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하는 식당-103화 (103/330)

# 103

Restaurant 102. 단체 경합

‘단체 경합’

족자 안에 적힌 글이었다.

지원자들은 서로 시선을 교환하며 술렁댔다.

심사위원들은 그런 그들의 모습이 카메라에 충분히 담길 때까지 침묵을 지켰다.

이윽고 레이먼 박이 입을 열었다.

“오늘 여러분들은 두 팀으로 나누어 컴퍼테이션(competition:경쟁)하게 될 겁니다. 윈(win)하는 팀은 전부 베네핏을 획득해 페일 배틀에서 제외될 거고, 루즈(lose)하는 팀원들은 네 명의 탈락자를 놓고 페일 배틀을 치러야 할 겁니다.”

스물네 명의 인원을 두 팀으로 나누면 각각 열두 명씩 속하게 된다.

그중 지는 팀은 네 명의 탈락자가 되지 않기 위해 또다시 싸워야 한다.

열두 명 중 네 명.

3분의 1의 확률로 본인이 탈락자가 될 수도 있는 상황.

이번 페일 배틀은 큰 부담을 안고 임할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가장 좋은 건 어떻게든 베네핏 배틀에서 승리하는 것이다.

“그럼 팀을 나누기에 앞서 각 팀의 리더가 되어줄 사람 한 명씩을 선출하겠습니다. 리더 선출 방법은 바로…… 머랭(meringue) 치기입니다.”

머랭 치기는 제과제빵의 가장 기본적이면서 까다로운 작업이다.

아울러 파티쉐의 기본이 되어있는지를 볼 수 있는 척도이기도 했다.

레이먼 박의 입이 다시 움직였다.

“리더에게는 팀원을 선출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집니다.”

팀원 선출 권한.

지금껏 주변 관찰을 게을리하지 않은 지원자가 리더가 된다면 실력 있는 지원자를 팀원으로 받아들일 테고, 그것은 팀 배틀에서 큰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한다.

지원자들은 다들 자신이 리더가 된다면 누구를 뽑을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강지한 역시 마찬가지였다.

‘누굴 먼저 뽑는 것이 좋을까.’

그런 생각을 하자마자 강지한의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은 도근한이었다.

강지한은 이미 마음속으로 그를 인정하고 있다는 반증이었다.

반대로 도근한은 적으로 둬서는 안 되는 사람을 생각했다.

그의 시선이 강지한에게 향했다.

두 사람은 서로를 의식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몰랐다.

다른 지원자들 모두가 그 둘을 섭외 1순위 팀원이자 경계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것을.

“오늘 여러분께서는 프렌치 머랭을 만들게 될 겁니다.”

프렌치 머랭은 달걀흰자에 설탕을 넣고 거품을 내 만드는 가장 기본적인 머랭이다.

“하지만 그 전에 앞서 한 가지 퀘스천이 있습니다.”

레이먼 박이 장난기 어린 시선으로 지원자들을 둘러보며 물었다.

“다들 식사하셨습니까?”

예상치 못했던 가벼운 질문에 지원자들 틈에서 너털웃음의 터져 나왔다.

지원자들은 대부분 빈속으로 촬영장을 찾았다.

“푸딩 래더 덴 프레이즈.”

pudding rather than praise.

‘칭찬보다 푸딩이 낫다’는 말로 우리나라 속담 중엔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이 있다.

“배틀에 들어가기 앞서 배부터 채우도록 하죠.”

레이먼 박이 박수를 두 번 치자 세트장 정문으로 스물네 명의 호텔조리과 학생들이 물밀 듯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학생들은 각각의 지원자 옆에 한 명씩 붙어 섰다.

“지금부터 그 학생들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들을 만들어서 여러분께 대접할 겁니다. 부디 짝이 된 학생과 테이스트(taste)가 같기를 바라겠습니다.”

레이먼 박의 말을 한돈선이 이어받았다.

“그럼 학생 여러분, 지금부터 30분 드리겠습니다. 파트너를 위한 요리를 해주세요. 제한시간 안에 음식을 완성 못하면 누군가는 덜 익은 밀가루나 날고기를 먹게 될지도 모릅니다.”

한돈선의 말에 좌중에서 웃음이 터졌다.

“시작하세요.”

30분이란 시간이 흘러가기 시작했고 학생들은 부지런히 팬트리를 오가며 요리를 시작했다.

강지한의 짝이 된 학생은 귀여운 외모에 안경이 잘 어울리는 스물네 살의 여대생이었다.

머리를 양 갈래로 딴 여대생은 재미있게도 떡볶이를 만들고 있었다.

“떡볶이 좋아하나 봐요?”

강지한의 물음에 요리에 정신이 팔려 있던 여대생이 배시시 웃었다.

“아? 네. 제가 너무 요리만 했죠? 구나연이라고 해요. 오빠는요?”

자신을 구나연이라고 밝힌 여대생은 생각보다 친근하게 말을 붙여왔다.

“강지한.”

“와~ 이름 예쁘시다.”

“고마워요.”

“이럴 때는 보통 네 이름도 예뻐~ 라고 하는데. 오빠는 칭찬 먹튀하시네요.”

“……네?”

당황하는 강지한을 보며 구나연이 쿡! 웃었다.

“장난이에요. 오빠 의외로 순진한 스탈?”

“음…….”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 말문이 막힌 강지한이었다.

자연스레 두 사람의 대화가 끊겼고 구나연은 다시 떡볶이를 만드는 데 집중했다.

일단 보통의 떡볶이는 아니었다.

그녀는 다시마와 멸치로 육수를 뽑고, 양념도 여러 가지 재료를 갈아 직접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강지한이 물었다.

“떡볶이 좋아해요?”

“그럼요. 호텔조리과 다닌다고 하면 입이 되게 고급스러울 줄 아는데 안 그래요. 다 단짠단짠 좋아하고 길거리 음식 환장하고 그래요. 누가 분식거리라도 사오면 눈 돌아가요. 떡볶이, 튀김, 순대…… 꼴깍. 아, 죄송해요. 생각하다 보니까 침 넘어가서. 헤헤.”

구나연은 떡볶이를 만들고 있으면서도 떡볶이 얘기를 하다 군침을 삼켰다.

“저 방금 웃겼죠? 제가 먹으면서 먹는 얘기 하는 게 특기거든요.”

그만큼 먹을 것을 좋아한다는 얘기다.

한데 그에 반해 몸매는 여리여리했다.

어디 한 군데 군살 같은 것이 붙어 있지 않았다.

선천적으로 많이 먹어도 살이 잘 찌지 않는 체질인 그녀였다.

“자, 30분이 다 됐습니다. 음식에서 손을 떼 주세요.”

한돈선의 말에 학생들은 일제히 행동을 멈췄다.

다행스럽게도 미완의 음식을 먹어야 하는 지원자가 생기진 않았다.

“맛있게 드세요.”

구나연의 말에 강지한은 바로 포크를 들었다.

떡과 어묵 하나를 찍어 입에 넣고 천천히 맛을 음미했다,

구나연이 그런 강지한를 걱정 반, 기대 반이 담긴 눈으로 바라봤다.

‘괜찮은데?’

대단히 뛰어난 음식은 아니었지만 대중적으로 괜찮은 맛이었다.

강지한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이를본 구나연이 비로소 안심했다.

지원자들이 음식을 먹는 동안 학생들은 설거지를 하고 주변 정리까지 완벽하게 마쳤다.

그리고서는 촬영 스탭들의 신호에 따라 작별인사도 없이 촬영장을 나섰다.

이어 스탭들이 각 지원자의 조리대에 계란 한 판과 거품기, 넓은 볼을 나눠주었다.

머랭치기를 위한 모든 준비가 완료되자 한돈선이 입을 열었다.

“자, 든든하게 배를 채웠으면 팀장을 선출해 보도록 할까요. 지금부터 머랭을 만드세요. 제한시간은 없습니다. 먼저 완벽한 머랭을 만들어 오시는 두 사람을 팀장으로 선출하겠습니다. 시작해주세요.”

지원자들 대부분이 너도나도 계란의 흰자만 분리해 볼에 담았다.

조금이라도 빨리 머랭을 치기 위한 손놀림이 분주했다.

도근한 역시 그러려 했다.

한데.

‘이거 봐라?’

자세히 보니 볼 안쪽 일부분이 반들거렸다.

도근한은 그것을 손으로 문질러 냄새를 맡았다.

‘식용우인 것 같은데.’

딱히 특징적인 냄새가 나지 않았다.

‘일부러 볼에다가 기름을 살짝 발라놨어.’

머랭은 물이나 기름 한 방울이 섞여도 제대로 올라오지 않는다.

제작진은 지원자들의 기본을 알아보기 위해 함정을 판 것이다.

머랭을 치기 전, 볼의 상태를 확인하는 건 기본 중의 기본이니까.

도근한이 주변을 살폈다.

지원자들 중 반 이상이 별생각 없이 볼에다 흰자를 분리해 담고 있었다.

‘지한이는?’

강지한은 어쩌고 있는지 살피려고 시선을 돌렸다.

그런데 자리에 없었다.

‘뭐야 이 자식? 혹시 팬트리에 갔나? 왜?’

강지한이 무슨 생각인건지 궁금해하고 있을 때 볼의 상태를 눈치챈 다른 지원자들이 설거지를 하기 시작했다.

이를 본 도근한도 서둘러 손을 움직였다.

볼에 묻은 기름을 닦으려 할 때 강지한이 자리로 돌아왔다.

도근한은 그가 왜 팬트리에 다녀온 건지 궁금해서 다시 시선을 빼앗겼다.

한데 강지한이 조리대 위에 올려놓는 물건을 보고서 도근한은 벙찌고 말았다.

그가 팬트리에서 가져온 건 새로운 볼이었다.

‘이런 젠장!’

도근한이 설거지하던 볼을 팽개치고 팬트리로 향했다.

이를 본 다른 지원자들도 설거지를 관두고 팬트리로 달려갔다.

그랬다.

볼에 뭐가 묻어 있다면 굳이 설거지를 해서 다시 박박 닦아 말릴 게 아니라 새로운 볼을 찾아오면 되는 일이다.

언제 설거지해서 물기를 닦고 그게 마를 때까지 기다린단 말인가?

사람들은 다급해지면 사고가 딱딱해지고 시야가 좁아지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강지한은 유연하게 대처했다.

단상 위의 심사위원들의 시선이 그런 강지한에게 집중됐다.

볼의 상태를 눈치채고 설거지를 하던 지원자들이 새로운 볼을 가져오자 멋모르고 있던 다른 지원자들도 이상함을 느끼고서 그들을 따라했다.

그러는 사이 강지한은 계란 두 알을 까서 흰자만 분리해 볼 안에 넣었다.

한데 바로 머랭을 치지 않고 흰자가 담긴 볼을 냉동실에 넣었다.

계란의 온도를 조금 낮추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하면 흰자가 설탕과 섞였을 때 머랭이 더 잘 올라오기 때문이다.

핸드믹서기를 사용한다면 약간의 온도차 정도는 전혀 상관이 없다. 하지만 직접 손으로 머랭을 쳐야 할 땐 이런 작은 차이가 성패를 좌우하곤 한다.

강지한의 판단에 심사위원들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그는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그 어떤 지원자들보다 기본을 가장 잘 이해하며 지켜 나가고 있었다.

탁탁탁탁탁!

시험이 시작되고 3분여가 지나가는 시점.

모든 지원자들이 바쁘게 머랭을 치고 있었다.

한데 강지한만 아무것도 안 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계란의 온도가 더 내려가길 기다렸다.

때를 노리던 강지한의 손이 드디어 움직였다.

냉동실에서 볼을 꺼내 거품기를 들고 차가워진 흰자를 빠르게 휘저었다.

탁탁탁탁탁!

강지한의 스냅은 상당히 빨랐다.

그의 손목이 움직임에 따라 흰자에서 다량의 거품이 생성됐다.

가장 늦게 휘핑질을 시작했음에도 금세 다른 지원자들을 따라잡고 있었다.

심사위원들은 강지한과 더불어 도근한, 강지영, 신일중을 눈에 담았다.

현재 그 네 사람이 선두 그룹으로 진행 상태가 가장 빨랐다.

특히 신일중은 이번 라운드에서 전과 다르게 긴장한 모습이 많이 사라져 있었다.

네 사람 중에서도 강지한과 강지영이 앞서 나가는 가운데 도근한과 신일중이 그 뒤를 바짝 좇았다.

강지영의 전문 분야는 제과제빵이다.

그렇다 보니 이번 과제에서 다른 사람들보다 앞서갈 수 있었다.

한데 갈수록 근력이 빠르게 떨어졌다.

머랭을 치는 데는 문제없지만 상대적으로 근력과 기술이 좋은 도근한이 그녀를 따라잡았다.

흰자에 거품이 어느 정도 일었을 때 강지한은 설탕을 조금 넣고 다시 빠르게 휘저었다.

커다란 공기방울이 잘게 깨지고 부서지며 하얀 크림처럼 변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었다.

강지한은 계속해서 손을 바꿔가며 거품기를 휘돌렸다.

점점 공기의 입자가 세밀해지며 크림의 밀도가 올라갔다.

강지한이 한 번 설탕을 넣고 거품기를 돌렸다.

새하얀 크림은 계속해서 부풀었고 끈적끈적해졌다.

그렇게 9분이 지났을 무렵.

도근한과 강지한이 거의 동시에 앞으로 튀어나갔다.

두 사람은 단상 앞 테이블에 머랭을 친 볼을 나란히 내려놓았다.

그러자 레이먼 박이 대표로 내려와 머랭을 살폈다.

그가 강지한의 머랭을 거품기로 콕 찍었다가 들어 올리며 말했다.

“머랭이 얼마나 잘 일어났는지 보려면 이렇게 찍었을 때, 딸려 올라온 모양이 휘지 않고 곧추서야 합니다.”

강지한의 머랭은 그의 말처럼 뾰족하게 솟아 휘핑기에 딸려온 부분이 휘지 않고 곧추섰다.

이어 레이먼 박은 머랭이 담긴 볼을 거꾸로 들어 올렸다.

그럼에도 머랭은 볼에 딱 붙어버린 듯 전혀 흘러내리지 않고 모양을 유지했다.

“부풀기도 적당하고 퍼펙트한 프렌치 머랭이네요. 콘그레츄레이션! 강지한 씨가 첫 번째 팀장이 되셨습니다.”

레이먼 박의 합격 판정에 지원자들이 박수를 쳤다.

이어 도근한의 머랭을 심사했다.

그 역시도 무난하게 합격 판정을 받았고 두 번째 팀장이 되었다.

레이먼 박이 단상 위로 올라가자 한돈선의 입이 열렸다.

“이것으로 단체 경합의 두 팀장이 선출됐습니다.”

강지한과 도근한이 서로를 힐끔 바라봤다.

허공에서 시선이 마주지자 움찔한 두 사람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황급히 눈을 돌렸다.

“두 분께서는 가위바위보를 해주세요. 이긴 사람부터 한 분씩 지원자들을 번갈아가며 호명해 팀원으로 받아들이면 됩니다. 어렵지 않죠?”

한돈선의 지시대로 강지한과 도근한은 가위바위보를 했다.

그러면서도 끝내 눈은 마주치지 않았다.

가위바위보는 도근한의 승리였다.

그가 처음으로 호명한 사람은 지난 라운드에서 호흡을 맞췄던 염동화였다.

다음으로 강지한의 차례.

“신일중 씨를 첫 번째 팀원으로 모셔가겠습니다.”

그는 일말의 망설임 없이 신일중의 이름을 불렀다.

제발 강지한이 자신을 택해주길 바라고 있던 신일중의 얼굴이 밝아졌다.

도근한은 다음 멤버로 강지영을 택했고, 강지한은 이만우를 데려갔다.

잠시 후, 두 명의 팀장은 각각 열한 명의 팀원을 나눠 가지게 됐다.

“그럼 단체 경합을 위한 장소로 이동하도록 하겠습니다. 밖에 여러분을 경합 장소까지 안전하게 모시고 갈 버스가 대절되어 있습니다. 지금 바로 버스에 오르도록 하십시오.”

최현식의 말에 지원자들이 웅성거리며 세트장을 나섰다.

“여기서 하는 게 아니었어?”

“어디로 가려 그러지?”

“아, 오늘따라 촬영이 더 피곤하네.”

세트장 밖에는 버스 두 대가 대절되어 있었다.

강지한과 도근한은 각각의 팀원들과 함께 버스 두 대에 나누어 몸을 실었다.

그들을 따라 담당 카메라맨들과 피디들도 두 무리로 나누어져 버스에 올랐다.

노영철 피디는 강지한이 탄 버스를 택했다.

“출발합시다.”

노영철의 말에 버스가 천천히 목적지를 향해 움직였다.

* * *

20여 분 정도의 시간이 흘러 버스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자, 내리세요.”

노영철의 말에 강지한을 비롯한 팀원들이 버스에서 우르르 내렸다.

그러자 일단의 무리가 그들을 반겨주었다.

“안녕하세요!”

활기차게 인사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확인한 지원자들은 하나같이 놀라면서도 반가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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