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5
Restaurant 94. 능이삼계탕
“사람들에게 음식을 먹여서 건강 수치를 80 이상 수집하라고?”
강지한이 퀘스트를 읽으며 중얼거리자 허공에 글자가 나타났다.
[퀘스트-건강 수치 0/80]
다행히 이번 퀘스트는 제한 시간이 없었다.
그런데 건강 수치를 어떻게 수집하라는 건지 오리무중이었다.
하지만 강지한은 걱정하지 않았다.
레벨 업 시스템은 대단히 친절하다는 걸 여러 번의 경험으로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튜토리얼을 시작합니다. 음식을 하나 만드세요.]
역시나.
강지한의 예상대로 레벨 업 시스템은 그가 궁금해하는 것을 해결해 주기 시작했다.
“흐아암~ 잘 밤이었는데.”
조금 귀찮긴 해도 강지한은 몸을 움직였다.
부엌으로 나와 냉장고를 열었다.
곧 누워야 할 참이었기에 거창한 걸 만들기는 싫었다.
“뭐가 좋을까.”
고민하던 강지한의 눈에 얼마 전 만들어 두었던 오렌지 청이 보였다.
음료수를 워낙 좋아하는 그였기에 심심할 때마다 타먹으려고 만들어 둔 것이었다.
“이걸로 하자.”
강지한이 오렌지 청과 탄산수 한 병을 꺼냈다.
그리고 컵에다가 오렌지 청 한 숟갈에 탄산수 반병을 타 마구 섞었다.
오렌지에이드가 완성되자 등급창이 나타났다.
[강지한의 맛있는 오렌지에이드]
요리 등급: LV3
-질 좋은 오렌지로 만든 오렌지 청에 탄산수만 부어 상큼하고 깔끔한 맛이 좋다.
오렌지에이드는 크게 공들여 만든 것이 아닌지라 등급은 평이했다.
수제 청을 만들어 에이드를 파는 카페에 들르면 얼마든지 맛볼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때 튜토리얼 메시지가 떠올랐다.
[만든 음식을 드세요.]
“역시 먹이네.”
잘 밤인데 무거운 음식을 만들었더라면 힘들 뻔했다.
강지한이 오렌지에이드를 꿀꺽꿀꺽 마셨다.
시원하고 톡쏘는 탄산 속에 오렌지의 상큼한 향이 확 퍼졌다. 동시에 새콤달콤한 맛이 혀를 자극했다.
순식간에 오렌지에이드를 비우자 또 다른 메시지가 나타났다.
[강지한의 음식을 먹은 사람은 피로가 많이 쌓여 있습니다.]
[강지한의 음식에 담긴 비타민C 성분이 섭취한 이의 피로감을 미세하게 덜어줍니다. 건강 수치를 1 얻었습니다.]
그러자 허공에 떠 있는 퀘스트 창의 수치가 변했다.
[퀘스트-건강 수치 1/80]
“이런 식이구나.”
강지한은 이번 퀘스트의 매커니즘을 이해했다.
친절한 레벨 업 시스템은 그가 이해한 것을 글로 알기 쉽게 정리해 주었다.
[누군가 강지한님의 음식을 섭취하게 될 경우 우선적으로 섭취자의 현재 심신 상태를 파악합니다.]
[심신 상태 파악 후, 섭취자의 가장 좋지 않은 부위, 혹은 증상에 도움이 될 만한 요소가 음식에 있는지 파악합니다.]
[그에 해당하는 요소가 음식에 있을 시, 건강 수치를 1 얻게 됩니다.]
“음……. 그에 해당하는 영양소가 아니라 요소라.”
말인즉, 영양소 외에 다른 쪽으로도 도움이 된다면 건강 수치를 얻게 된다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추억의 음식 같은 것을 먹었을 때 우울했던 기분이 좋아진다면 그 역시 건강 수치를 얻는 포인트가 되는 것 같았다.
[단, 손님들은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한 가지 조건이 붙었다.
손님들은 퀘스트 완성의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것.
그렇다면 강지한의 주변 사람들을 공략해야 한다는 건데.
‘가장 쉬운 건 분식집 식구들이지. 아무래도 이번 퀘스트는 해결하는 데 시간 좀 걸릴 것 같네.’
확실한 건 앞으로 경험해 보면 될 일.
우선은 몰려오는 수마를 해결하는 게 우선이었다.
“흐아암~”
하품을 늘어지게 한 강지한이 방으로 들어가 누웠다.
그런 그의 품으로 설탕이가 달려와 폭 안겼다.
강지한이 부들부들한 설탕이의 몸을 어루만지다 금방 새근새근 잠들었다.
설탕이도 강지한의 팔을 배고 눈을 감았다.
잠든 주인과 강아지의 얼굴이 꼭 닮아 있었다.
* * *
5월 22일 화요일 오전 9시.
오픈 준비로 한창인 지한 김치전골에 강지한이 방문했다.
[지금까지 누적된 만족도 포인트 38,153을 흡수합니다.]
나흘 간 쌓인 손님들의 만족도 포인트가 흡수됐다.
이로써 총 144,313포인트가 누적되었다.
이제 지한 김치전골에서 얻을 수 있는 만족도 포인트는 없었다.
포인트를 얻을 수 있는 일주일의 기한이 전부 끝났기 때문이다.
“지한 총각~ 어쩐 일이야?”
주방에서 재료들을 손질하던 김숙자가 강지한을 반겼다.
“어머니 보고 싶어서 왔죠. 매일 바빠서 어떡해요? 힘들지 않아요?”
“파리 날려서 마음 아픈 거 보다 근육통이 낫지. 나 이러다가 부자 되는 거 아닌가 몰라? 호호.”
“부자 되셔야죠. 그래서 더 즐겁게 살아야죠. 그러려고 돈 버는 거잖아요.”
“맞아. 먹고 싶은 거 먹고, 하고 싶은 거 하고, 아플 때 바로바로 병원 가고. 그러려고 돈 버는 거지. 뭐 별거 있어?”
“그럼요. 제가 뭐 도와드릴 거 없어요?”
“나보다 더 바쁜 양반이 뭘 도와준다고 그래? 어서 가서 분식점 일이나 돌봐. 그리고 시간 나면 언제든 좋으니까 들르고. 강 사장보다 실력은 못해도 정 듬뿍 담아서 집밥 차려줄 테니까.”
집밥이라는 말에 강지한의 입이 귀에 걸렸다.
“감사합니다.”
* * *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여기, 김치 더 주세요!”
“네~!”
이리나가 활기차게 대답하며 부지런히 움직였다.
강지한은 주방에서 쉴 새 없이 요리하며 그런 이리나를 눈여겨봤다.
‘다행히 어제의 우울을 많이 떨쳐 낸 모양이네.’
한결 밝아진 이리나의 모습이 다행스러웠다.
만약 오늘까지도 풀 죽어 있으면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건지 물어볼 참이었다.
점심 피크 타임이 지나가고 찾아온 브레이크 타임.
오늘 식사 담당은 용성우였다.
한데 그를 밀어내고 강지한이 주방에 섰다.
“오늘은 내가 만들게. 아니, 당분간은 내가 계속 식구들 식사 챙길 테니까 그렇게 알아. 중만 아저씨도 양해 부탁 드려요.”
“강 사장이 해주면 맛있고 좋지 뭐. 근데 왜 굳이? 힘들 텐데 그때만이라도 좀 쉬지. 아니면 우리가 해주는 게 영 맛이 없어서 그래? 그럼 뭐 시켜 먹던가 하자고.”
고중만의 염려에 강지한이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거 아니에요.”
고중만이 해주는 음식은 제법 먹을 만했다. 비록 강지한의 육수와 특제 소스, 양념을 가지고도 레벨 3 이상의 음식을 만들어 내지는 못했지만 손재주가 완전히 없는 건 아니었다.
아울러 용성우는 하루가 다르게 실력이 늘어 지금은 모든 메뉴들을 레벨 4 이상 만들어내는 것이 가능했다.
김치가 들어가는 메뉴들은 일률적으로 레벨 5 이상의 수준으로 만들어냈다.
아무리 강지한이 베이스를 깔아주었다고 해도 노력 없이는 다다를 수 없는 경지였다.
이 정도면 피치 못할 사정으로 강지한이 자리를 비워야 할 때 믿고 주방을 맡겨도 될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지한이 주방을 사수하려는 건 퀘스트 때문이었다.
“앞으로 한동안 브레이크 타임엔 제가 건강식을 해드릴 테니, 같이 몸보신합시다.”
그리 말한 강지한은 주방 냉장고에서 거대한 검은 봉투를 꺼냈다.
그 안에는 집에서 미리 푹 삶아 온 삼계탕 용 백세미(白-semi) 여섯 마리가 담겨 있었다.
백세미란 ‘깃털과 살의 흰색인 준육계(white semi broiler)’를 일컫는 말로 한자와 영어를 섞어서 간단히 표현한 것이다.
이 백세미들은 새벽 도깨비 시장에 나가 사온 것들이다.
그걸 집에서 출근하기 전까지 푹 고았다.
속에는 찹쌀과 씨를 제거한 대추, 그리고 마늘과 인삼을 각각 넣어 꽉 채웠다.
육수엔 능이버섯도 첨가했다.
버섯을 좀 좋아한다는 사람들 중에서는 버섯을 논할 때 1능이, 2송이, 3표고라고 하는 경우도 많았다.
몸값은 송이가 최고지만 버섯 자체의 풍미만으로는 능이를 더 쳐주는 사람들도 제법 있다는 얘기다.
강지한은 냉장고에서 육수를 담아온 위생팩도 꺼냈다.
그리고 큰 솥에 닭 여섯 마리와 육수를 넣고 한 번 팔팔 끓여내 뚝배기 여섯 개에 나눠 담아 테이블에 올렸다.
그러자 모든 그릇의 위로 요리등급이 주르륵 나타났다.
능이삼게탕의 레벨은 4였다.
들어간 재료 중에 능이가 레벨 업에 한몫했다.
물론 강지한의 특제육수가 없었다면 레벨 3에서 그쳤을 것이다.
“와아! 삼계탕이다!”
막내 이주희가 눈을 초롱초롱 빛냈다.
지한 분식 식구들이 테이블에 두런두런 둘러앉았다.
“어서 드세요.”
강지한의 말에 잘 먹겠다고 합창한 사람들이 너도나도 삼계탕을 맛봤다.
“호록. 화아.”
국물을 들이켠 용성우가 감탄을 뱉었다.
특제 육수에 천연 조미료와 능이버섯, 닭으로만 우려 맛을 낸 국물은 자극적이지 않게 담백하면서도 깊고 진한 것이 가히 일품이었다.
“이야. 얼마나 잘 삶았는지 뼈가 그냥 발라지네.”
고중만은 열심히 다리살을 발라 먹고 있었다.
한쪽 다리를 금세 먹어치운 그가 반대쪽 다리를 뜯어 입에 넣고 쏙 빼니 뼈만 나왔다.
입안 가득 찬 고소한 살은 부드럽게 씹히며 녹아들 듯 사라졌다.
“진짜 맛있다. 그치?”
이리나가 용성우에게 물었다.
“응. 정말 맛있다. 하하.”
어쩐지 어색하게 대답하는 용성우를 보며 최지민이 피식 웃었다.
이후도로 이리나는 계속해서 용성우와 대화를 나누며 식사를 해나갔다.
“근데 이거 먹으니까 돌아가신 우리 할머니 생각난다. 시골 가면 백숙 해줄 때 꼭 능이버섯 넣어주셨거든.”
“그랬어? 나는 능이버섯 들어간 건 처음 먹어봐.”
두 사람 사이의 거리가 어쩐지 평소보다 훨씬 가까워 진 것 같은 광경이었다.
그렇게 식사를 다 마치고 난 뒤 강지한의 앞에 시스템 메시지가 주르륵 나타났다.
[강지한의 음식을 먹은 용성우는 소화불량이 심합니다.]
[능이버섯엔 단백질 분해 성분이 다량 함유되어 있어 소화가 잘 되도록 도와줍니다. 건강 수치를 1얻었습니다.]
[강지한의 음식을 먹은 고중만, 최지민은 기력이 많이 떨어져 있습니다.]
[인삼의 항산화 작용으로 원기가 미세하게 충전됩니다. 건강 수치를 2 얻었습니다.]
[강지한의 음식을 먹은 이주희는 피부가 평소보다 거칠어진 상태입니다.]
[닭고기의 콜라겐 성분이 피부미용에 미세한 도움을 줍니다. 건강 수치를 1 얻었습니다.]
[강지한의 음식을 먹은 이리나는 심적으로 우울한 상태입니다.]
[능이삼계탕을 먹으며 떠올린 옛 추억이 그녀의 마음을 달래줍니다. 건강 수치를 1 얻었습니다.]
[퀘스트-건강 수치 6/80]
다행스럽게도 능이삼계탕은 모든 사람들에게 도움이 됐고 건강 수치를 5나 얻을 수 있었다.
다들 만족스러운 식사를 끝낸 뒤, 슬슬 저녁 오픈을 준비하고 있을 때였다.
지이이잉-
조미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다른 시간엔 바빠서 전화를 못 받으니 브레이크 타임에 맞춰 전화를 건 것이다.
“네, 조 사장님.”
강지한이 전화를 받자마자 조미옥의 잔뜩 신이 난 음성이 들려왔다.
-강 사장! 고기집 일곱 군데 모두 계약하재!
“그래요?”
-응! 근데 이 정도 수준이면 이제 사람 하나둘 더 구하는 걸로는 힘들 것 같아. 앞으로 계속해서 거래처가 늘어날 텐데 아무래도 공장 같은 거 하나 잡아야 하지 않을까 싶어. 강 사장 생각은 어때?
강지한은 이미 이리나에게 김치를 온라인으로 판매하기 위해 사이트를 만들어 달라 부탁까지 해놓은 상황이었다.
때문에 공장 계약을 하긴 해야 했다.
“네. 저도 생각했었어요. 일단 고기집 계약은 긍정적으로 진행해 주시고 공장은 제가 알아본 다음 다시 연락드릴게요.”
-그래요~ 호호호.
통화가 끝나자마자 강지한은 지한 분식 가족들에게 혹시 주변에 김치 공장을 운영하는 사람이 있는지 물었다.
하지만 모두 김치 공장과는 연이 없는 이들이었다.
결국 스스로 발품을 뛰어야겠구나 생각하던 그때.
‘어쩌면?’
강지한이 혹시나 싶어 배틀 셰프 지원자들 단톡방에 들어가 질문을 던졌다.
-여러분, 혹시 김치 공장 쪽 돌아가는 잘 아시는 분 계신가요?
그러자 이를 읽은 지원자들의 메시지가 정신없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주변에 누가 김치 공장을 하고 있다는 둥.
자신이 김치 공장이랑 계약을 해봐서 잘 안다는 둥.
제법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들이 많았다.
그런데 그때.
여태 조용히 있던 한 사람의 채팅으로 게임이 끝났다.
-저…… 우리 아버지가 김치 공장 세 개 돌리고 계시는데 이달에 한 군데가 계약이 끝나요.^^;; 지한 씨만 괜찮으시면 바로 말씀 넣어 드릴게요.
강력한 메시지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신일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