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7
Restaurant 106. 악마의 편집
“시간 다 됐습니다! 그만 손을 떼세요!”
두 시간의 시간이 모두 지나갔다.
두 팀은 무사히 52개의 쟁반을 준비했다.
팀원들은 박수와 포옹, 하이파이브로 서로를 격려했다.
“자, 그럼. 오늘의 심사위원분들을 모셔보도록 하겠습니다.”
한돈선의 말이 끝나자 대기하고 있던 51명의 호텔조리학과 남녀 대학생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그들은 질서 있게 움직여 일 인당 화이트 팀과 블랙 팀의 쟁반 두 개를 배급받아 노천마당의 계단식 객석에 착석했다.
모든 배식이 끝나고 남은 한 개씩의 쟁반은 심사위원들 몫이었다.
심사위원들 역시 학생들 틈에 섞여 앉아 대화를 나누며 식사를 시작했다.
이런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노영철 피디가 미리 요청한 부분이었다.
허기가 졌던 학생들은 두 팀의 음식을 게걸스레 먹어치웠다.
기본적으로 호텔조리과로 진학한 학생들은 음식에 관심이 있고 좋아하는 이들이었다.
그렇지 않고서는 음식을 만든다는 행위 자체가 어렵다.
그런 만큼 다른 사람이 만들어준 맛있는 음식을 먹는 건 행복하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특히, 전국적으로 화제가 되었던 음식이라면 더더욱.
“대박. 배틀 셰프 2화에 나왔던 어묵면 떡볶이다.”
“이거 진짜 먹고 싶었는데.”
“야야, 말만 하지 말고 일단 먹어. 개오진다. 어묵면 식감 미쳤어.”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지?”
“나 이것도 엄청 신기했는데. 면에 딸려오는 밀떡 입자.”
“세상에 누가 떡을 입자로 만들어서 국물에 푼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겠어.”
“와~ 밸런스 진짜 끝내준다.”
어묵면 떡볶이를 먹는 학생들의 입에서 하나같이 감탄이 터져 나왔다.
하나 강지한의 손이 닿은 건 떡볶이뿐만이 아니었다.
떡볶이를 먹고 난 후 자연스레 어묵탕에 손이 가는 학생들이었다.
그런데 이 어묵탕에 무슨 마약이라도 넣은 것 같았다.
한 번 떠먹고 나니 도통 손을 멈출 수가 없었다.
“이거 괜찮다. 살짝 얼큰하고 간은 심심한데 속이 확 풀리는 기분이야.”
“어묵이 되게 탄력 있어. 식감이 좋아.”
“레시피 물어보고 싶다, 진심.”
학생들의 입에서 칭찬릴레이가 이어졌다.
“이거 덴뿌라네?”
“떡볶이 양념에 찍어 먹어봐. 천국이야.”
“간장 찍어 먹어도 맛있어.”
“이거 텐쯔유(てんつゆ:튀김용 간장)다. 근데 시제품이 아니라 직접 만든 것 같은데?”
“텐쯔유는 만들기 쉬우니까.”
그들의 말이 맞았다.
조중훈은 텐쯔유를 즉석에서 만들었다.
텐쯔유에 들어가는 재료는 쉽게 구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일반 간장, 가쓰오부시, 생강, 설탕, 대파, 맛술, 무, 다시다만 준비하면 된다.
조리법도 간단한다.
우선 가쓰오부시와 다시마로 베이스 육수를 만든 뒤, 무를 제외한 다른 재료들을 육수와 함께 비율에 맞게 넣고 확 끓여 식혀둔다.
그리고 상에 나가기 전 무를 갈아 소량 첨가하는 것으로 끝이다.
“와, 제대로 튀겼다.”
“떡볶이랑 궁합이 장난 아니야. 그치?”
왕소홍의 샤오롱바오도 학생들의 취향을 저격했다.
“나 샤오롱바오는 말만 들었지 먹어본 적이 없었는데.”
“좀 다녀, 그니까. 찾아보면 은근히 파는 데 많다니까.”
“육즙 제대로다.”
샤오롱바오에 들어가는 육즙은 피동(皮?)의 역할이다.
피동은 돼지껍질을 삶은 육수를 차게 식혀 젤리의 형태로 굳힌 것이다.
이것을 잘게 잘라 만두피 안에 고기소와 함께 넣어 빚은 후, 쪄 내면 그대로 녹아 육즙 가득한 샤오롱바오가 탄생한다.
한편 떡볶이의 오뎅면을 다 걷어 먹은 학생들은 함께 나온 밥을 비비기 시작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전부 그렇게 해서 먹고 있었다.
맛있는 떡볶이 국물을 보면 밥을 비벼 먹고 싶어지는 한국 사람들의 특성도 특성이었지만 비빌 수밖에 없는 이유가 더 있었다.
밥에 뿌려져 나온 김가루와 참깨, 그리고 참기름 때문이었다.
누가 봐도 그것은 떡볶이 양념에 비벼 먹으라는 뜻이었다.
“완전 별미네.”
“국물에 튀김 찍어 먹어서 그런지 엄청 고소해졌어.”
튀김을 찍어 먹으며 국물에 그 고소함이 배어들어 밥을 비볐을 때 맛과 향이 더 좋았다.
“그것도 그렇고 김이랑 참기름이 살짝 섞이니까 진짜 좋다.”
화이트 팀의 음식들은 하나같이 좋은 평가를 받고 있었다.
물론 도근한이 주장으로 있는 블랙 팀의 음식들도 호평을 받기는 마찬가지였다.
딱 두세 입 정도 크기의 떡갈비 스테이크는 소고기와 돼지고기를 도근한만의 황금 비율로 다져 넣어 육즙을 꽉 잡았다.
연어 아보카도 롤은 입에 넣으면 신선함이 팍팍 터지는 기분이 들 정도로 매력적이었다.
아보카도와 연어는 그 식감과 맛이 상당히 잘 어울렸다.
해서 속에 초대리를 섞은 밥을 넣고 롤의 형태로 말아내니 그 맛이 가히 예술이었다.
마지막으로 토마토 해산물 스튜는 매콤하면서도 해산물에서 흘러나온 진한 풍미가 일품이었다.
어느 것 하나 맛없는 것이 없었다.
“오늘 호강하는데?”
“근데 걱정이다. 이거…… 투표를 어느 쪽에 해야 돼?”
“진짜. 둘 다 너무 맛있어.”
“졸 어렵다.”
학생들의 접시가 비워질수록 그들은 점점 걱정이 들었다.
화이트 팀과 블랙 팀의 음식이 하나같이 맛있으니 어디에 투표를 해야 좋을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그런 반면 이미 마음을 정한 학생들도 제법 있었다.
“난 무조건 화이트. 음식은 뭐니 뭐니 해도 맛 아니겠어? 블랙 팀 요리도 좋긴 한데 그냥 1차원적으로 따졌을 때 화이트 팀의 요리가 더 맛있었어.”
“인정.”
“나도 인정.”
“난 블랙팀 게 더 좋던데.”
“그건 네가 양식 좋아하니까 개취 관통 당해서 그런 거고.”
“개취 인정 안 해줌? 아니면 인정?”
“어, 인정.”
“나도 블랙팀 요리가 더 맛있더라.”
학생들이 저마다 어떤 음식이 더 맛있었는지 대화를 나눴다.
그런데 대화 주제에서 통 언급되지 않는 음식이 있었다.
바로 레몬 소베르.
그냥 어디서나 쉽게 만들 수 있는 소베르였다.
그래서인지 딱히 대화에 오르내리지 않았다.
“자, 이제 음식을 다 드신 학생분들께서는 미리 나눠드린 표를 무대에 놓인 하얀색 함과 검은색 함에 넣어 주시기 바랍니다. 화이트 팀의 음식을 더 맛있게 먹어놓고 검은색 함에 쪽지를 넣으면 안 된다는 것 아시죠?”
한돈선의 농에 학생들이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음식을 먹은 학생들은 각 팀의 조리대에 쟁반을 반납하고서는 신중히 자신의 한 표를 원하는 함에 넣기 시작했다.
두 개의 함은 간이가림막이 설치되어 조리대에 있는 지원자들에게는 투표현황을 볼 수 없도록 해놓았다.
지원자들의 모든 신경은 보이지도 않는 투표함으로 온통 쏠려 있었다.
한편, 심사위원들은 투표 현황을 지켜보며 대화를 나눴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한돈선이 레이먼 박과 최현식에게 물었다.
먼저 입을 연 건 레이먼 박이었다.
“음……. 두 팀의 요리 모두 아주 딜리셔스했어요. 디퍼런스(difference:차이점)가 있다면 화이트 팀은 일상적으로 접할 수 있는 요리로 학생들의 입맛을 사로잡았고 블랙 팀은 아주 약간은 더 특별한 요리들을 내놨죠.”
“어떤 음식이 더 입에 맞으셨나요?”
“음식들 각각의 맛을 놓고 본다면 개인적으로는 블랙팀이 더 좋았어요. 그런데 아무래도…….”
레이먼 박의 시선이 레몬 소베르로 향했다.
“이 소베르가 변수를 불러올 것 같네요.”
한돈선이 웃으며 최현식을 바라봤다.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같은 의견입니다. 레몬 소베르를 왜 내놓나 했는데…… 이런 의도였을 줄은 몰랐습니다. 아, 개인적으로 저는 화이트 팀의 음식이 더 맛있었습니다.”
“그렇군요.”
“한 대가님께서는 어떠셨습니까?”
“저도 화이트 팀이 더 좋더군요. 학생들의 입맛을 관통한 것도 그렇고요. 한데 모르는 일이죠. 블랙팀의 음식 또한 뒤처진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이것은 순전히 개인의 취향에 달린 문제 같네요. 물론 학생들이 이 레몬 소베르를 내놓은 의도를 파악 못했을 때의 얘기지만요.”
노영철은 모니터 너머로 세 사람의 대화를 들으면서 레몬 소베르의 의미를 유추해 봤다.
그러자 어렵지 않게 답이 나왔다.
‘강지한. 진짜 똑똑한 사람이네.’
갈수록 강지한의 존재감은 커져가고만 있었다.
이제는 배틀 셰프에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 되었다.
저번 주에 방영 된 배틀 셰프 3화에서는 지역예선 마지막 화와 서울에서 벌어진 300여 명의 종합 예선전 장면이 송출되었다.
종합 예선 첫 번째 과제는 양파를 2㎜ 안쪽의 두께로 균일하게 채 써는 것.
강지한은 현란한 칼솜씨로 이를 완벽하게 해냈다.
그 모습은 카메라에 가득 담겨 제법 오랜 시간 방송을 탔다.
당시 강지한은 이향숙이 코디해 준 옷을 걸치고 간 터.
비록 앞치마를 했지만 그럼에도 드러나는 패션 센스와 훈훈한 외모, 거기에 훌륭한 칼 솜씨는 시청자들의 환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거기에 더해 손가락은 또 어찌나 그리 섬섬옥수인지.
하나하나가 기다랗고 하얀 데다 선이 아름다워 도저히 요리를 하는 요리사의 손이라고는 볼 수가 없었다.
이렇듯 그냥 강지한이라는 캐릭터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화제성이 있었다.
한데 방송엔 편집의 힘이 더해진다.
양파 썰기를 무사히 마치며 탈락을 면하고 살아남은 지원자들의 모습이 나간 뒤 한돈선의 말이 이어졌다.
“살아남은 지원자 여러분 축하드립니다. 하지만 아직 안심하긴 이릅니다. 심사위원들에게 붉은 스티커를 받은 분들이 있을 겁니다. 손들어 보세요.”
그때 방송엔 스티커를 받지 못한 사람들의 모습이 담기며 마지막으로 강지한의 모습을 내보냈다.
강지한 역시 스티커를 받지 못했다.
살짝 당황한 듯한 강지한의 모습에 한돈선의 나레이션이 깔렸다.
“손을 든 분들은…….”
거기까지였다.
그 뒷말은 과감하게 잘라내고 놀란 듯한 강지한의 표정을 끝으로 방송이 마무리됐다.
예고편에서는 심기 불편한 얼굴로 강지한을 부르는 최현식의 모습.
“414번 지원자.”
그리고 거기에 불안한 듯 대답하는 강지한의 모습이 담겨 이어졌다.
“네.”
아울러 두 번째 종합 예선과제를 보여주는 장면에 그에 질색하는 남은 지원자들의 모습도 보였다.
한데 그 안에서 강지한의 모습은 보이지를 않았다.
방송 이후 시청자게시판은 난리가 났다.
특히 여성시청자들의 글이 대부분이었는데, 주된 내용은 한결같았다.
‘강지한을 탈락시키지 말아 달라’는 것.
편집이 그 모양으로 되어서 마치 강지한이 탈락한 것처럼 느껴졌다.
이른바 악마의 편집이었다.
최현식이 강지한을 불편하게 부르는 건 다음 과제인 광어 해체에서 나오는 장면이었다.
당시 최현식은 강지한이 2분 만에 해체를 끝내자 대충 한 게 아닌가 싶어 그를 불렀었던 것이다.
아무튼 강지한은 회를 거듭할수록 시청자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아내고 있었다.
이미 팬덤도 생겨났다.
그런 그가 매 라운드마다 드라마를 써내가고 있었다.
드디어 학생들의 투표가 끝이 났다.
가림막이 치어지는 동안 지원자들의 개별 인터뷰가 진행됐다.
인터뷰의 주요 질문은 ‘이번 시합에서 어느 팀이 이길 것 같으세요?’였다.
대부분의 지원자들은 ‘우리 팀이 이겼으면 좋겠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일부 개성이 강한 사람들은 ‘상대 팀은 상대가 안 된다.’, ‘우리 팀이 무조건 이긴다.’, ‘아까 학생들 반응 봤어요? 게임 끝났죠.’ 등등의 얘기를 뱉었다.
이런 얘기들은 방송에서 무조건 악마의 편집을 위한 좋은 재료로 쓰인다.
특히 마지막 대답 같은 경우 그 의미가 ‘상대편의 음식을 먹은 학생들 반응이 너무 좋아서 게임이 끝난 것 같다. 우리 팀이 질 것 같다.’였다.
한데 편집을 하고 나면 우리 팀이 이긴다는 식으로 변절되어 나가 버린다.
그만큼 자극적인 드라마나 반전이 있어야 하는 것이 방송이었다.
노영철은 이번 강지한의 레몬 소베르가 반전을 안겨줄 좋은 재료가 될 것이라 믿었다.
“자, 그럼 투표함의 쪽지를 꺼내보도록 하겠습니다.”
투표와 개별 인터뷰가 끝난 시점.
한돈선의 말에 다른 두 대가들이 각각 하나의 투표함 앞에 섰다.
최현식은 하얀색 함을, 레이먼 박은 검은색 함을 책임졌다.
“그럼 투표 쪽지를 하나씩 꺼낼 때마다 학생 여러분께서 숫자를 세어주세요.”
“네에!”
학생들이 우렁차게 대답했다.
학생들의 수는 총 51명.
동점은 절대로 나올 수 없었다.
최현식과 레이먼 박이 각각의 함에서 쪽지를 하나둘 꺼내기 시작했다.
그때마다 학생들이 큰 목소리로 합창했다.
“하나! 둘! 셋! 넷!”
지원자들은 그 광경을 손에 땀을 쥐고 주시했다.
“열다섯! 열여섯!”
열여섯 개의 표가 나올 때까지도 결판은 나지 않았다.
이제 남은 표는 19개.
그런데,
“열일곱!”
학생들이 열일곱을 외쳤을 때, 한쪽 투표함에서는 더 이상 쪽지가 나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