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1
Restaurant 90. 탈락 후보?
치이이이이익!
태운 면을 수습해도 모자랄 판에 강지한은 남은 한쪽 면 역시 검게 태우더니 옆면도 돌려가며 지져 태웠다.
시어링이라고 하기에는 과하게 타버린 스테이크.
더군다나 워낙 프라이팬이 심하게 과열되어서 안쪽은 열기만 전달될 뿐, 전혀 익지를 않았다.
겉은 타고 속은 익지 않은 스테이크를 강지한은 그대로 접시 위에 놓아두었다.
한식 대가 한돈선과 일식 대가 최현식은 저게 지금 뭘 하는 건지 몰라 의아해했다.
오직 레이먼 박의 입가에만 오묘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강지한의 손이 바쁘게 움직였다.
신일중이 요리를 하는 동안 토마토야채스프는 강지한이 딱 원하는 농도로 조려진 상태.
‘이건 됐고.’
강지한은 스프가 담긴 냄비 아래의 불을 약불로 바꾸고 냉장고를 열었다.
다행스럽게도 신일중은 그가 넣어둔 얇게 저민 안심살을 건들지 않았다.
‘이건 마지막에 하고.’
토마토야채스프 옆 화구에서는 껍질을 벗겨 큼직하게 자른 감자 조각들이 삶아지고 있었다.
‘스테이크 가니쉬로 매쉬 포테이토를 하려고 했나 본데.’
강지한의 예상은 정확했다.
감자를 젓가락으로 쿡 찔러보니 저항감이 거의 없었다. 포실포실 잘 익은 감자를 꺼내 뜨거운 상태로 으깼다.
거기에다 버터, 파마산 치즈가루, 우유를 넣고 식감이 부드러워 질 때까지 섞었다.
마지막으로 소금, 후추, 설탕을 적당량 넣어 다시 한 번 섞어주는 것으로 끝.
‘이건 됐고. 크림 스피니치를 추가하자.’
크림 스피니치(cream spinach).
시금치로 만든 크림소스였다.
강지한이 팬트리에서 시금치를 가져와 손질했다.
뿌리부분과 시든 잎을 전광석화처럼 제거하고 깨끗하게 씻어 물기를 털어냈다.
그리고 냄비에 뜨거운 물을 받아 소금을 한 꼬집 넣고 화구 위에 얹어 끓였다.
애초에 받은 물의 양이 많지 않았고 물의 온도도 높았던지라 금방 끓기 시작할 터.
그러는 사이 양파와 마늘을 다져 팬에 버터 한 스푼을 넣고 볶아주었다.
그때쯤 물이 끓었다.
강지한이 손질한 시금치를 끓는 물에 살짝 데쳐 건져냈다. 거의 동시에 팬에서 볶은 양파가 노릇하게 익었다.
물기를 쫙 뺀 시금치 한 주먹이 볶아진 양파와 마늘 위로 투하되었다. 거기에 생크림과 파마산 치즈, 레몬즙 약간이 추가!
농도는 우유로 조절하고 소금으로 간을 잡으며 열을 가했다.
팬 속의 내용물이 부글거리며 끓었다.
강지한은 한 번 더 간을 본 뒤, 고개를 끄덕이고 팬 속의 내용물을 믹서기에 넣어 갈았다.
그러자 농도가 아주 잘 잡힌 녹색의 고소한 크림 스피나치가 완성됐다.
‘남은 건…… 곁들일 야채들.’
다행스럽게도 신일중이 애호박과 파프리카, 가지를 굽기 좋게 손보아 둔 터였다.
한데 그것만으로는 조금 허전했기에, 팬트리로 가서 아스파라거스를 가져왔다.
그러면서 남은 시간을 확인했다.
‘7분.’
벌써 교대하고 반 정도의 시간이 흘러갔다.
강지한이 가져온 아스파라거스의 뿌리 부분을 2~3㎝ 정도 잘라냈다. 단단해서 식감이 좋지 않기 때문.
따로 삶을 시간은 없기에 다른 채소들과 같이 구워야 했다.
해서 포테이토 필러(potato peeler:감자 칼)로 껍질을 얇게 벗겨냈다.
이렇게 하면 익히기만 해도 충분히 부드럽게 즐길 수 있었다.
손질된 아스파라거스와 채소들 팬에 넣고 버터로 볶으며 소금과 후추로 간을 했다.
채소는 열에 너무 노출되면 아삭한 식감이 사라지기에 적당히 볶아주고 따로 볼에 담았다.
이제 남은 시간은 3분.
마지막 요리를 완성해서 플레이팅까지 끝내야 했다.
강지한이 냉장고에서 저민 안심을 꺼냈다.
‘해보자.’
그가 육전을 포기한 대신 만들려고 한 요리.
그것은 스스로 공부를 하며 쌓은 여러 가지 정보와 양식 요리 대가 제이미 램지의 지식 안에 공통적으로 담겨 있는 이태리 음식 ‘비프 카르파치오(beef carpaccio)’였다.
소고기를 얇게 슬라이스 해서 생으로 먹는 음식으로 한국의 육사시미와 비슷했다.
만드는 과정도 심플하다.
얇게 저민 안심을 접시에 펼치고 그 위에 소스를 뿌려 간단한 치즈 등의 가니쉬를 올리면 끝.
‘우선은 소스부터.’
강지한이 넓은 볼에 우스터소스와 마요네즈, 머스타드, 레몬즙을 적당량 넣고 섞었다. 거기에 소금 후추를 조금 뿌려 간을 맞추어 카르파치오 소스를 완성했다.
이제 남은 건 플레이팅뿐.
그는 냉장고 안에 넣어 차갑게 식힌 접시에 저민 안심을 동그랗게 깔아준 뒤, 소스를 뿌리고 슬라이스한 그라나 파나도 치즈와 급히 팬트리에서 가져와 손질한 루꼴라를 얹었다.
남은 시간은 1분.
매쉬 포테이토를 스테이크 접시 중앙에 놓고 그 위에 스테이크를 얹었다.
사이드로는 크림 스피나치를 담고 반대쪽 사이드에 구운 야채를 보기 좋게 담아냈다.
마지막으로 아스파라거스를 스테이크 위에 장식하는 것으로 끝.
“자, 10초 남았습니다.”
최현식의 음성을 듣고 난 강지한의 손놀림이 더욱 다급해졌다.
그가 약불로 보온되며 조금 더 걸쭉해진 토마토야채스프를 용기에 담아낸 뒤, 파슬리 가루를 한 꼬집 뿌려주었다.
완성된 세 가지 음식을 강지한이 큰 쟁반에 조심스레 얹었다.
그와 동시에.
“제한 시간이 다 됐습니다. 지원자분들은 그만 손을 멈춰 주세요.”
시험이 끝났다.
“휴우.”
강지한이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장막에 들어가 계시는 파트너 분들도 밖으로 나오십시오.”
최현식의 안내에 지원자들이 장막 밖으로 걸어 나왔다.
그들은 자신의 파트너와 포옹하고 손을 맞잡으며 서로를 격려했다.
한데 신일중은 장막 안에서 나오지를 않고 있었다.
“일중 씨?”
강지한이 그를 불러도 요지부동.
“일중 씨, 나오세요.”
강지한은 장막을 손으로 걷어냈다.
그러자 장막 안에서 쪼그려 앉아 있는 신일중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끄으…… 흐윽! 윽……!”
고개를 아래로 떨군 채 울고 있었다.
이를 본 강지한이 그의 옆에 바짝 다가가 앉았다.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이 담당 카메라맨의 앵글에 고스란히 담겼다.
“일중 씨.”
“끄흐……. 미, 미안해요. 미안해요. 제가 멍청해서…… 다, 다 망쳤어요. 끄흑!”
“아녜요. 괜찮아요. 근데 미안해서 그렇게 우는 거예요? 일중 씨 때문에 내가 탈락할까 봐?”
신일중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 탈락 안 해요. 저 이전 라운드에서 탈락면제권 받았던 거 잊었어요?”
“……아.”
그제야 신일중의 울음이 조금 그쳤다.
하나 그렇다고 마음이 편한 건 아니었다.
“그래도…… 스테이크…….”
“제가 알아서 잘 수습했어요. 한 번 볼래요?”
신일중이 겨우겨우 몸을 일으켜 눈물을 닦고 조리대를 살폈다.
한데 강지한의 말과는 달리 스테이크는 전체적으로 과하게 탄 상태였다.
육즙을 잡기 위해 태웠다고 하기에는 정도가 심했다.
“저, 저게…… 왜……?”
“걱정 말아요. 실패한 거 아니니까.”
“아니라…… 고요?”
“저 스테이크, 겉보기와는 많이 다를 거예요.”
그 말을 듣고 보니 스테이크가 못 먹을 정도로 확 타버린 건 아니었다.
그래도 일반적인 스테이크에 비하면 겉면이 과하게 오버쿡된 상황이니 강지한의 말이 의아했다.
저런 스테이크는 듣도 보도 못 했다.
적어도 신일중은 그랬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카메라맨이 바로 스테이크를 화면에 담았다.
노영철 피디는 세트 밖에서 전체적인 상황을 관조하다 강지한의 스테이크가 눈에 잡히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한데 입가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일중 씨가 불안불안하더라니 이번에는 아무래도 실패한 모양이네. 이거 방송 나가면 난리나겠네. 승승장구하던 강지한 지원자의 위기!’
어차피 탈락면제권이 있어서 떨어지지 않는 강지한이다.
그게 법칙이다.
하지만 방송은 편집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지한이 탈락할 것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는 것이 가능했다.
노영철의 머릿속에서 기가 막힌 악마의 편집이 연출되고 있었다.
한편, 세트장에서는 심사위원들이 페일 배틀의 심사를 시작하려는 중이었다.
“서른 명의 지원자 여러분, 모두 수고 많았습니다.”
한돈선이 좌중을 둘러보며 말했다.
“3라운드 페일 배틀에서는 총 세 팀, 여섯 명의 지원자가 탈락의 고배를 마시게 됩니다.”
그 말을 듣는 신일중의 시선이 불안하게 떨려왔다.
그는 자꾸 강지한의 눈치를 살폈다.
강지한이 그런 신일중을 미소로 달래주었다.
“괜찮을 거예요.”
“……네.”
힘겹게 대답하는 신일중의 어깨를 강지한이 토닥였다.
다행스럽게도 몸의 떨림이 많이 진정된 상태였다.
“우선 탈락 후보 다섯 팀을 호명하겠습니다.”
꿀꺽!
여기저기서 마른침을 넘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제발 자신의 이름이 호명되지 않기를 바라며 땀에 젖은 손을 꽉 쥐었다.
“최정신 씨, 구정모 씨.”
첫 번째 팀 두 지원자의 이름이 호명됐다.
최정신과 구정모는 전 라운드부터 계속 아슬아슬했던 지원자들이었다.
한데 그 두 사람이 팀을 이루며 마이너스 시너지를 일으키고 말았다.
둘은 한숨을 내쉬며 단상 앞에 섰다.
“공민아 씨, 주호진 씨.”
나름 준수한 실력을 자랑하던 두 사람이 팀을 이뤘는데 워낙 자기 고집이 강해 음식을 망쳐 버린 케이스였다.
주호신은 화가 난 얼굴로, 공민아는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은 채 앞으로 걸어 나갔다.
이후로 두 팀이 더 불려 나가 총 네 팀이 단상 앞에 서게 됐다.
한데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마지막으로 강지한 씨, 신일중 씨.”
강지한의 이름이 호명되는 순간 지원자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이름은 탈락 후보에 올라서는 절대 안 될 이름이었다.
누구도 이런 상황을 예상하지 못했다.
전 라운드 베네핏 배틀의 우승자이자 늘 기상천외하며 기막힌 실력을 보여줬던 그가 탈락 후보로서 이름을 올리다니?
도근한 역시 믿을 수 없다는 시선을 강지한에게 던졌다.
‘탈락 후보? 말도 안 돼. 설마…… 저 싸가지 새끼가 다 망친 거야?’
도근한을 비롯 다른 모든 이들은 신일중을 싸가지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한이는 탈락면제권이 있으니 괜찮은 거잖아.’
시험이 시작되기 전, 심사위원들은 탈락면제권을 보유한 사람의 팀이 탈락 후보로 지목될 경우 면제권이 없는 사람만 탈락된다고 못 박았었다.
‘살아남겠지.’
도근한은 그 말을 믿고 있으면서도 은연중 불안했다.
‘내가…… 불안해한다고?’
그는 누구보다도 강지한을 타도하겠다는 마음이 강한 이였다.
원래대로라면 강지한이 탈락 후보로 불리게 됐음을 기뻐해야 맞았다.
한데 지금 그는 강지한이 떨어지지 않기를 바라고 있었다.
스스로도 알다가 모를 일이었다.
그러는 사이 다섯 탈락 후보 팀의 요리가 단상 앞 긴 테이블 위에 놓였다.
심사위원들이 단상 아래로 내려와 그 음식들을 빠르게 훑어봤다.
가장 먼저 뭇매를 맞게 된 건 비주얼부터 눈살이 찌푸려지는 강지한과 신일중의 스테이크였다.
“강지한 씨, 신일중 씨.”
최현식이 두 사람의 이름을 언급했다.
“이게 뭡니까? 스테이크의 육즙을 잡기 위해서는 겉면을 태우듯 구워야지 태워 버리는 게 아닙니다.”
한돈선이 그 말을 거들었다.
“그렇네요. 확실히 이 스테이크는 맛있게 조리되었을 거라 생각되지가 않아요.”
“아쉽지만 두 분의 음식은 먹지 못할 것 같습니다. 메인이 이 모양이니 다른 음식들 역시 맛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군요.”
그리 말한 최현식이 스테이크 접시를 들어 쓰레기통에 처박으려 했다.
그때였다.
“스탑.”
레이먼 박의 말에 최현식의 동작이 가까스로 멈췄다.
레이먼 박은 최현식의 손에 들린 스테이크 접시를 가져가 다시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저는 일단 먹어보고 판단해야겠어요.”
그 말에 최현식의 미간이 구겨졌다.
“이걸 먹는다고요? 진심이세요?”
“오브 코스.”
레이먼 박이 미소를 머금고 포크와 나이프를 들었다.
“이 두 분을 탈락 후보로 지목한 데에 이견은 없습니다. 하지만 이 스테이크가 어떻게 쿡(cook) 되었느냐에 따라 두 분은 탈락 후보가 아니라 우승 후보에 이름을 올릴지도 모르겠네요.”
최현식과 한돈선은 레이먼 박이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는 표정들이었다.
레이먼 박이 스테이크를 칼로 한 점 썰어냈다.
검게 그을린 살이 바삭하게 썰리며 그 안에 감추어져 있던 분홍빛의 육질이 드러났다.
노영철 피디가 화면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뭐지? 겉은 탔는데 속은 거의 익지를 않았네.’
속으로 생각을 하던 노영철 피디의 눈이 크게 떠졌다.
‘아, 저거 설마!’
요리 프로그램을 만들며 한식, 중식, 일식, 양식 등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쌓은 노영철 피디는 강지한이 무엇을 만든 건지 살짝 감이 왔다.
“그럼, 먹어보도록 하죠.”
레이먼 박이 썰어낸 스테이크 한 점을 입속에 넣고 씹었다.
그의 턱이 천천히 움직이며 얼굴에 알 수 없는 감정이 퍼져 나갔다.
한 조각을 씹어 삼킨 레이먼 박이 강지한을 똑바로 응시했다.
“아무래도 이 팀은 잘못 나온 것 같네요.”
말을 하는 그의 만면에 웃음이 가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