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6
Restaurant 105. 레몬 소베르를 굳이?
강지한의 손놀림은 그야말로 전광석화라는 말이 어울렸다.
그는 가자미가 손에 잡히는 족족 순식간에 살을 발라냈다.
칼등으로 비늘을 슥슥 발라내고 지느러미를 잘라낸 뒤, 물에 한 번 헹구고서 부드럽게 대가리를 잘랐다.
손으로 능숙하게 내장을 파내고 뼈를 따라 등 중앙에 칼집을 내줬다. 그리고 양옆에다 슥슥 칼을 넣은 후 뒤집어서 똑같이 칼집을 내고는 다시 뒤집어서 칼을 눕혀 살을 발라냈다.
그 일련의 행동에 전혀 막힘이 없었다.
칼이 몇 번 오갈 때마다 살이 한 점씩 턱턱 떨어져 나왔다. 그렇게 한 마리의 가자미에서 네 덩이의 살을 얻는 데 걸리는 시간은 고작 2분이 조금 넘었다.
강지한을 따라 가자미 살을 바르던 신일중은 그 신묘한 칼솜씨에 몇 번이나 혀를 내둘렀다.
가자미 살이 충분히 확보되자 신일중과 정재영이 손질한 오징어와 함께 믹서기에 넣고 갈았다.
그 양이 제법 많았기에 믹서에 다섯 번을 나눠서 갈아야 했다.
잘 갈린 반죽은 둘로 나눠 볼에 담았다.
하나는 어묵면을 만들 것이고, 하나는 일반 어묵으로 만들어 어묵탕에 넣을 것이었다.
어묵면용 반죽은 일반 어묵보다 밀가루를 더 많이 넣어야 하고 다른 야채를 섞을 수가 없었다.
야채를 섞으면 어묵면이 뚝뚝 끊어지기 때문이다.
강지한은 두 가지 어묵 반죽을 용도에 맞게 한 번 더 가공했다.
그리고 면으로 만들 어묵을 짤주머니에 담아 끓는 물에 죽 짜서 면처럼 뽑아냈다.
“와~ 이렇게 하는 거였구나.”
곁에서 이를 보고 있던 정재영이 신기해했다.
사실 지역 예선에서 선보인 어묵은 얇고 네모난 판 모양으로 익힌 뒤 칼로 채 썬 것이었지만 굳이 설명하지 않았다.
“일중 씨, 어묵, 모양 잡아서 튀겨주세요. 재영이는 내가 가져온 육수 재료들로 육수 우려줘.”
“네!”
“그럴게요.”
두 사람이 강지한의 말에 따라 바쁘게 움직였다.
강지한의 템포에 맞춰 왕소홍의 샤오롱바오와 조중훈의 일식 모둠 튀김도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그때 심사위원 세 명이 화이트 팀 조리대로 다가왔다.
그들은 날카로운 시선으로 돌아가는 상황을 관찰했다. 실수하고 있는 것은 없는지,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지는 않는지를 살피고 조언을 주기 위함이다.
하나 심사위원들이 그러한 의도로 다가왔다 해도 지원자들에겐 존재 자체가 부담이었다.
다들 바짝 긴장해서 심사위원의 눈치를 살피는 와중 최현식의 입이 열렸다.
“강지한 씨, 지금 어떤 음식 준비하고 있습니까?”
“우리 팀은 분식 한 상을 차리기로 했습니다.”
“분식이라고요?”
최현식의 미간이 구겨졌다.
“네.”
“강지한 씨, 본인의 실력을 과신하고 너무 편하게 가려는 거 아닙니까?”
“가장 중요한 건 맛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지금 여기는 배틀 셰프라는 걸 잊지 마세요. 누구나 쉽게 만들 수 있는 특징 없는 음식으로는 절대 승리를 쟁취할 수 없을 겁니다.”
“그러지 않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최현식은 못마땅한 표정을 거두지 못했다.
그때 한돈선이 한 번 끓여놓은 떡볶이 소스로 시선을 돌렸다.
“떡볶이 소스인가요?”
“네.”
“맛을 좀 보도록 하죠.”
한돈선이 숟가락으로 떡볶이 소스를 조금 떠 손등에 떨어뜨린 뒤 맛을 보았다.
“……음.”
레이먼 박과 최현식이 그런 한돈선의 반응을 살폈다.
“어떤가요?”
레이먼 박이 묻자 한돈선은 대답 대신 숟가락을 건네주었다. 그에 레이먼 박도 소스의 맛을 보고서는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두 심사위원이 시원하게 입을 열지 않자 궁금해진 최현식도 소스를 맛봤다.
“……!”
그리고 그 역시 말을 잃었다.
한돈선이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최현식과 레이먼 박을 번갈아 봤다.
“아무래도 제대로 된 평가는 완성된 음식을 먹어본 다음 내려야겠네요.”
최현식은 그 말에 반박하지 못했다.
그만큼 강지한의 떡볶이 소스는 일반적인 떡볶이에서 맛보지 못했던 독특함과 강렬함이 있었다.
“어떤 분식들을 준비했는지 들어볼 수 있을까요?”
레이먼 박의 물음이었다.
“네, 어묵면으로 만든 떡볶이와 어묵탕, 일식 모둠 튀김과 샤오롱바오를 만들어 낼 생각입니다.”
“음~ 떡볶이와 일식 튀김의 조화라. 확실히 요즘 생겨나는 떡볶이 전문점을 보면 그런 식의 조합을 가져가는 곳들이 제법 많죠. 게다가 샤오롱바오라니. 기대가 되네요.”
한돈선이 즐거운 듯 말했다.
심사위원들은 화이트 팀의 조리 과정을 조금 더 지켜보다가 블랙 팀을 향해 떠났다.
그제야 강지한의 팀원들은 한숨을 돌리고 요리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 * *
“아~ 잘 먹었다!”
독고진이 배를 두드렸다.
조미옥 일행은 강지한이 차려놓고 간, 상을 깨끗하게 비웠다.
무엇하나 남길 만한 음식이 없었다.
어찌나 맛있는지 배가 잔뜩 부른 와중에도 싹 비워진 그릇들이 아쉬울 정도였다.
조미옥은 더 아쉬운 마음이 들기 전에 서둘러 상을 치웠다.
“이제 또 열심히 머리채 잡고 염색시켜 봅시다!”
머리채는 배추를 재미있게 표현한 것이었다.
염색은 양념을 버무리자는 뜻이다.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앉아서 다시 김장 작업에 들어갔다.
그런데 마당에서 가만히 앉아 이를 지켜보고 있던 설탕이가 갑자기 창고와 현관문 앞을 왔다 갔다 했다.
이를 유심히 지켜보던 독고진이 물었다.
“뭐하는 거야, 설탕아?”
독고진의 관심에 설탕이가 다시 창고로 향하다가 멈칫하고서는 뒤를 슥 돌아봤다.
“따라오라고?”
그 말에 맞다는 듯 쌩하니 창고로 가버리는 설탕이.
독고진이 장갑을 벗고 창고로 향했다.
그러자 설탕이가 창고 문을 벅벅 긁어댔다.
그에 독고진이 창고 문을 열어주자마자 안으로 들어가 캔사료를 물고 나왔다.
그러고는 급하게 대문 밖으로 뛰쳐나갔다.
“어? 설탕이 나갔는데요?”
평소에 대문이 열려 있어도 절대 나가지 않는 설탕이었다. 지금껏 보지 못했던 설탕이의 행동에 다들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진아~ 얼른 나가봐.”
조미옥이 독고진을 재촉했다.
지금 그녀는 혹여라도 설탕이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강지한이 충격을 먹을 것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었다.
설탕이 자체를 걱정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도 같은 심정이었다.
그만큼 설탕이는 이미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 큰 존재로 자리 잡고 있었다.
“설탕아!”
독고진이 설탕이를 부르며 대문을 나섰다.
그런데,
“어?”
설탕이는 대문에서 멀지 않은 곳에 앉아 있었다.
그런 설탕이의 앞엔 꾀죄죄한 강아지 한 마리가 같은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설탕이가 자신을 좇아온 독고진과 캔사료, 강아지를 번갈아 보았다.
그에 녀석이 뭘 원하는지 알아챈 독고진이 캔사료를 뜯어 강아지에게 건네주었다.
강아지는 허겁지겁 그것을 먹더니 후다닥 자리를 떠났다.
그제야 설탕이는 안심했다는 듯 마당으로 들어섰다.
독고진이 설탕이와 함께 돌아오며 혀를 내둘렀다.
“햐……. 고놈 참. 진짜 보면 볼수록 놀랍네. 가끔 보면 나보다 똑똑한 것 같아. ……가만. 근데 아까 그 강아지, 어디서 봤던 거 같은데?”
다시 자리에 앉아 장갑을 낀 독고진이 고개를 갸웃했다.
* * *
두 팀에게 주어진 두 시간이 거의 다 지나가고 있었다.
도근한의 블랙 팀은 준비했던 음식을 무사히 마무리 짓는 단계였다.
중간에 긴장한 요리사들의 실수로 떡갈비 스테이크를 굽다 태워 버리는 사건이 있었지만 심사위원들에게 한 소리를 호되게 듣고 정신을 똑바로 차린 덕분에 같은 실수가 더는 일어나지 않았다.
강지한의 팀 역시 자잘한 지적들을 받으며 계획한 음식들을 하나둘 완성해 나갔다.
“자, 15분 남았습니다! 플레이팅 들어가세요!”
최현식이 소리쳤다.
지금부터 플레이팅을 하지 않으면 52개의 쟁반을 전부 채울 수 없었다.
52개의 쟁반은 학생들에게 돌아가고 한 개의 쟁반은 심사위원들의 몫이다.
“플레이팅은 미선이랑 영광 씨가 만들어 준 샘플, 그대로 담으면 됩니다!”
강지한이 팀원들에게 공지했다.
한미선과 김영광은 푸드스타일리스트 자격증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때문에 강지한은 그들에게 음식이 완성되는 족족 미리 플레이팅 해줄 것을 부탁했다.
음식이 하나하나 완성될 때마다 두 사람은 머리를 맞대며 플레이팅을 해나갔고, 모든 음식이 완성되자 그럴 듯한 분식 한 상을 쟁반에 담아냈다.
크지 않은 쟁반 위엔 어묵면 떡볶이가 담긴 하얀 그릇과 어묵탕을 푼 작은 국 그릇, 덴뿌라 모리아와세를 품은 앙증맞은 바구니, 샤오롱바오가 올려진 예쁜 종지, 흰 쌀밥 공기가 보기 좋게 올려졌다.
각각의 음식들은 대부분 한 입 거리였다.
떡볶이의 양을 비롯해서 어묵탕도 두세 번 먹으면 사라질 정도의 양이었다.
덴뿌라 모리아와세는 두 가지 해산물과 세 가지 채소를 딱 한 입 사이즈로 튀겨냈다.
쌀밥이 담긴 공기도 사이즈가 작았다.
일반 공기밥에 비하면 3분의 1정도밖에 되질 않았다.
한 사람이 두 팀의 음식을 먹어야 하니 그 정도의 양이 딱 좋았다.
한데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레몬 소베르 완성됐어요! 플레이팅 부탁해요!”
강지한의 말이었다.
그는 분식 한상에 레몬 소베르를 후식으로 추가했다.
하지만 제대로 된 레몬 소베르를 만들기엔 시간이 부족했다.
레몬 소베르는 만드는 방법이 간단했다.
베이킹파우더를 푼 물에 레몬을 30분 정도 담가놓는다. 이때 설탕과 물을 섞어 끓여 설탕 시럽을 만들어 둔다. 설탕과 물의 비율은 2:1이다.
30분이 지나면 담가놓은 레몬을 꺼내 소금으로 박박 닦은 뒤, 그레이터로 껍질을 살살 갈아 벗겨서 다져 레몬제스트를 만든다.
벌거벗은 레몬은 반으로 갈라 즙을 내준다. 마지막으로 볼에 레몬즙과 레몬제스트, 탄산수와 미리 만들어 식혀 놓은 설탕 시럽을 넣고 섞으면 끝.
이걸 냉동실에 다섯 시간 얼리되, 두 시간에 한 번씩 포크로 살짝살짝 헤집어 줘야 한다.
한데 지금은 시간적 여유가 없으니 레몬즙과 설탕 시럽을 기준치보다 과하게 넣고 거기에 얼음을 더해 믹서에 갈아서 만들어냈다.
아무래도 식감 면에서 아쉬운 감이 없지 않았지만 그런대로 맛은 괜찮았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제대로 된 레몬 소베르에 비하면 많이 떨어지는 수준이었다.
강지한의 눈에 비치는 음식의 레벨도 3에 불과했다.
처음 강지한이 이것을 넣자고 했을 때 팀원들은 의아해했다.
굳이 퀄리티가 좋지도 않은 후식을 넣어야 할 필요성을 몰랐기 때문이다.
강렬한 음식들 사이에 상큼한 후식이 곁들여진다는 건 나쁘지 않은 발상이다.
하지만 제대로 만든 게 아니라면 입이 조금 부담스러워지더라도 맛있는 샤오롱바오 한 알을 후식으로 끝내는 게 훨씬 나을 터였다.
괜히 제 살을 깎아먹는 짓이 아니냐는 의견들이 많았다.
그에 강지한은 왜 완성도가 떨어져도 레몬 소베르를 만들어 내야 하는지에 대해서 얘기해 주었고, 팀원들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할 수 있었다.
“분명히 마법이 벌어질 거예요.”
강지한은 레몬 소베르가 마법을 불러올 것이라 장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