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1
Restaurant 100. 빙산의 일각
뒤돌아선 강지한이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너 누구니?”
조금 떨어진 곳에 설탕이와 비슷한 덩치에 견종을 알기 힘든 강아지 한 마리가 서 있었다.
목줄이 있나 확인하니 목줄은 없었다.
본래는 하얀색이었을 털은 관리를 못해서 엉망으로 엉켜 먼지가 가득 묻어 회색으로 변해 있었다.
그런데 강아지를 가만히 살피고 있자니 녀석의 몸이 파르르 떨리는 게 보였다.
겁을 먹어서라기보다는 힘이 없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때, 설탕이가 갑자기 대문 안으로 들어갔다.
목줄을 잡고 있던 강지한은 그런 설탕이에게 끌려 함께 움직였다.
설탕이는 후다닥 달려 창고로 다가갔다. 그러니 앞발로 문을 박박 긁었다.
“열어 달라고?”
설탕이의 행동에 담긴 뜻이 강지한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둘 사이의 높은 교감도로 인해 가능한 일이었다.
강지한이 창고 문을 열어주니 안으로 훌쩍 뛰어 들어간 설탕이가 한쪽에 쌓여 있는 캔 사료 하나를 물고 나왔다.
그러고는 다시 대문 밖으로 향했다.
강지한도 설탕이의 뒤를 따라 움직였다.
설탕이는 캔 사료를 물고 천천히 정체 모를 강아지에게 다가갔다.
강아지는 흠칫하며 뒤로 물러나려다가 설탕이의 눈을 보더니 가만히 있었다.
설탕이가 캔 사료를 강아지 앞에 내려놓고는 강지한을 쳐다봤다.
“친구한테 캔 사료 주자고?”
설탕이가 꼬리를 흔들었다.
강지한이 조심조심 강아지 앞으로 다가갔다.
강아지는 그런 강지한을 크게 경계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딸칵.
캔 사료를 따서 안의 내용물을 꺼내주니 강아지는 헐레벌떡 그것을 전부 먹어치웠다.
아무래도 제법 굶은 모양이었다.
그것으로는 안 되겠기에 강지한이 사료와 물을 그릇에 담아서 내어주었다.
강아지는 사료까지 순식간에 먹고 물도 싹 비웠다.
그제야 기운이 도는지 강지한을 보고 슬슬 꼬리를 치기 시작했다.
그에 강지한이 손을 내밀었는데 다가오지는 않고 후다닥 그 자리를 떠나 버렸다.
설탕이는 멀어지는 강아지를 가만히 보다가 다시 대문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설탕아. 쟤 그냥 둬도 되겠어?”
왕!
그렇다는 것 같았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설탕이가 그래도 된다고 하니 마음이 편해지는 강지한이었다.
* * *
다음 날 밤.
좀체 어디를 먼저 나가자고 조르지 않던 설탕이는 강지한과 집에 돌아오자마자 현관문을 박박 긁었다.
그에 강지한이 설탕이에게 목줄을 걸고 나가보니 어제 봤던 그 강아지가 또 다가와 있었다.
“너 왔구나.”
강지한은 어제처럼 먹을 것과 물을 챙겨주었다.
강아지는 허겁지겁 이를 먹고 배를 채우더니 또다시 도망치듯 사라지고 말았다.
집으로 들어온 강지한이 설탕이의 발을 씻겨 주고서 머리를 살살 쓰다듬었다.
“우리 설탕이 친구 밥 챙겨주라고 그랬던 거구나.”
설탕이의 눈이 기분 좋은 호를 그리며 감겼다.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강지한의 따스한 온기는 설탕이의 마음을 항상 행복으로 가득 채워주곤 했다.
그때였다.
설탕이의 머리 위에 있는 하트에 붉은색이 가득 차올랐다.
다음 순간 붉은 색은 전부 사라지고 하트의 테두리가 확장되었다.
하트 안에는 13이라는 숫자가 14로 변했다.
한 번 더 레벨 업을 한 것이다.
[설탕이의 레벨이 14가 되었습니다.]
[교감도가 높아집니다.]
[명성이 올라갑니다. 레벨 업 현황을 확인하세요.]
<레벨 업 현황>
[강지한]
.
.
.
[설탕이 LV14]
지능+25
교감도+40
핥기, 손, 앉아, 엎드려, 하이파이브, 빵, 굴러, 점프, 노래: 행복+10
특수 능력: 물어오기 LV5(MAX), 명성: 76(전국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강아지)
“헐, 이 녀석 명성 봐라?”
강지한은 설탕이의 명성을 확인하고서 깜짝 놀랐다.
그 뒤의 부연 설명은 더더욱 놀라웠다.
무려 ‘전국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강아지’란다.
“널 담기엔 춘천이라는 무대는 너무 좁다는 거니? 크크.”
강지한이 설탕이를 마구 쓰다듬어 주었다.
그 손길이 마냥 좋은 설탕이가 뒤로 벌렁 뒤집어져 배를 보였다.
그 말랑말랑한 분홍빛 살이 못 견디도록 귀여웠던 강지한은 배에 입을 대고 푸우~ 불었다.
설탕이가 자지러지듯 좋아했다.
* * *
토요일.
배틀 셰프의 녹화를 하루 앞둔 날도 강지한은 여느 때와 같이 식당 오픈을 준비하고 있었다.
10시 20분.
여전히 칼같이 시간에 맞춰 이리나가 출근을 하며 홀의 분위기가 밝아졌다.
“좋은 아침이에요~!”
그녀가 출근하기 전까지는 주방에 강지한, 고중만, 용성우 남자 셋만 있어서 어쩐지 분위기가 조금 무거웠다.
사실 식당의 분위기는 오너의 분위기에 따라간다.
강지한이 조금 가볍고 수다스러운 사람이었다면 어땠을지 또 모르겠지만 그는 진중하고 말이 많지 않았다.
용성우 역시 필요 없는 말을 하는 타입은 아니었다.
고중만은 두 사람과 달리 엄청난 투 머치 토커였다.
하지만 굳이 누가 먼저 말을 걸지 않으면 입을 열지 않았다.
주제를 던져주는 순간 입에 모터를 다는 타입이었다.
오픈 준비를 할 때는 누구도 그에게 먼저 말을 걸지 않았기에 주방은 조용했다.
이리나는 홀을 정리하며 고중만과 잡담을 나누었다.
입이 심심하던 차였던지라 고중만은 신나게 떠들었다.
용성우도 가끔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렇게 소란스럽게 오픈 준비를 하던 와중 강지한의 스마트 폰이 울렸다.
전화를 건 사람은 신일중의 아빠 신장호였다.
“네, 사장님. 안녕하셨어요?”
강지한이 전화를 받자 신나게 떠들던 세 사람의 입이 딱 다물어졌다.
그들은 오너의 통화를 절대로 방해하지 않았다.
-강 사장님, 어떻게 사람은 잘 구해집니까?
김치 공장에서 근무할 사람들 얘기였다.
거기에 대해서는 어제 조미옥에게 연락을 받은 터였다.
조미옥은 생각했던 것보다 사람 모으기가 영 힘들다고 했다.
춘천에서 일하는 것이라면 모를까, 횡성까지 오가야 하니 그게 좀 걸리는 모양이었다.
강지한이 이에 대해 솔직히 털어놓았다.
그러자 신장호가 호탕하게 웃었다.
-하하하하! 그건 크게 걱정 않으셔도 됩니다. 강 사장님께서 허락만 해주신다면 내 쪽에서 사람을 구해보겠습니다.
신장호는 김치 공장만 10년 가까이 운영해 온 사람이다.
그러니 관련 업종에서 근무하던 사람들을 많이 알고 있었다.
공장 가동에 필요한 인원을 모집하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그래 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어요.”
-어려운 일도 아닌데요, 뭐. 부족한 인원이 얼마나 되는지 말씀해 주시면 이 달 말까지 배치해 놓지요!
“그게…… 한 스무 명은 필요할 것 같은데요.”
조미옥은 김치 공장에서 당장 함께 일할 인원이 서른은 있어야 한다고 했다.
기존에 거래하기로 한 고기집 말고 추가로 다섯 군데나 더 계약을 물어온 데다가 다음 주 부터 온라인쇼핑몰이 오픈하게 되면 필시 김치 소요량이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사람을 더 구해야 할지도 모르고 서른이 최소 인원이라고 그녀는 말했다.
그중 열은 본인이 구했는데 나머지 스물이 문제였다.
강지한은 너무 많은 근무자를 바라는 것 같아 미안했는데 신장호는 대수롭잖다는 듯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내 틀림없이 구해드리죠!
“제가 계속 사장님 덕을 보네요.”
-하하하! 덕이라고 할 것까지야 있겠습니까? 그건 그렇고 강 사장님, 지금은 식당 일만 주력하고 계시는 겁니까?
“네.”
-어디 레토르트 사업체 같은 곳에서 계약 제안 같은 게 오지는 않았고요?
“전혀요.”
요즘은 유명 식당의 간판이나 스타 셰프의 이름을 단 레토르트 식품들이 많이 만들어지고 있다.
팩에 담긴 찌개부터 편의점 도시락, 김치, 냉동 만두, 봉지라면, 컵라면 등등 그 종류도 다양했다.
때문에 신장호는 강지한 역시 그런 업체와 계약이 되어 있는 건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아직 강지한은 그런 제안을 한 번도 받지 못했다.
지한 분식은 이제야 슬슬 전국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시점이라 아직 그런 쪽에서의 러브콜은 없었다.
신장호는 됐다 싶었다.
그가 당장 본론을 꺼냈다.
-그럼 저랑 한 번 손을 잡아보시면 어떻겠습니까?
“네? 어떤…….”
-실은 강 사장님의 김치를 먹자마자 든 생각입니다. 이 김치를 제 레토르트 식품에 접목시켜 보면 좋겠다고 말이죠.
“제 김치가 어떤 식으로 도움이 될까요?”
-지금 우리 회사에서는 팩으로 나오는 김치찌개와 김치찜, 냉동 김치 볶음밥 등등의 식품을 만들고 있습니다. 현재로서도 성적이 나쁜 편은 아니지만 다른 대기업들의 판매고에 비하면 형편없는 수준이죠. 그렇다고 해도 적자를 보지는 않고 있습니다. 한데 이 세 가지 메뉴들을 강 사장님의 김치로 만든다면 어쩌면 혁신적인 변화가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품고 있지요.
그 말을 곰곰이 곱씹어 보던 강지한 조심스레 의견을 말했다.
“저한테는 좋은 제안이지만 과연 판매 단가가 이득을 창출할 수 있는 구조로 만들어질까요?”
강지한의 김치는 그렇게 싼 편이 아니다.
현재 판매가는 킬로당 8천 원.
대량으로 거래하는 고기집 같은 경우 킬로에 6천 원까지 잡아주고 있었다.
한데 그렇게 해서는 저렴한 레토르트 상품의 단가를 맞출 수가 없어진다.
강지한의 우려에 신장호는 막힘없이 해결책을 내놓았다.
-그 부분에 관련해서 말인데요. 현재 강사장님께서 거래하고 계신 곳보다 더욱 저렴한 가격으로 김치 제조에 필요한 모든 재료들을 거래할 수 있는 업체를 알고 있습니다. 제가 다리를 놔드리겠습니다. 우리나라 전국 어디를 찾아도 여기보다 싼 곳은 없다고 자신합니다. 게다가 대량 거래를 하게 될 테니 기본 단가가 훨씬 디스카운트될 겁니다. 하하하!
강지한이 그 말을 듣고 단가에 대해 물어보았다.
그러자 신장호의 입에서 여러 가지 정보들이 술술 흘러나왔다.
몇 가지 재료 단가만 들어도 지금 거래하는 곳보다 파격적으로 저렴했다.
강지한의 현재 김치 재료 거래처는 조미옥의 소개로 알게 된 곳이다.
한데 거기는 소규모인 반면, 신장호가 추천한 곳은 어마어마한 대규모 업체였다.
당연히 단가 자체가 다를 수밖에 없었다.
이야기를 듣는 강지한의 머릿속 계산기가 빠르게 두들겨졌다.
신장호의 말대로 한다면 기존 김치 판매 가격을 일반 소비자에게도 1킬로에 4,000원씩 판매가 가능할 터였다.
‘아니 3,500원까지도 가능해.’
그렇게 해도 충분히 이익이 남았다.
물론 많이 팔릴 경우의 이야기지만, 장사가 안 될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아울러 대량으로 거래를 하게 되면 킬로당 1,500원으로 납품해 줄 수도 있었다.
그만큼 신장호가 추천하는 업체는 대량 구매를 했을 때의 재료 단가가 상상을 초월할 만큼 저렴했다.
‘이래서 온라인 판매를 하는 김치들 가격이 10킬로에 2만 원 선까지도 떨어지는 거구나.’
강지한은 마치 다른 세상을 경험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제 제안이 어떻습니까?
“저한테는 상당히 매력적인 얘기네요.”
강지한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자 신장호의 마음이 급해졌다.
-그럼 오늘 당장 뵙고 상세히 대화를 나눠 보시는 게 어떨까요?
“아……. 제가 시간이 세시 반부터 한 시간밖에 나질 않아요. 그때가 지나면 밤 열시나 돼야 가능할 것 같은데. 괜찮으시겠어요?”
-저 지금 춘천입니다. 하하하!
“네?”
-볼일이 있어서 왔다가 겸사겸사 연락을 드린 겁니다. 마침 식사도 해야 하니 제가 분식집으로 찾아뵙겠습니다.
“그럼 식사하시고 남은 시간 기다리시기 힘들지 않을까요?”
-브레이크 타임 되기 전까지 저는 놀겠습니까? 말씀 드렸다시피 볼일이 있어서 왔으니 마음 안 쓰셔도 됩니다! 하하하. 아, 지한 분식 간판 보입니다!
신장호의 말과 함께 SUV 한 대가 식당 앞에 주차를 했다.
그리고 운전석에서 신장호가 내렸다.
* * *
오늘 지한 분식의 첫 손님은 신장호였다.
그는 홀에 들어서서 강지한과 인사를 나눈 뒤 제육덮밥, 떡볶이, 김치 만두를 주문했다.
이리나는 혼자 다 드실 수 있을지 걱정했지만 문제없었다.
신장호는 어마어마한 대식가였다.
음식이 서빙되기 전 신장호는 김치 한 그릇을 싹 비운 뒤 리필을 요청했다.
‘역시 이 맛이지. 음.’
그때 주문한 음식들이 테이블로 서빙되었다.
“맛있게 드세요~!”
“고마워요.”
신장호가 수저를 들었다.
‘어디 맛 좀 볼까.’
그는 강지한의 김치 맛만 인정하고 있는 거지, 다른 음식들의 수준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었다.
하지만 손님이 바글바글한 것으로 보아 제법 맛이 있을 것이란 기대가 들었다.
신장호가 우선 김치 만두 하나를 입에 넣고 씹어 삼켰다.
꿀꺽.
만두 하나를 넘긴 신장호가 그대로 굳어버렸다.
한참 동안 멍하니 있던 그가 이번에는 제육덮밥을 먹었다.
콰르릉!
머릿속에 벼락이 쳤다.
그의 손에 들린 수저가 바쁘게 움직이며 떡볶이를 찍어 입으로 전달했다.
꿀꺽!
우르릉 쾅쾅!
이번엔 지진이 나고 천둥 번개가 몰아쳤다.
신장호는 테이블 위에 놓인 음식들을 보며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대체 이 맛은.”
김치 맛은 빙산의 일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