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1
Restaurant 120. 곡차와 두부
점심 피크 타임.
강지한은 몰려드는 손님들의 주문을 바쁘게 소화하고 있었다.
저번 주까지만 해도 배틀 셰프를 하루 앞둔 날은 어쩐지 몸이 평소보다 조금 무거운 것 같았다.
마음의 부담이 육신에도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한데 오늘은 달랐다.
오히려 배틀 셰프가 기다려졌다.
부담이 되었던 이유도 되짚어 보면 자신이 잘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는 아니었다.
방송이라는 시스템 자체가 부담스러웠다.
이제는 카메라가 친숙했다.
그 덕에 순수한 마음으로 경연 자체를 즐길 수 있었다.
그는 요리를 만들고 도전하는 것이 즐거웠다.
그 욕망을 마음껏 분출하며 눈치 볼 필요 없이 즐길 수 있는 곳이 바로 배틀 셰프였다.
이제는 내일 어떤 시험과제가 주어질지 기대까지 될 정도였다.
위기를 극복해 나가는 것이 재미있었다.
“강 사장, 뭐 기분 좋은 일 있어? 나도 알려줘. 같이 기분 좋게.”
강지한의 옆에서 열심히 김밥을 말던 고중만의 말이었다.
“중만 아저씨, 곧 월급 오를 거예요.”
“뭐? 진짜야?”
“와~ 축하드려요, 아저씨.”
용성우가 진심을 담아 축하했다. 그러자 강지한이 말이 이어졌다.
“너도 올라, 성우야.”
“네? 제 월급도 올라요?”
“리나도 올려줄 거야.”
한마디로 지한 분식 직원들 모두 월급을 올려준다는 얘기였다.
이건 강지한이 전부터 생각하고 있던 부분이었다.
장사가 잘되는 만큼 직원들에게도 그 혜택이 돌아가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자 고중만이 당장 박수부터 쳤다.
“브라보. 우리 강 사장, 배포가 남달라. 이러니까 잘되는 거야.”
“사장님, 저번 달에 직원이랑 알바 전부 보너스까지 받았는데 월급까지 올려주시고. 정말 이런 직장 또 없을 거예요.”
강지한은 5월에 가정의 달을 맞아 지한 분식 식구들은 물론 지한 김치 직원들 및 김치전골 직원들에게도 보너스를 지급했었다.
“그런데 말이야. 강 사장 5월에 세금 많이 나오지 않았어?”
고중만이 넌지시 물었다.
“네? 아뇨. 작년에 실질적으로 번 건 별로 없어서 그다지요.”
“아, 그렇겠네. 근데 내년부터는 아마 만만치 않을 거라고. 지금 강 사장 이름으로 업체를 세 개나 굴리고 있잖아. 그거 따로따로 해결하려 치면 골 아파. 그냥 지한 푸드라는 이름으로 사업자를 하나 내서 묶어버려. 그럼 세금도 조금 덜 나오고 관리도 쉬워. 물론 세금 쪽 관리해 주는 사람을 따로 둬야겠지. 사무실에 직원을 두고 월급 주면서 관리하게 해. 그게 시간도 벌고 머리도 안 아플 거야.”
강지한은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문제였다.
실상 손대는 일마다 잘되어서 짧은 시간에 사업이 커진 것뿐이지 경험으로만 본다면 초짜나 다름없었다.
염두에 없던 부분을 지적해 준 고중만이 진심으로 고마운 그였다.
“중만 아저씨.”
“응?”
“방금 알려주신 팁이 그대로 월급 인상에 반영될 거예요.”
강지한의 농에 고중만이 껄껄 웃었다.
“강 사장이 웬일이야? 그런 농담도 하고.”
강지한은 요즘 심심한 자신의 성격을 바꾸려고 나름 노력하는 중이었다.
직원들에게 농담도 더하고, 말도 친근하게 붙이려 신경 썼다.
그런 모습이 직원들에게는 나쁘지 않게 다가왔다.
“아무튼 고맙다는 말이지?”
“하하, 네. 그리고 신세지는 김에 혹시 주변에 세무 관련으로 빠삭한 분 계시면 연결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그러자 고중만의 낯빛이 조금 어색해졌다.
“응? 내가 정말 잘 아는 사람이 한 명 있긴 있는데…… 추천은 못해.”
“왜요?”
“아니 뭐, 다른 사람을 알고 있으면 그 사람을 추천하겠는데…… 좀 난감하네.”
“말씀해 보세요, 괜찮아요.”
강지한의 재촉에 고중만은 결국 마지목해 입을 열었다.
“우리…… 여봉봉.”
“사모님이요?”
“응. 우리 준희 갖기 전까지는 세무법인에서 일했었어. 처음 입사해서 사원으로 있을 때, 직원들한테 알바 취급도 받지 못하는 게 억울했대. 그래가지고 독하게 노력했더니 삼 년 만에 관리자급이 된 거야. 거기서 더 올라갈 수 있었는데 나 만나서 준희 갖는 바람에 지금은 그냥 애 엄마 된 거지.”
“그랬군요.”
“사실 내가 애를 보고 우리 여봉봉이 일을 했으면 지금보다 생활이 더 나아졌을지도 몰라. 근데 애 딸린 엄마들은 회사에서 잘 안 써주더라고. 하지만 어디서 오라고 했어도 여봉봉은 가지 않았을 거야. 준희…… 그렇게 태어난 걸 보고 자기가 무조건 돌봐줄 거라고 했으니까.”
들으면 들을수록 가슴이 먹먹해지는 얘기였다.
“실력 하나는 확실하지만…… 지금은 자기 위치에서 만족하고 있어. 아니, 자기가 부모의 위치에 있어야 아이한테 더 좋다는 걸 알고 있으니 그걸로 된 거지.”
고중만의 딸 고준희는 특이병을 앓고 있어 다른 아이들보다 더 누군가의 손길과 보살핌이 필요한 입장이었다.
고중만의 아내 유진아가 만약 강지한과 일을 하게 되면 딸아이의 케어가 힘들 터였다.
고중만은 그 부분이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아내 유진아를 선뜻 추천 못했다.
강지한의 고민 가득한 표정을 본 고중만이 옆구리를 쿡 찔렀다.
“고민하지 마. 우리 아내 써 달라는 뜻으로 한 얘기 아니야.”
한데 강지한의 입에서 생각지도 못한 말이 들려왔다.
“아니요. 그 얘기를 듣고 나니까 더 욕심이 생기네요. 삼 년 만에 관리자급으로 올라설 정도면 대단한 거잖아요.”
“그건…… 그렇지.”
“그럼 그 재능 썩히지 말고 활용해야죠.”
“하지만 준희가…….”
“조만간 지한 푸드로 법인사업자 등록할 거예요.”
“법인을?”
“네. 그리고 사무실 하나 얻어볼게요. 당장은 다들 현장에서 뛰고 있으니 사무실에서 근무할 사람은 두 명 정도만 구하면 될 것 같아요. 사모님이랑 일 거들어 줄 부하직원 한 명. 제가 사장으로 이름을 올리겠지만 거의 밖에서 일할 테니 사무실의 실세는 사모님이 되겠네요. 직원도 단둘이니 아이 데려와서 케어하며 일해도 누구 눈치 안 보일 거예요. 그렇죠?”
“가, 강 사장…….”
고중만이 눈을 크게 뜨고 뭐라 말을 잇지 못했다.
곁에서 제육볶음 2인분을 막 완성한 용성우가 고중만을 부추겼다.
“그렇게 하세요, 아저씨. 엄청 좋은 기회 아닙니까! 매일 지한푸드 세무관리만 하면 되는 거니까 그렇게 힘들지도 않을 것 같습니다!”
용성우는 이제 고중만 앞에서 주눅 들지 않았다.
그래서 그를 대하는 음성엔 평소처럼 기합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그렇게만 해준다면 난 더할 나위가 없지. 그렇지만 이거 원 면목이 없어서…….”
“제가 필요해서 고용하고 싶다는데 무슨 면목 타령이에요? 정 그렇게 느껴지시면 제가 짐 좀 덜어드려요?”
“어떻게?”
“사실 제가 세무 쪽은 전혀 모르잖아요. 법인 설립하는 것부터 사무실 잡고 이런저런 자잘한 일거리들 처리하는 거, 사모님께서 신경 써주시면 좋을 것 같은데요.”
강지한은 진정으로 고중만이 느끼고 있을 마음의 짐을 덜어주기 위해 일부러 아직 직원으로 채용하지도 않은 유진아의 부탁을 요구했다.
고중만은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암! 얼마든지! 내가 오늘 당장 집에 들어가자마자 여봉봉한테 얘기해 둘게.”
“그렇게 해주세요.”
고중만이 감사의 말을 전하려다 뜨거운 것이 목에서부터 울컥하고 넘어와 입을 닫았다.
하지만 이미 고중만의 표정에서 그의 마음이 강지한에게 전부 전해졌다.
그때 이리나와 최지민이 받아온 주문을 우르르 주방으로 전달했다.
이주희는 빈 식기를 높이 쌓아 가져왔다.
강지한은 다시 요리에 집중했다.
고중만도 빠르게 설거지를 해나갔다.
달그락 거리며 식기 부딪히는 소리가 고중만의 흐느낌을 막아주었다.
* * *
점심 피크 타임이 끝나가는 시각.
마지막으로 식당에 들어온 건 마흔한 살의 점쟁이 하경춘이었다.
이곳에서 음식을 먹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그녀의 영력(靈力)도 높아지고 있었다.
영력이 높아질수록 그녀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덕분에 백날 천날 개털이던 하경춘의 인생에도 슬슬 볕이 드는 것 같았다.
그래서 지한 분식의 발걸음을 끊을 수가 없었다.
아니, 굳이 영력에 대한 핑계를 빼놓더라도 이 맛을 어찌 끊을 수 있겠는가.
해서 일주일에 세 번 이상 지한 분식을 찾았다.
한데 늘 혼자 오던 그녀가 오늘은 누군가를 대동했다.
함께 온 이는 서른 중반의 남자였다.
깡마른 체구에 얼굴엔 걱정근심이 가득한 그의 이름은 최철우.
그는 하경춘을 못미더운 듯 바라보며 물었다.
“여기에 답이 있다고요?”
“그렇다니까. 자네 아버지가 그리 말했어.”
최철우의 아버지는 삼 년 전 돌아가셨다.
즉, 하경춘은 아버지의 혼령이 최철우를 지한 분식으로 인도했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최철우는 하경춘이 영 못미더웠다.
지금 그에겐 커다란 고민거리가 하나 있었다.
설렁탕집을 열려고 하는데 이게 잘될지 확신이 서지 않는 것이다.
그가 오랜 시간 연구해서 만들어낸 설렁탕 자체는 맛이 괜찮았다. 문제는 그 정도의 설렁탕 맛을 내는 집이 제법 많았다는 것.
압도적으로 잘할 게 아니라면 뭔가 그 집만의 특징이라도 있어야 했다.
그런데 특징이 없었다.
잘되는 설렁탕집은 김치까지 맛있다고 한다.
최철우는 김치와 깍두기 역시 나름 맛있게 담글 줄 알았다.
하지만 이 역시 여느 설렁탕집에서도 충분히 맛볼 수 있는 수준이었다.
무언가 자신의 식당을 찾는 손님들의 뇌리에 깊이 각인될 포인트가 필요했다.
그것을 찾지 못해 준비를 다 해놓고 식당문을 열지 못하는 상황이니 가슴이 답답했다.
그에 아는 지인이 하경춘을 소개시켜 줬다.
그녀가 용하니 한 번 만나보면 어떤 해결책이 나올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최철우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하경춘을 만나러 갔다.
한데 하경춘은 최철우의 고민을 들을 생각도 않고 벌떡 일어나더니 대뜸 그를 지한 분식으로 끌고 왔다.
“저기 도사님.”
“어허, 경춘이라는 예쁜 이름이 있습니다.”
“네, 그래요. 경춘 씨, 저 배 안 고파요.”
“그럼 시키지 말아요. 나만 먹고 갈 테니까.”
그러면서 하경춘은 김치찌개를 주문했다.
‘하 참, 이게 뭐하는 건지.’
최철우가 어이없어 하는 사이 밑반찬이 먼저 나왔다.
지한 분식의 반찬은 기본 네 가지로 배추김치는 고정이었으며 나머지 반찬들은 그때그때 바뀌곤 했다.
오늘은 배추김치와 두부조림, 햄어묵볶음, 깍두기가 나왔다.
식욕이 없다던 최철우는 배추김치와 깍두기를 보자 저도 모르게 젓가락을 놀렸다.
아무래도 자신이 주력으로 삼는 음식 중 하나이다 보니 절로 관심이 쏠린 것이다.
한데.
“……!”
배추김치와 깍두기를 맛본 최철우의 머릿속에 천둥이 내리쳤다.
‘이게 바로 포인트야!’
2프로 부족했던 것을 완벽하게 메울 수 있는 맛의 포인트가 바로 이 집 김치에 담겨 있었다.
‘어떻게 분식집 김치가 이럴 수 있지?’
놀란 최철우가 근처에 있던 알바생을 불렀다. 그에 이주희가 후다닥 다가갔다.
“네, 손님.”
“저…… 이 집 김치 팔기도 합니까?”
그 물음에 이주희는 카운터에서 지한 김치 매장 명함을 가져다주었다.
“여기서 사가시면 돼요.”
“아, 감사합니다! 경춘 씨, 정말 감사합니다. 아버지가 왜 여기로 오라 그랬는지 알겠어요!”
최철우가 후다닥 일어나 식당을 나섰다.
그런데 최철우가 앉아 있던 자리에 승복을 입은 스님 한 명이 다가와 가만히 앉는 게 아닌가?
이상한 건 이주희를 비롯, 다른 직원들이 그를 전혀 상대 안 한다는 것이었다.
당연했다.
스님은 오로지 하경춘의 눈에만 보였으니까.
요즘 그녀의 영력이 높아지다 보니 이제는 귀신까지 간혹 보이곤 했다.
한데 이 스님 귀신은 며칠 전부터 눈앞에 나타나 그녀를 귀찮게 하고 있었다.
“좀 가요.”
하경춘이 낮게 말했다.
그러자 스님은 두 손을 합장해 보이며 이렇게 대답했다.
“곡차(穀茶)와 두부를 내어주면 내 성불하겠소이다.”
“매일 드렸잖아요. 매일.”
하경춘은 스님이 나타난 날부터 매일 밤 제사상을 만들어 곡차와 두부를 올려 바쳤다.
제사상에 올라가는 곡차의 종류도 다양했다. 보리차. 율무차. 현미차. 옥수수차 등등.
두부 역시 생두부, 삶은 두부, 구운두부, 연두부, 순두부, 등등 여러 종류로 올려놓았다.
하지만 스님은 계속 같은 말만 반복하며 성불하지 않았다.
“이것은 곡차와 두부가 아니올시다.”
그러면서 식사하는 곳까지 따라와 몇날 며칠을 괴롭히니 환장할 노릇이었다.
그에 답답해진 하경춘이 혹시나 싶어 주방에 있던 강지한에게 물었다.
“사장님! 혹시 스님들이 드시던 곡차랑 두부가 뭔지 아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