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하는 식당-90화 (90/330)

# 90

Restaurant 89. 태워 버린 스테이크

접시 위에 놓인 재료는 소고기 안심 부위였다.

생각보다 보편적인 재료에 지원자들의 얼굴에 평온이 찾아왔다.

강지한에게는 저번 라운드에서 받은 탈락 면제권이 있었으므로 다른 지원자들에게 약간의 혜택을 주자는 생각이었다.

한데 강지한이 예상 못했던 것이 하나 있었다.

2인 1조로 요리를 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만약 파트너와 함께 만든 요리가 탈락 위기에 놓일 만큼 엉망이라면 그땐 어찌 되는 걸까?

탈락 면제권으로 둘 다 기사회생할 수 있을까? 아니면 팀 배틀인 만큼 면제권도 효력을 발휘 못한 채 운명공동체로 엮여서 탈락? 그도 아니면 강지한만 살아남고 파트너만 떨어지는가?

그에 대해 강지한이 물어보려 할 때 도근한이 먼저 질문을 던졌다.

“그럼 탈락 면제권을 갖고 있는 강지한의 경우 팀이 만든 요리가 탈락할 정도의 퀄리티로 나오면 어찌 되는 겁니까?”

대답은 최현식이 해주었다.

“강지한 씨만 살아남습니다. 아울러 6명이 탈락해야 하므로 한 명의 탈락자를 추가로 추려냅니다.”

결국 강지한은 어떻게든 살아남을 수 있는 판이었다.

‘이렇게 흘러가버린 이상 좋은 파트너가 매칭되기를 바라는 수밖에.’

둘이서 한 팀이 되어 시험을 치렀는데 자신만 붙고 파트너가 떨어진다는 건 영 기분 좋은 일은 아니었다.

강지한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다른 지원자들은 안심으로 만들 수 있는 요리들을 바쁘게 머릿속으로 그려 나갔다.

도근한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안심을 보자마자 당장 스테이크를 굽기로 했다.

두께도 두툼한 데다 부위는 필레 미뇽(filet mignon).

스테이크를 하기에 딱 좋았다.

“그럼 지금부터 팀을 짜도록 할 건데요, 여러분의 운명은.”

한돈선이 말을 하며 뒤에 놓여 있던 작은 상자를 들어 올렸다.

상자의 위에는 손을 넣을 만한 구멍이 뚫려 있었다.

“이 상자 안에 담겨 있습니다.”

“제비뽑기?”

지원자 중 누군가가 저도 모르게 큰 목소리로 말했다.

한돈선이 그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상자 안엔 1번부터 15번까지의 번호가 두 장씩 담겨 있습니다. 같은 번호가 적힌 제비를 뽑는 사람끼리 파트너가 될 겁니다.”

지원자들은 별다른 규칙 없이 먼저 나오는 사람부터 제비를 뽑았다.

그들은 자신이 뽑은 숫자가 무언지 확인해, 서로의 짝을 찾아갔다.

도근한과 강지한도 다른 지원자와 짝을 이루었다.

도근한은 ‘염동화’와 짝이 되었다.

지원자들 중 제법 괜찮게 요리를 하는 삼십 대 남자로 서울에서 작은 양식집을 운영하는 사람이었다.

좋은 파트너를 만나 희희낙락하는 도근한과 달리 강지한은 조금 난감한 상황에 처했다.

“잘 부탁합니다.”

“…….”

강지한은 자신과 짝이 된 스물세 살 청년 ‘신일중’에게 인사를 건넸다.

하지만 신일중은 그러거나 말거나 강지한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신일중은 처음부터 사교성이 엉망이기로 유명한 지원자였다.

3주 동안 계속 얼굴을 보다보니 지원자들은 나름의 유대감이 생겨 서로서로 안면을 트고 지냈다.

얼굴을 보면 인사를 나누고 이런저런 대화들을 주고받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런데 신일중은 그 어느 누구와도 친하게 지내지 않았다.

먼저 말을 걸지도 않았거니와 누군가 다가오면 입을 꾹 다물고서 모른 체했다.

애초에 소통 자체가 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 때문에 강지한은 조금 걱정이 들었다.

‘대화가 안 되는데 작전이나 제대로 짤 수 있을까?’

강지한이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최현식의 입이 열렸다.

“지금부터 10분을 드리겠습니다. 그 안에 어떤 음식을 만들지 파트너와 상의하기 바랍니다. 만들 음식의 종류는 한 가지여도 좋고, 그 이상이어도 상관없습니다. 둘 이상의 음식을 만들게 될 경우 음식간의 조화는 무시해도 무관하나, 각각의 완성도가 높아야 합니다.”

음식의 조화는 무시해도 된다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10분.

충분한 의사소통을 하기엔 시간이 부족했다.

그마저도 강지한은 신일중이 도통 입을 열지 않아 의견 교환 자체가 불가능했다. 해서 주변 돌아가는 광경을 살폈다.

지원자들은 바쁘게 의견을 교환하는 중이었다.

한데 이미 서로 만들고자 하는 음식을 생각해 둔 터라 의견이 쉽게 합치되지 않았다.

그들은 자기가 생각한 음식을 만들겠다며 자기주장만 펼치기 바빴다.

‘설마……?’

이를 지켜보던 강지한의 뇌리에 스파크가 튀었다.

그는 내심 지원자들이 둘이서 한 팀을 이루기 전에 요리 재료를 보여준 것이 제작진의 배려라 생각했다.

한데 아니었다.

이것은 덫이었다.

만약 팀을 먼저 짠 후에 재료를 공개하면 아직 머리가 비어 있는 상태니 서로 좀 더 원활하게 의견을 섞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제작진은 지원자들이 각각의 요리를 그려 나가고 있을 때, 요리 재료를 보여주었다.

이번 과제는 2인 1조로 진행된다 알려주었음에도 재료를 보자마자 절로 만들고자 하는 요리가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미 서로 생각한 요리가 다른데 의견이 쉽게 섞일 리 없지.’

제작진이 노린 건 바로 이것이었다.

그들은 매 순간순간 어떻게든 갈등과 위기를 만들어 내려 애쓰고 있었다.

하지만 지원자들도 바보는 아니었다.

이미 15개로 줄어든 테이블만 보고 상황이 어찌 돌아가는지 눈치챈 이들은 이런 상황이 올 것을 예측했다.

해서 파트너의 의견에 더 귀 기울여 주었다.

도통 합의를 보기 어려울 것처럼 팽팽하게 맞서던 이들도 5분여가 지나고 부터는 대부분 결판을 냈다.

한쪽이 져주거나, 한쪽이 이기거나.

그런 식이었다.

하지만 강지한은 어떠한 결론도 내지를 못했다.

강지한이 신일중에게 물었다.

“혹시 생각해 둔 음식 같은 거 있어요? 있으면 말해봐요. 제가 맞출게요.”

하지만 신일중은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신일중 씨.”

강지한이 그런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려 살짝 흔들었다.

그런데,

‘……어?’

신일중의 어깨에서 미세한 진동을 느꼈다.

강지한은 시선을 내려 그의 다리를 살폈다.

파르르.

다리가 떨리고 있었다.

아니, 몸 전체가 조금씩 떨리는 게 보였다.

‘이 사람 혹시?’

강지한이 신일중에게 바짝 다가가 그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가까이 들이댔다.

“신일중 씨?”

“……네.”

신일중이 대답을 했다.

그것도 들릴 듯 말 듯 아주 작은 소리로.

“많이 긴장돼요?”

“……네.”

이번에도 집중해서 귀 기울이지 않으면 놓쳐 버릴 만큼 모기 같은 목소리로 답하는 신일중.

그제야 강지한은 신일중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는 엄청 소심하고 여린 사람이었다. 그래서 몹시 긴장했고, 다른 사람과 말을 섞는 것조차 힘들었던 것이다.

즉, 신일중은 싸가지가 아니라 겁쟁이였다.

둘 중 무엇이 더 나은 건지 강지한은 알 수 없었다. 어느 쪽이든 현 상황에서는 그다지 좋지 않았다.

그래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일.

다행히 강지한은 한 가지 가능성을 발견해냈다.

신일중이 저렇게 긴장을 많이 하는 타입임에도 여태 살아남았다는 건 그만큼 실력이 괜찮다는 말이었다.

‘필시 요리하며 실수도 많이 했을 텐데.’

실수를 한 결과물이 여태 탈락한 참가자들의 완벽한 요리보다 나았다는 얘기.

약간의 소통만 가능하다면 해볼 만할지도 모를 일이다.

“신일중 씨, 혹시 소고기 안심으로 만들고 싶은 요리가 있어요?”

신일중이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스테이크.”

다행히도 강지한이 생각했던 것과 같은 메뉴였다.

“좋아요! 우리 그걸 해요. 그리고…… 제가 육전을 하나 더 부칠게요.”

육전.

한정신의 지식 속에서 찾아낸 아이템이었다.

“일중 씨, 믿는다 어쩐다는 말은 하지 않을게요. 괜히 더 부담될 테니, 그냥 여태 혼자 해내왔던 것 정도로만 해주세요. 1등을 목표로 할 필요 없어요. 탈락만 면합시다. 우리의 목표는 그거예요.”

강지한은 이번 라운드의 목표치를 낮췄다.

신일중이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내가 육전을 할 테니 일중 씨가 스테이크를 굽는 거예요. 좋죠?”

한 번 더 살짝 움직이는 신일중의 고개.

“주어진 10분이 지나갔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3라운드 페일 배틀을 시작하겠습니다. 단, 여러분께 아직 공지하지 않은 규칙이 하나 있습니다. 이번 라운트 팀 페일 배틀은 릴레이 전으로 진행됩니다.”

최현식의 말과 함께 진행요원들이 검은 장막 열다섯 개를 가지고와 조리대 옆에 세웠다.

“한 팀이 된 두 사람은 15분씩 교대하며 요리를 진행해야 합니다. A가 요리를 할 때 B는 검은 장막 안에서 대기해야 합니다. 검은 장막 안에서는 바깥 상황이 보이지 않으며, 어떠한 조언도 건넬 수 없습니다. 그렇게 총 네 번의 교대가 진행되는 한 시간 동안 음식을 완성시켜야 합니다.”

“같이 만드는 게 아니라 릴레이전이라고?”

“말도 안 돼.”

“이런 룰이 어디 있어?”

지원자들이 일제히 혼란에 빠져 불만을 토로했다.

그러나 시험은 여지없이 시작됐다.

“먼저 요리할 사람 한 분은 조리대에 남고 한 분은 장막 너머로 들어가 주십시오. 시험이 시작된 이후 15초 동안 두 요리사가 장막 밖에 있으면 탈락합니다. 지금부터 시작해 주세요.”

최현식의 신호가 함께 시간이 흘러갔다.

강지한은 재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시작을 내가 해? ……아니, 마무리를 내가 하는 게 나을 거야.’

생각을 마친 강지한이 신일중에게 말했다.

“일중 씨, 내가 나중에 할게요. 스타트 잘 끊어주세요. 안심을 두 덩이로 자르되, 한쪽을 더 두껍게 잘라줘요.”

두꺼운 쪽은 스테이크를 할 거고 남은 걸로 육전을 부칠 요량이었다.

신일중도 그 정도는 알아들을 수 있었다.

“스테이크용 안심은 마리네이드를, 육전용 안심은 얇게 썰어서 소금, 후추 간 한 다음 마늘 즙 약간 뿌려주세요. 나머지는 기본 재료 준비, 할 수 있죠? 아! 내가 야채스프 하나 따로 준비할게요!”

신일중에게 어떠한 대답도 듣지 못한 채 강지한은 장막 너머로 들어갔다.

시험 시작 15초가 지난 상황에서 조리대에 두 사람이 함께 서 있는 팀은 없었다.

강지한은 장막 안에서 신일중이 잘해나가기만을 바랐다.

강지한 본인이 탈락하기 싫어서가 아니었다.

어차피 그에게는 탈락 면제권이 있었다.

본인의 파트너인 신일중을 탈락시키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었다.

‘아직 15분 안 됐나?’

장막 밖에서는 신일중이 재료를 다듬는 소리가 들려왔다.

쏴아아아아-.

슥슥.

탁탁탁탁탁탁탁!

돌아가는 상황을 알 수 없으니 답답했다.

그렇게 억겁 같은 15분이 흐르고 최현식의 음성이 들려왔다.

“15분 지났습니다. 10초 내로 파트너 교체하세요. 파트너 간에 어떠한 대화도 불가합니다.”

강지한이 장막에서 튀어나왔다. 거의 동시에 신일중이 장막 안으로 모습을 감췄다.

조리대의 상황을 살핀 강지한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두 가지 요리에 필요한 재료들이 잘 다듬어져 있었고, 스테이크용 안심은 마리네이드 해서 랩으로 잘 덮어 공기를 뺀 후, 냉장고에 넣어둔 상태였다.

그런데.

“어……?”

육전용으로 썰어달라 부탁했던 소고기가 문제였다.

‘이건…… 안 돼. 너무 얇아.’

육전으로 부치기엔 얇아도 너무 얇게 썰었다.

이대로 익혀 버리면 부피가 더 줄어들기에 식감과 육즙이 전부 사라져 볼품없어진다.

그건 육전이라 할 수가 없었다.

대체 얼리지도 않은 안심을 무슨 수로 이토록 얇게 썰어낸 건지 의문이었다.

썰린 단면 또한 깔끔했고 육즙의 손실이 적었다.

그만큼 환상적인 솜씨로 포를 뜬 것이다.

아쉬운 건 강지한이 원한 두께가 아니라는 점.

‘어쩌지? 포기해야 하나?’

하지만 육전을 포기하고 스테이크 하나만으로 밀고 가기엔 무리가 있었다.

다른 팀도 분명 두 가지 이상의 음식을 내놓을 것이다.

‘음? 아직 소금 후추 간도 안 해놨어.’

아무래도 신일중이 긴장해 버린 모양이었다.

슬라이스 된 안심을 보며 고민하던 강지한의 머릿속에서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강지한은 거기에 굵게 간 통후추만 살짝 뿌려 랩으로 감싸서 냉장실에 넣었다.

그리고 그라나 파다노 치즈를 얇게 슬라이스 해서 한쪽에 두었다.

그 두 가지 힌트를 신일중이 보고 자신이 뭘 하려는지 알아채주기를 바랐다.

‘다음은…….’

한 가지 문제를 정리한 강지한이 안심 스테이크에 곁들일 토마토야채스프를 만들어 나갔다.

* * *

강지한은 다시 장막 안에 있었다.

15분이 흘러 신일중과 교체한 상황.

답답한 장막 밖에서는 무언가 분주한 소리들이 들려오고 있었다.

제발 신일중이 큰 실수만 하지 않기를 바라며 길고 긴 15분이 지나갔다.

“15분 지났습니다. 이제 마지막입니다. 10초 내로 파트너 교체하세요. 파트너 간에 어떠한 대화도 불가합니다.”

이번이 마지막이었다.

강지한이 요리를 완성하기 위해 장막에서 튀어나왔다.

그런데.

“……아아.”

신일중이 자기 머리를 쥐어뜯듯이 움켜진 채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프라이팬 안에서는 두꺼운 안심이 흰 연기를 피어 올리며 타들어가는 중이었다.

신일중은 교대하라는 소리도 듣지 못했는지 장막 안으로 들어갈 생각을 하지 않고 집게를 집어 들었다.

그런 신일중을 강지한이 잡았다.

비로소 강지한을 확인한 신일중이 화들짝 놀라더니 미안함 가득한 얼굴을 하고서는 장막으로 들어갔다.

강지한은 방금 그가 하려던 행동을 대신 이어나갔다.

재빠르게 집게를 잡아채, 스테이크를 집어 들었다. 이어 스테이크의 상태를 확인한 강지한의 미간이 구겨졌다.

‘맙소사.’

스테이크의 한쪽 면이 거의 타 있었다.

이건 시어링을 위해 태운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검게 타버린 상태였다.

한데 열이 거의 전도되지는 않아 속은 멀쩡했다.

아무래도 신일중이 긴장해서 팬의 온도를 필요 이상으로 높인 상태로 안심을 구워 버린 모양이었다.

그러고는 다른 것에 신경을 쓰다가 이 지경이 되어버렸을 터.

혼자 요리를 해도 긴장백배인데, 팀원에게 폐 끼치면 안 된다는 생각이 그에게 더 큰 부담을 안겨주었다.

그 결과가 한쪽 면이 검게 탄 스테이크였다.

강지한은 스테이크를 잠시 바라보며 고민했다.

그런 그를 심사위원들이 호기심 가득한 시선으로 지켜보았다.

‘이제 어떻게 할 겁니까, 미스터 강?’

레이먼 박이 강지한의 다음 행동을 기대했다.

그때.

강지한이 갑자기 달궈진 팬에 익지 않은 안심의 반대쪽 면을 지져 태우기 시작했다.

‘저건…… 설마……?’

이를 지켜보는 레이먼 박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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