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2
Restaurant 111. 얼굴 천재
6월 2일 토요일.
오늘은 영업을 하는 내내 힘이 나는 강지한이었다.
그런 연유는 몇 가지가 있었다.
우선 김치 사업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잘 돌아가는 중이었다.
조미옥의 말에 따르면 인터넷 주문 건이 당초 예상했던 것의 두 배 가까이 된다고 했다.
물론 이건 사업 초반부에 대한 추측이었고 앞으로 더 지켜봐야 할 터였다.
한데 사흘 전에 주문해서 어제 받아본 사람들이 홈페이지에 올리는 후기들을 보면 만족스럽다는 평들이 지배적이었다.
가끔 맛부터 가격, 배송 상태까지 모든 것이 맘에 안 든다며 악의적인 평가 글도 올라왔는데 그건 시장 동향을 발 빠르게 스캔한 경쟁 업체 직원의 물 흐리기인 듯했다.
그런 글은 몇 안 되었기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다음으로 그를 기분 좋게 만드는 건 용성우의 변화였다.
그는 비로소 자신감을 갖고 강지한과 있을 때도 가려지지 않는 존재감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이제는 강지한이 자신에게 주방을 맡기기만 기다릴 정도였다.
용성우가 만들어 내는 음식의 수준도 대부분이 레벨5에 다다랐다.
물론 강지한의 특제 양념이나 육수, 소스 등등이 없었다면 레벨3 정도로 확 내려가겠지만.
마지막으로 강지한이 신날 수 있었던 건 내일이 일요일이라는 사실이다.
한 주의 주말이야 늘 찾아오는 법이다.
하지만 이번 일요일은 강지한에게 그 의미가 조금 달랐다.
근 한 달 동안은 주말에도 쉬지를 못했다.
일요일에 늘 배틀 셰프 촬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일은 아니었다.
한 주의 촬영을 쉬어가기로 한 덕분에 온전한 휴식을 즐길 수 있게 됐다.
‘뭘 하면서 쉬면 좋을까?’
일을 하는 중간중간 그런 생각을 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집 안에서 그냥 죽 늘어져 있는 것도 나쁘지는 않았다.
하지만 강지한은 데이트를 하고 싶었다.
그동안 쉬는 날이 없으니 예소린과 이렇다 할 데이트를 하지 못했다.
물론 늦은 밤 시간을 내서 심야영화를 보고 밥을 먹고 술을 먹고 하는 기본적인 데이트는 해왔다.
강지한이 원하는 건 그것보다 더 특별한 데이트였다.
‘놀이 공원에 갈까? ……근데 남자가 무서운 놀이기구를 못 타면 좀 깨겠지? 그럼 뮤지컬 같은 걸 보러 갈까?’
이런저런 고민을 하는 사이 저녁 피크 타임까지 끝이 났다.
슬슬 주방에도 여유가 찾아오는 시간.
강지한이 한숨 돌리고 있을 때 예소린이 식당을 찾아왔다.
“어이구~ 사모님 오셨네!”
주방 앞까지 다가온 예소린을 고중만이 먼저 반겼다.
“예 사장님, 안녕하세요.”
용성우가 예의 바르게 인사를 건넸다.
최지민과 이주희가 퇴근을 해서 혼자 홀을 책임지던 이리나도 뒤늦게 알은 척했다.
“소린 언니 왔네요?”
“리나야~ 안뇽. 오늘도 힘들었지?”
“저보다 사장님이 늘 더 힘드시죠. 그쵸~ 사장님!”
이리나의 말에 강지한이 하하 웃었다.
“지한 씨, 오늘 기분 좋아 보이네요?”
“그래요? 아, 근데 카페 비워두고 와도 괜찮겠어요?”
“주연 씨가 며칠 전부터 와서 오후일 도와주고 있어요.”
“주연……. 아, 연주연 씨요?”
“네.”
연주연은 지한 분식 오픈 초기에 예소린과 함께 찾아왔던 여인이었다.
예소린과는 바이올린 사제지간으로 만난 것이 연이 되어 지금까지 이어졌다고 했다.
“주연 씨가 혼자서 괜찮을까요?”
강지한의 우려에 예소린은 검지를 세워 좌우로 저었다.
“걱정 안 해도 돼요. 완전히 열정적으로 하고 있으니까. 지금 예행연습 하는 거거든요.”
“네? 예행연습이라니……. 설마, 연주연 씨도 애견카페 생각하고 계시는 거예요?”
“맞아요. 우리 카페에 몇 번 놀러오다가 나중에는 눌러붙듯 하더니 이제는 직접 해보고 싶대요.”
“바이올린 전공해서 그쪽으로 방향 잡고 가시던 거 아니었어요?”
“그 정도는 아니었어요. 실력은 상당해서 여기저기 과외 해주고 다녔는데 정작 열정이 덜한 케이스였죠.”
“그랬군요.”
그래도 갑자기 애견카페라니 참 의외였다.
사람 인생이란 어디로 흘러갈지 누구도 알 수 없다는 게 새삼 느껴졌다.
‘나부터가 그러니까.’
리어카에서 맛없는 떡볶이만 팔던 강지한이 지금은 세 개의 요식업 관련 매장을 운영하며 김치 공장까지 돌리고 있으니 말이다.
“어쨌든 그런 연유로 요즘엔 조금 편해요. 이렇게 잠깐 농땡이도 피울 수 있고. 지한 씨도 전보다 많이 편해졌다면서요? 성우 씨 덕분에.”
예소린이 주방 한편에서 고중만의 설거지를 도와주는 용성우를 보며 일부러 목소리를 높였다.
용성우는 이를 신경 쓰지 않는 척했지만 어깨가 살짝 움찔했다.
예소린의 의도를 알아챈 강지한이 기분 좋게 맞장구 쳤다.
“그럼. 정말 편하지.”
“진짜 성우 씨 솜씨가 많이 좋아졌나 봐. 지한 씨 입에서 하루에 한 번은 꼭 칭찬이 나오는 걸 보면.”
또다시 용성우의 어깨가 움찔했다.
‘하, 하루에 한 번?’
강지한이 저렇게나 본인을 좋게 보고 있었다니. 너무 기쁜 당장 춤이라도 추고 싶은 걸 꾹 참았다.
‘아무렇지 않게. 괜히 촌스럽게 티내지 말고.’
용성우가 최대한 평정심을 유지하려고 애썼다.
그때, 용성우를 무심코 쳐다본 고중만이 흠칫하며 입을 열었다.
“어이, 용 선배. 지금 뭐해?”
“……네?”
“왜 자기 손을 그렇게 닦아?”
그 말에 놀란 용성우가 정신을 차려보니 세제 묻은 수세미로 본인의 손을 박박 닦고 있었다.
“헛!”
용성우가 얼른 싱크대에 쌓인 설거지 거리를 주워들었다.
그 모습에 고중만이 킬킬댔다.
그때 손님 네 명이 식당으로 들어섰다.
이를 확인한 예소린이 용건만 빠르게 말했다.
“지한 씨, 주말에 뭐할 거예요? 계획 있어요?”
“네, 있어요.”
“아……. 뭔데요?”
예소린이 살짝 당황해서 물었다.
“소린 씨랑 데이트 할 건데요.”
“……그런 농담도 할 줄 알아요?”
“재미없었죠? 미안해요.”
“호호. 아녜요. 나름 재미있었어요. 그럼 내일 데이트 좀 찐하게 할래요?”
안 그래도 어떤 데이트를 해야 좋을지 고민하던 강지한이었다.
그런 와중 예소린이 계획이라도 세워 놓은 듯 저렇게 먼저 말해주니 고마울 따름이었다.
“어떻게요?”
“1박 2일로.”
휘이익!
갑자기 들려온 휘파람 소리에 놀란 강지한이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고중만이 씩 웃으며 엄지를 척 세웠다.
강지한은 그 짓궂은 장난에 당황하고 있는데, 예소린이 고중만을 보고 마주 엄지를 척 세우더니 윙크까지 찡긋 건넸다.
“오우야. 세다.”
고중만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다시 설거지에 집중했다.
어지간해서는 기에서 밀리지 않는 그였는데 예소린에게 밀려 버렸다.
그 광경에 강지한이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보면 볼수록 정말 만만치가 않은 여인이었다.
“1박 2일이니 멀리 가는 건 힘들 것 같아서 속초에 게스트하우스 예약해 놨어요.”
“설마…… 오늘인가요?”
“내일이에요.”
“그럼 월요일 영업은 어쩌시려고요?”
“저는 그날 하루 쉴 건데요. 지한 씨는 성우 씨 있으니까 하루 정도 믿고 맡겨도 되지 않겠어요?”
강지한이 용성우를 돌아봤다.
용성우가 다부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수세미로 자기 손을 박박 닦았다.
강지한이 예소린에게 대답했다.
“알았어요. 성우한테 열쇠 넘겨줄게요.”
그때 이리나가 새로 온 손님들의 주문을 받아 주방에 넘겼다.
“떡볶이 이 인분이랑 김치라면, 치즈 김밥 한 줄, 순대 일 인분이요!”
“그만 가봐야겠다. 그럼 퇴근할 때 연락해요.”
예소린이 눈치 있게 빠졌다.
식당을 나서는 예소린을 보며 이리나의 미소가 더욱 진해졌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그녀와 강지한의 입에서 용성우의 칭찬이 나오자 자신의 기분이 좋아졌다.
* * *
집에 돌아온 강지한은 대문 앞에서 그 떠돌이 강아지와 마주쳤다.
“또 왔구나.”
떠돌이 강아지는 일주일이 넘게 강지한을 찾아오고 있었다.
요즘에는 아침에 출근할 때 한 번, 밤에 귀가할 때 한 번, 하루에 두 번씩 찾아와 사료를 얻어먹곤 했다.
강지한은 녀석에게 캔사료와 사료를 섞어 내어주고 물도 한 그릇 떠주었다.
“넉살아, 오늘도 밥만 먹고 갈 거니?”
넉살.
강지한이 강아지에게 붙여준 이름이었다.
매일 밥 먹으러 오는 걸 보면 넉살이 좋은 것 같은데, 막상 밥을 먹고 나면 바람처럼 사라지는 게 넉살이 없는 것도 같고.
어느 쪽인지 헷갈려서 넉살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넉살이는 허겁지겁 사료와 물그릇을 비웠다. 강지한과 설탕이는 그런 넉살이를 가만히 지켜봤다.
배를 채운 넉살이가 늘 그렇듯 다시 몸을 돌리려 할 때였다.
왕! 헥헥헥!
설탕이가 넉살이를 불렀다.
강지한은 순간 설탕이가 넉살이에게 무슨 말을 한 건지 알 것 같았다.
“너 지금 자고 가라 그런 거지?”
넉살이는 설탕이를 보며 약간 망설이는가 싶더니 결국 다시 골목 어귀로 사라졌다.
* * *
자정이 넘은 시각.
강지한은 도통 잠이 오지 않았다.
‘소린 씨와 1박 2일이라니.’
강지한은 내일 예소린과 10시까지 만나 속초로 향하기로 했다.
예소린은 예경천에게 이미 연주연과 함께 여행을 가는 것이라 밑밥을 깔아놓은 상황.
만약 거짓말인 게 들통 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은 접어두었다.
들통이 나더라도 여행을 갈 그녀였다.
‘그나저나 빨리 자야 하는데.’
예소린과 하룻밤을 지낸다는 생각에 설레서 영 눈이 감기지를 않았다.
결국 강지한은 가만히 누워 시간을 죽이느니 뭐라도 좀 하기로 했다.
그가 스마트폰을 켜서 SNS에 접속했다.
그의 SNS는 계정 생성만 됐을 뿐, 사진이나 게시 글이 전무했다.
어제 횡성에 갔을 때 조미옥은 강지한에게 SNS 활동을 하는 게 어떻겠냐 조언했다.
나름 배틀 셰프로 유명세도 탔으니 SNS에 본인 사진과 함께 지한김치몰 주소를 올리면 저절로 홍보효과가 있을 것이란 얘기였다.
일리가 있는 말인지라 강지한은 셀카를 찍어 올리기로 했다.
평소 셀카에 취미가 없던 그인지라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찰칵! 찰칵!
“으음……. 영 아닌데.”
찍힌 사진을 확인한 강지한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런 사진은 절대 업로드할 수가 없었다.
강지한이 다시 셀카모드로 카메라를 놓고 사진을 찍으려 했다. 이번에도 안면 근육이 통제를 벗어나며 굳어갔다.
한데 그때,
왕!
설탕이가 강지한의 품에 안기며 카메라 렌즈 안에 들어왔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강지한의 마음이 편안해졌다.
혼자 셀카를 찍는 게 아니라 설탕이와 같이 찍는다는 생각 덕분이었다.
“좋아, 설탕아. 자~ 찍는다. 하나. 둘. 셋!”
찰칵!
강지한이 바로 사진을 확인했다.
“이거지.”
본인의 미소가 전보다 훨씬 자연스러웠다. 하나 그보다 더 사는 건 턱을 얼짱 각도로 살짝 숙인 채 초롱초롱한 눈으로 카메라를 바라보는 설탕이였다.
“우리 설탕이가 너무 얼굴 천재라 나는 완전 배경인데?”
강지한은 그리 말하면서도 그 사진을 SNS에 업로드했다. 밑에는 사진과 전혀 상관없는 지한김치몰의 주소를 적어 넣었다.
그렇게 몇 장의 사진을 더 찍어 올리고 나니 갑자기 잠이 쏟아졌다.
그때를 놓치지 않기 위해 강지한은 보들보들한 설탕이를 품에 안고 이불 위에 몸을 뉘였다.
그러자 수마가 급격히 그의 의식을 꿈 속 깊은 곳으로 잡아끌었다.
* * *
강지한이 잠든 새벽.
그의 SNS계정에 올라온 사진들은 무서운 속도로 공유되기 시작했다.
처음 공유의 시작은 바로 이향숙이었다.
강지한의 SNS에는 친구가 딱 두 명 있었는데 이향숙과 이리나였다.
이향숙은 강지한의 게시물을 바로 공유했다.
그러자 그 게시물이 사방팔방으로 다시 재공유되기 시작했다.
이향숙의 SNS팔로우는 무려 50,000명이 넘었다.
평소 뛰어난 패션 감각으로 SNS에서 나름 유명한 그녀였다.
게다가 쇼핑몰 향스리닷컴을 오픈하고 요즘엔 인터넷 BJ로까지 활동하면서 더더욱 인지도가 높아졌다.
그런 이향숙이 사진을 공유했으니 무섭게 퍼져 나가는 건 당연한 일.
그러나 아무 사진이나 이런 반응을 일으키는 건 아니었다.
사진의 주인공이 강지한과 설탕이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조미옥의 예상대로 강지한은 배틀 셰프의 영향으로 알아보는 사람이 제법 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강지한을 알아보는 사람보다 설탕이가 귀여워서 공유하는 사람들이 더욱 많았다.
사진을 공유해가는 사람들의 댓글 중 70퍼센트 이상이 설탕이에 관한 얘기들이었다.
-어머, 강아지 넘 예쁘다.
-어? 지한 분식 사장님 아닌가? 저분이 기르는 반려견인가 봐요?
-댕댕이 업어가요~
-강아지 이름이 뭐예요? 짱귀욤!+_+
-댕댕이 때문에 쇼핑몰 들어갔다옴.
-김치 사면 댕댕이 사진 보내주나요?
이향숙의 스마트폰이 사진을 올린 이후부터 쉴 새 없이 울려댔다.
SNS댓글 알림을 연동해 놓은 탓이었다.
그녀가 SNS에 접속해서 그 열광적인 반응을 확인한 뒤 지한김치몰에 접속했다.
현재 시각 새벽 2시.
지한김치몰에 방문자들이 일시적으로 대거 몰리며 서버가 폭주했다.
이를 확인한 이향숙이 신이 나서 소리쳤다.
“외쳐! 갓설타아앙! 탕! 탕!”
오늘도 설탕이의 외모는 열일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