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하는 식당-96화 (96/330)

# 96

Restaurant 95. 김치 공장

신일중의 메시지를 강지한이 몇 번이고 곱씹었다.

‘아버지가 김치 공장을 운영하신다고?’

그럴 줄이라고는 생각도 못했었다.

강지한이 바로 신일중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지한 씨.

스마트폰 너머로 들려오는 신일중의 목소리는 촬영장에서보다 더욱 안정되어 있었다. 말을 더듬는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일중 씨, 잘 지내셨죠?”

-촬영 끝나고 이틀밖에 안 지났는데요. 잘 지냈죠.

“저…… 아버님께서 정말 김치 공장을 소유하고 계신가요?”

-네. 처음엔 한 개로 시작해서 사업이 잘되는 바람에 지금은 세 개로 늘어났어요.

“김치 사업을 하시나 봐요.”

-김치 사업은 초반에만 하다가 어느 정도 벌이가 되기에 공장을 세 개로 늘렸는데 그때부터 일이 안 풀렸어요. 그래서 레토르트 식품(retort food:즉석식품)으로 방향을 전환했는데 그게 잘된 거예요. 김치 공장은 대여해 주면 그대로 돈이 들어오니까 개조하거나 팔지 않고 계속 놓아두고 있는 거예요.

이것 역시 의외의 얘기였다.

궁금증이 동한 강지한이 넌지시 물었다.

“그렇군요. 한데 즉석식품이라면 주로 어떤 걸 주력으로 파시나요?”

-주로 냉동볶음밥이랑 팩에 담긴 찌개류를 팔아요. 근데 일반 슈퍼나 편의점 같은 데서는 찾기 힘들고 주로 대형마트나 가야 볼 수 있을 거예요.

“와, 대단하시네요. 레시피는 전문가를 고용해서 연구하는 식인가요?”

-아버지가 직접 하세요. 요리에 제법 일가견이 있으시거든요. 몇 년 전부터는 저도 함께 도와드리고 있어요.

신일중이 그렇게 덜덜 떨면서도 3라운드까지 진출한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신일중의 집안 자체가 요리로 일어선 집안이었던 것이다.

“멋지시네요. 다른 세상 이야기를 듣는 것 같아요.”

-저한테는 지한 씨가 다른 세상에서 사는 사람 같은걸요. 흐흣.

신일중이 처음으로 웃었다.

웃음소리가 참 특이하다고 강지한은 생각했다.

“아무튼…… 김치 공장 하나가 이번 달에 계약 종료된다고 하셨죠?”

-네. 후속으로 계약할 업체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어요.

“계약 조건이 어떻게 되죠?”

-기본 2년으로 해서 보증금 3천에 월 6백 받고 있는데, 지한 씨가 들어오신다고 하면 아버지한테 잘 얘기해서 보증금 2천 5백에 월 450까지 만들어볼게요.

보증금은 어차피 나중에 다시 돌려받을 돈이니 그대로 둬도 상관없었다.

그런데 월세를 150이나 깎아준다는 건 정말 파격적인 일이었다.

“정말 그렇게 가능할까요?”

-우리 아버지 제 말은 정말 잘 들어주시거든요. 제가 삼대독자라.

“그렇군요. 아, 김치 공장 위치는 어떻게 되죠?”

-횡성 쪽에 있어요.

횡성이라면 춘천에서 차로 한 시간도 걸리지 않는 거리였다.

위치도 아주 좋았다.

“딱이네요.”

-그럼 생각 있으신 거죠?

“그럼요. 연결만 해주시면 정말 감사하죠.”

-알겠어요. 제가 말씀 드려보고 오늘 내일 중으로 다시 연락드릴게요.

“네. 고마워요, 일중 씨.”

-고맙긴요. 받은 은혜 갚는다는 생각으로 해드리는 건데요. 그럼, 쉬세요~ 흐흣.

신일중이 특유의 웃음소리를 흘리며 통화를 끝냈다.

배틀 셰프에서 도움을 주었던 인연이 이런 식으로 흘러가게 될 줄은 상상도 못한 강지한이었다.

* * *

그 날, 일을 마칠 때 쯤 신일중에게 다시 연락이 왔다.

그의 아버지가 신일중의 말을 들어주기로 했다는 것.

강지한은 신이 나서 조미옥과 독고진을 만나러 김치 매장에 들렀다.

자초지종을 듣고 난 두 사람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하여튼 우리 사장님 인복도 많으셔. 근데 공장이 횡성에 있으면 우리 둘 중 한 사람은 천상 거기서 상주해야겠네?”

공장 계약을 하게 되면 사람을 많이 들여야 한다.

사람 쓰는 일은 현장을 관리해 줄 책임자가 있어야 제대로 돌아가는 법이니, 누군가는 그 곳에서 생활을 해야 했다.

“어차피 먼 거리도 아닌데 출퇴근하면 안 돼?”

독고진이 꼭 그래야 하냐는 듯 물었다.

“사람 관리도 사람 관린데 공장 역시 관리해야지. 거기 공장 돌 때만 있다가 다시 돌아오려고? 사람들 퇴근해도 공장이며 물자며 관리해야 할 것들이 태반일 텐데.”

“그런가? 그럼 내가 갈게. 엄마가 여기 계셔.”

“네가 춘천 시내 곳곳으로 김치를 실어 날라야 하니까 내가 가야 맞아. 여기 매장도 죽이지 않고 계속 꾸려 나갈 거야.”

“엄마가 그렇게 생각하면 뭐…….”

독고진은 조미옥의 말에 더 토를 달지 않았다.

그녀는 일을 벌이기 전에 항상 깊이 생각했고, 한 번 하겠다 입 밖으로 꺼낸 후엔 무조건 추진시키기 때문이다.

“근데 엄마. 거기 가서 지낼 곳은 있어? 방은 마련해 놓고 가야 할 거 아냐.”

“나 혼자 묵을 건데 좋은 곳 필요하니? 그냥 작은 단칸방 하나 얻어서 지내면 되지. 그건 걱정 말고 냉동 탑차나 빨리 알아봐.”

“그건 왜?”

“이 녀석이 근데 머릿속에 뇌 말고 두부가 들었나? 이제 거래처 늘어나는데 지금 네 똥차로 그걸 다 나르겠어? 큰 차가 있어야지.”

“아, 그렇지.”

그 말에 강지한이 끼어들었다.

“냉동 탑차는 제가 마련해 드릴게요.”

“아유 됐어! 사장님 그렇게 나오면 부담스러워요. 우리도 그 정도 꾸려 나갈 만큼 벌이는 된다니까.”

“그럼 제가 반을 보태주는 걸로 해요. 그리고 냉동 탑차는 제가 잘 알아봐 드릴게요. 물어볼 만한 분이 있어요.”

조미옥은 강지한이 조용조용해도 자신 못지않은 똥고집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중요한 논의를 할 때는 항상 지고 넘어가는 법이 없는 그였다.

결국 조미옥이 손사래쳤다.

“어휴. 더 말해봐야 사장님 뜻대로 될 테니 입만 아프지. 알았어요. 고맙게 받을게. 그만큼 더 열심히 일해야겠네.”

“감사합니다, 사장님!”

독고진이 존경스런 시선을 강지한에게 던졌다.

“그리고 이거 받으세요.”

강지한이 호일에 쌓인 샌드위치를 두 개를 내밀었다.

식당을 마무리 하면서 만들었던 것이다.

“어머나, 우리 강 사장 센스 좀 봐.”

“흐흐 배고팠었는데.”

두 모자가 샌드위치를 받아들자마자 따스한 온기가 전해지며 버터에 구운 식빵의 고소한 향기가 식욕을 자극했다.

“잘먹겠습니다!”

독고진이 샌드위치를 크게 한입 베어 물었다.

바사삭.

잘 구워진 빵이 부서지며 그 사이에 차곡차곡 쌓여 있던 양상추와 치즈, 계란 프라이, 햄이 한꺼번에 씹혔다.

“와, 계란이 반숙이네요?”

“네, 엄마가 항상 그렇게 만들어 줬었어요.”

독고진이 감탄하며 계속 턱을 움직였다.

재료들 사이사이 발려 있던 딸기잼과 마요네즈, 케첩이 한 박자 늦게 퍼지며 다채로운 맛이 조화롭게 퍼져 나갔다.

“어머나, 맛있다.”

조미옥이 진심을 담아 말했다.

안에 들어간 재료들은 평범했는데 계란을 반숙으로 만든 것이 신의 한 수였다.

부드럽게 퍼지는 노른자가 자칫 강렬할 수 있는 케첩과 마요네즈, 딸기잼의 맛을 부드럽게 어루만져 주며 완벽한 맛의 합일이 완성됐다.

씹을수록 비강을 타고 넘어가는 버터의 풍미도 기가 막혔다.

“사장님은 어떻게 토스트 하나를 만들어도 이렇게 맛있어요?”

독고진이 신이 나서 물었다.

사실 토스트는 크게 대단할 것이 없는 음식이었다.

요리 등급은 레벨 3이었으니 맛있다고 하는 토스트 전문점에 가면 얼마든지 맛볼 수 있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강지한이 만든 토스트엔 그의 어머니 특유의 손맛이 스며 있었다.

어느 집이나 엄마가 해주는 엄마 레시피 토스트 하나씩은 있게 마련이다.

그 맛은 토스트 전문점에서 파는 것과는 또 다른 특별함이 존재했다.

두 모자가 게 눈 감추듯 토스트를 흡입했다.

그러자 시스템 메시지가 나타났다.

[강지한의 음식을 먹은 조미옥, 독고진은 다른 부위보다 관절이 안 좋습니다.]

[토스트 속 치즈에 함유된 칼슘이 관절 건강에 미미한 도움을 줍니다. 건강 수치를 2 얻었습니다.]

[퀘스트-건강 수치 8/80]

‘어라.’

토스트는 순전히 고마운 마음에 만들어 왔던 것인데 생각지도 못했던 건강 수치를 얻게 됐다.

강지한의 선의가 네잎 클로버를 가져다주었다.

* * *

집으로 돌아가는 길.

강지한은 차에 시동을 걸어놓고 윤이 식품 이상철 사장과 통화를 나눴다.

“네네. 그 정도 가격에 알아봐 주실 수 있다고요? 네네. 그렇게만 해주시면 감사하죠. 네, 알겠습니다! 들어가세요, 사장님.”

강지한이 알아봐 주겠다고 한 냉동 탑차의 정보통이 바로 이상철 사장이었다.

식자재 사업을 하기 위해서 냉동 탑차는 필요불가결 요소다.

때문에 그쪽 방면에도 빠삭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예상대로였다.

이상철 사장은 줄곧 거래를 하고 있는 딜러에게 최대한 좋은 조건으로 구매할 수 있도록 얘기해 주겠노라 호언장담했다.

다음으로 강지한은 이향숙에게 연락을 취했다.

늦은 시간이었으나 올빼미 성향인 그녀는 똘망똘망한 정신으로 전화를 받았다.

통화의 목적은 강지한이 부탁했던 온라인 김치 판매 사이트의 진행 정도를 알아보기 위함이었다.

이향숙은 이미 90퍼센트 이상 진행되었으니 이번 주 내로 완성될 것이라 답했다.

“됐다.”

통화를 끝낸 강지한이 비로소 차를 몰아 집으로 향했다.

김치 사업의 확장을 위한 모든 요소들이 빠르게 갖추어져 나가고 있었다.

* * *

자정을 넘긴 시간.

분식집 막내아들의 드라마 촬영 세트장에는 무거운 기운이 감돌았다.

“잠깐 쉬었다 갑시다!”

송만대 감독이 신경질적으로 소리친 뒤 담배를 꼬나물고 밖으로 나가 버렸다.

그러자 주연배우 좌경우를 비롯 다른 배우들까지 모두 얼어붙고 말았다.

오늘 촬영분에는 중견 배우가 없었다.

다들 신인이나 데뷔한 지는 오래됐는데 아직 뜨지 못한 중고 신인들, 혹은 한물갔다가 다시 상승세를 타려는 연예인이 전부였다.

“감독님 완전 뚜껑 열렸나 본데.”

아이돌 출신의 배우 윤선아가 좌경우에게 다가와 속삭였다.

“하아, 힘드네.”

“나도 죽겠어.”

두 사람이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비단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이번 신에 투입되는 다른 주조연 배우들 역시 죽을 맛이었다.

분식집 막내아들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아버지를 대신해 막내아들이 아버지의 분식집을 운영해 나가는 이야기다.

아버지는 전설의 분식집 사장이라고 불릴 만큼 손맛이 좋았다.

막내아들은 그 손맛을 재현하기 위해 여러 가지 단서를 조합해 열심히 노력해 나간다.

현재 촬영 중인 장면은 막내아들이 드디어 아버지의 떡볶이를 재현해 내어 가족과 분식집 직원들이 이것을 맛보고 놀라는 장면이다.

그런데 송대만 감독이 원하는 표정들이 나오지를 않았다.

벌써 한 달째 진행된 강행군으로 피로가 누적된 것도 있었지만, 송만대가 생각하는 커트라인이 너무 높은 것이 근본적인 문제였다.

그는 드라마 감독으로서는 드물게 작품의 하이퀄리티를 추구한다.

해서 완벽한 대본에 연기 잘하는 배우, 유치하지 않은 세트장, 능력 있는 촬영팀이 갖추어지지 않으면 절대 작품을 잡지 않는다.

그렇다 보니 배우들에게 요구하는 연기 감정도 무척이나 디테일했다.

특히 요리 드라마인 이번 작품은 음식을 먹었을 때의 표현력이 중요했다.

그 안에서도 실종된 아버지의 떡볶이 맛을 재현해 냈으니 더더욱 열과 성을 쏟게 되는 건 당연한 일.

하지만 배우들은 송만대 감독이 원하는 표정과 감정선을 잡아내지 못했다.

떡볶이를 먹을 때 아버지의 손맛을 재현한 데서 오는 카타르시스와 반가움, 그리고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몰려오는 한편, 차라리 오르가즘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어마어마한 맛에 정신이 아찔해지는 표정을 모든 배우가 연기해야 했다.

“말이 쉽지. 그걸 어떻게 표현해요?”

분식집 막내아들에서 주방 보조역으로 출연 중인 신인 조연배우 안수호가 투덜댔다.

다들 말을 안해서 그렇지 안수호와 같은 마음이었다.

그런데 그때.

“어쩌면 가능할지도 몰라.”

좌경우가 혼잣말을 하듯 중얼거렸다.

이를 옆에 있던 윤선아가 듣고 물었다.

“오빠 혹시 그 생각해?”

“너도?”

“응. 감독님한테 이 신 잠깐 미루고 다른 신부터 촬영하자고 하자. 내일 내가 매니저한테 부탁해서 춘천 다녀오라 그럴게.”

“그래, 부탁한다.”

두 사람은 강지한의 음식만이 이 난관을 헤쳐 나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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