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하는 식당-100화 (100/330)

# 100

Restaurant 99. 한 밤의 산책

지한 분식의 브레이크 타임.

이때가 예소린과 강지한에게는 골든 타임이었다.

예소린도 강지한도 장사를 하는 입장이라 그때가 아니면 서로 얼굴을 보기 힘들었다.

장사를 마치고 데이트하려고 해도 어쩌다 한 번이지 매일 그러기엔 무리가 있었다.

설탕이를 늘 이향숙에게 맡기는 것이 강지한의 입장에서는 미안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짧게 잠깐 볼 수 있는 이 시간 동안 두 사람은 서로를 애틋하게 대했다.

그러한 모습이 카페의 손님들에 눈에도 들어왔다.

“근데 언니, 분식집 오빠랑 연애해요?”

이제 막 학생 티를 벗은 스무 살의 여자 손님이 물었다.

강지한이 살짝 당황한 것과 달리 예소린은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우리 연애해요. 잘 어울리죠?”

말을 하며 강지한에게 살짝 팔짱을 껴 보이는 예소린.

순간 카페 안 손님들이 벙 쪄서 두 사람을 바라봤다. 침묵은 잠시. 곧 환호와 함께 박수가 터져 나왔다.

“와~ 축하해요!”

“선남선녀네요.”

“감사해요, 여러분.”

예소린은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그에 화답하며 이 상황을 즐겼다.

정말이지 보면 볼수록 매력적인 여자라고 강지한은 생각했다.

한데 모든 손님들이 두 사람을 축하해 주는 건 아니었다.

일부 몇몇의 남녀는 질투에 사로잡혔다.

‘분식집 사장님이…… 그렇게 잘생긴 얼굴은 아닌데. 그냥 훈남 정도지. 아이 씨. 내가 먼저 말이라고 걸어볼걸. 카페 사장님이 아깝다.’

‘분식집 오빠 내가 침 발라놨었는데. 카페 언니 너무해.’

질투를 보내는 이들의 시선은 노골적이었으나 강지한과 예소린은 이를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들의 관심은 소금이를 지키고 선 설탕이에게 온통 쏠려 있었다.

그에 다른 손님들의 시선도 절로 두 강아지에게 향했다.

설탕이는 소금이를 등지고 서서 주변으로 다가오는 다른 강아지들을 올망졸망한 눈으로 바라봤다.

딱히 위협을 한다든가 날카롭게 날을 세우지는 않았다.

오히려 꼬리 치며 헥헥 대는 것이 다른 강아지들을 반기는 눈치였다.

하지만 강아지들은 적당한 선을 지키고서 더는 다가가지 않았다.

꿀꺽!

소금이가 고구마 볼을 다 삼키고 나서야 설탕이는 자리에서 엉덩이를 떼고 다른 강아지들에게 달려들었다.

강아지들이 그런 설탕이와 함께 이리저리 뒤엉키며 즐겁게 놀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소금이도 무리에 끼어들었다.

“이제 가봐야겠네요.”

설탕이와 다른 강아지들을 지켜보던 강지한이 문득 시간을 살피고서는 아쉬운 말을 뱉었다.

예소린과 함께 있는 시간은 한 시간이 1초처럼 흐르는 것 같았다.

“그래요. 남은 시간도 파이팅.”

예소린이 미소로 강지한을 배웅했다.

* * *

하루 일과를 마친 강지한이 설탕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밤 10시 반.

이제 30분 후면 INTV에서 새로 선보이는 드라마 ‘분식집 막내아들’이 방영된다.

“얼른 씻고 드라마를 감상할 만반의 채비를 갖춰볼까, 설탕아?”

왕!

강지한은 드라마를 챙겨보는 타입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분식집 막내아들은 첫 방영 시간까지 체크해 놓고 일주일 전부터 기다리고 있었다.

이유는 하나.

드라마의 주연이 강지한도 아는 사람이기 때문.

‘좌경우.’

처음엔 그가 누군지 몰랐다.

얼굴도 알지 못했다.

그저 강지한의 분식집에 나흘 정도를 출근 도장 찍듯 오가는 바람에 얼굴을 익혔을 뿐이다.

그는 나흘 동안 점심, 저녁마다 와서 메뉴를 두세 가지씩 주문해서 지한 분식의 모든 메뉴를 전부 맛보고 갔다.

이후로는 통 보이지를 않기에 그런가 보다 했는데 얼마 후, 텔레비전에서 그를 볼 수 있었다.

연예계 화제의 일들을 알려주는 프로그램이었다.

좌경우는 거기에 나와 분식집 막내아들의 주연이 되었음을 알리며, 강지한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건넸다.

물론 그의 이름을 콕 짚어 얘기한 건 아니었으나 강지한은 알 수 있었다.

해서 그는 분식집 막내아들을 본방 사수 하기로 마음먹었다.

조금 조사해 보니 드라마 감독 역시 손만 대면 대히트가 터지는 대단한 사람이었다.

필시 재미있을 것이라는 예감이 강하게 왔다.

강지한은 밖에서 사온 맥주 두 캔을 냉장고에 넣어놓고 빠르게 샤워를 마쳤다.

그러는 사이 벌써 15분이 지났다.

이제 드라마 시작까지 남은 시간은 15분.

‘맥주 안주를 만들어야 하는데.’

남은 시간이 많지 않아 간단한 것으로 만들어야 했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얼마 전 사놓은 맛살이 제법 남아 있었다.

“좋은 게 있었네.”

강지한의 머릿속에서 아주 간단한 안주의 레시피가 떠올랐다.

그가 맛살을 잘게 찢어 볼에 담은 뒤, 버터 한 스푼을 전자레인지에 녹여서 뿌렸다.

거기에 레몬즙과 올리브유 약간, 후추를 더해 잘 섞어주었다.

그것으로 끝.

간단하고 훌륭한 맥주 안주가 완성됐다.

이건 강지한이 양식 지식들을 공부하며 스스로 만들어 낸 음식이라 딱히 이름 같은 게 없었다.

편한 대로 맛살 샐러드라고 불렀다.

한데 맛살 샐러드 하나만으로는 식감이 좀 심심할 터였다.

남은 시간은 10분.

강지한이 얼른 식용유를 프라이팬에 넉넉히 붓고 열을 가했다.

기름이 적당한 온도로 끓어오르기를 기다리며 마늘 다섯 쪽을 편 썰었다.

그것을 파스타 면 조금과 함께 달궈진 기름에 넣어 튀겼다.

그리고 약간의 시간이 흐른 뒤, 파스타 면과 편 썬 마늘을 채에 걸러 기름종이 위에 놓았다.

마늘은 따로 작은 종지에 담았다.

파스타면은 긴 접시에 담아 설탕을 조금 뿌렸다.

“끝.”

강지한이 완성된 안주 세 개를 상으로 나른 뒤 냉장고에서 맥주 한 캔을 꺼내왔다.

이제 곧 분식집 막내아들이 시작할 시간이다.

캔맥주 뚜껑을 딴 강지한이 크게 몇 모금을 들이켰다.

“꿀꺽! 꿀꺽! 꿀꺽! 크으.”

시원하고 톡 쏘는 맥주가 식도를 간질이며 넘어가는 느낌은 청량함의 극치였다.

술을 마셨으니 안주도 먹어야 하는 법.

강지한이 잘 튀겨진 파스타 면 하나를 집었다.

그는 이것을 개인적으로 파스타 과자라고 부른다.

오독오독 하며 씹히는 식감이 튀긴 과자 같았기 때문이다.

강지한의 입안으로 파스타 과자 하나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파스타 면에 가득 배어 있는 마늘 향과 설탕의 달콤함이 코와 입을 즐겁게 해주었다.

바삭한 마늘 프레이크 역시 별미였다.

그리고 맛살 샐러드는 상당히 이국적인 맛이 특징이었다.

조금 오버하자면 마치 맛살로 만든 파스타를 먹는 것 같은 기분까지 들 정도였다.

강지한이 세 가지 안주를 한 번씩 맛보았을 때, 분식집 막내아들의 첫 화가 시작됐다.

“한다.”

강지한의 말에 설탕이가 그의 무릎 위로 뛰어들어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러고서는 텔레비전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한 명의 사람과 한 마리의 강아지는 서로 살을 붙이고 앉아 드라마를 감상했다.

* * *

분식집 막내아들이 방영된 다음 날.

포털 사이트의 검색어엔 분식집 막내아들과 관련된 검색어들이 상위에 랭크되어 있었다.

좌경우의 이름 역시 2위에 걸려 있었다.

한데 이상한 건 7위의 검색어가 지한 분식이라는 것이었다.

그 연유는 이러했다.

분식집 막내아들의 시청률이 첫 화부터 17퍼센트로 대박을 터뜨리며 좌경우라는 배우가 재조명되기 시작했다.

영상 안에서 보이는 그의 연기가 워낙 특출했기 때문이다.

음식을 먹는 표정이나 작은 행동 하나하나에서 전해지는 맛의 전달력이 어마어마했다.

첫 방송이 끝난 다음 이토록 풍부한 감정선을 가진 배우라는 걸 왜 몰랐는지에 대한 누리꾼들의 호평과 기사들이 쏟아져 나왔을 정도였다.

그러면서 그와 관련된 과거 영상들 또한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는데, 그중 한 인터뷰 영상이 화제가 됐다.

내용은 이번 드라마에 주연을 맡는데 큰 도움을 준 춘천의 어느 분식집 사장님께 감사드린다는 것이었는데 이를 본 네티즌들 중 몇몇이 좌경우를 지한 분식에서 봤다는 증언을 댓글로 올렸다.

당시에는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분명 좌경우였다는 것.

이런 증언들은 한두 개가 아니었다.

그 바람에 지한 분식 역시 여러 포털 사이트의 인기 검색어에 이름이 걸린 것이다.

최지민은 출근을 하며 인기검색어를 확인하고 한숨을 푹 쉬었다.

“오늘도 난리나겠네.”

* * *

최지민의 예상대로였다.

하여튼 인터넷에서 지한 분식 이름이 오른 날은 손님들이 평소 보다 1.5배나 늘어났다.

오늘은 더했다.

식당 문을 닫을 때까지 몰려드는 손님들을 겨우겨우 받고 난 뒤 지한 분식 식구들은 녹초가 됐다.

“아이고, 힘들다!”

고중만이 허리를 두들겼다.

용성우가 모자를 벗어 흘러내리는 땀을 닦았다.

평소 아무리 힘들어도 늘 밝은 표정을 짓던 이리나마저 오늘은 고된 얼굴이었다.

최지민과 이주희가 평소 퇴근 시간 보다 한 시간을 더 남아 도와주었음에도 이리나는 힘에 부칠 지경이었다.

“어이, 강 사장. 이거 2호점을 내야 하는 거 아니야? 본점 하나만으로는 이제 감당이 안 되겠는데?”

“2호점은 아직 낼 생각이 없어요.”

“그럼 계속 이 많은 손님들을 12테이블로 받자고?”

“아뇨. 다른 계획을 세워놨어요. 일단 배틀 셰프가 끝나면 바로 실행에 옮기려고 합니다.”

“다른 계획? 그게 뭔데?”

“처음에 리어카에서 시작해서 분식집을 차렸으니 다음은 식당으로 가야죠.”

“식당? 분식집을 식당으로 바꾸겠다고?”

“아뇨. 여긴 놔둘 겁니다. 성우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저는 식당을 차릴 거예요.”

식당에서는 분식집 메뉴를 과감하게 없애고 일반 식사 메뉴들을 만들어 선보일 생각이었다.

각종 찌개와 덮밥, 볶음밥, 탕, 국, 전골 등의 음식들로 승부를 던질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강지한의 발언에 용성우와 이리나가 크게 놀랐다.

“제, 제가 분식집을 맡아야 한단 말입니까?”

“내가 나가면 너 말고 누가 있어? 자신 없어?”

용성우가 눈을 부릅뜨고 고개를 저었다.

“자신 있습니다!”

“중만 아저씨도 잘할 수 있죠?”

“막내 새로 뽑아주면 잘할 수 있지!”

“그건 걱정 마세요. 리나도 성우 잘 도와줘야 돼.”

“에이, 그건 당연하죠. 근데 되게 갑작스럽네요.”

“말을 꺼낸 타이밍이 갑작스럽긴 한데 아직 배틀 셰프 촬영 끝나려면 멀었으니까 너무 겁먹지 마.”

분식집은 이미 궤도에 올려놓았다.

이제 강지한은 새로운 도전을 하며 요리의 영역을 차츰차츰 늘려 나가고 싶었다.

그 원대한 꿈의 시작이 바로 ‘지한 식당’이었다.

* * *

동료들에게 충격 발언을 하고 집으로 돌아온 강지한은 일찍이 자리에 누웠으나 도통 잠이 오지 않았다.

막상 가슴에 담고 있던 얘기를 내놓고 보니 이런저런 생각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휴.”

결국 한숨과 함께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는 가벼운 추리닝을 몸에 걸치고서 설탕이에게 물었다.

“설탕아, 우리 산책하고 올까?”

왕! 헥헥헥!

설탕이가 벌떡 일어나 꼬리를 흔들었다.

강지한은 녀석에게 목줄을 채운 뒤 함께 산책을 나섰다.

원체 인적이 드문 동네는 밤이 내리자 더더욱 고요해졌다.

가끔 여기저기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빼면 적막 속에 바람 소리만 귀를 간질였다.

“밤바람 참 좋다.”

5월의 부드러운 밤바람을 만끽하며 천천히 골목을 거니는 강지한과 설탕이.

그런데,

헥헥헥!

설탕이가 갑자기 멈춰 서서 골목 어귀 어딘가를 바라보았다.

그에 강지한이 설탕이의 시선을 따라 골목을 살폈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왜 그래 설탕아? 쥐라도 봤어? 가자.”

대수롭잖게 여긴 강지한이 다시 설탕이와 걸음을 옮겼다.

‘그나저나 오늘은 원체 바빠서 간식도 못 만들었네.’

어제처럼 캐롭 고구마 볼을 만들어 카페에 풀었으면 건강 수치를 많이 얻을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

결국 직원들의 밥만 차려주고 5포인트를 더 얻어 총 42포인트를 적립했다.

38포인트만 더 모으면 퀘스트는 클리어할 수 있었다.

‘그럼 내일도 간식을 만들어서…….’

강지한이 한참 퀘스트 생각에 빠져 있을 때,

멈칫!

설탕이가 또 멈춰 서더니 이번엔 뒤쪽을 바라봤다.

“응?”

강지한도 덩달아 뒤를 돌아보았지만 아무도 없었다.

“또 쥐? 길냥이?”

최대한 깊이 생각 안 하려 했는데 이후에도 설탕이는 몇 번이나 걸음을 멈췄다.

가뜩이나 조용한 동네에 달도 어두운데 이런 상황이 반복되니 슬슬 등골이 오싹해졌다.

결국 찝찝한 마음이 들어 대충 산책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산책을 나설 때 느긋한 걸음과는 달리 잰걸음으로 집까지 도착한 강지한이 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려 할 때였다.

휙!

설탕이가 갑자기 뒤돌아서서 무언가를 쳐다봤다.

이번엔 강지한도 기척을 느끼고 급하게 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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