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하는 식당-119화 (119/330)

# 119

Restaurant 118. 상생의 길

목요일 오후 2시.

점심 급식이 끝난 이후, 소이현은 음식물쓰레기통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휴.”

오늘도 음식물쓰레기통에 가장 많이 담겨 있는 건 김치였다.

대체 학생들에게 김치를 먹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도통 감이 오지를 않았다.

막막함에 잠깐 동안의 휴식도 제대로 즐기지 못하고 3시 무렵부터 다시 저녁을 준비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저녁은 야간자율학습을 하는 학생 중 급식을 신청한 이들의 머릿수만큼만 만들면 되는지라 점심보다는 힘이 덜 들었다.

한참 필요한 재료들을 검수하고 혹시라도 상한 것이 있는지 확인하고 있는데.

띠링-.

누군가한테 문자가 왔다.

문자를 보낸 이는 자신의 강아지를 찾아준 사람, 지한 분식의 강지한 사장이었다.

‘사장님이 무슨 일로?’

소이현이 의아해하며 문자를 확인했다.

-안녕하세요, 소 선생님. 혹시 김치 때문에 고민 있지 않으신가요?

“어머?”

어떻게 자신의 고민을 귀신같이 맞춘 걸까?

눈앞에 있었다면 돗자리라도 까시라고 할 판이었다.

소이현은 바로 강지한에게 전화를 걸었다.

* * *

강지한은 브레이크 타임이 되자마자 소이현에게 문자를 보냈다.

그러자 바로 전화가 왔다.

“네, 소 선생님.”

-강 사장님. 안녕하셨죠?

“하루 지났는데 별일 있었을까요. 하하.”

-그렇죠. 근데 저한테는 별일이 있었네요. 아니, 늘 있었죠. 김치 때문에 골치 아픈 거 어떻게 아셨어요?

강지한은 어젯밤 분식집에 찾아온 인경고 학생들의 대화를 본의 아니게 듣게 되어 사정을 알았다고 말했다.

있는 그대로의 얘기였지만 그게 소이현에게는 상당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아……. 학생들이 그렇게 얘기했군요.

“죄송해요. 제가 너무 솔직했네요.”

-아녜요. 이런 얘기는 가감 없이 들어야 저한테 도움이 돼요. 마음은 조금 쓰리지만요. 호호.

소이현의 목소리에 힘이 많이 빠져 있었다.

그에 강지한이 바로 본론을 꺼냈다.

“소 선생님. 학교에서는 타 업체의 가공 김치를 구매해 사용하는 것이 불가한가요?”

-네? 아뇨. 원래는 시에서 지정해 준 업체의 김치 업체와 일 년 계약을 맺어 납품받게 되는데 이게 좀 문제가 생겨서 제가 재량껏 꾸려 나가고 있는 중이에요.

지난 3월부터 4월까지 두 달간, 춘천시 초중고의 모든 학교는 시에서 안정성과 맛평가의 합격점을 받은 다섯 군데 업체 김치를 받아 써왔다.

한데 5월 초, 이들 중 세 업체가 강원영양교사협회와 시청 관계자에게 로비하여 부당 낙찰을 받은 정황이 파악되어 결국 일 년 김치 공급계약은 파기되었다.

이후 단 두 업체만으로는 그 모든 학교의 김치 납품을 감당하기가 힘들어져 몇몇 학교의 김치는 한 달이 넘는 시간 동안 재직 영양교사들이 재량껏 공급해 오고 있는 실정이었다.

하지만 6월 중순부터는 다시 새로운 김치 업체와 계약을 맺어야 하는 상황.

이미 5월 말에 춘천시 학교 급식 김치 납품 업체 선정 공지가 시청 홈페이지에 뜨며 대기업과 김치 명장들, 그리고 지역 업체 등등에서 지원을 해왔다.

춘천시청은 강원도교육청과 손을 잡고 지원업체의 서류심사부터 제조 현장 위생상태 검증 등등을 꼼꼼하게 거쳐 최종 후보 업체 세 곳을 선정했다.

이번 심사는 특히 피곤했다.

그럴 것이 부정부패가 없는지 신중한 검열을 요하는 한편, 김치 자체의 맛과 질, 제조환경의 위생상태도 검사를 하는 등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많은데 시간은 촉박했기 때문이다.

춘천시의 김치 공급이 붕 떠버린 학교들을 그대로 놓아둘 순 없었기 때문.

해서 5월 말에 시작된 서류 심사는 6월 초에 끝났고, 이후 한 주 동안 서류심사를 통과한 업체들의 현장 실사와 맛 평가까지 마쳐야 했다.

그렇게 최종 후보에 오른 세 개 업체 중에는 지한 김치도 있었다.

사실 강지한은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을 쓰고 있지 않았다.

시청 공문을 보고 조미옥이 신청을 해버렸던 것.

다행히 현장 실사 기간은 지한 김치 공장이 가동된 이후였고, 지한 김치에게 공장을 대여해 준 업체가 나름 중소기업에서 이름 있는 신푸드였기에 여러 가지로 유리했다.

그러한 얘기를 강지한은 나흘 전에야 알게 됐다.

“그럼 우리 김치를 사용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아……. 저도 그러면 좋을 것 같은데 말씀드렸다시피 시에서 지정해 준 업체와만 계약이 가능하거든요. 안 그래도 이제 6월 중순부터는 다시 선정된 세 업체들 중 한 곳을 학교관계자들의 내부 심사로 선별해 계약하게 될 것 같아요.

“그럼 고민이 좀 덜어지나요?”

-그래도 고민이긴 해요. 저, 여태 업체 김치 사용하면서 학생들이 만족하는 거 본 적 없거든요.

소이현의 음성에 막막함이 가득했다.

지한 김치의 맛이 얼마나 끝내주는지는 그녀 역시도 지한 분식에서 먹어본 바, 익히 알고 있었다.

해서 지한 김치를 구매하고 싶었으나 그게 자기 마음대로 되는 일은 아니었다.

“소 선생님, 이번에 우리 김치도 춘천시 김치 납품 업체 후보 세 곳 안에 들었어요.”

생각지도 못했던 말에 소이현의 목소리가 격양됐다.

-정말요?!

스마트폰 너머로 소이현의 번쩍 뜨인 눈이 보이는 것만 같았다.

그 정도로 그녀의 음성에 고조된 감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네. 어제 연락 받았으니 시청 홈페이지 들어가 보시면 확인 가능하실 거예요.”

-그럼 분명 지한 김치가 선택될 거예요! 그 압도적인 맛을 어떤 업체가 이기겠어요? 사장님, 축하드려요~ 돈 버시겠어요.

“뚜껑 열어봐야 알죠.”

-안 열어봐도 알아요. 분명 제 말대로 될 거예요.

지한 김치가 현재 붕 떠버린 모든 학교 급식의 지정 김치로 선택될 것이라 확신하는 소이현이었다.

그녀의 말을 듣는 강지한의 기분이 은근히 흐뭇해졌다.

* * *

꿈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렇지 않고서는 몇 년 전 돌아가신 엄마와 아빠가 멀쩡한 모습으로 자신을 반길 리 없으니까.

두 분은 아무런 말 없이 그저 잔잔한 미소를 머금은 채 강지한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갑작스레 허공에 파문이 일며 눈앞의 환상을 지워 버렸다.

호수에 돌을 던진 듯 격하게 일던 파문이 잔잔해지며 다른 모습이 비추어졌다.

그것은 어린 시절 강지한 본인의 얼굴이었다.

강지한은 전신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열심히 옷매무새를 다듬고 있었다.

그가 입고 있던 건 앙증맞은 어린이용 조리사복이었다.

하얀색의 조리사복에 앞치마를 두르고 위생모자까지 착용한 그의 모습은 제법 그럴싸했다.

하지만 아직 젖살도 다 빠지지 않은 열 살의 소년이 어떤 연유로 조리복을 입은 것일까.

강지한은 그것이 과거의 단편인지, 존재치 않았던 허구를 꿈의 형태로 보고 있는 것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지한아~”

자신을 부르는 엄마의 목소리에 해맑게 뒤를 돌아보는 강지한.

그때, 다시 파문이 일며 영상이 또 한 번 바뀌었다.

그는 어딘지 모를 작은 시상식장의 단상 위에 올라가 트로피를 품에 안고 있었다.

시상식장에 모인 소규모의 사람들은 그런 강지한을 보며 박수를 쳐주었다.

찰칵!

기자로 보이는 사람 한 명이 그 모습을 카메라에 열심히 담았다.

찰칵! 찰칵!

요란한 플래시가 팍팍 터졌다.

“자~ 강지한 군! 여기 보고 활짝 웃어봐요~”

아직 이십 대 초중반 정도밖에 안 되어 보이는 젊은 청년 기자의 말에 강지한이 카메라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기자가 셔터를 누르며 플래시가 다시 한 번 터졌고 온 세상이 하얗게 물들었다.

“헉!”

그 순간 강지한은 헛숨을 들이켜며 눈을 떴다.

“강 사장, 괜찮아?”

밖에 나가서 전화 통화를 하고 들어오던 고중만이 놀라 물었다.

“네? 아……. 네. 지금 몇 시죠?”

“4시 20분 조금 넘었어. 다시 오픈 준비해야지. 뭐 악몽이라도 꿨나봐?”

악몽이라기보다는 행복한 느낌의 꿈이었다.

그런데 왜인지 슬픈 감정만 가슴속에 가득 남아 있었다.

“오빠, 혹시 기억에도 없는 어린 시절 그 모습, 꿈에 나온 거예요?”

아직 얼떨떨해 있는 강지한에게 이리나가 다가와 물었다.

“응, 맞아.”

“말로만 듣던 걸 직접 보니 기분 이상하네요.”

강지한은 한때 이리나와 편의점 알바를 하며 친하게 지냈었다.

당시 제법 친했던 둘은 서로의 시시콜콜한 얘기들을 제법 많이 주고받았다.

그중엔 오늘처럼 강지한이 단편적으로 가끔 꾸는 꿈 얘기도 있었다.

이런 꿈을 꾼 것이 처음은 아니었다.

가끔, 잊고 지낼 만할 때마다 어린 시절의 꿈을 꾸곤 했다.

물론 꿈속에서 보이는 상황이 그가 잊어버린 과거의 편린인지, 그저 꿈이 빚어낸 상상에 불과한지는 알 수 없었다.

아니, 후자일 가능성이 높았다.

아무리 어렸을 적의 일이라고 해도 이렇게까지 기억이 안 날 리 없었으니까.

강지한은 고개를 휘휘 털어 잡념을 떨치고 일어났다.

이제 저녁 장사를 시작해야 할 때였다.

* * *

하경춘은 올해 마흔을 넘긴 점쟁이다.

무당이라고 하기엔 거리가 멀었다.

그냥 대충 점을 보러 온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기운 같은 것을 말하면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그럼 틀리는 반은 교묘한 말재주로 임기응변을 발휘해 능구렁이처럼 넘어가고는 했다.

그리고 점쟁이면서도 점집에 앉아 있기보다는 나돌아 다니는 것을 좋아했다.

하고 다니는 행색도 그 나이 때의 여느 여인들 같았다.

스스로 점쟁이라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를 판이었다.

오늘도 하경춘은 초여름 바람이 좋아 일은 접어두고 밖으로 나왔다.

어차피 찾아오는 손님도 많지 않겠다, 좁은 방에 구겨져 있느니 바깥세상을 만끽하고 싶었다.

그렇게 한참 거리를 돌아다니다 배가 고파지면 늘 찾게 되는 곳이 있었다.

지한 분식이었다.

지한 분식에 웨이팅이 길어지면 지한 김치 전골집으로 갔다.

오늘은 다행스럽게도 웨이팅이 길지 않아, 금방 홀로 들어갈 수 있었다.

하경춘은 지한 분식에서 늘 김치찌개를 시켜 먹었다.

다른 음식들도 충분히 맛있었지만 김치찌개는 특히 그녀 입에 잘 맞았다.

벌써 지한 분식을 이용하게 된 지도 한 달여.

그녀에게 미미한 변화가 일고 있었다.

본인 역시 그 변화에 대해 인지하는 상황이었다.

‘여기서 밥을 먹고 난 이후부터 점이 점점 잘 맞아 들어간단 말이야.’

그렇다고 해도 5:5에서 6:4 정도로 바뀐 정도였다.

한데, 점쟁이에게 그건 어마어마한 일이었다.

덕분에 전에 없던 단골도 한 명 생겼다.

‘이상해. 음식에 뭘 넣나?’

하경춘이 처음 지한 분식에 끌렸던 건 근처를 지나가다 기이한 신력(神力)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건물 자체에도 그렇고 먹는 음식에도, 하다못해 수저에도 신력이 가득했다.

그런데 그게 사이한 기운이 아니었다.

오히려 식당에서 식사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가져다주는 기운이었다.

‘사장이 무슨 귀신 부리는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거 참, 희한해.’

하경춘이 홀로 사색에 잠겨 있을 때 김치찌개가 서빙됐다.

그녀가 반색하며 김치찌개를 맛보더니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크으, 신령이 깃드는 맛이야.’

* * *

금요일 늦은 저녁.

인경 고등학교의 급식실엔 밥 때가 아님에도 100명의 사람들이 테이블을 채우고 앉아 있었다.

한데 그중 학생은 절반밖에 되지 않았다.

나머지 50명 중 44명은 교직원, 6명은 급식소위원이었다.

그들의 시선이 한 곳으로 모이는 장소엔 소이현이 서 있었다.

“바쁘신 와중에도 우리 학생들의 건강한 식생활을 위해 이 자리를 빛내주신 심사위원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 드려요. 지금 제 앞에 보시면 각각 색이 다른 통에 세 종류의 김치가 담겨 있어요.”

소이현의 앞, 긴 테이블 위에는 노란색, 파란색, 빨간색의 커다란 반찬통이 놓여 있었다.

그 반찬통 안에는 각기 다른 세 업체의 배추김치가 먹기 좋게 잘라 담겨 있었다.

“지금부터 저랑 급식소위원분들께서 각각의 김치를 통에 담긴 색과 똑같은 세 가지 색 용기에 나눠 담아서 테이블마다 드릴 거예요. 심사위원 여러분께서는 김치를 신중히 맛보시고 미리 지급해 드린 스티커를 나가실 때 저기에 붙여주시면 된답니다.”

소이현이 급식소의 출입문 쪽을 가리켰다.

출입문 근처 벽에는 투표 스티커판이 크게 붙어 있었다.

스티커 판에는 세 개의 투표 공간이 ‘노란통 김치’, ‘파란통 김치’, ‘빨간통 김치’로 나뉘어져 있었다.

“그럼 지금부터 시작해 볼게요.”

소이현의 말에 급식소위원들이 바쁘게 움직이며 김치를 배급했다.

심사위원들은 앞에 놓인 김치를 먹으며 서로 의견을 나누기 시작했다.

“파란통 김치는 그냥 일반적인 맛인데. 특징이 그닥…….”

“노란통 김치는 감칠맛이 좀 부족하지 않아요?”

“그쵸? 심심한 것 같아요.”

“그래요? 내 입에는 딱인데. 두 분이 워낙 짜게 드시나 보다.”

“어머나. 빨간통 김치 먹어봐요. 다른 김치랑 차원이 달라.”

“어우, 맛있다.”

“그치?”

“이 정도면 김치만 있어도 밥 먹겠네.”

심사위원들의 젓가락질은 시간이 갈수록 빨간통 김치에만 집중되고 있었다.

분명 심사를 하기에 넉넉한 양을 시식용으로 받아왔는데 노란통, 파란통 김치가 남아도는 반면 빨간통 김치는 거덜 나기 시작했다.

“선생님~ 빨간통 김치 좀 더 주세요.”

급기야 김치 리필 사태가 일어났다.

교직원들 중 한 명이 간절한 시선을 소이현에게 던졌다.

그에 소이현이 김치를 더 담아주려 할 때였다.

“저도요.”

“우리도 빨간통 김치 더 주시면 안 돼요?”

그렇게 말하며 손을 든 이들은 놀랍게도 학생들이었다.

김치가 아무리 맛이 있어도 학생들의 입맛에 맞지 않으면 무소용이었다.

그런데 학생들이 시식용 김치를 거덜대고서 더 달라고 하고 있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는 소이현의 기분은 날아갈 것 같았다.

빨간통에 담긴 것은 지한 김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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