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2
Restaurant 101. 본선 4라운드
앉은 자리에서 제육덮밥과 된장찌개, 김치만두를 해치워 버린 신장호는 한동안 넋이 나가 있었다.
그러다 너털웃음을 흘렸다.
“허허.”
솔직히 말해 어처구니가 없었다.
지한 분식의 음식들은 일반 분식의 레벨을 뛰어넘어 있었다.
전국을 이 잡듯 뒤져도 이 정도 퀄리티의 분식집이 과연 한 손가락 안에 꼽을 만큼이나 나올까 싶었다.
‘이거 김치가 문제가 아닌데.’
신장호가 손을 번쩍 들었다.
그러자 이리나가 다가갔다.
“네~ 뭐 더 필요하세요?”
신장호는 결연한 시선을 던지며 말했다.
“김치 볶음밥이랑 된장찌개 주세요.”
“……아, 네.”
이미 3인분을 먹어놓고 2인분이나 되는 음식을 더 시키는 바람에 이리나는 잠시 얼빠져 있다가 얼른 대답했다.
그녀가 주방에 새로 받은 주문을 전달했다.
그러자 강지한도 놀란 눈으로 신장호를 흘깃 바라봤다.
신장호는 심각한 얼굴이 되어 메뉴판을 뚫어져라 살피는 중이었다.
강지한은 그런 신장호를 오래 신경 쓰지 못하고서 밀려 들어오는 주문들을 해결해 나갔다.
15분 정도가 지나고 나서 신장호가 주문한 음식들이 나왔다.
이번에는 서비스 어묵 국물도 함께였다.
사실 제육덮밥을 주문했을 때도 어묵 국물을 내줬어야 하는데 이리나가 웬일로 깜빡한 것.
신장호가 숟가락을 들고 김치볶음밥부터 공략했다.
김치볶음밥에 들어간 것이라고는 햄과 잘게 다진 김치밖에 없었다.
‘과연 어떨까.’
신장호의 입으로 한 숟갈 크게 뜬 김치볶음밥이 들어갔다.
그리고 믿을 수 없는 감칠맛의 축제가 벌어졌다.
‘뭐지? 아니 어떻게 이런 감칠맛이…….’
신장호가 다시 한 숟갈을 떠 입에 넣었다.
밥 알갱이는 입안에 들어가자마자 사르르 풀리며 사이사이 감추고 있던 감칠맛을 다시 한 번 토해냈다.
‘김치 볶음밥은 잘못 볶으면 질척거리게 마련인데, 이건 예술이다.’
신장호가 신중하게 맛을 음미했다.
‘인공조미료 맛이긴 한데…… 밥 자체에 조미료 간을 한 건 아니야. 그러면 느끼해지지. 설탕 정도 넣었으려나. 하지만 설탕만으로는 이런 감칠맛을 살리기 힘들지. 밥알 사이에 숨어 있다가 가끔씩 확 퍼지는 이 맛은…… 설마 햄 본연의 감칠맛만 살렸다고?’
신장호의 생각이 맞았다.
강지한은 김치볶음밥을 만들 때 조미료라고는 설탕 한 꼬집 정도밖에 넣지 않았다.
오로지 맛있게 잘 익은 김치와 햄을 넣어 밥과 함께 볶는 것으로 끝이었다.
이미 김치 자체가 워낙 맛있기에 다른 양념이 필요 없었다.
5레벨의 김치 볶음밥을 만들 때는 강지한의 특제 양념을 추가했지만, 김치의 레벨이 높아지며 그마저도 무의미해졌다.
김치 본연의 맛을 밥 알갱이 속에 스며들게 하는 것만으로 김치볶음밥은 6레벨의 수준을 자랑했다.
하지만 현대인들이 좋아하는 인공적인 감칠맛은 그 안에서 찾기가 힘들었다.
어떻게 보면 심심하다고 느낄 수도 있었다.
해서, 맛이 강한 햄을 김치볶음밥에 넣었다.
많이 넣을 필요는 없었다.
햄이 필요 이상으로 들어가면 첫 술에는 감칠맛이 더욱 강렬하게 다가올지 모르나 이내 혀가 그 맛에 길들여져서 먹을수록 무덤덤해지게 마련이다.
반면 조금 적게 넣으면 밥 한 술에 들어있는 햄 한두 개가 심심한 맛 속에서 강력한 존재감을 발하며 끝까지 감칠맛을 느낄 수 있도록 유지시켜 준다.
‘맛의 밸런스가 완벽하고 자극적이지 않아서 쉽게 질릴 것이 아니야. 완벽하다고밖에는 말할 수가 없어.’
속으로 김치볶음밥을 극찬한 신장호가 이번엔 된장찌개를 맛봤다.
“호록. 흐으!”
된장찌개 역시 기대 이상이었다.
‘집 된장과 시중에서 파는 된장을 적당히 섞었나? 아니면…… 또 다른 비법이 있는 걸 수도. 들어가는 재료들의 익힘 정도도 딱 알맞아. 너무 익은 것도, 설익은 것도 아니어서 씹는 맛이 좋다. 조미료 대신 천연 조미료를 사용했고…… 맹물이 아니라 육수를 사용한 것 같은데.’
신장호가 다시 김치볶음밥을 한 입 먹고 별생각 없이 어묵 국물을 들이켰다.
그러다 화들짝 놀라 홉떠진 눈으로 어묵 국물이 담긴 작은 그릇을 노려봤다.
‘이건 또 왜 이래?’
‘서비스’로 나온 어묵 국물의 맛이 어마어마했다.
일반 분식점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그런 액상조미료 국물 맛이 아니었다.
신장호의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그는 지금 광산에서 금줄을 캔 광부의 심정을 고스란히 느끼고 있었다.
‘심봤다!’
신장호가 쾌재를 부르며 열심히 숟가락을 움직였다.
어느새 김치볶음밥과 된장찌개가 깨끗이 동났다.
어묵 국물과 반찬들 역시 전부 먹어치웠다.
‘배부르다.’
아무리 신장호라고 하더라도 5인분은 역시 무리였다.
그가 터지려는 배를 간신히 추스르고 자리에서 일어나 카운터로 다가왔다.
“얼맙니까?”
물어보는 신장호에게 이리나가 귓속말을 전했다.
“사장님께서 대접하신 거라고 그냥 가도 된다셨어요.”
“아.”
신장호가 주방에 있는 강지한을 바라봤다.
강지한이 빙긋 웃으며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했다.
신장호도 마주 인사를 건네고는 만면 가득 미소를 머금었다.
“사장님께 브레이크 타임에 다시 오겠다고 전해주세요.”
“그럴게요. 안녕히 가세요!”
신장호는 든든한 마음으로 식당을 나섰다.
* * *
브레이크 타임.
강지한은 지한 분식 식구들의 식사를 챙겨준 뒤 근처 카페에서 신장호를 만났다.
현재 퀘스트의 건상 수치는 어제 지한 분식 식구들에게 만들어 준 음식과 간식으로 인해 52가 됐다.
애견 카페 손님들에게는 따로 간식을 챙겨주지 못했다.
어차피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퀘스트는 곧 클리어될 터였다.
간식을 만들어 가면 그만큼 예소린과 함께하는 시간이 줄어들기에 굳이 무리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강지한을 만난 신장호는 자신이 생각하고 있던 바를 빠르게 늘어놓았다.
전화상으로는 김치를 자신의 레토르트 식품에 접목시키자고 하던 그였다.
그런데 만나서는 또 다른 것을 제안했다.
“강 사장님, 떡볶이랑 어묵, 김치볶음밥, 된장찌개, 김치찌개, 만두까지. 전부 저랑 손잡고 즉석 식품으로 만들어 보면 어떻겠습니까?”
“……네?”
“오늘 강 사장님의 음식을 먹어보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정말 맛있더군요. 분식집 음식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만큼 최고였습니다.”
“감사해요. 근데…… 제 음식들을 즉석 식품으로 만드는 게 가능한가요?”
“레시피만 있다면 불가능할 것도 없지요.”
레시피라는 말에 강지한이 입을 다물었다.
공장에서 만든 김치를 납품하는 건 몰라도 레시피 자체를 건네는 건 생각해 봐야 할 일이었다.
강지한의 눈치를 살피던 신장호가 조심스레 물었다.
“역시 레시피를 공개하는 건 좀 꺼려지시는 모양이지요?”
“네. 쉬운 일이 아니네요.”
“물론 레시피는 외부에 절대 공개하지 않겠습니다. 불안하시다면 계약서상에 명시해 두지요. 아울러 레시피가 유출될 경우 그로 인한 불이익에 대해 충분한 변상 조건 또한 적어넣으면 어떨까요?”
그에 다시 곰곰이 생각하던 강지한이 음료수로 입을 축이고 말했다.
“사실 레시피도 레시피지만 너무 급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어요.”
“아……. 그게 본질적인 문제였군요.”
아직 두 사람 사이에는 이렇다 할 신뢰가 쌓이지 않은 상태였다.
물론 강지한은 신장호의 아들을 도와주었고, 신장호는 강지한을 도와주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둘 사이의 관계가 깊어진 건 아니었다.
사업은 투자 가치도 생각해야 하지만, 사업자간의 신뢰 또한 중요했다.
강지한은 신중히 한 발 한 발 내딛기로 했다.
“이건 어떨까요. 우선 김치 사업부터 접목해 보고, 잘된다면 그다음에 다른 사업들도 생각해 보는 걸로.”
신장호는 지저분하게 상황을 끌어가지 않고 깔끔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아무래도 제가 너무 성급했던 것 같네요. 그만큼 강 사장님의 요리가 맛있었다는 거지요! 하하하!”
“계속 금칠을 해주셔서 민망하네요.”
“있는 사실을 말하는 것도 금칠이랍니까? 아무튼 좋습니다. 사장님의 김치로 만들 수 있는 식품에 대해 얘기해 보지요.”
신장호가 제안한 건 김치찌개, 돼지목살김치찜, 김치볶음밥, 김치만두까지였다.
기존에 신장호의 회사에서 만들어 나가고 있는 제품에서 김치만 강지한의 것으로 바꾸자는 것이었다.
그리고 강지한에게 맛의 업그레이드를 위한 약간의 팁을 부탁했다.
강지한은 이 부분까지는 수락했다.
합의를 끝낸 두 사람은 계약서에 도장을 찍는 것으로 얘기를 마무리 지었다.
그렇게 김치 공장이 돌아가면 대량 납품을 해야 할 곳이 늘어나게 됐다.
* * *
퇴근 후, 강지한은 오늘 있었던 일을 조미옥에게 전했다.
조미옥은 엄청나게 큰 거래처가 생겼다는 것에 뛸 듯이 기뻐했다.
통화를 끝낸 뒤, 내일을 위해 일찍 눈을 붙이려 했다.
그런데 설탕이가 현관문을 박박 긁어 나가보니 오늘도 그 정체 모를 강아지가 와 있었다.
강지한은 캔사료에 건사료를 섞어서 물과 함께 내어주었다.
강아지는 사료와 물을 허겁지겁 비우고서는 다시 어두운 골목으로 모습을 감췄다.
어쩐지 강지한은 그 강아지와의 인연이 가볍게 끝나지 않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다시 집으로 돌아온 강지한은 잠이 달아나 버려 드러누운 채로 요리 관련 책자를 읽어나갔다.
한데 그때였다.
[서양 요리 장인 고(故) 제이미 램지의 지식이 충분한 경험치가 쌓여 레벨 업 합니다.]
[서양 요리 장인의 지식이 레벨 2가 되었습니다.]
[레벨 업으로 인해 전보다 더 많은 지식이 오픈됩니다.]
일본 요리 장인의 지식에 이어 서양 요리 장인의 지식도 2레벨이 되었다.
‘럭키.’
배틀 셰프를 앞두고 있는 밤에 행운이 따라주었다.
* * *
5월 27일, 일요일.
배틀 셰프 본선 4라운드가 시작됐다.
배틀 셰프 키친에는 전 라운드에서 살아남은 24명의 인원이 모여 있었다.
세 명의 심사위원은 늘 그렇듯 단상 위에서 지원자들을 내려다보는 중이었다.
본선 1라운드 때부터 지금껏 센터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한돈선이 입을 열었다.
“배틀 셰프 4라운드까지 무사히 올라오신 지원자 여러분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지지난주에 배틀 셰프 1화가 방송되고 지난주 2화가 방송되었죠. 그로 인해 지원자 여러분의 일상에도 변화가 있었다고 들었는데요. 그런가요?”
지원자들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서로 시선을 주고받았다.
전국적으로 방송을 탔는데 아무 일이 없는 게 더 이상할 판이다.
식당을 하고 있는 사람은 식당 매출이 늘었고 일상을 살고 있던 사람은 매일 똑같이 흘러가던 일상이 깨지고 새로운 일상이 시작됐다.
그들을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이 달라졌고, 생전 처음 보는 이들이 알은체를 해오기도 했다.
“표정만 봐도 대답을 들은 것 같군요. 그럼 바로 오늘의 베네핏 배틀을 공개하겠습니다.”
한돈선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최현식이 들고 있던 족자를 풀어 헤쳤다.
한돈선은 족자를 가리키며 미소 지었다.
“이번 베네핏 배틀은 바로 이것입니다.”
족자 안에 붓으로 써진 네 글자를 보는 지원자들이 동시에 탄성을 뱉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