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하는 식당-118화 (118/330)

# 118

Restaurant 117. 영양교사의 고민

강지한은 넉살이를 어디서 봤는지 금방 떠올렸다.

어제, 예소린을 태우고 중앙고속도로를 타기 위해 스무숲 근처를 지날 때였다.

목이 마르다는 예소린의 말에 잠시 도로변에 주차를 해놓고 편의점에 들르던 중, 그는 넉살이와 비슷하게 생긴 강아지를 봤다.

전봇대에 붙여진 전단지 속에서.

전단지 안의 넉살이는 얼굴을 가리는 머리카락을 위로 땋아 올린 채 해맑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전단지에서 봤던 강아지 이름이…….’

생각나지 않았다.

넉살이가 그 강아지라는 것도 겨우 기억해냈다.

그만큼 크게 주의해서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무튼 다행이다. 너 주인 찾을 수 있겠다.”

강지한은 혹시 넉살이가 유기견이라면 어쩌나 걱정했었다.

한데 주인이 찾고 있으니 걱정을 덜었다.

“내일 바로 주인 찾아줄 테니까, 오늘은 나랑 집에서 자자.”

깨끗하게 씻겼는데 마당에서 넉살이를 재우기는 미안했기에 강지한은 녀석을 거실에서 재우기로 했다.

그리고 본인은 거실 소파에 올라가 잠을 청했다.

그러자 설탕이가 넉살이의 코를 몇 번 핥고서 소파로 올라와 강지한의 품에 안겼다.

* * *

다음 날.

강지한은 새벽 일찍부터 차를 몰아 스무숲으로 향했다.

차 뒷좌석에는 설탕이와 넉살이가 타고 있었다.

아직 출근 전의 이른 시각.

차가 그다지 많지 않은 도로를 시원하게 달려 목적지에 다다랐다.

강지한이 차에서 내려 전봇대에 붙은 전단지를 확인했다.

-강아지를 찾습니다.

사례금 50만 원.

실종견: 티베탄 테리어/ 수컷/ 2살/ 이름 ‘히릿’

실종견 특징: 하얀색 털이 전체적으로 길게 늘어져 있는 장모 중형견입니다. 평소에는 머리털을 묶어주지만 실종 당시에는 머리끈을 해주지 않아 얼굴이 다 가려져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실종일: 5월 22일.

실종추정장소: 스무숲 사거리 부근.

*누구든 강아지를 보신 분은 010-XXXX-XXXX로 연락주세요. 후사하겠습니다.

전단지를 뜯어서 차에 탄 강지한이 사진 속 모습과 넉살이의 얼굴을 비교했다.

“똑같은데.”

정말 넉살이가 히릿이 맞는 건지 확인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 있었다.

“히릿!”

강지한이 그 이름으로 넉살이를 불렀다.

그러자 넉살이의 꼬리가 좌우로 마구 흔들렸다. 시트 위에 놓인 앞발을 동동거리며 움직였다.

틀림없이 자기 이름을 알아듣고 나오는 반응이었다.

“역시 맞구나.”

강지한이 히릿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말했다.

“조금만 기다려. 금방 주인 찾아줄게.”

강지한은 스마트폰을 꺼내 전단지 속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그러자 신호음이 몇 번 가지 않아 아직 잠을 완전히 떨쳐내지 못한 여인의 음성이 들려왔다.

-여보세요…….

“아, 안녕하세요. 저… 전단지 보고 전화 드렸는데, 혹시 히릿이 주인 되시나요?”

그러자 맥없던 여인의 음성에 갑자기 힘이 들어갔다.

-맞아요! 혹시 우리 히릿이 발견하셨나요?!

강지한의 귀에 천둥이 쳤다.

그가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리고는 스마트폰을 조금 떨어뜨린 채 통화를 했다.

“네. 히릿이 맞는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드려요! 지, 지금 어디세요? 제가 바로 나갈게요!

“여기 스무숲 사거리 세븐인레븐 편의점 있는 곳이에요.”

-아, 네! 거기로 갈게요!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여인은 급하게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산발머리를 한 여인이 수면바지에 후드티 하나만 달랑 걸치고서 편의점 앞으로 헐레벌떡 다가왔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스마트폰을 만지는 그녀에게 강지한이 다가갔다.

“저 혹시…….”

“아, 전화 주셨던!”

“네.”

“우리 히릿이 잘 있나요?”

“한 번 보시겠어요?”

강지한이 여인을 자신의 차로 안내했다.

그리고 뒷좌석을 열어 강아지를 보여주었다.

순간 강아지를 확인한 여인의 입에서 고성이 터져 나왔다.

“어머나 어머나! 어쩜 좋아! 히릿!”

끼잉! 끼이잉! 낑!

여인이 부르자마자 히릿이 서럽다는 듯 낑낑대며 그녀의 품에 와락 안겼다.

그리고서는 여인의 얼굴을 핥고 비비며 그간의 서러움과 그리움을 표현했다.

여인은 그런 히릿을 끌어안고 엉엉 울었다.

“히릿! 어디 갔었어! 내가 얼마나 찾았는지 알아? 너 영영 못 보는 줄 알았단 말이야! 흐아아앙!”

이른 아침, 대로변에서 잃어버렸던 강아지와 재회한 여인은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 * *

“훌쩍! 크응! 죄송해요.”

겨우 진정한 여인은 강지한의 차 뒷좌석에 앉아 있었다.

히릿은 그녀의 무릎을 베고 좌석에 늘어졌다.

너무 격하게 주인을 반기다가 탈진해 버린 것이다.

뒷좌석을 내어주는 바람에 설탕이는 조수석에 앉게 됐다.

운전석에 앉은 강지한이 뒤를 돌아 여인을 바라봤다.

“좀 괜찮으세요?”

“네. 휴우. 초면에 많이 추했죠?”

여인의 얼굴을 가만히 살피던 강지한이 빙긋 웃었다.

“초면이 아닌 것 같은데요?”

“네?”

“저 어디서 본 것 같지 않으세요?”

강지한은 그녀의 얼굴을 보자마자 누군지 알아챈 터였다.

여인이 강지한을 가만히 살펴보다가 두 손을 마주쳤다.

“아! 분식집 사장님?”

“맞아요.”

“어머나! 어떻게 이런 우연이! 정말 반가워요.”

“저도 반갑습니다. 하하.”

“근데…… 저 사장님 분식집 딱 세 번 간 게 전분데 기억하시네요? 손님들이 제법 많이 들텐데.”

“제가 사람 얼굴을 좀 잘 기억하는 편이거든요.”

“그렇구나. 너무 신기해요, 지금.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어요?”

“그러게요.”

“아. 소개가 너무 늦었네요. 소이현이라고 해요.”

“강지한입니다.”

“지한 사장님, 우리 히릿이 찾아주셔서 정말 감사드려요. 저 솔직히 이제 히릿이 못 보는 줄 알았어요. 집 나간 지 2주가 넘어가니까 이건 안 되겠구나 싶더라고요.”

“제가 히릿이를 처음 봤던 게 열흘 전쯤이에요.”

“그래요? 그럼 열흘 동안 데리고 계셨던 거예요?”

“아뇨. 밥만 챙겨줬어요. 늘 같은 시간에 찾아와서 밥을 챙겨주면 다른 곳으로 가버리곤 했거든요.”

“그랬었구나. 제가 어떻게 감사의 말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어요, 정말. 아! 그리고 이거.”

소이현이 주머니에서 돈 봉투를 내밀어 건넸다.

히릿을 찾아주는 은인에게 언제든 보상을 하려고 항상 품에 지니고 다니다시피 했던 돈이었다.

강지한이 손사래 쳤다.

“사례금은 안 주셔도 돼요.”

“받지 않으면 제 마음 불편해서 안 돼요. 우리 히릿이 이렇게 건강하게 다시 만날 수 있었던 건 다 사장님이 보살펴 주셔서 그런 거니까요.”

소이현이 그렇게까지 말하니 강지한은 더 만류할 수가 없었다.

“그럼 감사히 받을게요.”

“당연히 받으셔야죠.”

히릿이를 찾고 감사한 마음까지 전하고 나니 비로소 소이현은 완전히 마음이 안정되었다.

“후우.”

숨을 한 번 고른 뒤, 뭔가를 곰곰이 생각하던 그녀가 대뜸 다른 말을 건넸다.

“저, 인경 고등학교에서 영양교사로 있어요.”

인경 고등학교라면 강지한의 분식집에서 그나마 가장 가까운 학교였다.

지한 분식 근처에는 학교보다 학원이 많았다.

일전에 찾아온 고등학교 농구부원 학생들도 인경 고등학교에 재학 중이었다.

“아, 영양교사시군요.”

“네. 그래서 사장님 음식 먹고 진짜 많이 놀랐어요. 인공 조미료를 거의 쓰지 않는 것 같은데 너무 맛있는 거예요.”

“감사한 말씀이네요.”

“정말 레시피를 알려 달라고 하고 싶을 정도였다니까요. 실례인줄 잘 알고 있으면서도 가서 음식 먹을 때마다 그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었어요.”

“그러셨군요.”

요리사로서 충분히 공감되는 말이었다.

강지한도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그 음식의 레시피가 어떻게 되는지 알고 싶은 욕심이 생기곤 했으니까.

당장 이번에 속초에서 먹었던 순댓국만 해도 그랬다.

“아, 제가 너무 두서없이 이야기를 늘어놓았네요. 호호, 아무튼 정말 감사드려요. 진짜 사장님이 제 은인이세요. 앞으로 분식집 홍보 열심히 하고 자주 애용할게요.”

“그래 주시면 감사하죠. 근데 참 이상하네요. 이 녀석, 어떻게 여기서 사농동까지 왔을까요?”

“아, 집이 사농동이세요?”

“네.”

스무숲과 사농동이라고 하면 춘천에서는 거의 끝에서 끝이었다.

차를 타고 가도 15분은 넉넉히 걸리는 거리.

게다가 찻길도 많고 위험한데 큰 사고 없이 사농동까지 왔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었다.

“얘가 길을 잃고 너무 당황해서 정신없이 가다 보니 그리됐나 봐요. 아무튼 그날 일이 그리 되려 했는지 뭔가 이상했어요. 그때가 석가탄신일이었거든요. 모처럼 평일에 공휴일이 잡혀 늦게까지 푹 자고 일어났었어요. 그런데 얘가 글쎄 주방 수납칸에 있던 밀가루를 뜯어 난장판을 만든 거 있죠?”

소이현이 히릿의 엉덩이를 탁 쳤다.

히릿이 움찔하며 눈만 위로 들어 올려 소이현을 바라봤다.

“그래서 주방부터 정리하는데 어제 대형마트몰에서 주문했던 물건들이 배송 오더라고요. 그거 받아놓고 다시 주방 정리하다가 히릿이 씻기고 내보냈죠. 그리고 저도 씻고 나왔는데 히릿이가 없는 거예요. 현관문은 활짝 열려 있고. 아무래도 물건 배송 왔을 때 제대로 문을 안 닫았나 봐요.”

“그래서 목줄도 없고 머리도 산발이었군요.”

“네.”

그제야 강지한은 상황이 조금 이해가 됐다.

그가 동물예능프로에서 봤던 강아지 전문가의 말에 의하면, 강아지들은 의외로 집을 나왔다가 길을 잃기가 쉽다고 했다.

그리고 이 경우 강아지를 찾을 수 있는 골든타임은 세 시간이니 만약을 대비해 미리 전단지를 만들어 놓았다가 뿌리는 게 좋다고 말했었다.

세 시간이 지나면 사실상 찾기가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의 얘기였다.

한데 히릿은 잃어버린 지 무려 2주일이 지났고 이리저리 헤매다가 사농동까지 와버렸는데도 결국 주인과 재회하게 됐다.

그게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강지한도, 소이현도 잘 알고 있었다.

때문에 소이현은 강지한에 대한 고마움이 더욱 컸다.

“제 얘기가 또 길어졌네요. 그럼 저 출근 준비해야 해서 이만 들어가 볼게요. 정말정말 한 번 더 감사드려요.”

“네. 들어가세요.”

“네에~ 가자, 히릿아.”

소이현은 히릿과 함께 경쾌한 걸음으로 멀어져 갔다.

그동안 매일 밤 찾아오는 히릿으로 인해 무거웠던 마음 한편이 가벼워진 강지한이었다.

* * *

밤 아홉시 경.

인경 고등학교 농구부원들은 어김없이 지한 분식을 찾아왔다.

이제 운동이 끝나고 지한 분식에서 밥을 먹는 게 그들의 마무리 일과처럼 되어 버렸다.

어제는 음식을 용성우가 했다.

그럼에도 농구부원들은 다음날 몸이 개운해지는 효과를 봤다.

요리의 기본이 되는 육수나 비법양념장은 전부 강지한이 만들기 때문이다.

농구부에 늦게 입부해 지한 분식을 나중에 접한 장학연은 처음엔 이곳에서 음식을 먹으면 다음 날 몸이 개운하다는 말을 못 믿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 누구보다 지한 분식을 신봉했다.

며칠 지한 분식을 이용한 결과 몸이 개운한 건 기본이고, 허리 통증까지 거의 사라졌기 때문이다.

농부구원들은 음식을 먹으며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다.

홀에는 손님이 많이 빠진 데다가 농구부원들의 울림통이 커서 그들의 대화는 주방까지 다 들렸다.

“와, 진짜, 김치 예술이다.”

농구부장 최태용은 분식집에 올 때마다 늘 김치를 예찬했다.

“그쵸? 학식도 김치가 이렇게만 나와주면 다 먹을 텐데.”

“그러게. 왜 학교에서는 이런 김치를 못 만들지?”

그때 장학용이 최태용에게 물었다.

“선배님, 영양교사 이번에 바뀐 거라면서요.”

“응.”

“작년엔 어땠어요? 김치 먹을 만했어요?”

“똑같지 뭐. 아니다. 조금 더 나았나? 근데 다른 음식들은 소이현 쌤이 더 잘하는 것 같아.”

“근데 김치는 전 영양 쌤보다 못 만드나 보네요.”

농구부원 학생들의 대화에 강지한의 귀가 쫑긋하고 섰다.

‘소이현?’

불과 오늘 아침에 만났던 히릿이 주인의 이름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녀는 인경 고등학교에서 영양교사로 일하는 중이라고 했었다.

“김치만 좀 잘 만들어주면 완벽한데.”

“못 만들면 업체에서 사다 쓰면 되는 거 아니에요?”

“그 맛이 그 맛이야.”

“이 정도 되면 그냥 우리가 김치를 안 좋아하는 거 아닐까 싶다.”

“나는 김치 맛만 좋던데.”

“나도.”

“전 별로예요. 아니 일단 김치라는 반찬 자체가 너무 흔해서 그런가……. 손이 잘 안 가는 느낌?”

“맞아. 라면 먹을 때 빼고는 나도 잘 안 먹어.”

“근데 여기 김치는 또 먹게 되잖아요.”

“그러니까 내가 말했잖아. 여기 사장님은 장인 정신으로 요리하시는 거라고. 그럼 김치 하나도 이렇게 달라지는 거야. 그러니까 너희들도 잊지 마라. 장인 정신!”

“네!”

결국 대화는 최태용 부장의 단골 레퍼토리, 장인 정신으로 끝이 났다.

주방에서 모든 이야기를 듣고 난 강지한의 입꼬리가 살짝 말려 올라갔다.

그의 머릿속에서 아주 좋은 거래처들이 우르르 늘어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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