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하는 식당-104화 (104/330)

# 104

Restaurant 103. 분식, 너로 정했다.

버스에서 내린 지원자들을 맞아준 무리는 바로 배틀 셰프 키친에서 만났던 호텔조리과 학생들이었다.

학생들의 수는 총 51명.

그중 배틀 셰프 키친을 찾았던 학생들이 스물넷, 새로 합류한 학생들이 스물일곱이었다.

강지한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버스가 지원자들을 내려준 장소는 한국대학교 캠퍼스 노천마당 근처였다.

노천 마당의 넓은 무대 위에는 이미 촬영을 위한 준비가 완벽하게 끝나 있었다.

수십 대의 카메라와 조명기기들. 그리고 두 그룹으로 나뉘어져 설치되어 있는 긴 조리대까지.

조리대엔 음식을 만드는 데 필요한 기본 도구들이 갖추어져 있었다.

대두분의 지원자들이 예상 못한 상황에 놀라고 있을 때, 유독 친화력이 좋은 강지영은 벌써 상황을 받아들이고서 호텔조리과 학생들과 수다를 떠는 중이었다.

“대박이다, 정말. 나 이런 줄은 꿈에도 몰랐잖아. 그럼 너희들이 심사위원 되는 거야? 우리 팀 잘 좀 봐줘~”

그런 광경들은 전부 카메라에 차곡차곡 담기는 중이었다.

제작진은 출연자들에게 다가와 강지한의 팀에게는 하얀 앞치마를, 도근한의 팀에게는 검정 앞치마를 건네주었다.

출연자들은 각자에게 지급된 앞치마를 착용하고 제작진의 안내에 따라 노천무대로 자리를 옮겼다.

오늘의 심사위원이 될 51명의 호텔조리과 학생들은 나중을 기약하며 떠났다.

노천무대에 모여선 출연자들 앞으로 세 명의 심사위원들이 당도했다.

그리고 본격적인 베네핏 배틀의 녹화가 시작되었다.

늘 그렇듯 한돈선이 먼저 입을 열어 진행했다.

“배틀 셰프 4라운드 베네핏 배틀의 야외무대에 오신 여러분, 환영합니다. 지금 여러분께서 서계시는 곳은 한국대학교 캠퍼스의 노천마당이에요. 여러분은 오늘 이 자리에서 51명의 호텔조리과 학생들을 위한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실력을 발휘하는 데 조금의 부족함도 없도록 배틀 셰프 키친의 팬트리를 고스란히 옮겨 왔어요.”

한돈선이 말미에 오른손을 부드럽게 들어 노천마당의 중앙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화이트 팀과 블랙 팀을 경계 짓듯 야외 펜트리가 꾸며져 있었다.

총 10개의 5단 진열대에 갖가지 조리도구와 식재료들이 찾아보기 쉽도록 구역을 나눠 진열되어 있었다.

“조금 전에 에이프런(apron:앞치마)을 받아 전부 착용하셨죠?”

레이먼 박의 물음에 지원자들이 일제히 대답했다.

“네!”

“여러분들은 에이프런의 칼라에 따라 화이트 팀과 블랙 팀으로 불리게 됐습니다. 두 팀은 지금부터 투 아워(2hour) 동안 투애니식스 서빙스(26 servings)만큼의 음식을 만들어야 합니다. 인원은 피프티원(51)이지만 한 사람이 두 팀의 요리를 모두 맛봐야 하기 때문에 반 인분씩 서빙을 하게 될 겁니다.”

두 팀이 모두 51인분의 요리를 해버리면 결과적으로 102인분의 요리를 하게 되는 셈이다.

때문에 26인분을 만들어 반 인분씩 세팅을 해 서빙해야 했다.

“기본 세 가지 이상의 요리가 한 트레이(tray:쟁반) 안에 담겨야 하고, 어떤 음식을 만들지는 자유롭게 상의해서 결정하시기 바랍니다. 상의할 시간 15분 드리겠습니다.”

15분.

호텔조리학과 학생들을 만족시킬 세 가지 이상의 음식을 무엇으로 정할지 토론하기엔 촉박한 시간이었다.

각자의 팀이 팀장을 중심으로 모여 회의를 벌여 나갔다.

강지한은 머리를 맞대고 모인 팀원들을 한 번 슥 훑었다.

팀원들은 강지한의 입에서 어떠한 말이 나올 것인지 기대하는 눈빛이었다.

그 바람에 강지한은 약간의 부담감과 압박을 느꼈다.

하지만 마음을 다스리며 생각을 정리했다.

‘제작진이 호텔조리과 학생들을 괜히 세트장까지 끌고 왔을 리는 없어.’

어차피 대학에서 다시 만날 것을 굳이 데려와 지원자들에게 음식을 해먹일 필요는 없었다.

방송 촬영이라는 건 그러한 작업 하나하나에 전부 돈이 투자되게 마련이다.

때문에 거기에 무언가 해답이 있을 터.

불현듯 강지한의 머릿속에 레이먼 박이 세트장에서 했던 말이 떠올랐다.

-지금부터 그 학생들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들을 만들어서 여러분께 대접할 겁니다.

‘이거였어.’

강지한이 사람들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세트장에서 학생들이 요리해 줬던 거 다들 기억하시죠?”

팀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생각하기에 굳이 그런 상황을 연출한 이유는, 학생들의 취향과 입맛을 파악하라는 뜻인 것 같아요. 즉, 힌트는 세트장에서 우리가 먹었던 음식에 있는 거죠. 다들 학생들이 먹었던 음식이 무언지 얘기해 보세요.”

듣고 보니 그럴싸한 말이었다.

열한 명의 팀원들이 돌아가며 한 명씩 입을 열었다.

“크림파스타요.”

“전 부대찌개 먹었어요.”

“닭볶음탕이었어요.”

“해물짬뽕이요.”

“야끼소바 먹었습니다.”

먹은 음식들이 한식, 중식, 일식, 양식 그 종류도 다양했다.

서로 무얼 먹었는지 의견을 교환하고 나자 팀원들은 더욱 혼란에 빠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거 너무 광범위해서 뭘 만들어야 할지 모르겠는데요.”

취사병 출신이자 현재 개인 일식당 오픈을 준비 중인 서른두 살 조중훈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게. 카테고리가 하나라도 통일되면 좋은데…….”

올해로 마흔한 살이자 지원자 중 가장 연장자인 현직 중식요리사 왕소홍이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앓는 소리를 냈다.

열한 명의 팀원들이 돌아가며 한마디씩 했지만 다들 난감하다는 얘기뿐, 상황의 개선에 도움이 될 만한 건 없었다.

강지한은 침묵을 지키며 고민에 빠졌다.

‘뭘까. 제작진이 괜히 혼란만 가중시키려고 이런 일을 벌인 건 아닐 텐데.’

그때 블랙팀의 지원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도근한을 제외한 팀원들이 팬트리에 와서 재료와 조리도구의 위치를 살폈다.

이를 본 화이트 팀원들이 수군댔다.

“뭐야? 왜 벌써 팬트리에서 기웃거려?”

“저 팀은 메뉴를 정한 모양인데?”

“이렇게 빨리요?”

그들은 재료와 도구의 위치를 하나하나 눈에 담으며 기억하는 모습이었다.

그러한 행동인 즉, 이미 메뉴를 정했다는 얘기였다.

이것으로 블랙팀은 경합이 시작되었을 때, 재료와 도구를 찾느라 지체되는 시간을 절약하게 됐다.

그에 화이트 팀원들의 마음이 급해졌다.

“팀장님, 우리도 뭔가 아이디어를 내야 하지 않겠어요?”

“근데 쟤들은 음식 주제를 뭘로 잡았대?”

“지금 남 얘기해서 뭐합니까. 우리가 뭘 만들지 정해야지.”

저마다 한마디씩 꺼내는 와중 신일중은 입을 꾹 다물고서 강지한의 눈치를 살폈다.

강지한은 계속해서 침묵 속에 장고를 이어가는 중이었다.

신일중은 어쩐지 강지한이 명쾌한 해답을 내놓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다른 팀원들은 그런 강지한이 그저 답답하기만 했다.

“지한 군, 이제 자네가 뭐라고 얘기를 좀 해야 할 것 같은데. 하염없이 시간만 흐르고 있잖아.”

결국 참다못한 왕소홍이 강지한을 독촉했다.

그러나 아직 이렇다할 계획이 서지도 않았는데 아무런 말이나 던질 수는 없는 일.

강지한은 왕소홍의 말에도 여전히 입을 열지 않았다.

점점 그런 강지한을 보는 사람들의 애간장이 타들어갔다.

몇몇은 은근슬쩍 짜증스런 말을 뱉었다.

벌써 10분이라는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팀원들의 얘기를 귀담아 들으며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강지한의 머릿속에 무언가가 번뜩이며 스쳐 지나갔다.

‘학생들이 만들어 준 메뉴는 전부 자극적인 것들이었어.’

구나연이 강지한에게 만들어줬던 떡볶이도 자극적인 맛이었다.

MSG의 첨가 유무를 떠나서 어떤 특징적인 맛이 강렬하게 도드라지는 그런 음식들이 학생들의 입맛을 관통하고 있었다.

그리고 자극적인 맛으로 확실하게 승부를 던질 수 있는 분야가 강지한에게는 있었다.

‘분식.’

구나연은 학생들이 길거리 음식이나 분식을 특히 좋아한다고 했다.

멈춰있던 강지한의 머릿속 톱니바퀴가 서로 맞물리며 빠르게 돌았다.

“우린 분식으로 가시죠.”

드디어 터진 강지한의 입에서 나온 말에 사람들이 경악했다.

“네? 지금 분식이라고 하셨어요?”

“아니……. 팀 대결에서 분식을 만들겠다고요? 너무 없어 보이는 것 같은데요.”

“저도 분식은 좀…….”

모두가 강지한의 의견을 반대할 때 신일중이 크게 소리쳤다.

“마, 맛있어요!”

“……?”

놀란 사람들이 일제히 신일중을 쳐다봤다.

순간 부담감으로 다리가 덜덜 떨려오는 신일중이었지만 그에 굴하지 않고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아, 아버지께서 지한 씨 식당에 가신 적이 있었는데, 메뉴들이 다 맛있었대요. 그래서 혼자 5인분이나 드시고 오셨대…… 요.”

“아니 그건 자네 아버지 입맛이고. 지금 여기는 경합을 해야 하는 곳이잖아.”

왕소홍이 신일중을 타박했다.

그때 강지한이 목소리를 높였다.

“바로 그래서 분식으로 가자는 거예요. 왕 아저씨 말대로 지금 우리는 배틀을 하고 있어요. 그럼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이번 싸움의 승패를 쥐고 있는 건 누구죠?”

“학생들이지.”

“그렇죠. 그럼 우리가 해야 하는 건 그럴듯한 음식을 만드는 것일까요, 학생들이 좋아할 음식을 만드는 것일까요.”

“말해 뭐해. 당연히 학생들이 좋아할…… 아.”

말을 하던 왕소홍은 스스로 깨닫고 입을 닫았다.

“학생들이 우리한테 해주었던 음식들, 하나같이 맛이 강렬했어요. 그렇다면 바로 그 강렬함에 포인트를 맞추면 되는 거예요. 한식, 분식, 중식, 양식, 그런 식으로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어요.”

강지한의 말에 반은 수긍하고 반은 그러지 못했다.

수긍못한 팀원 중 한 명인 조중훈이 손을 들었다.

“아무리 그래도 분식으로 승부를 보자는 건 너무 안일한 얘기 아닐까요?”

“이길 자신 있습니다.”

강지한이 확신을 담아 말했다.

그는 지금 당장 이 자리에서 적어도 레벨 5 이상, 상황이 따라준다면 레벨 6의 분식들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그 정도 수준의 맛이면 학생들의 입맛을 끌어당기기에는 충분했다.

강지한의 대쪽 같은 태도에 동요한 몇몇 사람들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하긴……. 지한 씨 지금까지 해온 것 보면 참 말도 안 되는 사건들이 많았잖아.”

“누가 뭐라 해도 맛 하나는 확실하게 내는 사람이니까.”

“믿어 봐도 괜찮을 것 같은데요? 하핫.”

결국 반대하는 쪽보다 찬성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

그때 최현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회의 시간 3분 남았습니다!”

남은 시간이 얼마 없었다.

이제는 메뉴를 정하고 재료의 위치를 탐색해 둬야 했다.

더 지체되면 배틀에 들어가서 많은 시간을 빼앗기고 만다.

결국 모든 사람들이 강지한의 뜻에 따르기로 했다.

“믿어볼게요. 어떤 메뉴로 갈 건지는 생각해 뒀어요?”

조중훈이 물었다.

“네. 떡볶이와 어묵, 튀김. 그리고 만두를 만들 겁니다.”

“음……. 진짜 단순하긴 하네요.”

“화려한 걸 좇다가 이도저도 안 되는 것보단 심플한 게 낫지 뭐.”

강지한의 말을 듣고 난 팀원들이 갑론을박을 벌였다.

강지한은 그들의 대화를 끊고 하려던 말을 마저 마무리 지었다.

“대신 튀김은 일식으로, 만두는 중식으로 하려 합니다.”

그 말에 조중훈과 왕소홍의 눈썹이 꿈틀댔다.

조중훈은 일식 전문이고 황소홍은 중식 전문이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중훈 형님, 덴뿌라 모리아와세. 가능하시죠?”

일본에서는 해산물이나 채소 등에 튀김옷을 입혀 튀겨내는 모든 튀김의 종류를 총칭하는 단어가 ‘덴뿌라’다.

‘모리아와세’는 요리들을 한 그릇에 담아내다라는 뜻이다.

해서 덴뿌라 모리아와세(てんぷら もりあわせ)는 모둠튀김이라는 뜻이다.

아울러 이는 일식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한 실기 시험에서 나오는 과제이기도 하다.

조중훈은 일식 자격증을 갖고 있으며 일본까지 넘어가 공부를 했던 정통파다.

덴뿌라 모리아와세는 눈감고도 만들 수 있었다.

“재료만 있다면 얼마든지.”

“든든하네요.”

강지한은 얼마 전 이런저런 요리들을 만들다가 일식 튀김을 자신의 떡볶이 양념에 찍어 먹어 보았다.

한데 그 맛이 예술이었다.

일식 튀김은 우리나라의 분식집에서 맛보는 튀김들보다 훨씬 바삭하다.

비법은 기름에 반죽을 물방울처럼 떨어뜨려 만든 튀김입자들을 붙여서 튀겨내는 것.

그렇게 만들어진 튀김은 전신에 달라붙은 튀김입자들로 인해 떡볶이 양념도 더욱 많이 흡수한다.

양념 가득 머금은 튀김을 입에 바로 넣으면 바삭함의 극치를 보여주며 매콤달콤한 소스를 뱉어내는데 그야말로 맛과 식감의 천국을 느끼게 된다.

강지한이 이번엔 왕소홍에게 부탁했다.

“왕 아저씨는 샤오롱바오를 부탁드릴게요.”

샤오롱바오(小籠包).

중국식 만두인 바오쯔(包子)의 일종으로 고기 육즙을 가득 품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하실 수 있으시죠?”

“가능해.”

왕소홍의 매장에서는 샤오롱바오를 팔지 않는다.

애초에 한국의 중식집에서 샤오롱바오를 파는 곳이 많지 않다.

하지만 왕소홍은 샤오롱 바오를 집에서 많이 만들어 먹었다.

때문에 자신이 있었다.

“샤오롱바오는 두당 한 개씩 지급할 거예요. 식사 끝나고 후식처럼 먹을 수 있도록.”

“근데 너무 다 분식 개념이라……. 후식이라는 게 별 의미가 없어 보여요.”

“하긴……. 배는 채워도 제대로 된 식사를 했다는 생각이 들까 싶네.”

그 부분 역시 강지한은 생각해 둔 것이 있었다.

“거기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든든한 한 끼 식사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이 저기에 있으니까요.”

“회의 종료까지 일 분 남았습니다!”

최현식이 마무리 일 분을 알려줌과 동시에 강지한이 웃음을 지으며 팬트리의 한 곳을 가리켰다.

그러자 강지한의 손끝을 따라 시선을 돌린 팀원들은 눈에 들어온 식재료를 보고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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