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6
Restaurant 115. 도다리 한 상
사실 심이영은 바비큐 파티가 시작되면서부터 그것을 묻고 싶어 호시탐탐 기회만 엿봤다.
눈치 없고 생각한 걸 그대로 내뱉기가 특기인 그녀는 궁금한 건 원체 참지 못하는 성미였다.
심이영의 예상 못한 발언에 채희준이 움찔해서 강지한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자 사람들의 귀추가 강지한에게 집중됐다.
그들은 강지한이 어떤 대답을 할지 궁금했다.
“짜고 치는 거라는 게…… 라운드마다 우승할 사람이 이미 정해져 있다는 뜻으로 말씀하신 건가요?”
강지한은 차분하게 되물었다.
“네, 드라마처럼 매 라운드랑 최종 결과까지 전부 만들어져 있는 거 맞아요?”
강지한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안 그래요. 저를 포함해서 배틀 셰프에 출연한 분들은 그때그때 최선을 다해서 시험을 치러요. 누가 탈락하고 올라갈지는 아무도 몰라요.”
그러자 심이영이 채희준을 바라봤다.
“뭐야, 자기.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 별것 아닌 핀잔에 채희준의 기분이 확 상했다.
안 그래도 강지한과의 첫 만남에서 심이영이 그에게 보인 호감 때문에 기분이 꼬여 있던 상황.
그런데 지금은 또 열이 넘는 사람들 앞에서 뭣도 모르고 떠들어대는 무식한 허풍쟁이가 된 기분이니 열이 확 올랐다.
하지만 꾹 참고 최대한 상황을 돌려서 풀어나가려 애썼다.
“지한 씨 난처하게 무슨 그런 질문을 해.”
그러나 심이영은 눈치가 참 없었다.
“아니 자기가 그렇게 말해서 그냥 물어본 거잖아.”
“그냥 그런 거 아닐까? 했던 거지. 그리고 설사 그렇다고 해도 말이야. 지한 씨가 ‘맞아요. 짜고 치는 거예요’라고 대답하겠냐고. 물론 짜고 치는 게 아니겠지만.”
채희준의 말에는 뼈가 있었다.
다른 사람 같으면 술도 한 잔 들어갔겠다 그걸 따지고 들었을 수도 있겠으나 강지한은 그저 웃어넘겼다.
그런 어른스러운 모습조차 채희준은 아니꼬웠다.
자신을 애 취급하는 것 같았다.
하나가 안 좋게 보이기 시작하니 다른 모든 것들이 별로였다.
결국 기분이 착 가라앉은 채희준은 술을 빠르게 비우기 시작했다.
그렇다고는 해도 워낙 술이 강한지라 갑자기 확 취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다만 약간의 취기가 그의 용기를 부추기고 있을 뿐.
한참 웃고 떠들며 술과 안주를 즐기다 보니 준비해 놓은 고기가 다 떨어졌다.
그에 정호찬이 서비스로 고기를 조금 더 내어주겠다고 했다.
순간 채희준의 눈이 번쩍 뜨였다.
초반에 말아먹은 이미지를 만회할 기회였다.
“추가 안주는 제가 한 번 준비해 볼까요?”
채희준에 말에 정호찬이 반색했다.
“맞다. 희준 씨, 고기집 운영하고 계신댔죠?”
채희준은 인천 부평역 먹자거리에서 제법 큰 규모의 고기집을 3년째 운영 중이었다.
하나 실질적인 근무 햇수를 따지자면 15년이 넘어간다.
학업에 그다지 관심이 없던 그는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고기집을 운영하는 아버지 밑에서 기술을 배워 나갔다.
열여덟 살 때부터 시작해 서른 살에 고기 집을 물려받아 3년 간 운영하며 꾸준히 매출을 올려놓았다.
경력이 경력인 만큼 그의 고기 다루는 솜씨는 상당했다.
발골도 잘하고 굽기도 잘 구웠다.
한데 무엇보다 자신 있는 건 바로 돼지고기 김치찌개였다.
사실 고기집의 매출이 올라가기 시작한데 크게 한몫한 건 바로 채희준이 직접 개발한 김치찌개의 공이 컸다.
“다들 고기 드셔서 배도 부르고 입도 기름질 테니 깔끔하게 씻어낼 김치찌개 한 번 해보려는데 어떠세요?”
“완전 좋죠.”
“대박. 짱 좋아요.”
사람들이 박수까지 치며 좋아했다.
그 열광적인 반응에 채희준의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아울러 자신의 김치찌개는 단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는 회심의 메뉴였다.
어딜 놀러가든 이 김치찌개만 끓이면 게임은 끝난다고 봐야 했다.
해서 언젠가부터 그는 오늘처럼 1박 2일로 놀러갈 일이 생기면 김치찌개의 핵심 양념장을 들고 다녔다.
애인과 둘이 먹어도 좋고, 친구들과 함께 떠난 자리에서 먹어도 좋았다.
오늘처럼 게스트하우스에서 처음 본 사람들과 어울린 자리에서는 그의 존재감이 김치찌개 하나로 완전히 부각됐다.
채희준이 은근슬쩍 강지한을 바라봤다.
“지한 씨도 배틀 셰프 출연하셨는데 뭐라도 하나 만들어 보시면 어때요?”
느닷없는 제안에 강지한이 멀뚱한 시선을 채희준에게 던졌다.
“싫어요?”
채희준이 물었다.
그에 강지한은 손을 내저었다.
“김치찌개 하나면 됐죠.”
“양이 그렇게 많지 않아요. 사람 입이 몇인데. 그러지 말고 지한 씨도 뭐 하나 만들어줘 봐요.”
채희준의 채근에 다른 흥 오른 사람들이 박자 맞춰 박수를 치며 강지한을 등 떠밀기 시작했다.
“만들어! 만들어! 만들어!”
강지한이 예소린을 슬쩍 쳐다봤다.
“어때요? 이런 것도 추억이지. 해봐요.”
예소린까지 그렇게 말하자 할 수 없이 엉덩이를 뗐다.
이를 본 채희준의 입꼬리가 살짝 말려 올라갔다.
‘됐다.’
채희준의 목적은 단순히 자기 혼자 김치찌개를 끓여 돋보이는 게 아니었다.
강지한과 함께 음식을 만들어 ‘더’ 돋보이는 것이었다.
그가 어떤 음식을 만들어 내더라도 자신의 김치찌개를 이길 수는 없으리라 생각했다.
두 사람이 똑같이 음식을 했는데, 한쪽에만 수저가 몰리면 다른 쪽은 패배감을 맛보게 마련이다.
특히나 요리사라면 더더욱.
채희준은 강지한에게 패배감을 톡톡히 안겨줄 참이었다.
한편, 요리에 일가견이 있어 뵈는 두 사람이 소매를 걷어붙이자 다른 사람들은 신이 났다.
게스트하우스 사장 정호찬은 특히 더 즐거워 한마디를 했다.
“이거 무슨 미니 배틀 셰프 보는 것 같네요. 하하.”
그리 말한 정호찬은 채희준과 강지한에게 필요한 조리도구들을 물어보고 척척 갖다 주었다.
어차피 마당에서 수돗물을 이용할 수 있었고 조리용 테이블도 마련된 터라 재료 도구들만 있다면 얼마든지 요리가 가능했다.
불은 여전히 좋은 화력을 뽐내는 바비큐 통이 가스레인지를 대신했다.
“근데 지한 씨는 뭐 만들 거예요?”
심이영이 물었다.
강지한은 가만히 턱을 쓰다듬다가 채희준에게 물었다.
“아까 도다리 잡으셨다고 했었죠?”
채희준은 술자리에서 자신이 낚아 올린 도다리 자랑을 그렇게 했었다.
“도다리 필요해요? 몇 마리 드려요?”
“오늘 잡은 거 다 써도 될까요?”
“네? 다섯 마리나? 그렇게 많이 잡았다가 남으면 어쩌려고?”
강지한은 미소로 대답을 대신했다.
채희준이 선심 쓰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내가 잡은 도다리들이 실해서 뭘 만들어도 맛 좋을 겁니다.”
물론 그래도 자신의 김치찌개는 이지기 못하겠지만.
정호찬이 강지한에게 다가왔다.
“필요한 재료 있으면 말해 봐요. 저도 요리깨나 좋아하는 사람이라 어지간한 건 다 쟁여놓고 사니까.”
강지한은 도다리로 뭘 만들까 생각했다.
회도 좋고 물회에 넣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주로 일식과 양식의 범주 내에서 그가 레시피를 구상했다.
그러다 한식 쪽으로 생각이 굳혀져 갈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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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템 메시지와 함께 어마어마한 양의 정보들이 파도처럼 몰아쳤다.
동시에 강지한은 무엇을 만들어야 할지 대번에 계획이 섰다.
“미역이랑 회칼 있나요?”
“그거면 돼요? 아, 그냥 주방 들어와서 이것저것 챙겨봐요.”
* * *
채희준과 강지한이 요리를 시작했다.
채희준은 냉장고에서 두부와 김치, 삼겹살만 꺼내왔다.
그것을 적당한 크기로 썰어 양념장을 푼 물에 넣고 삶는 것으로 끝이었다.
반면 강지한은 도다리를 회부터 쳤다.
비늘을 정리하고 대가리를 썰어 살점을 떼어낸 뒤 껍질을 벗겨 깨끗한 살덩이로 만드는 일련의 과정이 거침없었다.
김치찌개가 끓기를 기다리던 채희준은 강지한의 귀신같은 칼놀림에 말문이 턱 막혔다.
심이영과 정호찬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 역시 신기(神技)라도 보듯 시선을 떼지 못했다.
순식간에 도다리 세 마리를 회친 강지한이 뼈와 대가리를 따로 담아두고 나머지 두 마리는 손질해서 세 덩이로 잘랐다.
그리고 냄비 두 개에 쌀뜨물을 담아 한쪽에는 제철이 아닌 쑥 대신 미역과 무, 도다리를 넣어 맑은 지리를 만들었고, 다른 쪽에는 무, 도다리, 두부, 비법양념장을 넣어 매운탕을 만들었다.
이어 냉장고에서 꺼내온 각종 야채들을 물회용으로 채 썰었다.
거기에 회쳐놓은 도다리 살 중 3분의 1을 넣고 초고추장 베이스 양념을 만들어 물과 함께 섞은 뒤 잘 섞었다.
남은 도다리 살은 쟁반에 정갈히 늘어놓았다.
시간이 흘러 지리와 매운탕도 완성됐다.
그때쯤 김치찌개도 적당히 끓었다.
속에 들어간 김치와 돼지고기가 흐물거리도록 잘 익었다.
강지한은 잠시 동안 총 네 가지 도다리한상 요리를, 채희준은 한 가지 요리를 만들었다.
하지만 기죽지 않았다.
음식을 하는 모양새가 제법이긴 했으나 가짓수가 아무리 많아봤자 김치찌개를 이기지는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와, 어떻게 그 짧은 시간 동안 요리를 네 가지나 만들어요?”
“진짜 신기하다.”
초반 분위기는 강지한에게 몰리고 있었다.
‘한 입만 먹으면 돼.’
채희준은 끝까지 자신감을 잃지 않았다.
누구든 김치찌개를 먹어보면 이후로 숟가락을 놓치 못할 테니까.
사람들의 찬사 끝에 드디어 시식이 이어졌다.
대부분의 숟가락은 얼큰 칼칼해 보이는 진한 김치찌개로 먼저 들어갔다.
‘역시.’
술자리에서 회를 먹었다면 매운탕이나 지리가 좋겠지만, 지금은 돼지고기를 먹은 후였다.
그럴 땐 강렬한 맛으로 입을 씻어줄 필요가 있었다.
“아, 죽인다.”
“희준 씨, 김치찌개 완전 끝내주네요. 인천이라 그랬죠? 고기집 한 번 갈게요.”
“크으. 이거 하나면 소주 다섯 병이다.”
‘그렇지!’
사람들이 김치찌개를 극찬했다.
그런데 그때, 다른 음식에 대한 감탄이 터져 나왔다.
“와아! 회가 어쩜 이리 쫄깃해?”
심이영이었다.
그녀는 늘 맛보았던 채희준의 김치찌개보다 배틀 셰프 출연자 강지한의 음식이 더 궁금했다.
“어머, 물회 대박. 포항에서 먹었던 그 맛이야.”
물회는 양념장을 숙성시켜야 깊고 진한 맛이 난다.
하지만 한정신의 레벨 업 된 지식 속에는 숙성시키지 않아도 비슷한 맛이 나게 할 수 있는 양념장 레시피가 존재했다.
지리와 매운탕 역시 주어진 환경 안에서 한정신의 레시피를 최대한 지켜 만들었다.
“나 매운탕은 먹어도 지리는 안 먹는데 대박 맛있어요. 먹어봐요.”
심이영이 감탄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결국 궁금해진 사람들의 수저가 강지한의 요리들로 향했다.
그리고 딱 한 입, 맛을 본 순간 게임이 끝났다.
강지한의 음식에 닿은 수저는 김치찌개로 돌아갈 줄을 몰랐다.
그의 손에서 만들어진 음식 하나하나가 예술이었다.
그것들을 조금이라도 더 뱃속에 넣고 싶어 김치찌개를 신경 쓸 수가 없었다.
‘왜들 저래?’
한순간에 전세가 역전되자 채희준은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처럼 얼떨떨했다.
사람들은 뭐에 홀린 양 정신없이 회며 물회, 지리, 매운탕을 먹고 있었다.
지리는 미역을 넣어 맛과 향이 텁텁할 것 같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깔끔하고 시원하면서 속을 확 풀어주는 맑은 맛을 신기하게 잡아냈다.
매운탕은 김치찌개보다 훨씬 깨끗하게 기름진 목을 씻어줬다.
마치 먹으면서 술이 바로 깨는 기분이었다.
그러니 다시 새로운 술이 계속해서 들어갔다.
술자리가 끝났을 때, 김치찌개는 반 정도가 남은 반면 강지한의 음식들은 거의 깨끗하게 비워졌다.
자정이 넘어서 하나둘 잠을 자기 위해 흩어졌다.
강지한과 예소린도 방으로 들어갔다.
채희준과 심이영만 덩그러니 그 자리에 남았다.
“아~ 잘 먹었다. 후아암~ 자기야, 나 졸려. 그만 들어가서 자자.”
“…….”
“자기야아~”
채희준은 무너진 자존심에 멘탈까지 붕괴되어 넋이 나갔다.
그가 도다리 매운탕이 담겨 있던 냄비를 들었다.
바닥에 다 식어버린 국물이 약간 남아 있었다.
그것을 숟가락으로 떠서 맛봤다.
그제야 채희준은 자신이 애초에 강지한의 상대가 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 * *
불이 꺼진 강지한과 예소린의 방.
두 사람은 한 이불을 덮고 누워 있었다.
강지한은 예소린의 손을 꼭 잡고 그 이상 다른 행동을 못했다.
그러자 예소린이 강지한을 빤히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지한 씨.”
“네?”
강지한의 입이 열리는 순간 예소린이 그대로 뜨겁게 키스했다.
두 사람의 혀와 타액이 섞이고 몸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한참 동안 이어진 키스가 끝나자 달뜬 숨결이 서로의 얼굴을 간질였다.
그리고,
“지금부터 내가 호랑이 해야겠어요.”
예소린이 말을 하며 방긋 웃었다.
달빛에 비추어진 그녀의 모습이 더 없이 뇌쇄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