팔목을 잡아끌었다.

용성우의 힘에 못이긴 이리나가 의자에서 엉덩이를 뗐다.

“왜 그래, 오빠?”

이리나는 이해 못할 용성우의 행동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차마 ‘스님이 좋아하는 게 싫었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진짜 있는지도 모르는 혼령에게 질투를 하다니. 스스로 생각해도 영 모양 빠지는 일이었다.

한편 강지한은 하경춘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면서 김치찌개 한 그릇을 뚝딱 만들어 냈다.

그걸 이주희가 받아서 서빙했다.

하경춘은 김치찌개를 한술 떠서 먹자마자 눈을 스르르 감았다.

“하아, 언제 먹어도 신령이 깃드는 맛이야.”

음식을 먹을 때마다 영력이 높아졌다. 그것까지는 좋았는데 이런 잡귀신까지 소원 풀어 달라고 들러붙는 게 좀 짜증이 났다.

그러거나 말거나 지금은 모른 척하고 식사에만 열중했다.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뚝배기 한 사발을 비워낸 하경춘이 엉덩이를 뗐다.

카운터로 가서 계산을 하는 그에게 강지한이 물었다.

“스님은 아직 계세요?”

하경춘이 자기 뒤를 슬쩍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한숨을 푹 쉬고서는 명함 한 장을 카운터에 놓고는 ‘혹시라도 뭔가 떠오르는 거 있으면 알려 달라’ 당부한 뒤 나가 버렸다.

고중만이 얼른 그 뒤를 따라 나가 입구 주변에다 소금을 뿌렸다.

강지한은 앞치마를 벗고 홀로 나오며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스님이 원하는 곡차와 두부라…….’

* * *

“곡차와 두부를 내어주면 내 성불하겠소이다.”

하루 종일 저놈의 곡차와 두부 타령이다.

하경춘은 이 망할 땡중 때문에 일에 집중할 수가 없어서 오늘 영업을 끝내고 그냥 이불에 드러누웠다.

“아니 원하는 게 있으면 그냥 말을 하라고. 대체 이게 무슨 선문답이야?”

“곡차와 두부를 내어주면…….”

“아, 시끄러워요!”

* * *

식당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강지한은 내일을 위해 자신이 알고 있는 요리 지식들을 곱씹어봤다.

현재 그가 얻은 요리 한식, 양식, 일식 요리 대가들의 지식은 전부 레벨2였다.

그만큼 강지한이 커버할 수 있는 요리의 스펙트럼이 광활해진 것이다.

‘진짜 요리의 세계는 알면 알수록 신기한 것 같아.’

요리라는 게 뭣 모르고 덤볐을 땐 별게 아닌 듯했다.

한데 깊이 파고들수록 오묘하고 신비했다.

생각지도 못했던 재료의 조합으로 익숙한 맛이 나기도 하고, 익숙한 재료들을 조합해서 완전히 새로운 맛의 세계를 경험하기도 한다.

또 같은 식재료라 하더라도 조리 방법에 따라 완성된 요리의 맛이 천차만별이었다.

서로의 장점을 증폭시키는 조합이 있는가 하면, 단점을 가려주는 조합도 있었다.

아울러 요리의 조리법은 대부분 과학의 법칙에 근거해 있었다.

요리는 곧 과학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쉬운 예로 고기를 불판에 구우면 누른 자국이 남게 되는데, 이를 마이야르 반응이라고 한다.

마이야르 반응이란 불판의 열기에 의해 고기의 수분이 제거되면서 단백질이 화학반응을 일으키며 갈색으로 변하게 되는 것을 뜻한다.

한데 이 반응에 대한 공식을 발견한 사람은 요리사가 아닌 프랑스의 생화학자 L.C.Maillard(마이야르)였다.

요즘 유행하는 분자요리 또한 옥스퍼드 대학의 물리학자와 프랑스의 화학자가 만들어낸 개념이다.

이처럼 요리와 과학은 밀접하게 붙어 있었다.

한참 요리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허기가 지는 강지한이었다.

그가 거실로 나와 냉장고를 뒤졌다.

“이거 좋다.”

냉장고 안에는 어제 만들어 먹었던 보쌈 고기와 그것을 삶아낸 육수가 조금 남아 있었다.

육수에는 된장과 통후추 몇 알만 넣어 고기를 삶아냈다.

강지한은 보쌈을 데워서 그냥 썰어먹을까 했는데 칼국수를 만들어 먹고 남은 면반죽이 눈에 들어왔다.

사흘 전, 요리 연습을 하며 만들어 놓은 아지타마고(あじたまご)도 있었다.

아지타마고는 그대로 해석하면 맛계란이라는 뜻으로 절임 반숙 계란이다.

보쌈고기와 육수, 면 반죽, 아지타마고를 보는 순간 해먹어야 할 요리가 딱 떠올랐다.

“라멘이다.”

지금 이 시간에 정통라멘을 끓여 먹기는 무리였다.

대신 편법을 사용해 비슷한 맛을 느낄 요량이었다.

강지한은 육수와 고기를 냄비에 옮겨 담아 불 위에 올렸다.

그리고 된장이 베이스가 된 육수에 쌈장 두 스푼과 청양고추 두 개를 두 동강 내 넣고 푹 끓였다.

거기에 통후추를 추가했다.

육수가 펄펄 끓자 약불로 줄이고 고기를 꺼내 살짝 식혔다.

그러는 동안 다른 냄비에 물을 받아 칼국수 면을 삶았다.

한편, 육수는 건더기를 모두 걸러내어 살짝 맛을 봤다. 아직은 그냥 장국맛에 후추향이 강한 이도저도 아닌 육수였다. 하지만 여기에 다진 마늘 반스푼과 미원이 약간 첨가되면 그 맛과 풍미가 확 달라진다.

마치 일본의 카라미소(매운된장) 라멘의 육수와 얼추 비슷한 맛을 느낄 수가 있었다.

강지한은 냉장고에서 숙주나물과 대파를 꺼냈다.

숙주나물은 찬물에 한 번 헹궈 따로 담아놓고, 대파는 송송 썰어 준비했다.

그때 쯤 다 삶아진 면을 건져내 물기를 쫙 빼서 일식 도자기 그릇에 담았다.

그 위에 차슈 대신이 된 보쌈과 숙주나물, 썰어놓은 파, 그리고 반으로 자른 아지타마고를 얹었다.

고명을 다 올렸으니 남은 건 육수 투하!

충분히 졸여져 뜨겁고 걸쭉한 국물이 면과 고명을 적시며 그릇 안에 넉넉히 담겼다.

그것으로 끝.

만약 아지타마고가 없다면 삶은 달걀로 대체하고, 칼국수 면 대신 조금 굵은 봉지라면 사리로 대체해도 좋았다.

“잘 먹겠습니다.”

강지한이 면을 듬뿍 집어 그대로 입에 넣었다.

“후르륵!”

쫄깃하고 탄력 있는 면은 국물을 충분히 머금고서 시원하게 빨려 들어갔다.

이번에는 수저로 국물을 떠먹었다.

“호록. 흐, 맛있다.”

절로 실소가 흘러나오는 맛이었다.

정통 라멘이 만들어지는 복잡한 과정을 생략하고서 이 정도의 퀄리티를 뽑아낼 정도면 충분히 훌륭했다.

강지한은 정신없이 라멘 한 그릇을 해치우고 배를 쓰다듬었다.

“잘 먹었다.”

아주 훌륭한 저녁 겸 야식이었다.

빈 그릇은 바로 싱크대로 가져가 설거지를 마쳤다.

라멘 한 그릇으로는 배가 덜 찬 강지한이 냉장고에서 배를 하나 꺼내왔다.

그리고 레벨 업 시스템으로 얻은 진화형 부엌칼로 껍질을 깎았다.

한데 배의 껍질을 모두 깎아낸 그때였다.

[‘날이 선 부엌칼-진화형’의 숙련도가 100이 되었습니다. 레벨 업 조건이 열립니다.]

참으로 오래간만에 보는 메시지였다.

강지한이 손에 들린 부엌칼의 상태창을 살폈다.

[날이 선 부엌칼-진화형]

LV3: 숙련도 100/100

-날카롭습니다. 날이 무뎌지지 않습니다.

-만족도 포인트 10,000을 투자할 경우 레벨 업 가능.

만족도 포인트야 지금 차고 넘치는 상황.

강지한은 기꺼이 1만 포인트를 투자했다.

그러자 칼에서 빛이 일며 형태가 변했다.

날의 길이는 전보다 손가락 한마디 정도 길어졌고 손잡이 부분에 밋밋한 물결무늬 같은 것이 나타났다.

[정체를 감춘 명인의 미완성 강철칼?진화형]

LV4: 숙련도 0/100

-어떤 명인의 것인지 알 수 없는 미완성 강철칼입니다. 진화를 거듭해 완성형 부엌칼이 되면 감추어진 명인의 이름이 드러납니다.

-숙련도를 가득 채울 경우 레벨 업 조건이 열립니다.

‘과연 어떤 명인의 부엌칼일까?’

강지한은 궁금했다.

칼이라는 것이 다 똑같아 보여도 명인의 손이 닿은 칼은 확실히 재료를 썰 때의 느낌이 확 달랐다.

실제로 현재 진화하고 있는 이 칼도 레벨이 오를 때마다 점점 더 큰 만족감을 손에 안겨주고 있었다.

후식으로 배 한 개를 금방 해치운 강지한은 진화형 강철칼을 씻어서 물기를 전부 닦아 잘 놓아두었다. 강철칼의 경우 물기를 방치하거나 오래도록 사용하지 않으면 녹이 슬어 버린다.

이어 아까 먹고 남은 수육을 작은 통에 담아 냉장고에 넣었다.

“설탕아, 배도 부른데 산책이나 다녀올…… 가만.”

강지한은 설탕이에게 말을 걸다 말고 그대로 굳어버렸다.

보쌈을 보는 순간 잊고 있었던 하경춘의 말이 떠올랐다.

“곡차와 두부라 그랬었지.”

하경춘은 곡차와 두부를 몇 번이고 대접해 줬는데 스님은 그것이 아니라고 했다고 한다.

게다가 하경춘은 땡중이라는 표현을 썼다.

그것은 무늬만 스님이고 하는 짓은 영 속세를 벗어나지 못한 것 같은 이들을 이르는 말이었다.

강지한이 혹시나 싶어 스마트폰으로 곡차를 검색했다.

그러자 흥미로운 해석을 볼 수 있었다.

절의 스님들 일부가 술을 ‘술’이라 말하지 않고 둘러서 곡차라고 했다는 것.

술을 마시고 싶으니 편법을 부린 것이다.

하면 두부란 무엇이겠는가?

두부는 단백질 덩어리다.

요리와 과학은 동떨어져 있지 않다.

단백질을 과학적으로 풀어보면 아미노산이라고 하는 단순한 분자들이 연결되어 만들어진 복잡한 분자다. 이러한 단백질을 가득 품고 있는 것은 보쌈과 같은 살코기 덩어리다. 닭가슴살 같은 경우 단백질 고기의 대표주자다.

즉 스님이 말했던 곡차와 두부는 술과 고기였다.

하지만 그냥 아무 고기나 주면 될까?

아니다.

두부가 썰린 모양과 최대한 비슷한 고기를 주어야 먹고 나서도 ‘그것이 두부와 닮아, 고기인 줄 몰랐다’ 변명할 것이다.

그러니 네모 반듯한 고기, 즉 편육이 답이었다.

그것을 있는 그대로 말할 수 없으니 에둘러 표현한 건데 하경춘이 알아듣지 못한 것이다.

‘살아생전 술과 고기를 즐기지 못한 게 엄청 한이 된 스님인건가?’

아니면 하경춘의 말대로 땡중이라 그 맛을 알아서 미련이 남아 승천을 못하고 있던가.

강지한은 바로 하경춘에게 연락을 취했다.

* * *

하경춘은 강지한의 말을 듣고 반신반의하며 소주와 편육을 제사상에 올려냈다.

그러자 스님의 영혼이 반색하며 상 앞에 턱 하고 앉아 소리쳤다.

“드디어 곡차와 두부를 내오셨군요! 나무관세음보살!”

“허어.”

하경춘의 어이없는 시선으로 스님을 쏘아봤다.

스님은 제사상 앞에서 숨을 크게 한 번 들이마셨다.

그러고는 만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하경춘에게 합장하며 허리를 숙였다.

“이로써 만족하였으니 소승은 더 이상 이승에 미련은 없소이다. 약속대로 내 가야 할 곳으로 가겠소이다.”

마지막 인사와 함께 스님의 형상이 연기처럼 흩어졌다.

“하, 거 참 땡중 중의 땡중일세.”

하경춘이 너털웃음을 흘리며 편육 한 점을 씹어 먹고 소주 한잔을 탁 넘겼다.

영혼이 한 번 훑고 간 음식은 영 맛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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