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0
Restaurant 119. 각자의 아침
토요일 아침.
조미옥은 눈을 뜨면서부터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어제부터 각 학교별로 시에서 선정한 세 군데 업체의 김치가 심사에 들어갔다는 얘기를 접했기 때문이다.
조미옥은 필시 지한 김치가 다른 업체의 김치를 압도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학교들 계약 다 따내면 대체 얼마야?’
조미옥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대충 계산을 끝낸 그녀의 얼굴에 함박웃음이 걸렸다.
‘아무래도 다음 주 중에 사람 충원해야겠네. 재료 거래 물량도 늘리고.’
조미옥이 예상하기에 학교와의 거래는 내년에 더 늘어날 것이 분명했다.
이건 시작에 불과할 뿐이었다.
‘가만. 이거 김치 공장 하나로 감당이 되려나?’
김치 공장을 하나 더 돌려야 하는 상황까지 염두에 둬야 할지도 몰랐다.
그녀가 당장 신푸드의 사장이자 김치 공장의 소유주인 신장호에게 전화를 넣었다.
“네~ 신 사장님 안녕하세요! 호호호. 그간 무탈하셨고? 저야 마음이 즐거우니 몸도 즐겁죠. 피곤이 뭐랍니까? 어떻게, 우리 사장님이랑 진행 중인 즉석식품 사업은 잘 돌아가셔요? 세상에. 축하주 한잔해야겠네요. 아, 일찍부터 전화 드린 건 다름이 아니고 다른 김치 공장 계약 상황 좀 알아보려고요. 아니요. 당장 급한 건 아닌데 나중을 생각하면 미리 알아둬야 할 것 같아서요. 호호. 네네. 네, 알겠어요. 그럼 연락 주셔요~”
신장호와 통화를 끝낸 조미옥이 기운차게 일어서서 방문을 열고 나갔다.
그러자 이미 주방에서 아침을 준비 중인 진경혜의 뒷모습이 보였다.
“빨리 일어났네?”
“좋은 아침이야~ 언니.”
두 사람은 한집에 같이 살며 전보다 더욱 돈독한 관계가 되었다. 그렇다 보니 서로를 대하는 것도 많이 편해졌다.
“안 피곤해?”
“몸을 많이 쓰니까 한 번 잠들 때 그냥 숙면이야. 그리고 뱃속에 그지가 사나봐. 아침에 알람 듣고 일어나는 게 아니라 배고파서 일어나. 호호호.”
“하긴. 나도 그래.”
말을 하며 조미옥이 코를 벌름거렸다.
눈을 뜰 때부터 심하게 구수한 냄새가 계속 후각을 자극해 침이 가득 고였던 참이다.
한국 사람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그 냄새.
맡기만 해도 밥 한 공기가 바로 떠오르는 그 냄새.
“청국장 오랜만이네. 빨리 내와 봐. 못 참겠어.”
진경혜가 만드는 건 두부와 돼지고기, 김치, 애호박, 양파가 가득 들어간 청국장이었다.
청양 고추로 얼큰함도 더 했다.
“다 됐지롱~!”
진경혜가 청국장이 가득 담긴 큰 뚝배기 하나를 상 가운데에 놓았다.
그에 조미옥이 밥 두 공기를 퍼서 나르고 수저를 챙겨 세팅했다.
그러는 사이 진경혜는 냉장고에 있던 김치와 콩자반을 꺼내왔고, 조미김 두 봉지를 깠다.
미리 구워놓은 계란프라이도 상에 올렸다.
하나 같이 청국장과 잘 어울리는 찬들이었다.
조미옥이 청국장 냄새를 쭉 들이켜더니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 냄새지. 이 냄새. 앞으로 며칠은 다른 음식 먹어도 청국장 냄새 맡아야겠네.”
발효가 독하게 된 청국장의 경우에는 한 번 끓여 먹으면 환기를 시켜놓아도 그 냄새가 잘 빠지지 않는다.
“먹자. 잘 먹을게.”
“맛있게 먹어, 언니.”
조미옥이 밥 한 술을 크게 넣고 청국장을 떠먹었다.
“호록.”
청국장이 입안 가득 채운 밥 알갱이 사이를 촉촉이 적시며 스며들어왔다. 동시에 큼큼한 향과 강렬한 풍미를 확 풍기는 것이 기가 막혔다. 혀 위로 얼큰하면서도 찐한 장맛이 퍼져 나갔다.
이번엔 두부와 고기를 건져서 맛봤다.
구수한 청국장 속에 고소한 고기와 짭조름한 맛 가득 머금은 두부가 함께 씹히며 뒤섞이자 어마어마한 풍미의 퍼레이드가 벌어졌다.
“맛있다.”
저도 모르게 맛있다는 말이 나오는 조미옥.
진경혜의 얼굴에 미소가 걸렸다.
조미옥이 청국장을 국자로 크게 퍼서 밥 위에 턱 얹었다. 그리고 숟가락으로 슥슥 비볐다. 그것을 한술 떠서 김치를 위에 얹고 그대로 입에 넣었다.
지금 이 순간, 조미옥은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런 한입을 마음껏 즐기고 있었다.
“어머, 미옥 언니. 진짜 복스럽게 먹는다.”
먹는 모습만 봐도 군침이 꼴깍꼴깍 넘어가는 진경혜였다.
그녀가 질 수 없다는 듯 큰 대접을 가져오더니 남은 밥을 탁 털어 넣고 청국장 두 국자에 계란프라이에 들기름까지 꺼내와 두르고서 슥슥 비볐다.
그러고는 조미옥보다 크게 한입 넣고 게걸스레 씹어 삼켰다.
“꿀꺽! 으따~ 좋다.”
맛있는 걸 먹으면 저도 모르게 사투리가 튀어나오는 진경혜였다. 조미옥이 그걸 보고 똑같이 비벼서 맛을 봤다.
입안에서 청국장과 들기름, 계란 노른자의 삼중주가 폭발했다.
거기에 두부, 애호박, 고기의 식감이 거들며 훌륭한 맛의 오케스트라가 열렸다.
두 사람은 순식간에 밥 한 공기를 뚝딱 비웠다.
청국장을 담았던 뚝배기는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아, 잘 먹었다.”
“기운이 팍팍 나네요. 호호.”
식사를 끝낸 여인들의 얼굴이 붉게 상기됐는데 아주 개운해 보였다.
이보다 완벽한 아침상이 또 있을까 싶었다.
* * *
한편, 조미옥과 통화를 끝낸 신장호도 가족과 함께 아침을 먹는 중이었다.
거실에 놓인 긴 테이블엔 세 가족이 모여 앉아 있었다.
신장호와 그의 아내 민효주, 아들 신일중은 아침을 꼭 챙기고는 했다.
다들 아침을 든든히 먹어야 힘이 나는 체질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아침상에는 고정적으로 반드시 올라오는 반찬이 꼭 있었는데 바로 김치였다.
그중에서도 신장호가 가장 좋아하는 건 단연 배추김치였다.
요즘 신장호는 지한 김치 덕분에 밥 먹을 맛이 났다.
지한 김치는 찌개를 끓여도 맛있고, 전을 부쳐도 끝내줬다. 기름 두른 팬에 설탕만 넣고 볶아도 밥도둑이었다.
물론 그냥 먹어도 최고였다.
오늘은 그 만능 김치로 만든 레토르트 식품들이 아침상에 올라왔다.
김치찌개, 김치볶음밥, 김치만두, 돼지목살김치찜까지.
이미 회사 자체 품평회에서 90점 이상을 받은 음식들인 만큼 맛에 자신이 있었다.
가족들은 기존의 맛에서 업그레이드된 네 가지 제품을 아직 먹어보지 못했다.
“자, 우리 회사를 한 번 더 도약시킬 회심의 역작들이야. 먹어봐.”
“이게…….”
신일중이 두근거리는 심정으로 수저를 들었다.
강지한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배틀 셰프 대회 때마다 직접 피부로 느끼는 그였다.
게다가 그의 김치맛에 홀딱 반해 있던 터라, 과연 신푸드와 강지한의 합작으로 탄생한 음식들의 맛이 어떨지 궁금했다.
그가 신중히 김치찌개부터 맛보았다.
민효주도 김치찌개에 수저를 가져갔다.
“호록.”
“꿀꺽.”
동시에 김치찌개를 음미한 두 사람이 놀란 시선을 교환했다.
도저히 레토르트 식품이라고는 상상할 수가 없는 맛이었다.
퀄리티 자체는 크게 발전하지 않았다.
하지만 레토르트 식품이라고 하면 강하게 느껴지는 화학조미료의 맛이 죽고, 대신 깊은 풍미가 확 살아났다.
대체 어떤 마법을 부리면 이런 일이 가능해지는 건지 놀라울 정도였다.
다음으로 시험대에 오른 건 김치볶음밥이었다.
“와.”
“어머나. 이거 참 좋네요.”
신일중은 짧은 감탄을, 민효주는 진심 어린 찬사를 보냈다.
“들어간 조미료는 설탕이랑 미원 살짝. 그게 전부네요?”
신장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김치 맛이 워낙 좋아서 화학조미료가 과하게 들어갈 일이 없어. 그 정도만 해도 김치볶음밥 맛이 아주 괜찮아.”
전에 있던 김치볶음밥은 명함도 내밀지 못할 정도였다.
다음으로는 돼지목살김치찜을 맛봤다.
확실히 찜은 찌개보다 국물이 진하고 간이 더 강했다.
물론 같은 김치를 베이스로 만들었기에 기본적으로 업그레이드된 맛의 밸런스는 흐트러지지 않았다.
숟가락이 닿는 음식마다 하나같이 맛이 있었다.
그러다 김치 만두가 마지막 화룡정점을 찍었다.
“아빠, 이거 출시되면 다른 업체 김치 만두 전부 잡아먹겠는데요?”
그 말에 신장호의 호탕한 웃음이 터졌다.
“푸하하하! 띄워주기는. 물론 맛이야 상위 매출에 터줏대감 마냥 틀어박혀 있는 다른 업체 만두들보다 못하지는 않겠다만 덩치가 달라. 그들이 공룡이면 우리는 닭인데 파워게임에서 밀리지. 그래도 열심히 틈새 광고 때리고 마케팅해서 입소문이 나면 짭짤한 매출은 확실하겠지.”
“신푸드도 언젠가는 공룡 되겠죠.”
민효주가 슬쩍 말을 얹었다.
그녀는 겉보기엔 조용조용한 전업주부지만 속으로는 나름 커다란 야망을 품고 있는 여인이었다.
신장호는 아내의 그런 점이 참 마음에 들었다.
자신에게 언제나 힘을 주기 때문이다.
힘을 실어주는 가족들의 반응에 감동한 신장호가 두 눈을 지그시 감고 읊조렸다.
“이제 다음 주면 출시야. 두 사람 다 우리 신푸드 김치 기획 상품들이 대박 나기를 기도…….”
냠. 호록. 우물우물. 꿀꺽.
신장호는 갑자기 들려오는 식사 소리에 말을 채 끝맺지 못하고 눈을 떴다.
그러자 남은 음식들을 허겁지겁 먹고 있는 신일중과 민효주의 모습이 보였다.
그 광경을 말없이 지켜보던 신장호가 속으로 생각했다.
‘기도보다 더 확실한 거지, 이게.’
* * *
아침 일찍 일어난 강지한은 설탕이와 산책을 하고 돌아왔다.
기분 좋게 흘린 땀을 샤워로 씻어내며 설탕이도 함께 씻긴 강지한은 아침을 준비했다.
요리사라도 해서 매일 대단한 음식으로 끼니를 해결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하루 종일 주방에 서 있는 만큼 본인이 먹을 건 간단히 하고 마는 경우가 많았다.
오늘도 그랬다.
강지한은 옛날 분홍소시지를 썰어 달걀물을 적셔서 구워 케찹을 뿌렸다. 그리고 큰 대접에 밥을 퍼서 따뜻한 물에 말았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대접과 분홍소시지부침을 상에 놓은 뒤 깍두기를 꺼냈다.
깍두기는 지한김치몰에서 배추김치 다음으로 잘나가는 인기 상품이었다.
물 말은 밥에 잘 익은 시원한 깍두기 한 점을 올려 먹으면 천국이 따로 없었다.
거기에 분홍소시지까지 집어 먹으니 단순하면서도 완벽한 맛의 조합이 펼쳐졌다.
“이 맛이지. 그치, 설탕아?”
왕!
강지한의 옆에 바짝 붙어 앉아서 사료를 먹던 설탕이가 짖었다.
설탕이의 애정 가득한 시선이 강지한에게 꽂혀 있었다.
녀석은 밥그릇에 사료가 가득 담겨 있는 데도 먹지 않고 강지한을 바라봤다.
강지한의 시선은 텔레비전으로 향해 있었다.
브라운관에서는 언제나 그렇듯 예능 프로그램이 흘러나오는 중이었다.
텔레비전을 주시하던 강지한이 천천히 밥 한술을 떴다.
그러자 그 행동에 맞춰 설탕이도 밥그릇에 코를 박고 사료를 한입 먹었다.
아그작. 아그작.
그러고는 강지한과 똑같이 턱을 움직이다, 같은 타이밍에 꿀꺽! 삼켰다.
다시 강지한을 주시하는 설탕이.
헥헥헥.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한지 꼬리를 마구 흔들다가 강지한이 또 밥 한술을 뜨자 얼른 사료를 한입 먹었다.
아그작. 아그작.
그렇게 이어지던 식사는 강지한이 숟가락을 놓는 순간 끝이 났다.
사실 설탕이가 자신을 지켜보며 먹는 속도를 같이한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모른 척했던 강지한이었다.
“아이구, 내 새끼.”
결국 참을 수 없는 귀여움에 설탕이의 턱을 쓰다듬어 주었다. 그 손길이 기분 좋았던 설탕이가 벌렁 드러누워 배를 보였다. 강지한이 녀석의 배까지 마구 쓰다듬어 준 뒤 출근 준비를 서둘렀다.
* * *
차를 몰고 분식집으로 향하는 길.
오늘따라 강지한의 눈에 설렁탕집이 유독 눈에 띄었다.
그러자 문득 오늘 아침에 먹었던 깍두기가 떠올랐다.
‘설렁탕은 국물도 중요하지만 그 집 깍두기가 맛없으면 꽝이지.’
순간,
‘잠깐만. 설렁탕집 깍두기가 우리 공장 깍두기보다 맛있을까?’
강지한의 머릿속에 그런 생각이 번개처럼 스쳐 지나갔다.
어쩌면 김치 거래처가 확 늘어날 지도 모를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