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하는 식당-93화 (93/330)

# 93

Restaurant 92. 동스 삼겹살

세트장을 빠져 나오는 강지한의 뒤를 도근한이 빠르게 따라 붙었다.

그때, 이 광경을 지켜보던 노영철이 카메라 감독에게 손짓했다.

눈치 빠른 카메라 감독은 얼른 그들을 좇았다.

노영철은 강지한과 도근한의 관계를 방송에 붙여 내보낼 셈이었다.

그동안 세트장 내에서 잠깐잠깐 오가는 두 사람의 대화를 노영철 피디는 전부 들을 수 있었다.

그로 인해 그들이 친구이자 라이벌 관계라는 것을 파악했다.

그간의 대화와 풍기는 분위기로 봐서 전부터 좋은 관계로 지내지는 못했던 것 같았다.

그러다 이곳에서 다시 만났는데 강지한은 도근한에게 큰 신경을 쓰지 않는 반면, 도근한은 강지한을 많이 의식하고 있었다.

그리고 매번 강지한에게 밀려났다.

한데 오늘.

드디어 도근한이 강지한에게 한 번의 승리를 거두었다.

그 과정을 잘 뽑아내면 한 편의 드라마가 완성될 것 같았다.

“지한아.”

도근한이 강지한을 불렀다.

성큼성큼 앞으로 나아가던 강지한이 멈춰서 뒤를 돌아봤다.

할 말이 있어서 부르긴 했는데 막상 얼굴을 대면하고 서 있자니 입이 잘 안 떨어졌다.

그런 두 사람을 두 대의 카메라가 비추고 있었다.

“할 말 없으면 갈게.”

강지한이 다시 돌아서려 할 때였다.

“운이 좋았다.”

도근한이 겨우 입을 열었다.

“응? 무슨 말이야?”

“운이 좋았어. 이건 정말 내 실력으로 이긴 거라고 할 수 없어.”

그건 빈말이 아니라 진심이었다.

오늘 정도 퀄리티의 완벽한 스테이크는 백 번을 구우면 그중 한 번 나올까 말까 했다.

그런 작품이 운 좋게 경연에서 탄생한 것이다.

일률적으로 같은 퀄리티의 스테이크가 만들어지지 않는 이상 그건 본인의 실력이라고 내세울 수가 없었다.

하지만 강지한의 생각은 달랐다.

“운이 좋았다고 해도 네 손끝에서 만들어진 스테이크니까, 결국 그것도 네 실력이야. 아직 익숙해지지 않았을 뿐이지. 없던 실력이 허공에서 튀어나오는 건 아니니까. 아무튼 축하한다. 진심으로.”

강지한은 말미에 옅게 미소 지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도근한은 또 한 번 자신이 부끄러웠다.

비록 단 한 번의 패배였지만 그래서 더 약오를 수도 있는 문제였다.

하지만 강지한에게서 그런 낌새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순수하게 도근한을 축하해 주었다.

승패에 깔끔하게 승복했다.

그것으로 끝.

이상의 추잡함이나 구질구질함은 전혀 없었다.

‘나는 왜 저렇게 하지 못했지?’

단 한 번도 도근한은 강지한의 우승을 축하해 주지 않았다.

씁쓸함을 안고 스스로를 절치부심하는 에너지로 삼았다.

도근한은 비로소 강지한과 본인이 근본부터 다르다는 걸 깨달았다.

인간적인 됨됨이와 속에 있는 그릇이 달랐다.

도근한의 눈에 강지한이 더욱 거대한 태산처럼 비추어졌다.

“간다.”

더는 아무 말도 없는 도근한에게 강지한이 작별을 고했다.

멀어져 가는 그의 뒷모습을 도근한은 한 동안 멍하니 쳐다봤다.

그때였다.

타타타탁!

누군가가 석상처럼 굳어 있던 도근한의 옆을 빠르게 지나쳐 갔다.

신일중이었다.

그가 강지한을 좇아가 소매 끝을 잡아 세웠다.

“일중 씨?”

“저, 저기, 그…… 감사했습니다.”

“아녜요. 감사는요.”

“이런 말…… 이상…… 하, 하겠지만. 언젠가 제가 지한 씨한테…… 도, 도움될 일이 있으면 무조건 도울게요. 그리고 도움이 될 수 이, 있을 거예요. 후우우.”

한바탕 말을 쏟아낸 신일중이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강지한이 그런 그의 어깨를 두들겨 주었다.

“그래요. 알았어요. 언젠가 그럴 일이 생긴다면 꼭 도와주세요.”

다른 사람 같았으면 마음만이라도 고맙다고 했을 테지만, 신일중에게는 그 도움을 받겠다고 했다.

이 수줍은 청년이 얼마나 용기를 내서 그런 말을 건넨 건지 익히 짐작이 갔기 때문이다.

“그럼 다음 주에 봐요, 우리.”

“드, 들어가세요.”

그렇게 또 한 번의 경쟁이 마무리됐다.

* * *

‘아, 배고파.’

오늘따라 기력을 많이 사용해서 그런지 참을 수 없는 허기가 밀려왔다.

전철역까지 가는 데도 몇 번이고 식당에 들어갈까 말까 고민할 정도였다.

하지만 몸이 피곤해서 빨리 집에 가고 싶었다.

배고픔보다 피로가 더욱 심했다.

안방에 깔아놓은 이불 생각이 간절했다.

조금만 자고 일어나도 모든 육체적 피로가 싹 풀리는 마법의 이불 말이다.

잰걸음으로 역으로 향하는 강지한.

그런 그의 눈에 이십 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여인 한 명이 보였다.

그녀는 역사 앞에서 쟁반에 김밥을 놓고 호객행위를 하는 중이었다.

“시식하고 가세요~ 맛있는 김밥이에요~! 지민 분식 오픈을 앞두고 시식 이벤트 진행 중이에요~!”

강지한은 저거다 싶었다.

그가 다가가자 호객행위를 하던 여인 ‘한지민’이 밝은 미소와 함께 호일에 싸인 김밥 반줄을 내밀었다.

“시식해 보시겠어요?”

“네.”

시간 뺏기지 않고 허기만 조금 채우기에는 딱이었다.

한지민이 내민 김밥을 받아든 강지한이 호일을 벗겨냈다.

그러자 김밥의 등급이 바로 눈에 들어왔다.

[한지민의 맛있는 김밥]

요리 등급: LV3

-간이 적당하고 들어간 내용물들도 기본에 충실하다. 맛이 없는 건 아니지만 딱 거기까지다. 특징이 없다.

‘아가씨 이름이 한지민인가 보네.’

그런 생각을 하며 김밥 한 알을 입에 넣었다.

그러자 한지민이 기대하는 얼굴로 물었다.

“맛이 어떠세요?”

단아한 외모에 비해 굉장히 쾌활하고 밝으며 눈웃음이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길게 기른 생머리를 뒤로 곱게 묶은 것이 참 잘 어울렸다.

“맛있어요.”

“정말요? 감사합니다! 우리 곧 저 건물에서 오픈하거든요. 꼭 식사하러 오세요.”

한지민이 역 근처에 몰려 있는 작고 낡은 건물들 중 하나를 가리켰다.

“그래요?”

김밥의 레벨이 3인 걸 보니 어느 정도 손맛은 있는 것 같았다.

이 정도면 손님이 너무 없어서 손가락만 빠는 일은 없을 듯했으나…….

‘장사라는 게 또 모르는 거니까.’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것이 음식 장사다.

“분식이랑 간단한 식사 같은 것도 파나요?”

“주로 김밥이랑 떡볶이, 라면 같은 분식류만 팔 거예요.”

“그렇군요.”

“왜요? 뭐가 좀 부족한가요?”

몇 마디 대화를 나누는 사이 강지한이 김밥 반줄을 다 먹었다.

‘그래도 허기는 채웠으니 보답이 될 수 있다면…….’

강지한이 떠나기 전 몇 마디를 해주었다.

“김밥은 뭐니뭐니해도 밥이 가장 중요해요. 좀 더 좋은 쌀을 사용해 보면 어떨까 싶네요. 그리고 밥 지을 때 다시마랑 멸치로 육수를 내서 사용하면 좋아요. 그것만 해도 맛이 훨씬 더 좋아질 거예요. 그럼.”

말을 마친 강지한이 바쁘게 걸음을 옮겼다.

멀어지는 그를 지켜보던 한지민이 눈을 천천히 깜빡였다.

“좋은 쌀이랑 육수밥?”

한지민이 스마트폰을 꺼내 강지한이 알려준 내용을 메모했다.

분식집을 직접 운영하는 건 그녀가 아닌 부모님이었기에 들어가서 귀띔해 줄 참이었다.

“근데 저 사람……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

어디서 봤더라?

생각이 날 듯 날 듯 나지 않는 한지민이었다.

* * *

피로를 달고 집으로 돌아온 강지한.

한데 귀가하자마자 마당에서 김치를 담그던 조미옥에게 전해 들은 소식이 하루의 피로를 말끔히 날려주었다.

“삼겹살 집 아주 대박이래요!”

“그래요?”

“응. 지금 우리 사장님 김치 덕을 톡톡히 보고 있대. 물론 고기가 가장 좋아야겠지만 우리 김치가 어디 보통 김치야? 맛없는 고기도 맛있게 수술시켜 버리는 김치잖아. 일전에 가서 보니까 그 형제라는 분들, 고기는 좋은 거 사용하더라고. 그러니 잘될 수밖에 없지! 안 그래?”

조미옥의 말을 진경혜가 거들었다.

“아까 미옥 언니가 고기집 사장님들이랑 통화하는 거 옆에서 들었더니, 무조건 계약 연장하자는 식으로 말하던데요?”

“나도 똑똑히 들었어요~ 호홍.”

새로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문정연도 콧소리를 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럴게 아니라 우리도 한 번 가서 먹어볼래요? 그 집 매주 월요일에 쉬니까 오늘은 영업하고 있을 텐데.”

진경혜가 신나서 제안을 하니 조미옥의 그녀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에이, 오늘은 우리가 그러면 안 되지! 먼 길 다녀온 낭군님 목 빠져라 기다리고 있었잖아.”

“맞다. 내 정신 좀 봐. 호호.”

강지한은 두 사람이 무슨 말을 하는 건가 싶었다.

독고진에게 설명을 요구하는 눈빛을 보내니 그는 대답 대신 음흉하게 웃었다.

그때였다.

별채의 문이 열리며 예소린이 나타났다.

“지한 씨! 오셨어요?”

반갑게 웃으며 다가오는 예소린을 보며 강지한이 얼떨떨해서 물었다.

“소린 씨가 왜…… 거기서 나와요?”

“아, 화장실 좀 다녀오느라고요.”

“아니 화장실이 문제가 아니라 이 시간에 어째서 우리 집에……?”

거기에 대한 설명은 조미옥이 대신했다.

“말도 마. 점심부터 와서는 우리 일 거들어줬어.”

“그랬어요?”

“낭군님 올 시간 기다리느라 힘든 줄도 모르고 일을 하더라니까. 호호호!”

조미옥이 크게 웃었다.

그러자 다른 사람들도 덩달아 웃음을 터뜨렸다.

강지한은 아직 다른 사람들에게 예소린과의 관계에 대해 말한 적이 없다.

그렇다는 건.

“소린 씨가 말했어요?”

“네.”

예소린이 당당하게 대답했다.

예소린은 조미옥이 치킨집을 할 때 단골손님이었다. 사적으로도 제법 친했다. 한데 지한 김치를 오픈하며 더더욱 사이가 돈독해졌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레 이러한 사실을 털어놓게 된 것이다.

그리고 조미옥이 알았다는 건…….

강지한이 황급히 단톡방에 들어갔다.

평소 단톡방 확인을 하루에 한두 번만 하는 그였다.

“윽.”

이미 단톡방에서는 강지한의 연애에 대한 얘기로 도배가 되어 있었다.

가장 신난 건 김숙자와 고중만이었다.

이리나는 처음 몇 번의 톡 이후에는 죽 말이 없었다.

“나는 두 분이 우리 치킨집 처음 왔을 때부터 느낌이 팍! 꽂혔었어요. 아, 잘되겠구나! 싶더라니까요.”

독고진이 김치를 버무리며 말했다.

“이제 낭군님 오셨으니 신나게 데이트해야지!”

조미옥이 두 사람을 부추겼다.

사실 안 될 건 없었다.

피로는 김치 장사 잘 돌아간다는 얘기에 모두 풀렸고, 설탕이는 이향숙에게 맡겨둔 터였다.

그런데 예소린이 벗어두었던 고무장갑을 다시 끼더니 일꾼들 사이에 자리를 잡았다.

“그런 게 어디 있어요, 오래간만에 얼굴 봤는데. 지한 씨랑 저는 언제든지 둘이 볼 수 있으니까 오늘은 끝내고 다 같이 가요. 이제 얼마 안 남았잖아요. 지한 씨, 괜찮죠?”

강지한은 이런 상황이 처음이라 조금 난감하긴 했지만 불편하진 않았다.

모두 강지한이 가족처럼 좋아하는 이들이었다.

그리고 그런 이들을 챙기는 예소린의 마음씨가 고마웠다.

“그래요. 오늘 우리 일 끝내고 회식합시다.”

* * *

강지한과 예소린, 그리고 지한 김치 식구들은 선동엽, 선동호 형제가 운영하는 동스 삼겹살에서 회식을 열었다.

강지한은 단톡방에 올 수 있는 분들은 참여하라 일렀으나 아쉽게도 다른 이들은 시간이 되지를 않았다.

솥뚜껑 위에서 삼겹살과 양파, 감자, 콩나물, 팽이버섯, 그리고 지한 김치에서 공수한 김치가 맛있게 익어갔다.

이미 삼겹살 5인분을 먹어 치우고 추가로 5인분을 주문한 상황.

“건배!”

흥이 난 독고진이 빠르게 템포를 올리며 건배를 주도해 나갔다.

오늘 회식 자리에 모인 멤버들은 하나같이 주당이었다.

전부 소주로 대동단결해서 홀짝홀짝 잘도 들이켰다.

“크.”

소주 한 잔을 마신 강지한이 잘 익은 삼겹살과 구운 김치를 집어 입에 넣었다.

그러자 두 음식은 입안에서 엄청난 케미를 발산하며 강지한을 행복하게 만들었다.

그때 옆테이블 손님들이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여기 고기 진짜 맛있다.”

“고기도 고긴데, 김치 장난 아니야. 삼겹살집에서 이렇게 맛있는 김치 처음 먹어봐.”

뒷테이블에서 누군가가 소리쳤다.

“여기 김치 좀 더 주세요!”

그러자 그 왼쪽 테이블에서도 손을 들었다.

“여기도 김치 더요!”

사방에서 김치를 리필해 달라고 난리였다.

그 광경을 보고 있자니 강지한의 기분이 뿌듯해졌다.

그가 사람들의 빈 잔에 다시 술을 채워주려는데, 선동엽이 테이블로 다가왔다.

“고기는 괜찮으세요, 사장님?”

“다들 안주 빨 세우느라 정신이 없어요. 고기가 상당히 괜찮네요.”

“보시다시피 회전율이 엄청나서 매일매일 신선한 고기로 손님들을 대접할 수 있습니다. 하하하!”

선동엽의 말대로였다.

그 넓은 홀에는 빈 테이블이 거의 없었다.

“사장님 김치가 일등공신입니다.”

“하하. 김치보다는 삼겹살이 맛있으니 이렇게 오는 거죠.”

“이걸 보시면 그런 말 안 나올 겁니다.”

“네?”

선동엽이 씩 웃으며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한 움큼 꺼내 내밀었다.

그건 다른 고기집 사장님들의 명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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