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하는 식당-99화 (99/330)

# 99

Restaurant 98. 캐롭 고구마 볼

강지한이 돌아온 건 점심 피크 시간이 거의 끝나갈 즈음이었다.

몰아치는 손님들로 정신없이 요리를 하던 용성우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고생했어, 성우야.”

강지한이 앞치마와 장화, 모자를 쓰고 주방으로 들어가 메인 자리를 꿰찼다.

그제야 용성우가 크게 한숨을 돌렸다.

“주, 죽는 줄 알았습니다!”

“실수 없었고?”

“다행히도 없었습니다! 헤헤.”

고중만이 용성우를 추켜세웠다.

“성우 잘하던데? 이제 강 사장 무슨 일 있을 땐 믿고 맡겨도 되겠어! 하하하.”

강지한이 대견하다는 시선으로 성우를 바라보며 그의 어깨를 토닥여 줬다.

그게 용성우에게는 훈장이나 다름없었다.

주방의 주인이 제자리에 서고 나니 식당 전체에 안정감이 확 돌았다.

홀에서 서빙을 하던 이리나와 최지민, 이주희도 전보다 마음이 편해졌다.

새삼 강지한의 존재감이 얼마나 거대한지 모두 느끼게 되는 순간이었다.

들어온 주문을 확인한 강지한이 허공을 흘끗 바라봤다.

[퀘스트-건강 수치 9/80]

건강 수치는 횡성에 다녀오며 1이 늘었다.

강지한의 김밥을 먹은 조미옥에게서 얻은 것이었다.

퀘스트 메시지에서 시선을 뗀 강지한은 본격적으로 요리에 들었다.

가장 먼저 만들어야 하는 것은 제육덮밥 2인분.

웍을 충분히 달군 후 앞다리 살을 크게 두 주먹 집어넣고 맛술을 살짝 둘러 볶다가 설탕을 두 스푼 넣었다. 그리고 웍질을 하자 볶아지는 고기에 불이 옮겨 붙으며 불향이 입혀졌다.

거기에 비법 양념을 적당량 넣어 다시 웍을 현란하게 흔들었다.

양념이 적당히 고기에 스며들었을 때, 제육볶음 전용 야채통에서 야채를 두 주먹 집어넣었다.

야채통엔 양파, 파, 당근, 풋고추, 양배추가 먹기 좋게 썰어져 담겨 있었다.

강렬한 불 위에서 웍이 춤을 추며 안의 재료들이 하늘 높이 떠올랐다가 고스란히 웍 안으로 촤라락! 들어오기를 반복했다.

이렇게 웍질을 해주면 밑에 있는 재료들과 위에 있는 재료들이 계속 뒤섞이며 고루고루 익는다. 어느 건 타고, 어느 건 덜 익고 하는 경우가 없게 되는 것.

꾸덕꾸덕 하던 제육볶음 양념이 흘러나온 채수로 부드럽게 풀리며 윤기가 좌르르 흘렀다.

강지한이 불을 끄자마자 용성우가 밥이 담긴 접시 두 개를 내밀었다.

강지한이 접시 위에 제육볶음을 알맞게 분배했다.

용성우는 그 위에 깨를 뿌려 오더 테이블로 내놨다.

그러자 번개같이 다가온 이리나가 그것을 쟁반에 담으며 용성우에게 찡긋 윙크를 건넸다.

그에 용성우의 심장이 쿵! 하고 울렸다.

“제육덮밥 나왔습니다~”

음식을 서빙하는 이리나의 뒷모습을 보는 용성우의 뺨이 붉어졌다.

비록 큰 의미 없는 장난이었으나 예전엔 이런 장난을 치지 않는 이리나였다.

용성우가 기합이 잔뜩 들어가서 더욱 열심히 움직였다.

고중만은 그 모습을 보며 킥킥 웃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김밥을 마는 손은 멈추지를 않았다.

모든 직원들이 강지한의 수족처럼 원활하게 움직이며 최고의 팀워크를 보여주고 있었다.

세상 어디를 가도 이보다 더 잘 맞는 사람들은 없을 것이라 강지한은 생각했다.

* * *

브레이크 타임.

강지한은 직원들의 음식을 준비하면서 한쪽에다가는 고구마를 쪘다.

오늘 메뉴는 제철 나물과 봄 새싹에 보리밥과 참기름, 우렁된장을 넣고 비빈 비빔밥이었다.

곁들여 먹을 수 있게 우렁된장찌개도 만들었다.

애호박과 두부를 큼직하게 썰어 씹는 맛이 좋게 했다.

식사 준비를 하며 10분이 지났다.

그 시점에서 강지한은 고구마가 쪄지고 있는 화구의 화력을 중불로 줄였다.

완성된 식사 메뉴를 본 직원들의 입에 군침이 마구 돌았다.

비빔밥은 각자 작은 양푼에 담겨 나왔다.

음식은 어떤 식기에 담느냐에 따라 더욱 맛깔나게 변한다.

비빔밥에는 역시 양푼이만 한 것이 없었다.

슥슥.

직원들이 열심히 비빔밥을 비볐다.

재료가 섞이면서 산뜻한 봄나물 향기와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솔솔 올라와 후각을 자극했다.

그럴수록 비빔밥을 비비는 손놀림이 급해졌다.

맛있게 비벼진 비빔밥이 지한 분식 가족들의 입으로 들어갔다.

“으음~”

“와우.”

사람들에게서 저마다의 감탄이 터져 나왔다.

파릇파릇 싱싱한 봄나물의 향이 참기름과 섞이며 확 퍼져 나가는 동시에 된장 옷을 입은 보리밥이 톡톡 터지며 만족스런 식감을 안겨주었다.

그러다 저도 모르게 씹히는 쫄깃한 우렁이는 끝내주는 별미였다.

한데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호로록. 캬아, 죽인다!”

우렁된장찌개를 맛본 고중만이 눈을 질끈 감고 소리쳤다.

비빔밥과 된장찌개의 조합은 기가 막혔다.

둘 다 된장이 들어간 음식이라 과연 어울릴까 싶었는데, 비빔밥의 된장은 맛 자체가 강하지 않아 다른 재료들의 풍미가 더욱 살아서 찌개와 환상의 궁합을 자랑했다.

직원들의 반응에 강지한의 기분이 좋아졌다.

자신이 만든 음식을 누군가가 맛있게 먹어준다는 건 매번 겪어도 항상 새로운 즐거움을 안겨주곤 했다.

“잘 먹었습니다.”

오늘 따라 급하게 식사를 끝낸 강지한이 벌떡 일어나 주방으로 향했다.

“강 사장! 그리 먹다 체해!”

평소 밥 빨리 먹기로 유명한 고중만이 아직 그릇을 반도 비우지 못한 상황이었다.

“괜찮아요. 애초에 밥을 조금만 펐어요. 그렇게 급하게 먹은 거 아니에요.”

“아, 그랬어? 그럼 뭐.”

고중만과 다른 식구들이 마저 식사를 하는 사이 강지한은 냄비 안 고구마를 젓가락으로 쿡 찔러보았다.

젓가락이 부드럽게 들어갔다.

집에서였다면 더 오랜 시간 삶아야 했겠지만 분식집 가스의 화력이 일반 가정집보다는 강한 편이라 20분 정도 삶는 것으로 충분했다.

강지한은 고구마를 꺼내 껍질을 벗기고 큰 양푼에 담아 으깨 한 덩어리로 만들었다.

그것을 다시 동그랗게 빚어 수십 개의 작은 구슬로 만든 뒤 집에서 챙겨온 캐롭 가루를 꺼냈다.

캐롭은 메뚜기 콩이라는 콩과의 식물로 그 알맹이의 모양과 색이 마치 로스팅한 커피콩과 비슷하다.

과육 자체에 단맛이 있고 맛과 향이 초콜릿이나 코코아와 비슷해서 대체 식품으로 이용되곤 한다.

강지한은 오늘 코코아 가루 대용으로 이 캐롭 가루를 가져왔다.

그것을 물기가 없는 쟁반에 뿌렸다. 그리고 그 위에 고구마 볼을 살살 굴려 캐롭 가루옷을 입혔다.

그렇게 캐롭 고구마 볼이 완성되었다.

사실 마냥 맛있게 먹으려면 으깬 고구마에 설탕이나 버터를 섞고 캐롭 가루 대신 코코아 가루를 사용하는 게 더 좋다.

하지만 오늘 그가 만든 간식의 주제는 ‘사람과 강아지가 함께 먹을 수 있는 것’이었다.

캐롭은 코코아나 초콜릿과는 달리 강아지에게 전혀 해가 되지 않았다.

강지한은 완성된 캐롭 고구마 볼을 직원들에게 두 개씩 나눠주고 나머지는 통에 담아 챙겼다.

“저 애견 카페 좀 다녀올게요.”

그리 말하며 바쁘게 식당을 나서는 강지한의 뒤로 고중만의 휘파람 소리가 들려왔다.

휘이익!

“아주 뜨겁구만! 으하하하!”

최지민은 그러거나 말거나 관심 없었고 이주희는 ‘낭만적이다~’라고 읊조렸다.

용성우는 저도 모르게 이리나의 눈치를 살폈다.

그런데 씁쓸해할 줄 알았던 그녀가 의외로 태연하게 밥만 먹고 있었다.

전처럼 강지한을 크게 신경 쓰는 것 같지는 않았다.

‘다행이다.’

그녀의 마음이 더 이상 다치는 일이 없기를 바라는 용성우였다.

* * *

강지한이 애견 카페에 들어서자마자 난리가 났다.

“설탕이 주인아저씨다!”

“배틀 셰프 잘 보고 있어요!”

“저번 화에서 너무 멋졌어요. 주방에만 있을 때는 몰랐는데 패션 센스가 어쩜 그리 좋아요?”

“저 향스리닷컴에서 오빠 봤어요. 쇼핑몰 피팅 모델도 하세요?”

여기저기서 강지한을 알아보는 사람들이 인사를 건네왔다.

이제 강지한은 명실상부 석사동의 스타가 되어 있었다.

인사를 건네는 사람들 한 명 한 명에게 화답하는 강지한을 향해 춘천의 스타 설탕이가 달려왔다.

왕!

강지한이 인사를 하다 말고 설탕이를 보며 말했다.

“살금살금!”

살금살금은 아직 집에서만 했지, 다른 사람을 앞에서는 한 번도 선보인 적이 없었다.

헥헥거리며 달려오던 설탕이가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그러고는 엉덩이를 흔들며 엉금엉금 기어왔다.

그 모습을 보는 사람들의 눈이 하트가 됐다.

다들 스마트폰을 들어 설탕이를 녹화하느라 바빴다.

몇몇 여인들은 비명까지 질러댔다.

“얘는 진짜 귀여우려고 태어난 것 같아.”

누군가가 그리 말했고, 다들 그 말에 동의했다.

“잘했어!”

강지한이 칭찬을 해주자마자 설탕이가 벌떡 일어나 그의 품에 냅다 안겨들었다.

그러고는 뺨을 마구 핥으며 애정표현을 했다.

헥헥헥헥!

한데.

“킁킁. 설탕아, 너 분유 먹었니?”

설탕이 입에서 애기들한테서나 맡아지는 고소한 분유 냄새가 풍겼다.

그에 대한 대답은 옆에서 들려왔다.

“개껌이요. 설탕이가 먹은 건 아니고, 조금씩 뜯어서 질겅질겁 씹더니 자기보다 어린 애기들 주더라고요.”

반가운 목소리에 강지한이 벌떡 일어났다.

“소린 씨.”

“어떻게 나보다 설탕이 먼저 찾아요?”

“아하하. 죄송해요.”

“괜찮아요. 설탕이는 인정. 어떻게 이겨요, 저 귀여운 아이를.”

예소린이 애정 가득한 눈으로 설탕이를 바라보고서는 강지한이 들고 있던 통을 가리켰다.

“그건 뭐예요?”

“아 이거요.”

강지한이 말을 하려던 그때, 메시지가 주르륵 올라왔다.

[강지한의 음식을 먹은 용성우는 변비 기운이 있습니다.]

[된장의 풍부한 섬유질이 변비 해소에 미약한 도움을 줍니다. 건강 수치를 1 얻었습니다.]

[강지한의 음식을 먹은 고중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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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스트-건강 수치 14/80]

강지한의 음식을 먹은 지한 분식 식구 다섯 명에게서 모두 건강 수치를 1씩 획득했다. 그런데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강지한의 음식을 먹은 용성우는 변비 기운이 있습니다.]

[고구마의 풍부한 섬유질이 변비 해소에 미약한 도움을 줍니다. 건강 수치를 1 얻었습니다.]

[강지한의 음식을 먹은 고중만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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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스트-건강 수치 19/80]

다시 건강 수치가 5나 올랐다.

강지한이 만든 캐롭 고구마 볼의 효과였다.

강지한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이 효과를 얻기 위해서 ‘강아지와 사람이 같이 먹을 수 있는 간식’을 만든 것이다.

강지한이 통을 예소린에게 내밀며 말했다.

“간식 좀 만들어 와봤어요.”

“와~ 무슨 간식일까?”

예소린이 통의 뚜껑을 열어 내용물을 확인하고서는 손뼉을 짝! 쳤다.

“초콜릿이에요?”

“아뇨. 고구마 볼인데, 캐롭 가루를 묻힌 거예요.”

캐롭 가루라는 말을 듣자마자 예소린은 바로 간식의 정체를 파악했다.

“어머나, 강아지 간식 만들어 오신 거예요?”

“정확히 말하자면 사람이랑 같이 먹을 수 있는 간식이죠.”

그 말을 듣자마자 예소린이 고구마 볼 하나를 입에 넣었다.

그러자 캐롭의 달짝지근한 맛과 향이 확 퍼졌다. 마치 코코아가루를 먹는 것 같았다. 다음으로는 부드러운 고구마가 씹히며 입안에서 사르르 녹아 풀어졌다.

자극적인 맛이 없이 담백하고 부담 없는 것이 한없이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거 진짜 괜찮다.”

예소린이 감탄을 하자마자 메시지가 나타났다.

[강지한의 음식을 먹은 예소린은 피로한 상태입니다.]

[고구마의 칼륨, 칼슘, 미네랄, 비타민C, 베타카로틴 등등의 영양소가 피로감을 회복하는 데 미미한 도움을 줍니다. 건강 수치를 1얻었습니다.]

[퀘스트-건강 수치 20/80]

예소린의 반응에 카페 안 손님들이 너도나도 다가왔다.

“저도 몇 개 주시겠어요?”

“저도요.”

“맛있겠다.”

강지한은 손님들에게 고구마 볼을 두세 개씩 나눠주었다.

손님들은 본인이 먹기도 하고 강아지에게 그것을 먹이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 강지한의 눈앞에는 퀘스트와 관련된 메시지가 주르륵 떠오르기 시작했다.

‘역시 우리 매장 손님이 아니라면 상관 없는 거였어.’

강지한이 운영하거나 파생시킨 매장의 손님이 아닌, 다른 매장의 손님들에게는 건강 수치가 적용됐다

결국 건강 수치는 카페에 있던 17명의 손님 수만큼 더 차올라 37이 되었다.

고구마 볼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강지한이 미리 챙겨 놓은 마지막 고구마 볼은 설탕이의 입으로 쏙 들어갔다.

그런데.

끼잉…….

구석에서 다른 강아지들의 눈치만 보고 있다가 간식을 하나도 먹기 못한 소금이가 우는 소리를 냈다.

소금이는 덩치만 컸지 겁이 너무 많아 늘 다른 강아지들과 경쟁에서 밀리고 말았다.

이를 본 설탕이가 고구마 볼을 씹으려다가 말더니 소금이에게 다가갔다.

그러고는 입에 있던 고구마 볼을 소금이 앞에 툭 뱉어 놓고는 휙 돌아서 그 앞을 지키고 앉았다.

마치 소금이를 지켜주기라도 하려는 것 같았다.

그에 고구마 볼을 뺏어 먹으려고 다가오던 다른 강아지들이 우뚝 멈췄다.

비로소 소금이는 설탕이의 등을 보며 맘 편안히 고구마 볼을 맛볼 수 있었다.

참 작은 등이었지만 지금 이 순간 소금이에게는 태산보다 거대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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