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5
Restaurant 104. 이것만 먹어도 이기겠다.
강지한이 가리킨 건 다름 아닌 쌀이었다.
“쌀로…… 뭘 만들려고요?”
의아해하며 묻는 조중훈에게 돌아온 강지한의 대답은 해맑았다.
“밥이요.”
“……진심이세요?”
“네. 아주 맛있는 밥을 지어서 한 주걱 정도씩 담아 내놓을 거예요.”
그 말을 듣고 난 왕소홍이 손가락을 딱 튕겼다.
“그렇지. 남은 떡볶이 양념에 밥 비벼 먹으면 그것만한 별미가 없어.”
“아, 떡볶이 비빔밥? 그러네요. 거기에 오뎅 국물 곁들여도 좋고.”
“그 구성에 밥이 올라가면 누구라도 그런 생각부터 할 것 같은데?”
“나도. 떡 다 건져 먹고 밥 비벼야지~ 할 것 같네요.”
“생각만 해도 든든한데? 한국인은 역시 밥이 들어가야 한다니까.”
팀원들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럼 메뉴는 다 정한 거죠?”
다들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그때 회의 시간이 종료되었다.
강지한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팬트리로 향했다.
팬트리에는 여러 가지 재료들이 상당히 넉넉하게 구비되어 있었다.
한 팀당 26인분씩의 음식을 만들어야 하는 만큼 있는 재료들은 부족하지 않게 수량을 많이 잡아 놓은 것.
하지만 그만큼 많은 재료를 다채롭게 갖추어 놓을 수는 없었다.
두 팀에서 같은 재료가 필요한데 다른 팀에서 먼저 그 재료를 독점해 버리면 사용할 수가 없게 된다.
즉, 이번 배틀은 재료의 제한이라는 패널티도 안고 가야 하는 것이다.
빠르게 음식을 구상해서 재료를 선점하는 쪽이 이득이다.
그게 아니라면 서로에게 필요한 재료가 겹치지 않기를 바라야 했다.
단, 쌀이나 육고기 등의 기본적인 재료들은 부족하지 않을 만큼 준비되었다.
“그럼 지금부터 두 시간 동안 26인분의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주세요.”
한돈선의 말이 끝나자마자 4라운드 베네핏 배틀이 시작됐다.
양측 팀원들 중 메인 요리를 맡은 이들이 우루루 달려나와 요리에 필요한 것들을 집어가기 시작했다.
미리 팬트리를 확인한 도근한의 팀원들은 거침이 없었다.
그들이 만들려고 하는 건 한식과 양식을 퓨전한 떡갈비 스테이크와 산뜻한 연어 아보카도 롤, 그리고 매콤한 토마토해산물 스튜였다.
다행스럽게도 두 팀의 재료가 크게 겹치지는 않았다.
아울러 강지한의 팀원들이 요리를 하는데 필요한 재료 역시도 대부분 비치되어 있었다.
왕소홍이 돼지고기 안심과 돼지껍질, 밀가루 등 샤오롱바오에 필요한 것들을 대량으로 쓸어왔다.
조중훈은 새우와 오징어, 연근, 표고버섯 등을 빠르게 조리대로 옮겼다.
제대로 된 일식 모둠튀김을 하기 위해서는 차새우와 갑오징어, 학꽁치, 바닷장어 등등이 있어야 했지만 그런 것들이 하나도 갖추어져 있지 않았다.
해서 대체할 수 있는 재료는 대체하고, 대체 불가한 재료들은 과감하게 뺐다.
강지한은 떡볶이와 어묵 재료들을 공수해 왔다.
어묵은 수제로 직접 만들 생각이었다.
아울러 떡볶이는 지역 예선에서 선보였던 어묵면 떡볶이를 재현하기로 했다.
대형 포털사이트 인기 검색어에도 오를 만큼 대단한 인기를 끌었으니 이를 재현하면 호텔조리과학생들의 환심을 살 수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럼 시작해 볼게요. 일중 씨랑 재영이는 절 도와주세요. 현호 씨는 왕 아저씨, 상민 씨는 중현 씨 도와주시고요. 정미 누나랑 명호는 메인 요리하는 분들이 원하는 대로 재료 다듬는 거 부탁해요. 미선이랑 영광 씨는 전체적으로 상황 보시면서 보조 부탁드릴게요.”
강지한의 지시로 팀원들의 본인의 위치를 찾아 움직였다.
‘감회가 새롭네.’
강지한이 조리대 한 편에 놓인 넓은 철판을 보며 미소 지었다.
26인분의 떡볶이를 저 철판에 한 번에 조리할 생각을 하니 리어카를 몰던 때가 떠올랐다.
오늘은 어묵까지 만든다.
대량의 떡볶이와 어묵.
딱 리어카에서 그가 팔던 메뉴였다.
아직 레벨 업 시스템을 만나기 전, 파리만 날리던 시절에도 하루를 거르지 않고 꾸역꾸역 리어카 장사를 하러 나갔던 그날의 향취가 코끝을 간질였다.
‘가자!’
강지한이 두 팔을 걷어붙였다.
* * *
주인이 없는 강지한의 집 마당에서는 조미옥 일행이 한창 김치를 담그고 있었다.
한참 김치에 양념을 버무리던 진경혜가 벌떡 일어나 기지개를 켰다.
“아이고~ 이 마당에서 이러는 것도 며칠 안 남았네.”
진경혜는 조미옥을 따라 횡성 김치 공장에 가기로 했다.
거기서 조미옥과 함께 지내기로 말을 맞춰 놓았다.
조미옥은 혼자서 집을 구해 사는 것보다 둘이 사는 것이 덜 적적하고 집값도 나눠 낼 수 있으니 좋았다.
물론 진경혜 말고 조미옥이 구한 다른 직원 열 명은 출퇴근을 하기로 했다.
차비는 조미옥이 전부 감당하는 조건이었다.
하지만 막내 직원 문정연은 개인적 상황 때문에 횡성으로 출퇴근할 수가 없었다.
해서 그녀는 독고진과 같이 춘천의 김치 매장을 꾸려 나가기로 했다.
김치에 양념만 버무리던 막내 일꾼이 매장 관리사원으로 승진한 것이다.
그 때문에 문정연은 요즘 늘 입이 귀에 걸려 있었다.
이제부터는 일당이 아닌 월급을 받을 수 있었으니까.
아울러 김치를 담그는 것보다 매장 관리하며 사람을 상대하는 것이 그녀의 적성에 더 잘 맞았다.
연신 콧바람이 나 있는 그녀에게 조미옥이 따끔하게 한마디 했다.
“너무 좋아하지 마. 김치 매장에 사람이 얼마나 많이 드나드는지 알아? 상대하다 보면 또 진상은 좀 많게? 꽃동산 생각했다가 똥밭에서 뒹구는 수가 있어.”
“에이~ 언니는. 내가 그 정도로 정신머리 없을까 봐?”
“응. 너 그 정도로 정신머리 없어.”
“치.”
문정연이 입을 비죽였다.
“여러분~ 우리 밥 먹고 합시다!”
그때 허기가 진 독고진이 김치 양념을 버무리다 말고 소리쳤다.
그러고 보니 다들 밥때가 되긴 했다.
“뭐 먹을까요? 시켜 먹을까?”
진경혜가 고무장갑을 벗으며 물었다.
조미옥이 고개를 저었다.
“오늘은 사장님이 나한테 집 열쇠 맡겨놓고 갔어. 부엌에 우리 먹을 거 해놨으니까 데워서 먹으라던데?”
“그래요? 어머나~ 좋아라.”
“나 벌써부터 침이 꼴깍꼴깍 넘어가는데?”
강지한의 요리 솜씨를 익히 경험해 본 진경혜과 문정연의 눈이 초롱초롱 빛났다.
“안으로 들어오지들 말고 기다려. 사장님 집 어지르면 안 되니까 내가 상 차려서 밖으로 갖고 나올게.”
“알았어요, 언니.”
“5월에 마당에서 하는 식사 좋죠! 운치 있고.”
“사장님이 뭘 만들어 놓고 갔을까~?”
차례대로 진경혜, 독고진, 문정연의 말이었다.
열쇠로 문을 따고 집 안으로 들어간 조미옥은 잠시 후, 커다란 상을 들고 밖으로 나왔다.
상 위에는 뭐가 많이도 담겨 있었다.
독고진이 얼른 상을 넘겨받아 마당 위에 놓았다.
주변으로 사람들이 앉은뱅이 의자를 가지고 와 자리를 잡았다.
“이게 다 뭐야?”
상에 올라간 찬과 음식들을 살펴 본 진경혜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상에는 콩자반과 두부조림, 김치 같은 각종 찬들부터 순두부찌개, 갈비탕, 청국장, 육개장, 계란말이, 뚝배기불고기, 고등어김치조림이 올라가 있었다.
밥은 고슬고슬하게 잘 지은 쌀밥이었다.
“아니 무슨 국이랑 찌개, 탕 종류가 종류별로 다 있대요?”
서로 다른 국물류는 딱 일 인분 정도씩 마련되어 있었다.
“근데 사장님이 갈비탕 같은 것도 할 줄 아셨어요?”
문정연이 묻자 조미옥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게? 이건 나도 처음 보네.”
독고진이 덧붙였다.
“청국장이랑 육개장도 처음인데? 뚝불도 그렇고. 고등어김치조림은 진짜 생소하다.”
“오늘 무슨 날이에요?”
진경혜가 물었으나 누구도 거기에 대해 대답할 수가 없었다.
다만 조미옥이 혼자 중얼거릴 뿐이었다.
“꼭 어디 한식당에 있는 메뉴를 전부 사다 놓은 것 같네.”
그랬다.
지금 상에 있는 메뉴들은 한식당에서 비교적 많이 볼 수 있는 메뉴들이었다.
강지한은 지한 식당의 오픈을 준비하기 위해 꾸준히 한식당 메뉴들을 연습하는 중이었다.
그가 지한 식당을 열겠다고 마음을 먹은 시기는 제법 오래되었다.
해서 그동안 알게 모르게 많은 연구를 해왔고 최근에서야 누군가에게 대접해도 되겠다는 판단이 섰다.
조미옥 일행에게는 보이지 않았지만 상에 올라온 메뉴들의 레벨은 전부 레벨 4에서 5 수준이었다.
“어디 그럼 맛 좀 볼까?”
맘 급하던 문정연이 가장 좋아하는 순두부찌개부터 한술 떴다.
“후~ 후~ 호록.”
순두부 한 조각을 큼직하게 얹어 후후 불어서 입안에 넣는 문정연.
그녀의 입안에서 진한 국물이 퍼져 나가며 감칠맛이 확 도는가 싶더니 매콤한 기운이 일었다가 금세 사라졌다.
아직 뜨끈한 순두부는 혀로 살짝 눌러주자 스르르 부셔지며 혀를 적신 국물과 뒤섞였다.
하늘하늘하고 담백 고소한 순두부와 진한 국물이 혼연일체가 되어 풍성한 만족감을 선사해 주었다.
“와, 너무 맛있다!”
조금 지쳐 있던 진경혜의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순두부찌개의 수준이 일반 한식당에서 파는 게 아니라 잘한다고 소문난 전문점 수준이었다.
그때 청국장을 맛본 문정연이 만족의 콧소리를 냈다.
“흐응~ 청국장도 제대로야. 이건 무조건 밥 비벼 먹어야 돼.”
문정연이 청국장 한술을 크게 떠서 밥에 넣고 슥슥 비벼 입에 넣었다.
청국장 특유의 쿰쿰한 냄새와 진한 맛이 밥 알갱이와 어우러져 혀 위에서 진득하게 놀아났다.
“너무 맛있다.”
두 여인의 반응에 조미옥과 독고진도 본격적으로 덤벼들었다.
그들은 상에 놓인 음식들을 서로 나눠 먹으며 그때마다 감탄을 금치 못했다.
어떻게 된 게 맛없는 것이 없었다.
각각의 음식이 전문점에서 사온 것처럼 완벽한 퀄리티를 자랑했다.
“우리 사장님 음식 원체 잘하는 건 알았지만, 이 정도인 줄은 몰랐네.”
조미옥은 강지한을 한 번 더 다시 보게 됐다.
* * *
왕소홍은 열심히 만두피의 반죽을 치대며 강지한을 흘끔 바라봤다.
강지한은 어묵에 들어갈 재료들을 신일중과 정재영에게 다듬어 달라 부탁한 뒤, 자신은 무슨 양념장을 만드는 중이었다.
‘진짜 이걸로 되려나.’
왕소홍은 샤오롱바오의 맛을 확실하게 내는 건 자신 있었다.
샤오롱바오는 분명히 학생들에게 잘 먹힐 만한 음식이다.
한국에서 파는 곳이 많지도 않은 데다가 만두 피 안에서 터져 나오는 고기 육즙은 그야말로 환상적으로 맛있다.
게다가 예전에는 샤오롱바오가 뭔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미식을 좋아하는 요즘 사람들은 샤오롱바오 파는 곳을 찾아가서 먹을 만큼 유명해졌다.
‘근데 떡볶이나 어묵은 좀…….’
이미 회의를 할 때 수긍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다시금 불안감이 밀려 올라왔다.
강지한은 완성된 양념장을 물과 함께 철판에 부어 파를 넣고 끓이기 시작했다.
파는 아예 처음부터 넣어서 완전히 무르게 만들 작정이었다.
보글보글.
떡볶이 소스가 끓어오르자 강지한은 불을 끄고 숟가락을 떠서 맛을 보았다.
‘됐어.’
양념은 숙성의 과정을 거치지 못했지만 5레벨 수준의 소스 맛은 나왔다.
강지한이 고개를 끄덕이고서는 가자미의 살을 발라내기 시작했다.
그때 왕소홍이 은근슬쩍 강지한의 조리대로 다가갔다.
가자미를 작업하는 데 정신이 팔린 강지한은 그런 줄도 몰랐다.
왕소홍은 숟가락으로 소스를 조금 떠서 얼른 입에 넣어 보았다.
그런데,
‘허어!’
입안에서 여태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떡볶이 소스의 세계가 열렸다.
재료라고는 아직 파밖에 넣지 않았는데 어떻게 이런 맛이 나올 수 있는 건지 놀랄 노자였다.
소스 맛에 격동한 왕소홍이 저도 모르게 오버하며 한마디를 뱉었다.
“이것만 먹어도 이기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